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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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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가넷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작성일2003-03-18 23:19 조회4,6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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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공부해 봤니?
뭔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바로 옆에서 공부하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무엇이..




봄이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게 벌써 장마가 시작된다고 일기예보에서는 떠들고 있었다. 계절도 바
꿔고, 기분전환도 할 겸, 몇 년동안 손대지 않었던 책상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서랍 안을 정리하다 보
니, 저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생각지도 않은 물건들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 학생증, 국민학
교 개근상 메달, 중학교 수련회 사진 등등... 추억이 가득 찬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내며 미소를 지
으며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열쇠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열쇠고리에
껴져 있을 뿐 처음 봤을 땐 이 열쇠를 용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용도를 잊어버린 열쇠를 발
견하니, 그 열쇠가 어떤 문을 열었던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크기로 봐선 분명히 문을 여는 열쇠인데, 어디서 썼던 열쇠인지 통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 책상
서랍 구석에 처 밖혀있던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내가 쓰던 열쇠가 맞는 것 같았다. 생각이 안 나
면 안 날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
나는 책상 정리는 뒷전으로 하고, 그 검은 플라스틱에 연결되어 있는 열쇠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몰
두했다. 스텐드 밑으로 가져가 좀 더 환한 불 밑에서 그 검은 플라스틱의 열쇠 고리를 살폈다. 그
걸 이리 저리 돌리면서 보다 보니, 그냥 밋밋한 플라스틱이 아니었다. 위에 뭔가가 붙어있다 떨어
진 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글자 같은 것이 붙어있다 떨어진 자국 같았다.
스텐드 밑에서 그 열쇠고리를 이리 저리 돌려보며, 그 희미한 자국의 글자들을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독....서.....실...
나는 그 세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 열쇠가 지렁이라도 되는 듯이 내팽개치고 담배를 찾았다.
한참을 잊으려고 애썼고, 어느새 잊어버린 그 끔찍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잊어버렸던 그
때 일이 갑자기 또렷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때의 무서움이 느껴졌는지,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등을 벽에 기대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저기 떨어져 있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벌써 9년전 얘기였다.....


9년 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의 일이었다.
남들은 배낭여행이다, 피서다, 공부다 하고 제각기 방학계획을 세웠지만, 군 입대를 2달 남긴 나
로써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가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2달 남았으니, 실컷 놀다들어
가라고 했지만, 이미 대학들어와서 1년반을 지칠 만큼 놀아버린 나로써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시
간을 낭비할 힘도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 갔다 와서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군
대 가면 한참동안 못 읽은 책들이나 실컷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만화, 무협지, 사회 과
학 할 것 없이 아무런 방해 없이 시원한 데서 책이나 읽고 싶었다.
그런 얘기를 친구들과 하다보니, 친구 한 놈이 독서실 총무로 아르바이트 하면 괜찮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에어콘이 나오는데서 책 읽으면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독서실 총무 자리를 알아보
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독서실 총무 자리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고시생으로 채워져 있
었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우연히 벼룩시장에 구인란에서 '독서실 총무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전
화를 걸었다. 전화 번호가 서울이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밑져야 본전인 생각으로 한번 걸어
봤다.
아니나 다를까 독서실은 성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그냥 끊으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
은 독서실 주인이 그래도 한번 와보라는 것이었다. 집과 너무 멀어 다니기 힘들다고 했다니, 그러
면 자동차를 빌려줄테니 와보라는 것이었다.
독서실 총무 자리에 차를 빌려 주다니...
너무나 황당한 제의여서, 호기심까지 생겼다.
위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그날로 찾아갔다.
성남 공단 근처에 위치한 그 독서실은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다. 이런 데 있어도 독
서실이 될까 할 정도의 생각까지 들었다.
덩그러니 상가 건물 하나가 있고, 주변에는 짓다만 아파트 공사장이 있었다. 아마 그 아파트를 겨
냥하고 상가건물을 지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늦어진 모양 같았다. 독서실은 그 상가 건
물 맨 위층인 4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 건물 임대도 잘 안되었는지, 3층은 아예 비어있었
고, 2층도 작은 미술학원이 하나 있을 정도였다.
나를 반갑게 맞아준 독서실 주인은 푸근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눈빛이 좀 이상한 것이 마음이
걸렸지만,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 주인 말로는, 이전에 있던 총무가 얘기도 안하고 무단으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독서실 운영에
좀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 자기는 다른 동네에서 다른 가게를 하고 있어서 독서실을 지키
고 있을 수가 없다는 했다.
근무 조건은 내가 들었던 어떤 독서실 총무 자리보다 좋았다.
웬일인지 보수도 딴 데보다 1.5배 정도였다. 근무시간도 생각보다 짧았다.
고시 공부하고,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독서실 열쇠를 다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찍
올 필요 없고, 일요일은 쉬고 보통 학생들이 학교 끝날 시간인 오후 3시에 와서 새벽 2시까지 총
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 보충 수업후 학생들을 태우고 오는 용도의 봉고가 있
는데, 그 시간 제외하고는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 특별히 필요하다는 얘기가 없으면 출퇴근에 몰
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언제부터 시작하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은 가능하면 내일부터 시작하자며, 독서실의 구조를 안내해 주었다.
전형적인 독서실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총무실 겸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컵라면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작은
휴게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총무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약간의 복도가 있고, 각각 남자방과 여자방이 나눠어져 있
었다. 각각 40석정도 되는 크지 않은 크기였다.
그런데 여자방 쪽으로 난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보였다. 그 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안해 주길
래 물어보았다.

"저 문은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부서진 책상이나 의자, 못쓰는 물건들 넣어두는 곳이니까, 열 필요
도 없어요. 오히려 열면 귀찮아 지기나 하고..."

이상할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중고등 학교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때문에 현재 거의 모든 자리가 찼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독서
실을 나서다가, 무심결에 한 마디 했다.

"괜찮은 일인데, 먼저 총무는 왜 그만 두었죠?"

특별한 뜻이 없게 내뱉은 질문에 독서실 주인의 표정이 좀 심각해지더니, 이상한 얘기를 해주었
다.

"그 친구 좀 이상해졌어요.. 음...
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잘 되었어요...
어짜피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계속 둘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
데.. 하여튼 그 사람 고시공부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좀 미친 것
같았거든요..
아마 공부 때려칠 생각으로 충무를 그만두나 보죠..."

괜히 미친 사람이 했던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좀 오싹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단지 그 때
는 운 좋게 좋은 자리 생겼다고 기분이 좋을 따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얼마나 내가 어
리석었는지....


다음날 읽을 책을 쌓아들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시생과 유학 준비생들이 아침부터 공부할꺼라는 주인 어저씨의 말과는 달리 독서실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커피 자판기를 체크하고,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방안을 청소했다. 별로 시간 걸리지 않고 일
을 끝내고 총무실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어제 창고라고 얘기했던 문이 보였다.
열 필요가 없다는 말 때문인지, 괜히 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몇번을 밀쳐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데 그 문에서 이상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기분이 들자, 문 열기를 포기하고 총무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4시가 되니, 중학생
으로 보이는 애들이 독서실에 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총무를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지
만, 아직은 좀 어려운지 대충 인사하고 지나들 갔다. 차차 친해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읽고 있
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공부 30분 하고 나와서 잡담 2시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독서실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다.
10시정도 되니까 주인 아저씨가 보충수업 끝난 애들을 태우고 독서실에 나타났다. 별일 없냐고 묻
고는 약속대로 출 퇴근때 쓰라며 봉고 열쇠를 내게 건냈다.
자기는 먼저 들어간다며 나가던 주인 아저씨는 갑자기 돌아다 보면서, 이상한 말을 던지고 가버렸
다.

"음... 만약 공부하던 애들이 다 나가면, 학생도 퇴근해..
괜히 아무도 없는데 늦게까지 있다가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나는 무의식중에 네 라고 대답했지만,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라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
어보려 했을때는 이미 아저씨는 밖으로 나갔다.
11시 반 정도 되었을때였다.
공부하던 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다들 가방을 싸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애들 말로는 자기들은 다 이때쯤 독서실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한 두명
은 모를까 전부 나가려고 하니 이상하게 보였다.
기말 고사 며칠 안 남았다는 애들이 전부 일찍 나가는 것도 이상했고, 시계를 보고 무엇에 쫓기듯
이 나가는 듯한 분위기도 좀 이상했다.
마지막 아이가 나간 것은 11시 45분쯤이었다. 그런데 가방을 매고 황급히 나가던 그 애는 뭔가 마
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보고 망설이다가 한마디 했다.

"저.. 웬만하면 총무 오빠도 12시전에 독서실에서 나와요.."

처음에는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12시에 정전이라도 되는 거야?"

내 질문에 그 애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한마디 툭 뱉어 놓고 나가 버렸다.

"12시 넘어서 독서실에 있다간 그 애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니까요!"

그 애들이라니....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줄 알 수 없었다. 아까 애들이 없
으면 일찍 퇴근하라는 아저씨 말도 있고 해서 단지 생각보다 근무가 일찍 끝나서 좋을 뿐이었다.
읽던 책을 접고, 퇴근 준비를 했다.
혹시 책상위에 졸고 있는 애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독서실안으로 들어가 살펴봤다. 남자방
은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여자방쪽으로 가다가 무심결의 복도에 붙어있는 시계를 보게 되었
다.
12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괜히 아까 들은 얘기가 생각나면서, 이유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빨리 퇴근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싸늘한 느낌에 움칫하고 놀랐다. 아무리 에
어콘을 틀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뼈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한기
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둘러 에어콘을 끄고, 독서실안을 대충 돌아봤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저쪽 구석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지 '툭'하는 소리였지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며, 다시 불을 키고 소리난 쪽으로 돌아보려 했다. 그런데, 왠일인
지 불이 안켜지는 것이다.
총무실 불은 이상이 없는 것을 봐서는 정전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 쪽 방만 불이 켜지지 않았
다. 문쪽을 등지고, 어두운 독서실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저 어둠 구석에서 무언가 나롤 노려보
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덩그러니 비어있는 의자와 책상에 마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같은 생각도 들고, 도저히 깜깜한
독서실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등은 고치고, 그 소리가 뭔지는 알아봐야 했기에 손전등을 가져왔다.
손전등을 키고 독서실 안을 비춰봤다.
독서실이라 희미한 불빛이 켜져 있었던 곳이지만, 그 불마저 없으니 정말 음산했다. 손전등 불빛
에 비춰지는 휭하고 비어있는 책상과 의자들은 기괴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스멀스멀하게 밀려오는 이유 모를 두려움을 꼭 참고,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구석구석 비추어 봤
다. 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그 소리는 내가 잘 못 들은 소리겠지 하고, 천장에 붙어있는 형광등을 살펴봤다. 스타드 다마
와 형광등을 바꿔 봤지만,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내일 수리공을 불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손전등을 챙겨들었다.
그때 였다.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너무 괴기스러워서인지, 등골이 오싹해지고 움직일 수 없었다.
희미했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애들이 소곤대는 듯한 소리로 들렸다.
가만히 서서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저 끝 벽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온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지며, 천천히 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였다.
벽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나쁜 소리였다.
도저히 더 이상 거기 혼자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 방 밖으로 나섰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또 한번 그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나는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다시 비추어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두려움마저 느낀 나는 도망치듯 그 방을 나와서 총무방에 있던 가방을 챙기는 둥 마는 둥 독서실
을 나왔다.
나오는 순간, 그 창고라는 문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멈칫 했지만,
애써 그 느낌을 무시하고 독서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불꺼진 계단을 내려와 독서실 건물을 나오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놀란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왔다.
괜히 혼자 있다 보니, 쓸데없는 상상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인 아저씨가 세워둔 봉고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건물을 돌아 나오면서, 무심결에 독서실이 있는 4층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과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무서움을 느꼈다.
불꺼진 독서실 창문으로 창백한 얼굴을 한 여자애가 쾡한 눈을 하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
다.....

...나는 우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다시 독서실을 바라보았지만, 창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으시시해졌다.
분명히 내 생각에는 그 괴기한 표정의 여자 애를 본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혹
시 독서실에 남아있는 애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독서실을 나올 때, 좀 서둘러 나오기
는 했지만,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히 확인했다.
한참을 서서 독서실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 보기는 괜히 꺼림직하고, 좀 귀찮아서 잠시 독서실 쪽을 살피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다시 봉고에 올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겠으려니 자위를 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길 동안, 그 여자애의 기분 나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뒷
자리에 그 여자애가 타고 있지는 아닐까란 이상한 생각마저 들어 자꾸 백미러를 쳐다보기도 했
다.
집에 도착하자, 부질없는 생각에 떨었던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곧 군대 갈 놈이
독서실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별 상상을 다 했다는 것이 창피할 정도였다.
하도 여러번 긴장하고 떨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밤새 기억도 안 나는 악몽에 시달린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왠 일인지 온 몸이 뻐근하고, 과음한 다음날처럼 머리도 지끈 거렸다. 집에서 오
전 시간을 빈둥거리고 나니, 어느새 독서실로 출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3시쯤 도착하니, 오늘도 아무도 없었다. 주인 아저씨가 얘기하던 고시생이라던가 유학 준비생들
은 오늘도 안 온 것 같았다.
나는 어제와 같은 자판기를 살펴보고 독서실을 청소하면서,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
를 했다. 오늘도 그 창고라는 닫혀진 문에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몇 번을 어떻해든 그 문
을 열어볼까 망설였지만, 쓸데없는데 너무 신경쓰는 것 같아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청소를 시작했
다.
어제 고장난 줄 알았던 여자 독서실의 전등은 오늘은 아무런 이상 없이 켜졌다. 고개를 갸우뚱거
리며 독서실 바닥에 청소기를 갖다대며 청소를 했다. 한참동안 구석구석까지 청소하다가 허리를
피려고 일어난 순간, 난 충격을 받았다.
전날 밤 소리가 났던 그 벽에 빨간 색으로 '4'라는 숫자가 휘갈겨 써져 있는 것이었다. 그 빨간 색
은 너무 선명해서 피 같이 느껴졌다.
어제 밤에 그 글자가 써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았지만, 저 위치에 눈에 확 띄
는 빨간색 글자를 모르고 지나쳤을리는 없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독서실을 나간 사이에 누군가가 써놓은 것인 셈이었다.
충격 때문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글자가 써 있는 벽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봤다. 누군가가 빨간 잉
크로 휘갈겨 써 놓은 것 같았다. 써 놓은지 시간이 꽤 지났는지, 잉크는 말라 있었다. 그렇지만 흘
러내린 자국하며, 이 글자가 피로 쓰여졌는지, 빨간 잉크로 쓰여졌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피로 써졌겠냐라는 생각을 하고, 물걸레를 가지고 와서 지우기 시작했다. 잉크를 썼다면 유
성 잉크를 썼는지, 생각보다 잘 지워지지 않았다. 아세톤을 가져와서 지웠지만, 유성 잉크도 아닌
지 별로 지워진 것 같지 않았다. 물걸레로 닦아보고 한참을 지우다 보니, 어느 정도 지워졌다.
희미한 자국은 남았지만, 벽지가 아닌 페인트가 칠해진 콘크리트 위해 써 놓은 글씨라 그럭저럭
지울 수 있었다.
글씨를 지우고 나니, 누가 그 글씨를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굴까?
어제 창가에 있던 소녀...
그 여자애의 얼굴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만 상상이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애들이 써 놓은 낙서를 어젯밤에는 보지 못하고, 이제서야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총무실로 들어와, '독서실 벽에 낙서 금지' 라고 종이를 만들어 독서실 문 앞에 써 붙이기까지 했
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는지, 그 경고문을 붙이자 마자, 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총무실로 들
어와 가져온 책을 펼쳤다.
하지만, 아까 그 글씨하며, 어제 그 여자애의 얼굴하며, 책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제 독서실을 나가기 전에 내게 이상한 경고를 해주었던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 아
이는 왜 나보고 나가라고 했으며, 또 '그 애들'은 무엇을 얘기했던 것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
다.
어제처럼 먼저 중학생들이 몰려왔고, 저녁식사 시간이 끝날 때 쯤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고등학생
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는 독서실이 거의 없는지, 꽤 많은 독서실 자리가 한달 등록하지 않은 애들 자리를 제외
하곤 자리가 거의 찼다.
어제 그 얘기를 했던 아이는 보충수업을 하고 오는지, 다른 학원을 갔다 오는지, 아직 나타나지 않
았다.
10시쯤 되니, 주인 아저씨가 보충 수업하는 애들을 태우고 나타났다. 별일 없냐는 이례적인 질문
을 하고 수고하라며 바쁜 듯이 나가려던, 주인 아저씨는 내가 써 붙인 낙서 금지라는 벽보를 보더
니 심각한 얼굴을 하고 무슨 낙서가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오늘 발견했던 그 빨간 글씨의 '4'에 대해서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주인 아저씨는 큰일이
났다는 얼굴을 하고, 낙서 있던 자리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주인 아저씨를 데리고, 낙서를 지운 곳으로 갔다.
아저씨는 낙서 자국을 한 참 뚫어지게 보더니, 뭔가 두려운 듯한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얘기했다.

"자네 말대로, 애들이 낙서한 것 같군....
앞으로도 만약 이런 낙서가 발견되면 나에게도 알려줘.
어떤 놈인지 혼내줘야겠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얘기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주인 아저씨는 뭔가 쫓기듯이 황급히 독서실을 나서면서, 내게 말했다.

"요즘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 독서실은 이 시간에 잠깐 들리는 것이외
에는 잘 올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자네가 잘 운영해 주길 바라네.
그리고.... 밤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연락하고..
요즘 애들도 일찍 가는 것 같으니, 애들만 없으면 자네도 일찍 문닫고
들어가게..."

그러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독서실을 나갔다.
좀 이상했지만, 정말 무슨 일이 있는지 바빠 보였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어제 그 애가 오기를 기다렸다.
학원을 갔다 오는 길인지, 10시 좀 넘어서야 그 여자애가 무겁게 보이는 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걸
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힐끔 보더니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 애를 불렀다.

"얘야, 나랑 좀 얘기 좀 할래?"

그 애는 의아한 듯이 뒤돌아 봤다.

"무슨 얘기요?"
"응... 별 것 아니고, 가방 두고 잠시만 나와 볼래.
내가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좀 망설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독서실안에 두고 나왔다.
나는 커피를 뽑아들고, 총무실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그 애는 이 근처 고등학교를 다니는 2학년 은혜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제 내게 했던 얘기가 무슨 얘기냐고 물어보았다.
은혜는 내 말을 듣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제 정말 무슨 일 있었죠?
그렇죠?"

나는 쓸데없는 얘기했다가, 애들 공부하는데 지장이 갈까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충 둘러대었
다. 미심쩍은 표정의 은혜를 바라보며, 계속 물어보았다.

"독서실에 밤 늦게 까지 있으면 무슨 일 일어나니?
그리고 어제 말한 '그 애들'이라는 것이 누구야?
이 근처 불량학생 얘기니?"
게네들이 늦은 시간에 독서실에 들어와 행패부리는 거야?"

내 질문을 듣던 은혜는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풋.. 깡패라뇨...
아저씨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이 독서실에 왔군요..
하긴 이런 데 알고 올 사람이 없겠지....
혹시 주인 아저씨가 좀 후한 대우 해주지 않았어요?
딴데보다 돈 더 주거나 그런 거 있었죠?
지난번 총무 아저씨가 왜 사라진 줄 아세요?
그 아저씨도 밤늦게까지 있다가 '그 애들'을 본 거예요..."

이번에도 은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얘기니?
'그 애들'을 보고 그만두다니?"

은혜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더니,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
를 듣는 순간 나는 충격으로 멍해지는 것 같았다

"이 독서실에는 악령이 깃들어져 있어요...
'그 애들'이 바로 이 독서실을 배회하는 악령들이죠....."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는 은혜를 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21세기가 다가오는 시대에 악령이라니...
참 충격적인 얘기였다.
나의 황당하다는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은혜는 화가 난 표정으로 내
게 말했다.

"어른들은 처음에는 다들 아저씨처럼 생각해요..
그러다 호되게 당하죠.
지금은 내 말을 웃기게 생각해도 한번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질
껄요!"
"아냐, 아냐..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냐...
나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어른이 아냐.
끽해야 너보다 서너 살밖에 많지 않아. 하지만, 악령이고 귀신이라
는 얘기는 처음 듣기에는 황당하잖아..."

나는 계속해서 은혜를 달래면서, 얘기를 시켰다. 악령이라는 얘기는
황당하긴 했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것은 정말 사실 같아요.
제 친구 중에도 직접 봤다는 애가 한 두 명이 아닌데요."

여고생 특유의 귀신을 봤다는 부풀려진 목격담이겠거니 생각을 했
지만,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은혜의 얘기를 재촉했다.

"처음 얘기는 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요..
이 독서실이 생긴지 1년 좀 넘어거든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는 번번한 독서실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독서실이 생겼죠.
독서실이 처음 생겼을 때, 고3 오빠들이 대부분이었데요.
그 중에 서로 친한 3명이 있었는데, 독서실 주인 아저씨와 친해서
독서실 문을 닫는 2시 이후에도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데요.
아저씨가 아예 독서실 열쇠를 그 오빠들에게 줘서, 공부 끝나면 알
아서들 문 잠고 집에 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오빠들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항상 늦
게까지 남아있다 가곤 했데요.
그러던, 어느날 밤..
그날도 그 3명의 오빠들은 주인 아저씨도 퇴근한 독서실을 지키고
공부하고 있었데요. 독서실은 답답하다며 총무실에서 나와서 공부
했다는 거예요.
한 2시 반 쯤 되었을까, 한 오빠가 커피를 뽑으러 커피 자판기로
갔데요. 그때도 지금처럼 커피 자판기가 여자 독서실 앞에 있었데
요. 아무 생각 없이 동전을 넣고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 오
빠는 갑자기, 여자 독서실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렸데
요.
분명히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소리가 났다는 것이예요.
겁에 질린 그 오빠는 커피도 그대로 두고, 나머지 오빠들이 공부하
고 있던 총무실로 뛰어와서, 자기가 들은 소리에 대해 얘기했데요.
나머지 오빠들은 그 얘기를 믿지 않았지만, 정말 들었다는 말에 천
천히 여자 독서실로 향했데요.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더래요.
그래서 아저씨가 준 열쇠로 천천히 여자 독서실의 문을 열었데요.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데요.
그 세 오빠들은 여기저기 뒤져, 나무 몽둥이나 파이프 같은
것을 각각 하나씩은 들고 있었데요. 그리고 독서실의 불을 켜봤데
요. 하지만, 독서실 책상들이 있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문앞에
서서는 알 수가 없더래요.
그래서, 책상 하나 하나를 살피면서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 중 한 오빠가 갑자기 바닥에 구부리더니, 책상 사이로 다리가
보이나, 살펴봤데요.
그런데 뭔가를 봤는지, 그 오빠는 덜덜 떨면서 최대한 목소리를 죽
이고, 손가락으로 저 구석 책상을 가르키며 얘기했데요.

'저.저... 구석 책....책...상...밑에 사람의 다...리가 보여...'

그 말을 들은 다른 오빠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몽둥이를 다잡고
천천히 그 다리가 보였다는 구석으로 갔데요.
다들 무서워 죽는줄 알았데요.
몽둥이나 파이프를 얼마나 꼭 쥐었는지, 손에 쥐가 다 날 정도였데
요. 그 다리가 보였던 구석으로 한발작 한발작 다가서는데, 그 다
리의 주인공은 오빠들이 다가오는지 모르는 것처럼 아까 그 자세
로 꼼작도 않고 있더래요.
그러니까 더 무서워 지더래요.
그래도 자기들은 3명이니 괜찮다며 그 다리가 보였던 구석으로 향
해 돌아섰데요.
다리의 주인공을 본 순간, 세 오빠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데요.
자기들 또래의 남자가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쓰러져있었다는 거
예요. 책장을 열다가 쓰러졌는지 책장속의 책들도 같이 널브러져
있었고, 줌 이상한 것은 그 애 주변에는 워크맨들이 몇 개 널러
져 있었데요.
오빠들은 천천히 다가가 그 쓰러진 애를 살펴봤데요.
얼굴은 창백했어도,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더래요.
오빠들이 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봤더니, 그 애가 여간 수상한
게 아니였데요.
여자 독서실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밤 늦게 혼자 있
었던 것도 이상하고, 자기 책상도 아닌데 책장 문을 열어놨고, 결
정적인 것은 그 애 주변에 있던 워크맨이었데요.
독서실 애들 워크맨 훔치러온 좀 도둑 같다더라는 거예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오빠들은 우선 주인 아저씨에게 전화했데
요. 주인 아저씨는 별일 아닐지도 모르니까 경찰에는 아직 알리지
말라며 금방 가겠다고 했데요..
오빠들은 그 애가 금새 깰까봐, 빨랫줄로 대충 팔다리를 묶어
놨데요. 그리곤 그 주위 책상에 대충 걸터앉아 아저씨를 기다렸
데요. 아저씨 오는 동안 기절한 애 주위에 널려진 워크맨들을 살펴
보니, 다 이 독서실 다니는 여자애들 것이라는 발견했데요.
그래서 독서실 안을 살펴보니, 왠만한 책장은 다 뜯겨져 있었고..
오빠들은 그 애가 좀도둑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데요.
이윽고 주인 아저씨가 도착해서는 먼저 그 애의 상태를 살폈데요.
주인 아저씨는 생긴 거와는 달리 의학에도 아주 해박한 지식이 있
었는지, 그 애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대뜸 단순히 기절한 것 뿐이
라며 찬 물을 가져와 그 기절한 애 얼굴에 확 뿌리더래요.
물 세례를 받은 그 애는 잠시 후 눈을 뜨더니, 눈을 뜨자 마자 겁
에 질린 표정을 하고 소리쳤다는 거예요.

'내가 잘 못했어요!
내가!
그러니 빨리 여기서 날 내보내 줘요!!!
제발!!!'

너무 황당한 반응에 오빠들은 어안이 벙벙했데요. 그래도 그 애의
겁에 질린 눈빛은 왠지 마음에 걸렸데요.
주인 아저씨는 거의 발광하는 듯한 그 애를 가만히 바라보다 다짜
고짜 따귀를 때리며 소리쳤데요.

'이 도둑놈 새끼야!
정신차려!! 엉!!'

따귀를 호되게 맞은 그 애는 그제서야 좀 이성을 되찾은 듯 주변
을 둘러보고 고개를 푹 숙이더래요. 아저씨는 더 무서운 목소리로
그 애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데요.

'너 워크맨 훔치러 들어온 것 맞지?
근데 이 새끼야, 왜 여기 쓰러져 있는 거야? 어?"

그 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훌쩍거리다가 주인 아저
씨에게 애원하듯이 얘기했데요. 그런데 그 애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경찰에 신고 말아달라, 부모님께 얘기하지 말아달라 같은
얘기가 아니라 단지 여기서 나가가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옆에서 그 애의 모습을 지켜본 오빠들은 좀 이상함을 느꼈데요.
도둑놈이 기절한 것도 이상하지만, 잡힌 후에 단지 여기서만 나가
게 해달라는 것은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었데요.
그런데 아저씨는 그 애의 애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심하게 다그쳤데요.
그 애는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사방을 불안한 듯 둘러보더니, 울
먹이면서 얘기를 시작했데요.

'저 옆 동네 사는데요, 여기 독서실에 애들이 많다고 해서...
흑...
끝날 때 쯤 여자 독서실에 몰래 들어와 구석 책상 밑에 숨어
있었어요. 흐흑...
한 참을 있으니까, 아저씨가 불끄고 문잠고 나갔어요.
저는 책상 속에서 기어나와 손전등을 키고, 책장을 하나씩 하나
씩 뜯어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자꾸 누군가가 제 뒤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흐흑... 긴장되서 그러려니 했지만, 싸늘한 기운이 바로 제 뒤통
수에서 불어오는 것 같았아요. 누군가가 바로 제 뒤에 서서 차가
운 입김을 불어내는 것 같기도 했어요... 흑...
몇 번을 뒤 돌아 봤지만, 여전히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칠흙같은
암흑만 보였어요.. 그런데 저쪽 어둠 너머에서 누군가가 나를 바
라보고 있는 것 같았고요..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춰봐도 아무것
도 안 보이는 것은 마찬 가지였어요.
너무 무서워서, 오늘은 대충 그만하고 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어야 할 밖에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분명히 이 독서실은 두 시까지인데, 공부하는 사람들 몇몇이 왔
다갔다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기분이 이상해도 나갈 수가 없었죠.
그래서, 이왕 하던 거 계속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책장을 하나하
나씩 뜯어나갔어요.
이상한 기분은 계속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워크맨을 모았어
요. 구석 마지막 줄만 남기고 거의 모든 책장을 열어봤어요.
밖에 주의를 기울여봤지만, 아직도 밖에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이상할 정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
는 것이 더 무서울 것 같아 구석 책상을 차례로 열기 시작했어
요.
그때 였어요.
바로 등 뒤의 벽쪽에서 희미하지만 애들이 웅성거리는 듯한 소
리가 들리는 거예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무서워서 움직
일 수가 없었어요. 분명히 내 등뒤는 벽인데, 거기서 그 기분나
쁜 소리가 나는 것 같았어요
머리가 아득해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요.
책장을 열고 있던 손도 부들부들 떨리고, 너무 무서워서 주위를
돌아볼 수 없을 것 같았아요.
그 때 갑자기 옆 책상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어요.
나는 설마하고 그 쪽을 돌아봤는데, 흐흑....
거기에는 어떤 남자애가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그 창백한 얼굴을 들어 나를 보는 거예요.
나는 너무 무섭고 놀라 소리를 지를 수 없었어요.
그 쾡한 눈과 마주치니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못 박힌 것
처럼 움직일 수 없었어요. 마치 가위눌린 기분이었어요.
이를 악물고, 그 애의 눈과 마주친 시선을 때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어요. 잡히던 말던 밖으로 뛰어나갈 생각이었어요.
근데... 흐흑...
바로 내 눈앞에 어떤 여자애가 서 있는 거예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 기분나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 몸에 힘이
쫙 빠지고 또 다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 여자애와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자애가 천천히 다가오
는 거예요.
도저히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그 애들이 두 손을 뻗어 저를 잡으려 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
졌어요. 세상이 갑자기 하얘지고,....
그게 다예요...
여기는 무서워서 더 있을 수 없어요!
나를 어떡해도 좋으니, 여기서만 내 보내 줘요!
제발!!!'

그 애는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덜덜 떨면서, 아저씨에게 애원
했데요. 오빠들은 그 애가 도둑질하다 걸리니까 별 뻥을 다친다고
생각했지만, 어쩼든 그 얘기를 들으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래요.
그런데 아저씨는 그 아이의 처절한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
시 한번 그 애를 다그치면서, 봤다는 애들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았
데요. 오빠들은 주인 아저씨가 이 애가 거짓말하는 것을 알고, 거
짓말 못하게 몰아치는 구나 생각했지만, 아저씨의 표정도 좀 이상
할 정도로 심각해 보였데요.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 애가 정말 그 남자, 여자 애를 본 것처
럼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래요.
거짓말로 생각했던 오빠들도 고개를 갸우뚱할정도로 세세하게 묘
사했다는 거예요.
아저씨는 좀 놀랐는지, 가만히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데요.
그 애는 연신 울어대며, 여기서 내보내 달라고 계속 애원했데요.
아저씨를 그 애를 좀 내려다 보더니, 머리를 한데 쥐어박더니 그냥
가보라고 했데요. 오빠들도 그 애도 좀 놀랐데요.
빨리 나가라는 재촉에 그 애는 자기가 들고 온 지갑이며, 신분등이
며, 손전등 같은 것도 다 내팽게치고 도망갔데요.
주인 아저씨는 멍해있는 오빠들을 돌아다보며, 독서실을 지켜줘 정
말 고맙다며 오빠들을 칭찬했데요.
그런 애 경찰에 넘겨봤자, 불쌍하다는 말에 주인 아저씨의 말에 오
빠들은 감동까지 했데요.
다음날인가, 주인 아저씨가 그 세 오빠들에게 푸짐한 저녁을 사주
면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했데요.
밤에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갔다면, 독서실 주인인 자기가 다 물어
줘야 할 형편이었고, 그리고 소문까지 난다면 문 닫을 뻔 했다며
오빠들에게 10만원씩 용돈도 집어줬데요.
그러면서, 그날 밤에 있었던 일 소문 내지 말아달라고 연신 부탁하
더래요. 혹시 독서실에 대해 나쁜 소문이 퍼질까봐 걱정하는 것 같
았데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그 저녁자리
에서 나올 수 있었을 정도였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일은 그 오빠들 자기들만의 무용담으로 남게 되었죠.
그런데... 도둑 사건이 일어난 일주일 쯤 후의 일이었데요.
대부분의 학교들이 기말고사가 끝났을 때였는데, 우리 학교만 기말
고사가 끝나지 않은 적이 있었데요.
기말 고사같은 것이 끝나면 독서실은 마치 무덤처럼 황량해지잖아
요. 아무도 없고....
그럴 때, 공부를 해야하는 어떤 여학생이 있었데요.
공부벌레라고 소문이 난 그 여자 애는 남들이 다 집에 간 후에도
혼자 남아서 공부하게 되었데요.
무슨 실수가 있었는지, 독서실 주인 아저씨가 그 여자애가 독서실
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모르고 문을 잠고 퇴근했데요.
그 도둑 사건 이후로 자물쇠를 모두 밖에서 잠그는 것으로 바꾸어
것든요..
그 여자애가 혼자 남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많은데요... 그 여자애가 더 공부하고 싶어 아저씨 몰래 숨어있던
것이다, 아니면 주인 아저씨가 모르고 잠그고 간 거라는 등 여러
가지 얘기가 떠돌지만, 아무도 어떤 것이 진실인 줄 몰라요.
여하튼 그 여자애가 아무도 없는 문 잠긴 독서실에 혼자 남게 된
것은 사실이예요.
그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역시 아무도 몰라요.
다음날 아침, 걱정된 그 애 부모에게 불려온 독서실 주인 아저씨가
그 문을 열었을 때, 얼이 빠져있는 모습을 하고 땅바닥에 주저 앉
아 있었데요.
섬뜩한 것은 그 여자애가 그랬는지 독서실 책상이 막 넘어
져 있고, 온 곳에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남아 있었데요.
마치 시체실에 갇혔던 의대생이 그랬다는 것처럼 벽 ,책상 할 것
없이 손톱자국이 나 있더래요.
그 애의 머리는 누군가에게 쥐어뜯긴 것처럼 산발이 되 있고, 눈동
자엔 생기란 것이 아예 사라져 보였대요.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그 여자애 부모의 반응이었어요.
무슨 의사라고 했는데, 자기 딸이 그렇게 된 것이 창피했는지 모든
것을 절대 비밀로 했어요. 아마 그 부모는 딸 아이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미쳐버린 것으로 생각했고, 그 스트레스를 자기들이 준
것이 알려지면 창피하니까 그런 식으로 처리했나 봐요.
독서실 아저씨는 오히려 잘 되었죠.
이런 얘기가 알려졌다면 독서실 문 닫는 것 뿐만아니라, 문 잠고
나간 것이 실수로 밝혀진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텐데, 천만 다행이
었죠.
그런데 그런 비밀이 어떻게 알려졌냐고요?
그 여자애가 발견되던 날 아침, 아까 도둑을 잡은 오빠 중에 한 사
람이 책을 가질러 독서실에 왔다가 모든 것을 목격하고, 알게 되었
데요.
그 오빠는 독서실에 벽에 피로 쓴 4라는 숫자도 봤대요.
그 사실을 그 오빠는 같이 도둑을 잡은 친구들에게 얘기했고, 모두
들 그 여자 독서실 방안에 뭔가 좀 이상한 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러던 차에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가출인가? 실종인가?'
라는 제목의 방송이 나간 적이 있었대요.
거기서 한달 전에 실종된 애를 하나 보여주는데, 바로 독서실에 들
었던 도둑이었데요.
방송에 나온 그 애 부모의 증언에 따르면, 한달 전 어느날부터
갑자기 애가 자다가 소리치고, 헛것을 보는 것 같고, 뭔가 겁에 질
린 것 같은 행동을 하다 갑자기 사라졌다는 거예요. 기자는 그 애
가 폭력 조직에 협박을 받다가 납치를 당했는지, 아니면 그 보복이
두려워 가출했는지,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 얘기했대요.
그렇지만, 그 오빠들은 그 애의 실종이 왠지 모르게 그날 밤 독서
실에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 애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날이 바로 그 애
가 독서실에서 기절한 채로 발견한 다음날이었다는 거예요.
오빠들은 분명히 그 방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하라는 수능시
험은 공부는 안 하고 무모한 계획을 생각해 냈어요.
세 명이서 몰래 그 여자 독서실에 들어가 밤을 세워보자는
생각이었대요...
그 독서실안에 있을지 모를 그 무언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였
데요...
얼마나 끔직한 결과를 나을 지는 상상도 못하고...
은혜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그 세 오빠들은 기어이 독서실에서 밤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계획
을 세웠어요. 독서실에 늦게 까지 남아 있는다고 하면, 아무런 의심
받지 않고 독서실에서 밤을 지세울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여자 독
서실 방의 열쇠였어요. 아저씨가 그 사건이후로 밖에서 잠그는 자물
쇠를 달았다고 했잖아요.. 그것의 열쇠를 어떻게 구하냐가 고민이었
는데, 주인 아저씨들에게 사실대로 얘기한다면, 당연히 허락할 리
없다고 생각했데요. 결국 아저씨 몰래 그 열쇠를 복사했데요.
열쇠까지 구했으니, 준비는 다 된 셈이었죠.
처음 계획할때는 호기있게 시작했지만, 이제 실제로 실행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자, 다들 조금씩은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데요.
그래도 다들 약속한 날에 독서실에 나왔데요.
무섭긴 무서웠던지, 가져온 가방 안에는 십자가, 마늘, 성경책, 성수
에서부터, 칼, 귀신 나오려면 찍는다고 가져온 사진기까지 없는 것
이 없었데요.
오빠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공부를 하는 척 하면서, 아저씨가 퇴근
하기를 기다렸데요. 밤 한 1시쯤 모두들 집에 가고, 주인 아저씨도
나갔데요.
아저씨의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세 사람은 복사한 열쇠를 가
지고 그 여자 독서실로 갔데요.
그 여자 독서실의 문을 열자, 처음 받은 느낌은 싸늘함이었데요.
분명히 아무도 없었지만, 그런데 누군가가 있는 방에 들어온 기분이
었데요. 그래도 장난기가 발달한 그 세 오빠는 웃으면서 그 방으로
들어갔데요.....
휴....
그 오빠들을 발견한 것은 다음날 독서실 문을 연 주인 아저씨였어
요.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여자 독서실 방은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난장판이었고, 2명은 정신을 잃은 채로 있었고, 나머
지 하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눈을 뜬 채로 멍하니 앉아 있더래요.
벽에는 또 빨간 잉크인지 피로 쓰여진 숫자들이 있더래요.
주인 아저씨는 구급차를 부르고 난리를 쳤는데, 그 세 명에게는 상
처라곤 넘어졌을 때 날만한 타박상이 전부 였어요.
몇 시간이 지나자, 정신을 잃었던 두 사람이 모두 깨어났지만, 그
전날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약속을 한 것처럼 기억이 안난다며
얘기를 안 했어요. 단지 전날 밤에 무시무시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
처럼 그 얘기만 하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무서워했어요.
그런데, 그 세 오빠에게 내려진 저주는 여기가 끝이 아니예요.
얼이 빠진 채로 발견된 한 오빠는 나중에도 제 정신을 찾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게 되었어요.
담당 의사말로는 과도한 스트레스 또는 정신적 부담감이 이런 증상
의 원인되었다고 얘기하면서도, 갑작스런 충격과 급격한 감정의 변
화가 - 예를 들어 극도의 공포 - 이런 증상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고 말했을 뿐, 명쾌한 답을 내주지 못했데요.
나머지 두 오빠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어요.
도대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서실 근처에는 갈 생각도 않
하고 공부도 하지 않았아요. 단지 둘이서 뭔가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처럼 학교 수업도 빼먹고 어딜 갔다 오는 것이 일 수 였고..
부모님들은 난리가 났죠. 수능이 며칠 안 남았는데, 아이들이 공부
는 안하고 이상한 일에 심취해 있는 것 같고...
그러다 한 오빠의 부모님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무지하게 혼을
냈데요. 그런데 그 오빠는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니까요!!!'
라고 소리치고 집을 뛰쳐 나왔데요.
그리고는...
뺑소니 차에 치인 시체로 발견되었어요.
사고를 낸 차가 뺑소니를 쳤기 때문에,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
도 알 수 없었지만, 부모님에게 혼이 나서 달리는 차에 자살했을 거
라는 소문도 나돌기 시작했어요. 물론 독서실에서 그날 밤 있었던
일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돌기 시작했고요.
끔찍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그 정신 병원에 입원한 오빠 역시 어느날 시체롤 발견된 거예요.
병원 커튼에 목을 멘 채로....
죽기 전에 무슨 끔찍한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무서움에 가득찬 눈
빛을 한 채로 발견되었데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나머지 하나 남은 오빠가 공부가 될 리가
있었겠어요. 가장 친한 친구들이 그런 식으로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게 되니....
공부는커녕, 뭔가에 쫓기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어요.
결국 부모님은 그런 애에게 수능시험을 보게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
각하고 아는 사람에 부탁해서 군대에 보냈어요.
집에 있다고 뾰족한 수가 날리도 없는데다고, 본인도 군대에 가길
원했어요, 거기가면 안전할 것 같았는지....
그런 일이 있는지로, 이 독서실 여자방에는 악령이 깃들어져 있다는
소문이 퍼졌어요.. 거기서 밤을 지세우는 사람은 누구나 그 악령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얘기가 돌았죠...
믿고 안 믿고는 자유시지만, 이 얘기들은 다들 정말이예요..."

은혜의 얘기를 듣고나니,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있었다. 고등학
교 주변에 떠돌아 다닐 만한 괴담이었지만, 좀 상세해서 그런지 듣
기에는 으시시했다. 아마 그 은혜라는 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
를 해서 더 실감났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 얘기를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은혜야..
그 얘기가 정말이라면, 애들이 왜 아직도 이 독서실을 다니지?
나 같으면, 무서워서 얼씬 조차 안할텐데...."
"아직 잘 모르시나봐요.
이 근처에는 이상하게도 독서실이 여기밖에 없어요.
몇 달전에 새로운 독서실이 이 근처에 생겼지만, 문을 연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원인 모를 불로 다 타바렸어요.
집에서 하면 되지, 왜 독서실로 오냐고요?
고등학교때 생각해봐요.. 숨이 탁탁 막히는데 집에 있으라고요?
독서실 다닌다닌 핑계라도 있어야 밖에 좀 나올 수 있어요.
애들보면, 독서실에 가방만 놓고 밖에 나가는 애들이 대부분
이잖아요. 설사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좀 일찍 나가면 아무 일도 없
으니 괜찮아요."

은혜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독서실은 공부하는 장소와 더불어, 합법적으로 그나마
작은 자유를 누릴 수 있던 장소의 역할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12시가 다되가고 있었다.
은혜는 이제 갈 시간이라며 일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 시간
이 되니까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공부하던 애들이 하나 둘 가방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은혜는 가방을 들고 일어서면서 내게 또 한번 경고를 했다.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저씨도 일찍 나가세요...."

나는 아직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번 더 물어보았다.
아마 호기심이 발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세 명의 얘기는 진짜야?
진짜라면, 그 애들 직접 아는 애들도 있을 거 아냐?
그 애들에게 물어보면 더 자세한 얘기 들을 수 있겠지?"

내 말에 은혜는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며, 웬지 모를 슬픈 얼굴을 하
고 담담하게 대답하고 독서실을 나갔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 얘기는 진짜 있었던 얘기니까요..
군대 갔다던 그 오빠가 바로 우리 친 오빠예요..."

난 은혜의 그 얘기를 듣고, 뒷 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
꼈다. 그 얘기가 정말 사실일 수도 있구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평범한 괴담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런 얘기치고는 좀 상세하다고 느꼈는데, 진짜 은혜의 오빠 얘기인
줄은 몰랐다.
어느새 독서실 있던 애들은 모두 나갔다.
난 텅 빈 독서실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머리속을 정리하려 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가.. 아니면 상상력 풍부한 여고생이 만들어낸
얘기인가... 그럼 내가 어제 봤던 그 여자애와 독서실에서 들었던 애
들의 제잘거리는 소리는? 독서실 벽에서 발견된 그 피묻은 낙서는...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이제 독서실에 밤늦게 혼자 남아있는 것이 꺼려지는 것 만은
확실했다.
아무리 찝찝해도, 아직 일한지 이틀째 밖에 안되었는데 청소는 대충
이라도 하고 나가야 할 것 같아 청소기를 들었다.
그때였다.
통 울리지 않았던 독서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마 자기 애 집으로 출발했는지 확인하는 부모의 전화로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술취한듯한 남자가 황당한 얘기를 하는 것이
었다.

"이봐요!
오늘 보름달 뜨는 날이니까, 빨리 독서실에서 나가요!"
"예? 뭐라고요?"
"전화로 길게 얘기할 수 없으니, 내 말 들어!
당장 나가라니까!"
"누구시죠? 무슨 말씀 하시는 것이죠?"
"이봐! 내 술김에 당신 구해주려고 전화하는 것이니까 잔말말고
거기서 당장 나와!
멍청히 있다가 인생 종치지 말고!"

그러고는 툭 전화를 끊어버리는 거였다.
시간을 보니 거의 1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텅 빈 독서실에 나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었다.
전화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몰랐지만, 그대로 독서실 있기에는 꺼림직했다.
뒷정리는 내일 아침에 와서 할 생각으로, 허겁지겁 짐을 챙겨 독서
실을 나섰다. 문을 잠그는데, 안에서 뭔가 또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
가 들리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신경쓰기가 귀찮았는지, 무서웠는지 그 소리를 무시하고 독
서실에서 나왔다. 봉고에 올라타 시동을 건 후, 나도 모르게 독서실
을 올려다봤다.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 숨을 내쉬고, 봉고를 출발시켰다.
아무 생각없이 독서실 건물을 뒤로 하고 가는데, 갑자기 백미러에
비친 독서실 창문에 쾡한 얼굴을 한 몇몇의 애들이 내쪽을 내려다
보는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돋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도 급브레이크를 밟고, 뒤돌아 보았다.
불 커진 4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헛것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생생하고 무서운 광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애들의 창백한 얼굴들이 뇌리를 떠나
지 않았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애들의 음산한 분
위기는 잊혀지지 않았다.
그날 밤, 냉장고에 사 두었던 소주 한 병을 비운 후에야 잠을 잘 수
가 있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어서 평소보다 좀 일찍 독서실로 가야했다.
전날 밤의 숙취가 좀 남아있었지만, 화창한 날씨를 보니 어제의 나
의 행동이 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상상력 풍부한 여고생의 무서운 얘기를 듣고, 그렇게 무서워하다
니...
이제 더 이상 그런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기로 결심하고, 독서실에
도착한 나는 어제 못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여자 독서실 문을 연 순간,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
었다. 모든 독서실 의자가 책상위로 올라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 지워놓은 그 자리에 똑같은 낙서가 있는 것이었다.
어제 이 방에서 공부했던 애들이 나가면서, 의자를 올려놓고 나갔을
리가 없는데, 그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애써 어제 공부하던 애들이 나를 귀찮게 하려는 장난으로
이런 짓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낙서도 '낙서금지'라고 써 붙여놓으니까, 더 장난친 것으로 생각하기
로 했다. 기괴한 느낌을 애써 참으면서, 청소를 마쳤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예전에 윤석이가 한번 읽어보라고 했던 심령과
학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이비 책 같아 보였지만, 심령과학
을 제대로 공부한 윤석이 말로는 게중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현상을 바라본 책이라는 것이었다.
이 책은 다른 어려운 책들과는 달리, 불가사이한 사례를 하나씩 보
여주며, 그것에 대한 학문적인 해설을 해 놓은 책이었다. 그 학문이
라는 것도 냉철히 보면, 귀신 얘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애들의 웅성거림, 도서관, 빨간 낙서 등
등의 사례들을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사진까지 같이 있어 그 책을 읽다보니,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던 경우들은 꽤 여러 종류의 사례로 정리
되어 있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책을 읽고 있는데, 갑지기 은혜가
독서실로 들어왔다.
시간을 보니, 12시 좀 넘은 시간이었다.
토요일이라고는 하지만, 독서실 오기에는 좀 이른 시간처럼 느껴졌
다. 그런데, 은혜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다짜고짜 봉투하나를 건
넸다.

"어제 제 얘기 믿기 힘들다고 했죠?
여기 그 증거가 있어요!
오빠가 아무한테도 안 보여준 것인데, 제가 오빠 방을 뒤져서 찾아
낸 것예요... 난 무서워서 다 보지 못했어요.
그날 밤 독서실에서 오빠들이 찍은 사진들이에요.
그리고 이건 내가 우연히 듣게 된 카세트 테잎이예요.
이것도 무서워서 다 못들었어요.
그날 밤 실수로 오빠가 워크맨의 녹음 스위치를 눌러 놨는지,
학원 강의가 든 90분짜리 테잎에 그날 밤 일들이 녹음되어 있어요.
오빠가 듣던 국어 강의 테잎을 찾아 듣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아마 오빠도 몰랐던 것 같아요...
한번 들어보세요...
그럼 제 얘기를 믿게 될 테니까....."
..은혜가 내민 것을 천천히 받아든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데 은혜는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지도 않은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니?"
"아저씨가 내 얘기 전혀 믿어주질 않았잖아요!"

은혜는 좀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순간 고민이 생겼다. 만약 은혜가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은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가 그것에
대해 믿게 만들려는 것을 봐서는, 내가 만약 그 괴담들을 현실로 받
아들인 후에 뭔가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해야 하나.. 퇴마사라고 알려진 수 많은 사기꾼들
을 찾아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해야 하나.. 별 생각이 다들었다.
은혜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얘기했다.

"지난번 총무 아저씨도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아저씨도 좀 있으면 제 얘기가 모두 사실인 걸 알게 될거예요.."
"그런데, 은혜야..
내가 설사 그 얘기를 믿게되더라도, 무엇이 달라지겠니?
그 악령을 내가 쫓아낼 수도 없을테고... "
"그래도 내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은혜의 대답을 들은 나는, 한숨을 내쉬고, 그 봉투를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사진 몇장과 '고전 강의'라고 써 있는 낡은 카세트 테잎이
하나 들어있었다.
우선 나는 천천히 그 사진들을 살펴봤다.
처음 몇장은 3명의 남자 고등학생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여자 독서
실에서 우수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들이었다.
아마 그날 그 방에 숨어 들어가 처음 찍은 사진 같았다.
대충 독서실 의자에 카메라를 놓고 찍은 사진인지 구도같은 것은
엉망이었다.
다음 몇장은 독서실 안을 어지럽게 찍어 놓은 것이었다. 불이 꺼진
상태에서 후레쉬를 터트려 가며 찍은 것인지 책상 의자들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독서실 무엇을 찍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급했는지 사진은 심하게 흔들린 상태로 찍혔고, 독서실 안의 모습
이 여기 저기 찍혀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 몇장 중에는 그 세 명의
모습이 찍혀 있기도 했다.
그 모습들을 보는 순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그 세 명의 얼굴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심하게 겁에 질려 있었고,
어찔할 바를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떤 사진에서는 다들 손으로 한 쪽 구석을 가르키면서 절규하는
모습도 찍혀 있었다. 장난으로 연출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실감나는
표정들이었다.
나머지 사진들은 그냥 암흑속의 독서실 안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마지막 사진까지 보고나니 괜히 찝찝해 졌다.
옆에서 보고 있던 은혜가 내 손에 있던 사진을 가져가더니 몇장을
골라 다시 건네 주며 얘기를 했다.

"이것들이 내가 본 사진들이예요..
나머지는 사실 무서워서 다 보지 못햇어요."

기분나쁘긴 해도 무서워서 볼 수 없는 정도의 사진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은헤는 너무 무서워서 더 이상 사진을 볼 수 없었다고 했
다. 의아한 기분이 드는데, 은혜는 다시 건네준 사진들에 대해서 충
격적인 얘기를 했다.

"좀 꼼꼼히 보라고 했잖아요.
자 이 사진 봐요. 이 천장 구석에 흰 것이 뭐 같지 않아요?
이렇게 한 번 돌려서 봐 봐요..
여기가 입이고, 여기가 눈이고...
이렇게가 얼굴이잖아요."

은혜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볼때는 단지 어두운 독서실 안을 찍은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이었다. 은혜가 가리킨 부분의 하얀 것은 현상
할 때 빛이 들어갔으려니 하고 넘어간 부분이었다. 그런데 은혜의
설명대로 보니, 영락없이 천장 구석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한 여자애
의 얼굴이었다. 은혜는 다음 사진을 가르키며 설명을 계속했다.

"이 사진도 봐요..
이 사람이 우리 오빤대요. 오빠가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는 부분
을 자세히 보세요.
여기도 희미하게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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