무서운이야기-독서실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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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가넷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작성일2003-03-02 10:55 조회4,460회 댓글0건본문
'유일한'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아주 재미있게 본글이죠...
아주 깁니다^^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공부해 봤니?
뭔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바로 옆에서 공부하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무엇이..
봄이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게 벌써 장마가 시작된다고 일기예보에서는 떠들고 있었다. 계절도 바
꿔고, 기분전환도 할 겸, 몇 년동안 손대지 않었던 책상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서랍 안을 정리하다 보
니, 저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생각지도 않은 물건들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 학생증, 국민학
교 개근상 메달, 중학교 수련회 사진 등등... 추억이 가득 찬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내며 미소를 지
으며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열쇠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열쇠고리에
껴져 있을 뿐 처음 봤을 땐 이 열쇠를 용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용도를 잊어버린 열쇠를 발
견하니, 그 열쇠가 어떤 문을 열었던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크기로 봐선 분명히 문을 여는 열쇠인데, 어디서 썼던 열쇠인지 통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 책상
서랍 구석에 처 밖혀있던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내가 쓰던 열쇠가 맞는 것 같았다. 생각이 안 나
면 안 날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
나는 책상 정리는 뒷전으로 하고, 그 검은 플라스틱에 연결되어 있는 열쇠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몰
두했다. 스텐드 밑으로 가져가 좀 더 환한 불 밑에서 그 검은 플라스틱의 열쇠 고리를 살폈다. 그
걸 이리 저리 돌리면서 보다 보니, 그냥 밋밋한 플라스틱이 아니었다. 위에 뭔가가 붙어있다 떨어
진 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글자 같은 것이 붙어있다 떨어진 자국 같았다.
스텐드 밑에서 그 열쇠고리를 이리 저리 돌려보며, 그 희미한 자국의 글자들을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독....서.....실...
나는 그 세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 열쇠가 지렁이라도 되는 듯이 내팽개치고 담배를 찾았다.
한참을 잊으려고 애썼고, 어느새 잊어버린 그 끔찍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잊어버렸던 그
때 일이 갑자기 또렷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때의 무서움이 느껴졌는지,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등을 벽에 기대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저기 떨어져 있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벌써 9년전 얘기였다.....
9년 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의 일이었다.
남들은 배낭여행이다, 피서다, 공부다 하고 제각기 방학계획을 세웠지만, 군 입대를 2달 남긴 나
로써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가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2달 남았으니, 실컷 놀다들어
가라고 했지만, 이미 대학들어와서 1년반을 지칠 만큼 놀아버린 나로써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시
간을 낭비할 힘도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 갔다 와서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군
대 가면 한참동안 못 읽은 책들이나 실컷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만화, 무협지, 사회 과
학 할 것 없이 아무런 방해 없이 시원한 데서 책이나 읽고 싶었다.
그런 얘기를 친구들과 하다보니, 친구 한 놈이 독서실 총무로 아르바이트 하면 괜찮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에어콘이 나오는데서 책 읽으면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독서실 총무 자리를 알아보
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독서실 총무 자리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고시생으로 채워져 있
었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우연히 벼룩시장에 구인란에서 '독서실 총무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전
화를 걸었다. 전화 번호가 서울이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밑져야 본전인 생각으로 한번 걸어
봤다.
아니나 다를까 독서실은 성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그냥 끊으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
은 독서실 주인이 그래도 한번 와보라는 것이었다. 집과 너무 멀어 다니기 힘들다고 했다니, 그러
면 자동차를 빌려줄테니 와보라는 것이었다.
독서실 총무 자리에 차를 빌려 주다니...
너무나 황당한 제의여서, 호기심까지 생겼다.
위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그날로 찾아갔다.
성남 공단 근처에 위치한 그 독서실은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다. 이런 데 있어도 독
서실이 될까 할 정도의 생각까지 들었다.
덩그러니 상가 건물 하나가 있고, 주변에는 짓다만 아파트 공사장이 있었다. 아마 그 아파트를 겨
냥하고 상가건물을 지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늦어진 모양 같았다. 독서실은 그 상가 건
물 맨 위층인 4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 건물 임대도 잘 안되었는지, 3층은 아예 비어있었
고, 2층도 작은 미술학원이 하나 있을 정도였다.
나를 반갑게 맞아준 독서실 주인은 푸근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눈빛이 좀 이상한 것이 마음이
걸렸지만,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 주인 말로는, 이전에 있던 총무가 얘기도 안하고 무단으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독서실 운영에
좀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 자기는 다른 동네에서 다른 가게를 하고 있어서 독서실을 지키
고 있을 수가 없다는 했다.
근무 조건은 내가 들었던 어떤 독서실 총무 자리보다 좋았다.
웬일인지 보수도 딴 데보다 1.5배 정도였다. 근무시간도 생각보다 짧았다.
고시 공부하고,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독서실 열쇠를 다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찍
올 필요 없고, 일요일은 쉬고 보통 학생들이 학교 끝날 시간인 오후 3시에 와서 새벽 2시까지 총
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 보충 수업후 학생들을 태우고 오는 용도의 봉고가 있
는데, 그 시간 제외하고는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 특별히 필요하다는 얘기가 없으면 출퇴근에 몰
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언제부터 시작하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은 가능하면 내일부터 시작하자며, 독서실의 구조를 안내해 주었다.
전형적인 독서실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총무실 겸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컵라면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작은
휴게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총무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약간의 복도가 있고, 각각 남자방과 여자방이 나눠어져 있
었다. 각각 40석정도 되는 크지 않은 크기였다.
그런데 여자방 쪽으로 난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보였다. 그 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안해 주길
래 물어보았다.
"저 문은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부서진 책상이나 의자, 못쓰는 물건들 넣어두는 곳이니까, 열 필요
도 없어요. 오히려 열면 귀찮아 지기나 하고..."
이상할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중고등 학교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때문에 현재 거의 모든 자리가 찼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독서
실을 나서다가, 무심결에 한 마디 했다.
"괜찮은 일인데, 먼저 총무는 왜 그만 두었죠?"
특별한 뜻이 없게 내뱉은 질문에 독서실 주인의 표정이 좀 심각해지더니, 이상한 얘기를 해주었
다.
"그 친구 좀 이상해졌어요.. 음...
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잘 되었어요...
어짜피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계속 둘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
데.. 하여튼 그 사람 고시공부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좀 미친 것
같았거든요..
아마 공부 때려칠 생각으로 충무를 그만두나 보죠..."
괜히 미친 사람이 했던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좀 오싹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단지 그 때
는 운 좋게 좋은 자리 생겼다고 기분이 좋을 따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얼마나 내가 어
리석었는지....
다음날 읽을 책을 쌓아들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시생과 유학 준비생들이 아침부터 공부할꺼라는 주인 어저씨의 말과는 달리 독서실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커피 자판기를 체크하고,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방안을 청소했다. 별로 시간 걸리지 않고 일
을 끝내고 총무실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어제 창고라고 얘기했던 문이 보였다.
열 필요가 없다는 말 때문인지, 괜히 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몇번을 밀쳐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데 그 문에서 이상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기분이 들자, 문 열기를 포기하고 총무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4시가 되니, 중학생
으로 보이는 애들이 독서실에 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총무를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지
만, 아직은 좀 어려운지 대충 인사하고 지나들 갔다. 차차 친해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읽고 있
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공부 30분 하고 나와서 잡담 2시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독서실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다.
10시정도 되니까 주인 아저씨가 보충수업 끝난 애들을 태우고 독서실에 나타났다. 별일 없냐고 묻
고는 약속대로 출 퇴근때 쓰라며 봉고 열쇠를 내게 건냈다.
자기는 먼저 들어간다며 나가던 주인 아저씨는 갑자기 돌아다 보면서, 이상한 말을 던지고 가버렸
다.
"음... 만약 공부하던 애들이 다 나가면, 학생도 퇴근해..
괜히 아무도 없는데 늦게까지 있다가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나는 무의식중에 네 라고 대답했지만,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라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
어보려 했을때는 이미 아저씨는 밖으로 나갔다.
11시 반 정도 되었을때였다.
공부하던 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다들 가방을 싸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애들 말로는 자기들은 다 이때쯤 독서실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한 두명
은 모를까 전부 나가려고 하니 이상하게 보였다.
기말 고사 며칠 안 남았다는 애들이 전부 일찍 나가는 것도 이상했고, 시계를 보고 무엇에 쫓기듯
이 나가는 듯한 분위기도 좀 이상했다.
마지막 아이가 나간 것은 11시 45분쯤이었다. 그런데 가방을 매고 황급히 나가던 그 애는 뭔가 마
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보고 망설이다가 한마디 했다.
"저.. 웬만하면 총무 오빠도 12시전에 독서실에서 나와요.."
처음에는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12시에 정전이라도 되는 거야?"
내 질문에 그 애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한마디 툭 뱉어 놓고 나가 버렸다.
"12시 넘어서 독서실에 있다간 그 애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니까요!"
그 애들이라니....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줄 알 수 없었다. 아까 애들이 없
으면 일찍 퇴근하라는 아저씨 말도 있고 해서 단지 생각보다 근무가 일찍 끝나서 좋을 뿐이었다.
읽던 책을 접고, 퇴근 준비를 했다.
혹시 책상위에 졸고 있는 애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독서실안으로 들어가 살펴봤다. 남자방
은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여자방쪽으로 가다가 무심결의 복도에 붙어있는 시계를 보게 되었
다.
12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괜히 아까 들은 얘기가 생각나면서, 이유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빨리 퇴근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싸늘한 느낌에 움칫하고 놀랐다. 아무리 에
어콘을 틀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뼈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한기
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둘러 에어콘을 끄고, 독서실안을 대충 돌아봤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저쪽 구석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지 '툭'하는 소리였지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며, 다시 불을 키고 소리난 쪽으로 돌아보려 했다. 그런데, 왠일인
지 불이 안켜지는 것이다.
총무실 불은 이상이 없는 것을 봐서는 정전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 쪽 방만 불이 켜지지 않았
다. 문쪽을 등지고, 어두운 독서실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저 어둠 구석에서 무언가 나롤 노려보
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덩그러니 비어있는 의자와 책상에 마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같은 생각도 들고, 도저히 깜깜한
독서실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등은 고치고, 그 소리가 뭔지는 알아봐야 했기에 손전등을 가져왔다.
손전등을 키고 독서실 안을 비춰봤다.
독서실이라 희미한 불빛이 켜져 있었던 곳이지만, 그 불마저 없으니 정말 음산했다. 손전등 불빛
에 비춰지는 휭하고 비어있는 책상과 의자들은 기괴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스멀스멀하게 밀려오는 이유 모를 두려움을 꼭 참고,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구석구석 비추어 봤
다. 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그 소리는 내가 잘 못 들은 소리겠지 하고, 천장에 붙어있는 형광등을 살펴봤다. 스타드 다마
와 형광등을 바꿔 봤지만,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내일 수리공을 불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손전등을 챙겨들었다.
그때 였다.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 괴기스러워서인지, 등골이 오싹해지고 움직일 수 없었다.
희미했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애들이 소곤대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
가만히 서서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저 끝 벽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온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지며, 천천히 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였다.
벽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나쁜 소리였다.
도저히 더 이상 거기 혼자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 방 밖으로 나섰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또 한번 그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나는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다시 비추어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두려움마저 느낀 나는 도망치듯 그 방을 나와서 총무방에 있던 가방을 챙기는 둥 마는 둥 독서실
을 나왔다.
나오는 순간, 그 창고라는 문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멈칫 했지만,
애써 그 느낌을 무시하고 독서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불꺼진 계단을 내려와 독서실 건물을 나오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놀란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왔다.
괜히 혼자 있다 보니, 쓸데없는 상상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인 아저씨가 세워둔 봉고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건물을 돌아 나오면서, 무심결에 독서실이 있는 4층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과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무서움을 느꼈다.
불꺼진 독서실 창문으로 창백한 얼굴을 한 여자애가 쾡한 눈을 하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
다.....
...나는 우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다시 독서실을 바라보았지만, 창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으시시해졌다.
분명히 내 생각에는 그 괴기한 표정의 여자 애를 본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혹
시 독서실에 남아있는 애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독서실을 나올 때, 좀 서둘러 나오기
는 했지만,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히 확인했다.
한참을 서서 독서실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 보기는 괜히 꺼림직하고, 좀 귀찮아서 잠시 독서실 쪽을 살피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다시 봉고에 올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겠으려니 자위를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길 동안, 그 여자애의 기분 나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뒷
자리에 그 여자애가 타고 있지는 아닐까란 이상한 생각마저 들어 자꾸 백미러를 쳐다보기도 했
다.
집에 도착하자, 부질없는 생각에 떨었던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곧 군대 갈 놈이
독서실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별 상상을 다 했다는 것이 창피할 정도였다.
하도 여러번 긴장하고 떨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밤새 기억도 안 나는 악몽에 시달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왠 일인지 온 몸이 뻐근하고, 과음한 다음날처럼 머리도 지끈 거렸다. 집에서 오
전 시간을 빈둥거리고 나니, 어느새 독서실로 출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3시쯤 도착하니, 오늘도 아무도 없었다. 주인 아저씨가 얘기하던 고시생이라던가 유학 준비생들
은 오늘도 안 온 것 같았다.
나는 어제와 같은 자판기를 살펴보고 독서실을 청소하면서,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
를 했다. 오늘도 그 창고라는 닫혀진 문에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몇 번을 어떻해든 그 문
을 열어볼까 망설였지만, 쓸데없는데 너무 신경쓰는 것 같아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청소를 시작했
다.
어제 고장난 줄 알았던 여자 독서실의 전등은 오늘은 아무런 이상 없이 켜졌다. 고개를 갸우뚱거
리며 독서실 바닥에 청소기를 갖다대며 청소를 했다. 한참동안 구석구석까지 청소하다가 허리를
피려고 일어난 순간, 난 충격을 받았다.
전날 밤 소리가 났던 그 벽에 빨간 색으로 '4'라는 숫자가 휘갈겨 써져 있는 것이었다. 그 빨간 색
은 너무 선명해서 피 같이 느껴졌다.
어제 밤에 그 글자가 써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았지만, 저 위치에 눈에 확 띄
는 빨간색 글자를 모르고 지나쳤을리는 없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독서실을 나간 사이에 누군가가 써놓은 것인 셈이었다.
충격 때문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글자가 써 있는 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누군가가 빨간 잉
크로 휘갈겨 써 놓은 것 같았다. 써 놓은지 시간이 꽤 지났는지, 잉크는 말라 있었다. 그렇지만 흘
러내린 자국하며, 이 글자가 피로 쓰여졌는지, 빨간 잉크로 쓰여졌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피로 써졌겠냐라는 생각을 하고, 물걸레를 가지고 와서 지우기 시작했다. 잉크를 썼다면 유
성 잉크를 썼는지, 생각보다 잘 지워지지 않았다. 아세톤을 가져와서 지웠지만, 유성 잉크도 아닌
지 별로 지워진 것 같지 않았다. 물걸레로 닦아보고 한참을 지우다 보니, 어느 정도 지워졌다.
희미한 자국은 남았지만, 벽지가 아닌 페인트가 칠해진 콘크리트 위해 써 놓은 글씨라 그럭저럭
지울 수 있었다.
글씨를 지우고 나니, 누가 그 글씨를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굴까?
어제 창가에 있던 소녀...
그 여자애의 얼굴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만 상상이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애들이 써 놓은 낙서를 어젯밤에는 보지 못하고, 이제서야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총무실로 들어와, '독서실 벽에 낙서 금지' 라고 종이를 만들어 독서실 문 앞에 써 붙이기까지 했
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는지, 그 경고문을 붙이자 마자, 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총무실로 들
어와 가져온 책을 펼쳤다.
하지만, 아까 그 글씨하며, 어제 그 여자애의 얼굴하며, 책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제 독서실을 나가기 전에 내게 이상한 경고를 해주었던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 아
이는 왜 나보고 나가라고 했으며, 또 '그 애들'은 무엇을 얘기했던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
다.
어제처럼 먼저 중학생들이 몰려왔고, 저녁식사 시간이 끝날 때 쯤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고등학생
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는 독서실이 거의 없는지, 꽤 많은 독서실 자리가 한달 등록하지 않은 애들 자리를 제외
하곤 자리가 거의 찼다.
어제 그 얘기를 했던 아이는 보충수업을 하고 오는지, 다른 학원을 갔다 오는지, 아직 나타나지 않
았다.
10시쯤 되니, 주인 아저씨가 보충 수업하는 애들을 태우고 나타났다. 별일 없냐는 이례적인 질문
을 하고 수고하라며 바쁜 듯이 나가려던, 주인 아저씨는 내가 써 붙인 낙서 금지라는 벽보를 보더
니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무슨 낙서가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오늘 발견했던 그 빨간 글씨의 '4'에 대해서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주인 아저씨는 큰일이
났다는 얼굴을 하고, 낙서 있던 자리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주인 아저씨를 데리고, 낙서를 지운 곳으로 갔다.
아저씨는 낙서 자국을 한 참 뚫어지게 보더니, 뭔가 두려운 듯한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얘기했다.
"자네 말대로, 애들이 낙서한 것 같군....
앞으로도 만약 이런 낙서가 발견되면 나에게도 알려줘.
어떤 놈인지 혼내줘야겠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주인 아저씨는 뭔가 쫓기듯이 황급히 독서실을 나서면서, 내게 말했다.
"요즘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 독서실은 이 시간에 잠깐 들리는 것이외
에는 잘 올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자네가 잘 운영해 주길 바라네.
그리고.... 밤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연락하고..
요즘 애들도 일찍 가는 것 같으니, 애들만 없으면 자네도 일찍 문닫고
들어가게..."
그러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독서실을 나갔다.
좀 이상했지만, 정말 무슨 일이 있는지 바빠 보였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어제 그 애가 오기를 기다렸다.
학원을 갔다 오는 길인지, 10시 좀 넘어서야 그 여자애가 무겁게 보이는 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걸
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힐끔 보더니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 애를 불렀다.
"얘야, 나랑 좀 얘기 좀 할래?"
그 애는 의아한 듯이 뒤돌아 봤다.
"무슨 얘기요?"
"응... 별 것 아니고, 가방 두고 잠시만 나와 볼래.
내가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좀 망설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독서실안에 두고 나왔다.
나는 커피를 뽑아들고, 총무실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그 애는 이 근처 고등학교를 다니는 2학년 은혜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제 내게 했던 얘기가 무슨 얘기냐고 물어보았다.
은혜는 내 말을 듣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제 정말 무슨 일 있었죠?
그렇죠?"
나는 쓸데없는 얘기했다가, 애들 공부하는데 지장이 갈까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충 둘러대었
다. 미심쩍은 표정의 은혜를 바라보며, 계속 물어보았다.
"독서실에 밤 늦게 까지 있으면 무슨 일 일어나니?
그리고 어제 말한 '그 애들'이라는 것이 누구야?
이 근처 불량학생 얘기니?"
게네들이 늦은 시간에 독서실에 들어와 행패부리는 거야?"
내 질문을 듣던 은혜는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풋.. 깡패라뇨...
아저씨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이 독서실에 왔군요..
하긴 이런 데 알고 올 사람이 없겠지....
혹시 주인 아저씨가 좀 후한 대우 해주지 않았어요?
딴데보다 돈 더 주거나 그런 거 있었죠?
지난번 총무 아저씨가 왜 사라진 줄 아세요?
그 아저씨도 밤늦게까지 있다가 '그 애들'을 본 거예요..."
이번에도 은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얘기니?
'그 애들'을 보고 그만두다니?"
은혜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더니,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
를 듣는 순간 나는 충격으로 멍해지는 것 같았다
"이 독서실에는 악령이 깃들어져 있어요...
'그 애들'이 바로 이 독서실을 배회하는 악령들이죠....."
다음회 계속-*~~
jsdoc: 흥미진지하네요~^^ 다음회 빨리 보고싶다.. --[03/02-11:46]--
아트모: 잼따 --[03/02-12:58]--
체인갱: 작가 유일한.. 제 이름이 유지한인데.. 내 이름을 유명한이나 유능한이라고 지었으면 멋있
었을것을.. --[03/02-17:56]--
도황검제: 다음회가 무진장 기대 되네요 ^^ --[03/02-20:32]--
zerody: 정말 재미있군요!!!공포물은 거의 첨 접해보는데...다음 회가 정말 기대됩니다!!! --[0
3/03-00:09]--
zerody: 이 글이 어디에 있던 것인가요???그게 더 궁금합니다!!!가르쳐 주세요!!! --[03/03-0
0:14]--
아주 깁니다^^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공부해 봤니?
뭔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바로 옆에서 공부하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무엇이..
봄이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게 벌써 장마가 시작된다고 일기예보에서는 떠들고 있었다. 계절도 바
꿔고, 기분전환도 할 겸, 몇 년동안 손대지 않었던 책상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서랍 안을 정리하다 보
니, 저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생각지도 않은 물건들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 학생증, 국민학
교 개근상 메달, 중학교 수련회 사진 등등... 추억이 가득 찬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내며 미소를 지
으며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열쇠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열쇠고리에
껴져 있을 뿐 처음 봤을 땐 이 열쇠를 용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용도를 잊어버린 열쇠를 발
견하니, 그 열쇠가 어떤 문을 열었던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크기로 봐선 분명히 문을 여는 열쇠인데, 어디서 썼던 열쇠인지 통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 책상
서랍 구석에 처 밖혀있던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내가 쓰던 열쇠가 맞는 것 같았다. 생각이 안 나
면 안 날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
나는 책상 정리는 뒷전으로 하고, 그 검은 플라스틱에 연결되어 있는 열쇠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몰
두했다. 스텐드 밑으로 가져가 좀 더 환한 불 밑에서 그 검은 플라스틱의 열쇠 고리를 살폈다. 그
걸 이리 저리 돌리면서 보다 보니, 그냥 밋밋한 플라스틱이 아니었다. 위에 뭔가가 붙어있다 떨어
진 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글자 같은 것이 붙어있다 떨어진 자국 같았다.
스텐드 밑에서 그 열쇠고리를 이리 저리 돌려보며, 그 희미한 자국의 글자들을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독....서.....실...
나는 그 세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 열쇠가 지렁이라도 되는 듯이 내팽개치고 담배를 찾았다.
한참을 잊으려고 애썼고, 어느새 잊어버린 그 끔찍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잊어버렸던 그
때 일이 갑자기 또렷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때의 무서움이 느껴졌는지,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등을 벽에 기대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저기 떨어져 있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벌써 9년전 얘기였다.....
9년 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의 일이었다.
남들은 배낭여행이다, 피서다, 공부다 하고 제각기 방학계획을 세웠지만, 군 입대를 2달 남긴 나
로써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가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2달 남았으니, 실컷 놀다들어
가라고 했지만, 이미 대학들어와서 1년반을 지칠 만큼 놀아버린 나로써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시
간을 낭비할 힘도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 갔다 와서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군
대 가면 한참동안 못 읽은 책들이나 실컷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만화, 무협지, 사회 과
학 할 것 없이 아무런 방해 없이 시원한 데서 책이나 읽고 싶었다.
그런 얘기를 친구들과 하다보니, 친구 한 놈이 독서실 총무로 아르바이트 하면 괜찮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에어콘이 나오는데서 책 읽으면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독서실 총무 자리를 알아보
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독서실 총무 자리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고시생으로 채워져 있
었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우연히 벼룩시장에 구인란에서 '독서실 총무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전
화를 걸었다. 전화 번호가 서울이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밑져야 본전인 생각으로 한번 걸어
봤다.
아니나 다를까 독서실은 성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그냥 끊으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
은 독서실 주인이 그래도 한번 와보라는 것이었다. 집과 너무 멀어 다니기 힘들다고 했다니, 그러
면 자동차를 빌려줄테니 와보라는 것이었다.
독서실 총무 자리에 차를 빌려 주다니...
너무나 황당한 제의여서, 호기심까지 생겼다.
위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그날로 찾아갔다.
성남 공단 근처에 위치한 그 독서실은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다. 이런 데 있어도 독
서실이 될까 할 정도의 생각까지 들었다.
덩그러니 상가 건물 하나가 있고, 주변에는 짓다만 아파트 공사장이 있었다. 아마 그 아파트를 겨
냥하고 상가건물을 지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늦어진 모양 같았다. 독서실은 그 상가 건
물 맨 위층인 4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 건물 임대도 잘 안되었는지, 3층은 아예 비어있었
고, 2층도 작은 미술학원이 하나 있을 정도였다.
나를 반갑게 맞아준 독서실 주인은 푸근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눈빛이 좀 이상한 것이 마음이
걸렸지만,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 주인 말로는, 이전에 있던 총무가 얘기도 안하고 무단으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독서실 운영에
좀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 자기는 다른 동네에서 다른 가게를 하고 있어서 독서실을 지키
고 있을 수가 없다는 했다.
근무 조건은 내가 들었던 어떤 독서실 총무 자리보다 좋았다.
웬일인지 보수도 딴 데보다 1.5배 정도였다. 근무시간도 생각보다 짧았다.
고시 공부하고,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독서실 열쇠를 다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찍
올 필요 없고, 일요일은 쉬고 보통 학생들이 학교 끝날 시간인 오후 3시에 와서 새벽 2시까지 총
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 보충 수업후 학생들을 태우고 오는 용도의 봉고가 있
는데, 그 시간 제외하고는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 특별히 필요하다는 얘기가 없으면 출퇴근에 몰
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언제부터 시작하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은 가능하면 내일부터 시작하자며, 독서실의 구조를 안내해 주었다.
전형적인 독서실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총무실 겸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컵라면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작은
휴게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총무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약간의 복도가 있고, 각각 남자방과 여자방이 나눠어져 있
었다. 각각 40석정도 되는 크지 않은 크기였다.
그런데 여자방 쪽으로 난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보였다. 그 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안해 주길
래 물어보았다.
"저 문은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부서진 책상이나 의자, 못쓰는 물건들 넣어두는 곳이니까, 열 필요
도 없어요. 오히려 열면 귀찮아 지기나 하고..."
이상할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중고등 학교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때문에 현재 거의 모든 자리가 찼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독서
실을 나서다가, 무심결에 한 마디 했다.
"괜찮은 일인데, 먼저 총무는 왜 그만 두었죠?"
특별한 뜻이 없게 내뱉은 질문에 독서실 주인의 표정이 좀 심각해지더니, 이상한 얘기를 해주었
다.
"그 친구 좀 이상해졌어요.. 음...
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잘 되었어요...
어짜피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계속 둘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
데.. 하여튼 그 사람 고시공부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좀 미친 것
같았거든요..
아마 공부 때려칠 생각으로 충무를 그만두나 보죠..."
괜히 미친 사람이 했던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좀 오싹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단지 그 때
는 운 좋게 좋은 자리 생겼다고 기분이 좋을 따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얼마나 내가 어
리석었는지....
다음날 읽을 책을 쌓아들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시생과 유학 준비생들이 아침부터 공부할꺼라는 주인 어저씨의 말과는 달리 독서실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커피 자판기를 체크하고,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방안을 청소했다. 별로 시간 걸리지 않고 일
을 끝내고 총무실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어제 창고라고 얘기했던 문이 보였다.
열 필요가 없다는 말 때문인지, 괜히 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몇번을 밀쳐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데 그 문에서 이상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기분이 들자, 문 열기를 포기하고 총무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4시가 되니, 중학생
으로 보이는 애들이 독서실에 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총무를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지
만, 아직은 좀 어려운지 대충 인사하고 지나들 갔다. 차차 친해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읽고 있
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공부 30분 하고 나와서 잡담 2시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독서실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다.
10시정도 되니까 주인 아저씨가 보충수업 끝난 애들을 태우고 독서실에 나타났다. 별일 없냐고 묻
고는 약속대로 출 퇴근때 쓰라며 봉고 열쇠를 내게 건냈다.
자기는 먼저 들어간다며 나가던 주인 아저씨는 갑자기 돌아다 보면서, 이상한 말을 던지고 가버렸
다.
"음... 만약 공부하던 애들이 다 나가면, 학생도 퇴근해..
괜히 아무도 없는데 늦게까지 있다가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나는 무의식중에 네 라고 대답했지만,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라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
어보려 했을때는 이미 아저씨는 밖으로 나갔다.
11시 반 정도 되었을때였다.
공부하던 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다들 가방을 싸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애들 말로는 자기들은 다 이때쯤 독서실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한 두명
은 모를까 전부 나가려고 하니 이상하게 보였다.
기말 고사 며칠 안 남았다는 애들이 전부 일찍 나가는 것도 이상했고, 시계를 보고 무엇에 쫓기듯
이 나가는 듯한 분위기도 좀 이상했다.
마지막 아이가 나간 것은 11시 45분쯤이었다. 그런데 가방을 매고 황급히 나가던 그 애는 뭔가 마
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보고 망설이다가 한마디 했다.
"저.. 웬만하면 총무 오빠도 12시전에 독서실에서 나와요.."
처음에는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12시에 정전이라도 되는 거야?"
내 질문에 그 애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한마디 툭 뱉어 놓고 나가 버렸다.
"12시 넘어서 독서실에 있다간 그 애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니까요!"
그 애들이라니....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줄 알 수 없었다. 아까 애들이 없
으면 일찍 퇴근하라는 아저씨 말도 있고 해서 단지 생각보다 근무가 일찍 끝나서 좋을 뿐이었다.
읽던 책을 접고, 퇴근 준비를 했다.
혹시 책상위에 졸고 있는 애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독서실안으로 들어가 살펴봤다. 남자방
은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여자방쪽으로 가다가 무심결의 복도에 붙어있는 시계를 보게 되었
다.
12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괜히 아까 들은 얘기가 생각나면서, 이유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빨리 퇴근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싸늘한 느낌에 움칫하고 놀랐다. 아무리 에
어콘을 틀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뼈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한기
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둘러 에어콘을 끄고, 독서실안을 대충 돌아봤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저쪽 구석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지 '툭'하는 소리였지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며, 다시 불을 키고 소리난 쪽으로 돌아보려 했다. 그런데, 왠일인
지 불이 안켜지는 것이다.
총무실 불은 이상이 없는 것을 봐서는 정전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 쪽 방만 불이 켜지지 않았
다. 문쪽을 등지고, 어두운 독서실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저 어둠 구석에서 무언가 나롤 노려보
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덩그러니 비어있는 의자와 책상에 마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같은 생각도 들고, 도저히 깜깜한
독서실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등은 고치고, 그 소리가 뭔지는 알아봐야 했기에 손전등을 가져왔다.
손전등을 키고 독서실 안을 비춰봤다.
독서실이라 희미한 불빛이 켜져 있었던 곳이지만, 그 불마저 없으니 정말 음산했다. 손전등 불빛
에 비춰지는 휭하고 비어있는 책상과 의자들은 기괴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스멀스멀하게 밀려오는 이유 모를 두려움을 꼭 참고,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구석구석 비추어 봤
다. 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그 소리는 내가 잘 못 들은 소리겠지 하고, 천장에 붙어있는 형광등을 살펴봤다. 스타드 다마
와 형광등을 바꿔 봤지만,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내일 수리공을 불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손전등을 챙겨들었다.
그때 였다.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 괴기스러워서인지, 등골이 오싹해지고 움직일 수 없었다.
희미했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애들이 소곤대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
가만히 서서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저 끝 벽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온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지며, 천천히 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였다.
벽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나쁜 소리였다.
도저히 더 이상 거기 혼자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 방 밖으로 나섰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또 한번 그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나는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다시 비추어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두려움마저 느낀 나는 도망치듯 그 방을 나와서 총무방에 있던 가방을 챙기는 둥 마는 둥 독서실
을 나왔다.
나오는 순간, 그 창고라는 문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멈칫 했지만,
애써 그 느낌을 무시하고 독서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불꺼진 계단을 내려와 독서실 건물을 나오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놀란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왔다.
괜히 혼자 있다 보니, 쓸데없는 상상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인 아저씨가 세워둔 봉고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건물을 돌아 나오면서, 무심결에 독서실이 있는 4층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과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무서움을 느꼈다.
불꺼진 독서실 창문으로 창백한 얼굴을 한 여자애가 쾡한 눈을 하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
다.....
...나는 우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다시 독서실을 바라보았지만, 창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으시시해졌다.
분명히 내 생각에는 그 괴기한 표정의 여자 애를 본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혹
시 독서실에 남아있는 애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독서실을 나올 때, 좀 서둘러 나오기
는 했지만,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히 확인했다.
한참을 서서 독서실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 보기는 괜히 꺼림직하고, 좀 귀찮아서 잠시 독서실 쪽을 살피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다시 봉고에 올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겠으려니 자위를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길 동안, 그 여자애의 기분 나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뒷
자리에 그 여자애가 타고 있지는 아닐까란 이상한 생각마저 들어 자꾸 백미러를 쳐다보기도 했
다.
집에 도착하자, 부질없는 생각에 떨었던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곧 군대 갈 놈이
독서실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별 상상을 다 했다는 것이 창피할 정도였다.
하도 여러번 긴장하고 떨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밤새 기억도 안 나는 악몽에 시달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왠 일인지 온 몸이 뻐근하고, 과음한 다음날처럼 머리도 지끈 거렸다. 집에서 오
전 시간을 빈둥거리고 나니, 어느새 독서실로 출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3시쯤 도착하니, 오늘도 아무도 없었다. 주인 아저씨가 얘기하던 고시생이라던가 유학 준비생들
은 오늘도 안 온 것 같았다.
나는 어제와 같은 자판기를 살펴보고 독서실을 청소하면서,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
를 했다. 오늘도 그 창고라는 닫혀진 문에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몇 번을 어떻해든 그 문
을 열어볼까 망설였지만, 쓸데없는데 너무 신경쓰는 것 같아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청소를 시작했
다.
어제 고장난 줄 알았던 여자 독서실의 전등은 오늘은 아무런 이상 없이 켜졌다. 고개를 갸우뚱거
리며 독서실 바닥에 청소기를 갖다대며 청소를 했다. 한참동안 구석구석까지 청소하다가 허리를
피려고 일어난 순간, 난 충격을 받았다.
전날 밤 소리가 났던 그 벽에 빨간 색으로 '4'라는 숫자가 휘갈겨 써져 있는 것이었다. 그 빨간 색
은 너무 선명해서 피 같이 느껴졌다.
어제 밤에 그 글자가 써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았지만, 저 위치에 눈에 확 띄
는 빨간색 글자를 모르고 지나쳤을리는 없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독서실을 나간 사이에 누군가가 써놓은 것인 셈이었다.
충격 때문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글자가 써 있는 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누군가가 빨간 잉
크로 휘갈겨 써 놓은 것 같았다. 써 놓은지 시간이 꽤 지났는지, 잉크는 말라 있었다. 그렇지만 흘
러내린 자국하며, 이 글자가 피로 쓰여졌는지, 빨간 잉크로 쓰여졌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피로 써졌겠냐라는 생각을 하고, 물걸레를 가지고 와서 지우기 시작했다. 잉크를 썼다면 유
성 잉크를 썼는지, 생각보다 잘 지워지지 않았다. 아세톤을 가져와서 지웠지만, 유성 잉크도 아닌
지 별로 지워진 것 같지 않았다. 물걸레로 닦아보고 한참을 지우다 보니, 어느 정도 지워졌다.
희미한 자국은 남았지만, 벽지가 아닌 페인트가 칠해진 콘크리트 위해 써 놓은 글씨라 그럭저럭
지울 수 있었다.
글씨를 지우고 나니, 누가 그 글씨를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굴까?
어제 창가에 있던 소녀...
그 여자애의 얼굴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만 상상이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애들이 써 놓은 낙서를 어젯밤에는 보지 못하고, 이제서야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총무실로 들어와, '독서실 벽에 낙서 금지' 라고 종이를 만들어 독서실 문 앞에 써 붙이기까지 했
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는지, 그 경고문을 붙이자 마자, 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총무실로 들
어와 가져온 책을 펼쳤다.
하지만, 아까 그 글씨하며, 어제 그 여자애의 얼굴하며, 책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제 독서실을 나가기 전에 내게 이상한 경고를 해주었던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 아
이는 왜 나보고 나가라고 했으며, 또 '그 애들'은 무엇을 얘기했던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
다.
어제처럼 먼저 중학생들이 몰려왔고, 저녁식사 시간이 끝날 때 쯤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고등학생
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는 독서실이 거의 없는지, 꽤 많은 독서실 자리가 한달 등록하지 않은 애들 자리를 제외
하곤 자리가 거의 찼다.
어제 그 얘기를 했던 아이는 보충수업을 하고 오는지, 다른 학원을 갔다 오는지, 아직 나타나지 않
았다.
10시쯤 되니, 주인 아저씨가 보충 수업하는 애들을 태우고 나타났다. 별일 없냐는 이례적인 질문
을 하고 수고하라며 바쁜 듯이 나가려던, 주인 아저씨는 내가 써 붙인 낙서 금지라는 벽보를 보더
니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무슨 낙서가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오늘 발견했던 그 빨간 글씨의 '4'에 대해서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주인 아저씨는 큰일이
났다는 얼굴을 하고, 낙서 있던 자리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주인 아저씨를 데리고, 낙서를 지운 곳으로 갔다.
아저씨는 낙서 자국을 한 참 뚫어지게 보더니, 뭔가 두려운 듯한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얘기했다.
"자네 말대로, 애들이 낙서한 것 같군....
앞으로도 만약 이런 낙서가 발견되면 나에게도 알려줘.
어떤 놈인지 혼내줘야겠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주인 아저씨는 뭔가 쫓기듯이 황급히 독서실을 나서면서, 내게 말했다.
"요즘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 독서실은 이 시간에 잠깐 들리는 것이외
에는 잘 올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자네가 잘 운영해 주길 바라네.
그리고.... 밤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연락하고..
요즘 애들도 일찍 가는 것 같으니, 애들만 없으면 자네도 일찍 문닫고
들어가게..."
그러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독서실을 나갔다.
좀 이상했지만, 정말 무슨 일이 있는지 바빠 보였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어제 그 애가 오기를 기다렸다.
학원을 갔다 오는 길인지, 10시 좀 넘어서야 그 여자애가 무겁게 보이는 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걸
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힐끔 보더니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 애를 불렀다.
"얘야, 나랑 좀 얘기 좀 할래?"
그 애는 의아한 듯이 뒤돌아 봤다.
"무슨 얘기요?"
"응... 별 것 아니고, 가방 두고 잠시만 나와 볼래.
내가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좀 망설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독서실안에 두고 나왔다.
나는 커피를 뽑아들고, 총무실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그 애는 이 근처 고등학교를 다니는 2학년 은혜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제 내게 했던 얘기가 무슨 얘기냐고 물어보았다.
은혜는 내 말을 듣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제 정말 무슨 일 있었죠?
그렇죠?"
나는 쓸데없는 얘기했다가, 애들 공부하는데 지장이 갈까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충 둘러대었
다. 미심쩍은 표정의 은혜를 바라보며, 계속 물어보았다.
"독서실에 밤 늦게 까지 있으면 무슨 일 일어나니?
그리고 어제 말한 '그 애들'이라는 것이 누구야?
이 근처 불량학생 얘기니?"
게네들이 늦은 시간에 독서실에 들어와 행패부리는 거야?"
내 질문을 듣던 은혜는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풋.. 깡패라뇨...
아저씨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이 독서실에 왔군요..
하긴 이런 데 알고 올 사람이 없겠지....
혹시 주인 아저씨가 좀 후한 대우 해주지 않았어요?
딴데보다 돈 더 주거나 그런 거 있었죠?
지난번 총무 아저씨가 왜 사라진 줄 아세요?
그 아저씨도 밤늦게까지 있다가 '그 애들'을 본 거예요..."
이번에도 은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얘기니?
'그 애들'을 보고 그만두다니?"
은혜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더니,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
를 듣는 순간 나는 충격으로 멍해지는 것 같았다
"이 독서실에는 악령이 깃들어져 있어요...
'그 애들'이 바로 이 독서실을 배회하는 악령들이죠....."
다음회 계속-*~~
jsdoc: 흥미진지하네요~^^ 다음회 빨리 보고싶다.. --[03/02-11:46]--
아트모: 잼따 --[03/02-12:58]--
체인갱: 작가 유일한.. 제 이름이 유지한인데.. 내 이름을 유명한이나 유능한이라고 지었으면 멋있
었을것을.. --[03/02-17:56]--
도황검제: 다음회가 무진장 기대 되네요 ^^ --[03/02-20:32]--
zerody: 정말 재미있군요!!!공포물은 거의 첨 접해보는데...다음 회가 정말 기대됩니다!!! --[0
3/03-00:09]--
zerody: 이 글이 어디에 있던 것인가요???그게 더 궁금합니다!!!가르쳐 주세요!!! --[03/03-0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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