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8회
페이지 정보
하늘가넷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작성일2003-03-23 05:15 조회5,037회 댓글0건본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얘기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서 경기마저 실종되다니...
난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이번에는 죽을 각오를 했는지, 눈빛부터 달랐어요.
아니, 풍기는 분위기가 좀 이상했지요.
뭐랄까... 사지에서 빠져 나온 사람처럼 보였죠.
내가 무슨 번뇌가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몇 번 권했지만, 아
무 것도 아니라면서 대답을 안 했소.
내 생각 같아서는 그 학생 뭔가에 괴롭힘당하는 것 같았지만, 본인
이 도움을 청해야지...
여하튼 그 학생이 암자에 올라와서 한 일이라곤 공부와 밥 먹는
일이 전부였소.
자기 방에 틀여 박혀 식사할 때만 얼굴 볼 수 있는 정도 였으니까.
내 경험상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꼭 시험에 붙길래, 그 학생도
좋은 결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밤에 어쩌다 그 학생이 묵고 있는 방을 지나다 보면, 방안
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들려 놀라 뛰어가 보면, 학생이 먼저 방안
에서 나오며, 달려간 우리들에게 악몽을 꿨다며 걱정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학생의 그 때 모습은 악몽을 꿨다보다는 지옥을
목격한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우리는 좀 걱정을 했지만, 시험의 스
트레스를 받아 그런가 넘어갔죠.
어느날 밤은 방안에서 뭔가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불경을 읽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슨 주문을 외우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밤 늦게까지 그 이상한 소리는 들려올때도 있었어요.
다음 날 물어보니, 법전을 소리내서 외웠다고 대답하더군요.
좀 이상하긴 했어요. 내가 대충 들은 그 소리는 의미 있는 소리
라기 보다는 무슨 주문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공부하는 비법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 일도 가볍게 흘러보냈죠..
그 학생은 그런 식으로 생활했죠.
그 일이 발생한 것은 바로 사흘 전이었소.
저녁 식사 때부터 그 학생이 안절부절 해 보였어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기 기다리는 사람 같아 보였어요.
그러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식사 후에는 반드시 하던 경내 산책도
안하고 곧장 자기 방안으로 들어가는 거요.
난 그 모습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공부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어
요.
밤 11시 쯤 되었을 때였을까...
달도 밝길래 암자 근처를 산책하게 되었어요.
그 학생은 그때까지도 공부하고 있는지, 방안에 불은 켜져 있었어
요. 잠깐 말동무가 되 줄 생각으로 방 밖에 서서 그 학생을 불렀
소. 몇번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는 거였소.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봤지만, 책상에 책은 펴놓은 채로 없어진
거요. 쓰고 있던 싸이펜의 뚜껑이 열려진 채로 있는 걸로 봐서는
화장실이나 잠 깨려고 가까운 곳에 산책 간 걸로 생각했어요.
잠시 기다릴 생각으로 방에 들어가 앉아있었어요.
한참을 기다려도 멀리 갔는지 오지 않는 거예요.
좀 멀리 산책갔으려니 하고, 일어서려는데 그 학생이 공부하던
책들이 눈이 띠었어요.
법전이나 참고서 같은 것이 아니라, 이상한 기호와 문자들이 뒤죽
박죽되어 있는 책들이었어요.
남의 물건을 허락없이 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걱정되는 마음
에 책을 들어보았지요.
그런데, 그 책은 무슨 일본책 같은데, 한문제목을 읽어보니 심령학
관련 책이었어요. 혹시나 하고 그 학생이 가져온 책들을 살펴보니.
전부 유령, 살인, 악마, 등등 불경한 내용의 책들이었어요.
학생의 눈이 그렇게 불안해 보이던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돌아오면, 당장 주지 스님께 설법을 들어보라고 얘기할 생각으로
그 방에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다음 날 아침이 밝어도, 그 학생은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주지 스님께 곧장 그 학생이 없어진 것에 대해 보고 드렸죠.
스님께서는 그 학생이 답답한 마음에 마을로 내려가 술 한잔했을
지도 모른다며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셨죠.
하루를 더 기다리고 아무 소식이 없기에, 오늘 경찰에 신고했어요.
경찰 말로는 그 학생이 어디로 갔는지는 가족도 모른다는 거예요.
덕분에, 조용하던 우리 절이 경찰들로 북적거리게 되었지만...
그런데, 그 일에 대해 꼬치 꼬치 캐묻는 분은 누구시죠?"
한참을 수다스럽게 얘기하고 난 그 스님은 갑자기 내가 의심스러운
지, 친구라고 밝힌 내게 다시 정체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군데요..
이 친구 요즘 공부 잘 하고 있나해서 전화해봤어요..."
갑자기 수화기 저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아무 소리가 안 들렸지만,
그 스님이 이제 나를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스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잠깐! 당신 누구요?
서경기 학생이 우리 암자에 올라왔을 때, 자기가 여기 온 것은
가족도 모른다고 얘기했소. 한 동안 속세를 끊고 살고 싶다며...
그런데, 친구인 당신이 그 학생이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말이요?"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더듬거리며 뭔가 대답할 말을 생각해내려
했다.
"그...저...저는..요....친구가.. 아니라...."
하지만, 그럴듯한 거짓말을 생각해낼 수 없어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
다. 그 스님은 분명히 나와의 통화 내용을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가뜩이나 은혜 실종 사건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로써는
나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걱정도 잠시뿐, 서
경기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큰 충격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단지 이 독서실에
대해 뭔가 의심하고 이상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실종되거나
죽는 것 같았다. 슬슬 겁이 나기도 했다.
잠시 담배를 꺼내 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가능성이 생각났다.
만약에 그 서 경기라는 전 총무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면....
그 사람이 한 얘기가 지어낸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은혜는 납치당한 것인가, 그냥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그
애 역시 스스로 어딘가 숨어버린 것인가...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복잡해 졌다. 어디까지가 진실인고, 어디까지
가 허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독서실에서 일어나는 괴기하고 무시무시
한 일들과 사람들의 실종과는 분명히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차례는 나인가 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무서워졌다.
그러다 단 한사람, 독서실에서 끔직한 경험을 하고 아직도 이상없는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군대 가 있다는 은혜의 오빠였다.
하지만, 어느 부대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연락할 길이 막
막했다. 그렇다고 은혜네 집에 전화를 걸어 알아볼 수도 없는 일이
었다.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의심받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독서실에 등록되어 있는
아이들 중에 은혜 오빠와 같은 고등학교 나오고, 같은 나이에 재수
하는 애들을 찾아봤다. 혹시 은혜 오빠, 은철이의 연락처를 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중 한 아이가 은철이와 꽤 친했는지, 부대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의정부 지역 부대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 부대 이름이 낮이 익었다.
바로 친한 선배가 ROTC 장교로 가있는 그 부대였다. 술 얻어 먹으
로 나도 그 부대에 몇번 놀러간 적이 있었다.
허겁지겁 수첩을 꺼내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저 일한이예요."
"어, 네가 왠 일이야? 너 군대 간다고 전화한거야?"
"그건 아니고요. 형은 어때요? 이제 1년정도 남았죠?"
의례적인 질문이었지만, 선배는 힘든 일을 겪었는지 한숨을 내쉬더
니 얘기했다.
"요즘 말도 마라.. 우리 부대에 사고가 터져 며칠 밤새고
난리 났었다."
"사고라뇨? 무슨 일 있었어요?"
"야, 야, 이런 건 보안 사항이야. 전화로 말해줄 수 없어.
그건 그렇고, 너 정말 무슨 일로 전화했니?"
"다른 게 아니라.. 형이 혹시 알까 해서요...
김은철이라고 혹시 아세요. 성남 출신이고.. 지금쯤이면 일병정도
일텐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배의 놀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
려왔다.
"아니. 니가 왜 김은철이를 찾냐?
너 뭐 아는거 있냐?"
오히려 선배가 내게 반문하는 것을 듣고,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
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는거라뇨?
무슨 일 있어요?"
"너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니?
그렇다면 그 자식은 왜 찾아?"
"요즘 제가 총무로 있는 독서실에 한 여자애가 실종된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혹시 그 애 오빠인 김은철이 뭔가 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마침 형이 같은 부대에 있다기에 한 번 전화해
봤는데..."
"뭐라고?
네가 김은철 동생이 다니던 독서실 총무로 있다고?
휴... 세상 참 좁긴 좁아...."
선배의 목소리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형도 그 김은철이라는 사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가능하다면
내게 전화해 달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독서실과 동생 문제로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텐데..."
내 부탁을 들은 선배는 약간 망설이다가, 뭔가 결심한 듯 김은철에
관련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또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
휴... 어떡하나....
하긴 여기서 아무리 쉬쉬 해봤자, 며칠 후면 다들 알테니까...
그 김은철 일병은 사실 내 소대원이야.
그런데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게 되었어.
그저께 밤, 그 자식이 부대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어...
탈영을 했는지, 월북을 했는지..
여하튼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것은 정말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는 거야...."
은혜의 오빠가 부대에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수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선배는 김은철의 실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틀전 밤이었어. 그날 내가 일직 사관이었지.
병영주변을 순찰하는데, 초소에 서 있는 은철이를 봤지.
평소에도 말이 없는 녀석이었지만, 그 날밤은 표정이 좀 달랐어.
일이 발생한 후 생각해보니, 뭐랄까.. 그 녀석은 뭔가 겁에 질려있
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해 하는 것 같았어.
사실 나는 그 녀석이 원래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1년이 넘게 군대생활을 했지만, 내무반에서 친한 사람이 없이 외토
리로 생활하고 있었지. 그렇다고 뺀질거리거나 성격이 나뻐 왕따를
당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단지 자기 스스로가 남과 어울리기를 꺼
려하는 것 같았어. 한번은 포상휴가를 받았는데 반납하기도 해서
좀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을 받던 놈이야. 공휴일날 특별한 업무나
훈련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축구하고 운동하는데, 그 녀석은
내부반에 멍하니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앉아 있곤 했지. 사
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좀 주위깊게 살펴봤지.. 아니나 다를까 결
국 사고를 쳤지만... 그런데, 그렇게 혼자 지내길 좋아하는 녀석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일이 하나 있었어. 바로 밤에 혼자 보초를 서는
것이지. 왜 있잖아? 초소에서 보초 설 때, 고참은 초소에 들어가
졸고 있고 쫄따구가 혼자 보초서다가 장교가 오나 감시하곤 하잖
아. 그런데 그 녀석은 이병때 부터도 그렇게 죽어도 못 하겠다고
해서, 고참들에게 한참 얻어터진 것 같아. 그런데도 배째라는 식이
었나봐. 결국 그 놈과 보초 서게 되면, 아무리 짬밥이 높아도 같이
졸지도 못하고 같이 섰지. 당연히 그 놈과 보초 서기를 모두 꺼려
했지. 내가 한번 불러 그 이유를 물어봤어.
그랬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니?
'아무도 없는 어둠 속이 두렵습니다...'
황당한 대답이었지. 군인이 그런 거 무서워해서 어떻하냐고 나도
다그치고 군기 교육대까지 보냈지만, 소용없었어. 하긴 원칙대로
하면 그 자식 원하는대로 같이 보초 서는 것이 맞는 것이니 나도
더 이상 터치는 않했지..
그리고 생각해 보니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어.
내가 이 부대로 온지 며칠 안되서의 일이었지. 그 녀석도 이 부대
에 배속되자마자의 일이었어.
야간 당직을 서고 있는데, 그 녀석 내무반장이 속옷바람으로 허겁
지겁 사무실로 달려오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보고하는 거야.
새로 들어온 신병이 자다가 발작을 했다는 거야.
무슨 일인가 들어보니, 바로 그 녀석이 자다가 비명을 지르고 거의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는 거야.
'난 아냐!!! 날 그만 나줘!!!!'
그 바람에 모두들 깜짝 놀라 깨어나서, 그 녀석을 때리고 난리를
쳤다는 거야. 그런데 평범한 잠꼬대 같지가 않았다는 거야.
마치 간질병 환자처럼 몸을 바르르 떨고 난리가 났다는 거지 뭐..
내가 내무반으로 가보니, 그 녀석은 어찌나 맞었는지, 온 몸에 멍
투성이에 얼굴도 부어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치 마라톤을
뛴 사람처럼 온 몸이 땀 투성이었고,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
처럼 겁에 질린 눈빛이었어.
나는 처음에 그 녀석이 무슨 정신병 흉내내서 군대에서 의가사 제
대 하려는 놈으로 의심했어. 그런 놈들이 간혹 있거든..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어서, 육군 병원으로 보내서 정신 감정을 의
뢰했지. 문제가 없다는 거야. 그리고 본인도 설사 이상이 있더라도
군대에 계속 있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어보니 적어도 군대에서 나가려는 놈 같지는 않았어.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병원에 갔다온 이유로 그런 발작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거야.
오히려 너무 죽은 듯이 잠을 자서, 밤에 보초 설 때 깨우기가 너무
힘들 정도였다고들 했으니까.
갑자기 그런 잠꼬대인지 발작인지 그 이상한 증상이 없어진 이유
에 대한 해답은 그 녀석이 없어진 후에 사물을 조사하다가 밝혀졌
지. 그 녀석은 어디서 구했는지, 매일 밤 수면제를 먹고 잔 거였어.
그래서 그렇게 깨우기 힘들었던 거고...
어쨌든 그 녀석은 군대 오기 전에 뭔가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끔
직한 일을 겪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어.
생각해보면 그 녀석이 없어지기 전에 어떤 조치를 내렸어야 하는
데... 사람이란 것이 간사해서 처음엔 불편하고 이상하더라도 시간
이 지나면 그러려니 하고 적응이 되잖아. 그 녀석도 그런 셈이였
어. 처음에는 참 괴상한 놈이다라고 생각하고 요주의 인물로 생각
했지만, 오히려 일할때는 성실하고 특별한 말썽을 피우는 일이 없
으니 좀 괴팍한 놈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지.
그래서 그 녀석이 없어진 그 날도 그냥 넘어간 거야.
그 놈이 보초를 서고 있는 초소를 지나는데, 왠일인지 그 녀석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상기되어 있는 거야. 항상 침울해 있던 놈이
었는데, 그 때는 좀 흥분된 모습이었어. 뭔가를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 같아 보였지. 하지만 그 때 나는, 그 녀석도 초소에서 몰래
포르노 사진 같은 것 보고 흥분한 걸로 쉽게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반 농담조로 그 녀석에게 말을 했지.
'김상병 보초 똑바로 서!
초소안에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런데 그 녀석은 내 얘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다시 한번 다그치니까 그제서야 내 얘기를 들
었는지, 알았다고 대답하는 거야.
좀 짜증이 났지만, 그럴수도 있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돌아
섰어. 그때 통 말이 없던 그 놈이 내게 괴상한 말을 지껄이는 거
야.
'중대장님, 이 세상에 악마가 정말 있을까요?'
황당하더구나. 무슨 얘기냐 물었더니, 더 황당한 말을 하는거야.
'우리는 군인인데, 이 총으로 그 악마를 잡을 수 있을까요?'
기가막혔지만, 이 놈 역시 한창 부대에서 유행하는 공포소설 나부
랭이 읽고 쓸데없는 상상하는가 싶어 한 마디 주위주고 돌아섰어.
'야, 새끼야, 너는 군인이야. 빨갱이 때려잡는.
악마나 귀신 나부랑이가 네 상대가 아니라는 거야!
정신차리고 근무나 잘해!'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려야 했어. 한 마디
로 내 실수였지. 치명적인....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 꺼야.
교대조가 그 초소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주위를 살펴보니, 그 놈과 같이 근무를 하고 있던 놈은 개머리판으
로 머리를 얻어맞아 기절한 상태였고, 그 새끼는 기절한 동료의 실
탄까지 챙겨 사라진 거야.
전 부대에 비상이 걸렸지. 탈영도 실탄 소지 탈영이니까..
월북 가능성과 탈영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것이 헌병대의 의견이야.
군대 생활에는 적응을 잘하고, 좋아했지만, 부대 동료들과의 생활
에는 적응못했기 때문에, 북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야.
그런데, 오늘 아침 탈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
되었어. 한국통신의 협조를 구해, 영내 공중전화의 통화기록을 조
사해 봤어. 우선 그 놈의 집이나 근처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해봤
지. 그랬더니 통화기록에 그 놈의 집이 나왔고, 그리고... 그 놈 집
근처의 무슨 독서실인가가 나왔어.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걸었던 곳을 확인시키고 나니, 남은
곳은 그 두군데 뿐이었어.
아마 그 놈이 자기 집에 일어난 일 때문에 탈영했을 수도 있는 거
야...."
나는 선배의 말을 듣고 있다가, 깜짝 놀라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독서실이라뇨? 무슨 독서실이요?"
"글세. 이름이 뭐더라... 잠깐만... 여깄다. 독서실 이름은..."
선배가 말해준 독서실 이름을 듣고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내가 있는 독서실이었던 것이다. 전화를 건 시간을 물어 보니,
새벽 3시라는 것이었다. 아마 야간 근무하기 위해 밤에 나왔다가
전화를 건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었다.
선배는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이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
"아! 이거 안 말해 줬구나.
몇시간 전에 발견된 흔적인데, 그게 좀 이상해..
우리 부대 북쪽 산을 면하고 있는 철조망 한 군데가 파손되 있는
것이 발견되었어. 철조망이 잘려나간 면이 하나도 녹이 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최근에 잘려나간 것 같은데, 헌병 조사관들은 그 녀
석이 그곳을 통해 부대 밖으로 나갔다고 추측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 부대 경험 많은 고참 원사 하나가 그 잘려나간 철조
망을 자세히 살피더니, 내게 슬그머니 놀라운 사실을 얘기해 주었
어. 확실치는 않지만, 잘려나간 모습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철조망을 훼손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야.
그 원사 말로는 그 철조망 흔적은 그 녀석이 만든 것이 아닐 확률
이 높고, 다른 누군가가 부대에 몰래 들어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출입구일수도 있다는 거야.
물론 그 원사의 지적은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수사대에게 묵살되었
지만, 나는 좀 이상한 생각도 들었어.
만약에 탈영을 해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면, 길하고 반대편쪽인
북쪽을 통해 나갔을 리가 없거든..
여하튼 그 놈이 잡히기 전에는 모를 일이야.
물론 살아서 잡힌다는 가정하에서지만..
선배는 이제는 자기 차례라며, 내게 질문을 했다.
나는 독서실을 둘러싼 괴기한 사건들을 곧이곧대로
얘기했다가는 미친놈 취급 받을까봐, 대충 둘러댔다.
독서실에서 날 잘 따르던 은혜라는 여자애가 실종되었는데,
혹시 몰라서 군대갔다는 그 애 오빠가 혹시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전화해 봤다고 얘기했다.
선배는 약간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그냥 알았다며 이 사건
마무리 되면 한번 만나자면 전화를 끊었다. 물론 끊기전에
은혜나 탈영한 은혜의 오빠에 대해 뭔가 알게되면 전화해
달라는 부탁은 서로 잊지 않았다.
은혜 오빠 은철의 탈영, 아니 실종일지도 모르는 사건에
대해 듣고 나자, 내 머리속은 다시 혼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 독서실을 둘러싼 기괴한 사건들은 무엇들이며,
왜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독서실과 특별히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슨 일을 당하고 있고, 이제 얼마 안 가서 내 차례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은혜의 실종사건으로 경찰에게 의심마저 받고 있으니 미칠 것 같았다.
독서실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단지 총무실에 멍하니 앉아 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것만 보고 있었다.
내가 제 정신을 차린 것은 주인 아저씨로부터의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 독서실에 들리지 못하니까,
알아서 있다가 퇴근하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 으시시시한 독서실에 밤 늦게 남기 싫어서,
마지막 아이가 나가자 마자 독서실의 문을 닫고 나섰다.
시계를 보니 12시 이전이었다.
시간이 12시가 되지 않은 것을 보니, 괜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집에 오는 길 내내 모든 괴기한
사건들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복잡해지고 알수가 없었다.
신체적으로 한 일은 없지만, 정신적인 피로 때문인지
집에 도착하니까 온 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 방에 들어오자 마자, 녹초가 된 몸을 침대로 던졌다.
그런데, 침대에 누운 내 눈에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하나가 눈에 띠었다.
평범한 황토색 포장지로 쌓인 소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소포를 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
온 몸에 느끼고 있던 피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책상 위의 소포를 집어 들었다.
소포는 방송국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방송국에서 내게 보내올 것이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포를 뜯어봤다.
비디오 테이프 하나가 들어있었다.
테이프에 써 있는 제목을 보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이프에는 '청소년 가출인가? 실종인가?' 라고 써 있었다.
바로 내가 며칠 전에 방송국에 주문한 것이었다.
은혜가 얘기해 주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던 차에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가출인가? 실종인
가?' 라는 제목의 방송이 나간 적이 있었대요. 거기서 한달 전에
실종된 애를 하나 보여주는데, 바로 독서실에 들었던 도둑이었데
요....'
나는 잠자기를 포기하고, 테이프를 비디오에 넣고 틀었다.
처음 시작은 전형적인 고발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급증하는 청소년 실종 실태에 대해서 취재된 것을 보여주었다.
서울 일대에 많은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 중 일부분은 가출해서
유흥가로 흘러가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의 몇몇은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실종이 유괴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유괴를 저지르기에는 실종된
아이들이 너무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통상 유괴 범죄는 다루기 쉬운 초등학생
정도로 집중되어 있고, 또 실제로 없어진 아이들에 대하여 몸값을
요구하는 등의 연락이 없었다는 등의 얘기가 프로그램의 전반부에 나왔다.
담배를 하나 빼어물고 그 프로그램을 계속 보던 나는, 그 유명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해서 나오는 것을 보고 어느새 나도 잊어버린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을 생각났다.
프로그램 속의 기자는 메마른 목소리로 그 사건을 요약했다.
'...김영규, 김종식, 박찬인, 우철원, 조호연, 대구 성서초등학교 개구쟁이들(3~6년).
메뚜기 잠자리를 쫓아 들판으로 달리며 마냥 천진난만했던 아이들..'
26일로 벌써 실종된 지 몇년째를 맞은 '개구리 소년들'의 당시 모습이다.
성서초등학교 6년에 다니던 우군을 비롯한 5명이 대구 달서구 이곡동 집뒤편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은 1991년 3월26일. 이후
개구리 소년들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는 세인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졌습니다.
기자는 이들의 '실종'이 못내 안타깝고 '혹시나'하는 생각에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젠 찾는 일은 포기했어요. 제발 조용히 잊도록 전화도 하지 마세요..'
일부 부모들은 잊으려 하지만결코 잊을 수 없는 자식 생각에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습니다.
'개구리 소년들'은 이제 세월의 흐름속에 잔상조차 찾기 어렵지만 이들의
실종사건은 한때 전국을 들쑤셔 놓았습니다.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찾아 헤맸고, 이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까지 제작됐다. 대통령의 특별지시, 현상금 4,200만원, 전단지 2억여장
등, 이들을 찾기 위한 국민적인 노력도 전개되었습다.
그러나 이미 대구 달서경찰서에 설치됐던 수사본부는 '개점휴업'에 들어갔고,
이들이 살던 농촌은 고층아파트 숲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실종에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구 멸망의 징조, 휴거의 게시,
납북설, 소록도에 입원설, UFO 납치설 등 황당무계한 추측과 가설이 난무했지만,
아무도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잊혀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전에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한달 전 경기도 성남시의 살던 모범적인 중학생 최종현 군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독서실로 공부하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이에 취재진은 최정현 군의 최후 행적을 정밀 조사해 봤습니
다...'
긴장된 상태로 TV를 주시하고 있던 나는 최종현이라는 실종된
학생의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어디서 그 아이를 봤는지는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내가 이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은혜가 들려준 얘기가 전부였다.
독서실에 워크맨 훔치러 들어왔다 뭔가에 놀라 기절하고, 은혜 오빠 친구
일행에게 붙잡혔던 아이라는 것 밖에 몰랐다. 당연히 얘기만 들었기 때문에
이 아이의 얼굴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웬일인지 아이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나는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TV에서 시선을 때지 않았다.
"실종 당일 최종현 군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1시간동안 TV를 시청하고 있다가, 어머니 김모씨의 꾸중을 듣고
책가방을 챙겨 평소 다니던 독서실로 나갔습니다.
이 때가 밤 8시 반, 늦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 김모씨는 꾸중이라기 보다는 종현군에게 독서실에서 가 공부하라고
타이른 정도였다며, 그때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을 나간 종현군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종현군의 독서실에서는 그날 밤 종현군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종현이라는 아이가 다니던 독서실은 내가 총무로 있는
독서실은 아니었다. 거기서 한 7,8Km 떨어진 옆동네 독서실 같았다.
음산한 톤의 화면은 그날 밤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다.
" 종현군은 바로 독서실과 집에서 10분간의 거리, 2Km 남짓한 거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취재진은 주변의 증언에 따라 종현군이 평소 독서실에 갈 때 지나가는
길들을 따라가 봤습니다. 길 주변 상가 상인들에게 종현군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날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거의 모두가
종현 군의 모습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사람 종현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표와 음료수를 팔고 있는 신모 할머니였습니다.
그 분은 종현군의 모습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맞수다. 이 학생..
그 날밤 똑똑히 기억하고 있수다.
손님도 뜸해지고, 문 닫을 시간도 되서, 가게 밖에 있는 물건을 안
으로 들이고,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수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하나가 나를 부딪히며 황급하게 지나가는 거
였수다. 넘어질뻔한 나는 그 애를 보고 소리를 쳤수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수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겁에 질려있는 것였수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획 돌아서 저쪽으로 뛰어가는
거였수다. 하도 이상해서 나는 그 애를 계속 쳐다봤수.
그 애는 저쪽으로 뛰어가면서도, 뭔가에 쫓기듯이 자꾸 뒤를 돌아
다 보는 거였수. 나도 뭔가 하고 그 애가 뒤돌아 보는 쪽을 쳐다보
았지만, 아무 것도 안보이고 새까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수.
지금도 그 애의 겁에 질린 표정을 생각하면... 휴...'
할머니의 진술이 확실하다면, 종현군은 그 무엇, 아니 그 누군가에
의해 쫓기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로 종현군의 갔던 길가 주변에 위치한 상점들이나 은행에 설치되어
있던 CC-TV 화면을 확인해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CC-TV들은 주로 상점 안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길가에 종현군의
모습이 찍혔을 확률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CC-TV를 가지고 있는 주변의 모든 상가에 협조를 구해 그 시간대의 테잎을 입수해 분석에 들어
갔습니다.
대부분의 테잎은 상점안의 모습만 찍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부분이지만, 길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거리의 모습이라는 것도 행인들의 다리 정도만
찍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은 실종 당시 종현군이
입었던 바지와 신었던 운동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단서로 테잎들을 판독했습니다.
길고 지루한 작업 끝에 우리는 종현군의 실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는 화면을 하나 찾아
냈습니다.
자 보시죠.
이 화면은 은행 현금 인출기에서 찍힌 것입니다.
저희가 확대시킨 부분은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길거리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카메라의 각도상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정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은 8시 34분, 그러니까 종현군이 집에서 나온지 4분 남짓 지났을
때의 시간입니다. 이때 종현군은 이 카메라 앞을 지났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 동그라미 친 부분에 나오는 나이키 신발과 청바지가
그날 종현군이 착용하고 있던 것입니다.
여기 찍힌 다리의 주인공이 종현군이 맞다면, 걸음걸이의 상태를
봐서 종현군은 그때까지 그 누군가에 쫓기지 않고 있는 상태로
파악됩니다. 전혀 다급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면바지와 흰색 운동화 차림의 다리가 보입니다.
여기 붉은 동그라미를 주시해 주십시오.
이 사람의 다리가 종현군과 엇갈려 지나갑니다.
그리고 몇초 후, 무슨 일이지 오던 방향을 반대로 해서, 종현군의
뒤를 따르는 것이 보입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이 다리의 주인공이
종현군의 실종과 관계되어 있는 이 자료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화면을 확대하던 우리 방송국 기술진이 또 하나의
괴기하고 충격적인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그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시청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지 저희가 주장하는 것이
감히 사실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것은 현대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심령세계와도 연관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송국 기술자가 발견한 문제의 장면은 바로 여기입니다.
종현군을 뒤따라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람의 다리를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종현군쪽으로 걸어오다가, 종현군과 지나치고 잠시 후 돌아서서
종현군을 따라갑니다. 그 사람이 돌아서는 부분을 확대하고 천천히 다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돌아서는 부분, 그 부분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봐와 같이 이 사람이 돌아설 때 다리는 일반
사람이 걷다가 돌아서는 모습과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걷다가 돌아서기 위해서는 한 발을 축으로
해서 회전을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축이 되는 발의 발꿈치는
땅에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다리는 보시는 바와
같이 두발이 동시에 180도 돌아섭니다. 그것도 양 발을 땅에
붙힌채로 회전을 합니다. 미세한 차이라 언뜻 발견하기 힘든 장면이었지만,
확대하고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게 들어섭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발 밑에 바퀴가 달려있는 것처럼 양발이 동시에 180도 회전을 해서 돌아섰습
니다.
전문가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분석을 의뢰한 결과,
지구상에서 이렇게 몸을 회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물론 CC-TV가 정밀한 화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필림에 끊임이나
이상이 있어 이런 식의 기괴한 모습이 찍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찍힌 것을 가지고만 분석할 때는 분명 이것은 현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름끼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다리가 돌 때를 다시 한번 주시해 주시
길 바랍니다.
여기 지면을 잘 살펴 보세요.
종현군을 뛰따르던 사람의 다리는 걷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땅에서 약간 떠 있습니다.
다시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은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뜬 상태로 종현군의 뒤를 따라간 것
입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마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은 방송국이 시청률을 위해 또 헛소리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테지만, 그 동안 이상한 것들을 직접 목격했던 나로서는 그것이 진짜같이 믿겨졌다.
그렇다면 종현을 쫓아갔다는 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기자의 진지한 목소리가 TV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여기서 저희는 여러분께 다시 한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보여드린 화면은 결코 조작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화면이 정말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찍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필림상의 문제로 잘못
찍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종현군을 쫓아갔단 사람의 다리가 정말 허공에 떠 있는 상
태라면,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풀리지 않는 의문점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다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과학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심령체라는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진은 용하다고 소문난 무속
인들을 찾아가 화면을 보여주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무속인 A씨는 그 화면을 보자.
'이럴수가... 이 다리의 주인은 악귀여..
여기 뻗치는 살기를 보라니까....
사람이 아녀... 사람을 죽여뻔지는 악귀라니까...'
무속인 A는 마름 침을 삼키며, 몸까지 떨면서 화면안의 모습을 보]
고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운명철학자 B씨는 이 화면을 보자 화부터 냈습니다.
'너희 방송국, 또 조작된 테잎을 가지고 와서 무슨 장난이여!!
이거 다 가짜여!! 특별한 기란 하나도 느낄 수 없어!
썩 꺼져!!!'
B씨는 A씨와 상반대 의견을 보였습니다. 뒤이어 찾아간 6명의 전
문가들도 각기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거기에 어떤 사진 전문가는
이 화면이 기능이 떨어지는 CC-TV에서 촬영된 것이기 때문에 이
필름에 찍힌 것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이 의견이 분분한 것에 대해 저희는 여러분에게 판단의 몫
을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최종현군 실종 사건으로 돌아가서, 우리 취재진은 실종된 종
현군이 어떤 학생이었고, 실종 직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학교 친구
들과 선생님을 만나봤습니다.
종현군의 담임 선생님은 눈에 띠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증언
했습니다.
'종현군은 어떻게 보면, 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조용한
학생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없어도 별로 눈에 띠지 않는 학생이라
고 할 수 있었죠. 그래도 왠일인지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것
같았어요. 수업시간에 한 마디도 안하고, 특별히 튀거나 말썽을 피
우지도 않았지만, 쉬는 시간되면 다른 학생들이 항상 종현군 책상
에 몰려와 떠들곤 했으니까요..
아,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종례시간를 마치고, 반장이 일어나 선생님께 인사하려는데, 종현군
만 고개를 빳빳히 세우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저는 이 친구가 제게 무슨 불만이 있어 반항하는줄 알고, 종현군의
이름을 불렸죠.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반 학생
들이 다 돌아보고, 제가 여러분 불러도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고 있
는 것이예요.
솔직히 좀 화가 났죠.
종현군의 자리로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무슨 일이야라고 소리치니
까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는듯이 시선을 돌렸어요.
이상했던 것은 그 때 종현군의 눈빛은 겁에 질린 그 자체였어요.
교무실로 불러가 좀 야단쳤지만, 아무 말 없이 잘못했다고 얘기하
고 다른 얘기는 하지 않더군요.
그 때 좀 이상한 점을 느꼈지만, 그 학생이 실종되리라는 정말 상
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죠.
이 일만 빼고는 정말 평범 그 자체, 선생님으로서는 참 편한 학생
이었어요..'
최근의 있었던 종현군의 변화에 대해서는 반 친구들의 증언도 많
습니다. 그 중에는 엇갈리는 것도 있었습니다.
'종현이가 그렇게 될지 몰랐어요.
최근까지 별 이상한 조짐도 안 보였는데요..
그 애 아빠가 일본 출장을 자주 가서 그런지, 워크맨을 많이 가지
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그것들을 싼 값에 팔았죠.
그 외에는 그리 사교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왕따를 당하는
애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좀 이상하긴 이상했어요.
어디든 혼자 가기 싫어하는 거 였어요.
체육도구 있는 창고에 배구공 가질려 신부름 갈 일이 있었는데요.
종현이는 죽어도 혼자는 안 가겠다고 난리쳐서 제가 같이 간 적이
있어요. 남자 놈이 뭐가 무섭냐고 핀잔 주었는데,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화를 내는 거예요.
너도 한 번 당해보라고.. 무슨 얘기인줄 잘 몰랐지만, 나도 걔한테
워크맨 싸게 사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갔아요.
아직도 그 떄 창고 혼자 가기 무서워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 XX 사기꾼이예요.
자기가 쓰던 워크맨이라고 해서 샀는데, 완전 고장난 거예요.
그리고 안에 있던 테잎을 들어보니, 기분 나쁜 쉭쉭 소리만 나고
여하튼 다 이상했어요.
그 기분나쁘고 음산한 소리가 나는 테잎을 그 XX에게 들어보라며
돌려주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그 테잎을 뚫어지게 보며
벌벌 떠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테잎을 낚아채서 발로 짓이기고 미친 듯이 지랄했어
요. 마치 그 테잎에 귀신이라도 씌운 것처럼 무서워했어요.
나는 고장난 워크맨이나 다른 워크맨으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항상 다른 것으로 바꿔주던 그 놈이 이제 더 이상
워크맨이 생길 일이 없을테니, 그냥 돈으로 줬어요.
여하튼 이상한 XX였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종현군이 다니던 독서실의 총무에게 종현군의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물어보았
습니다.
'글쎄요..
항상 밤늦게 까지 공부하던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학생은 아니
었어요. 규칙적인 생활을 했어요.
항상 문닫기 1시간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독서실을 나갔아요.'
여기서 우리는 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의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종현군이 독서실 갔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2시 30분 경이었답니다.
그런데 독서실 총무의 증언에 의하면, 종현군은 새벽 1시경에 독서실을 항상 떠났다고 합니다.
그럼 매일 밤 1시간 반 동안 종현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종현군과 놀았다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가정을 해 봤습니다.
우선 종현군의 가족들에 따르면, 종현군이 친구들 말처럼 워크맨을
많이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종현군 주위에서 워크맨을 잊어버린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띠는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취재진중에 한 사람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이 다니던 학교나 독서실에서는 워크맨을 도난당한 사례가 없었지만,
좀 떨어진 학교나 독서실에는 몇 주전부터 워크맨을 도난당한 사례가
빈번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이 친구들에게 워크맨을 팔기
시작했다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만을 가지고 종현군과 워크맨 도난 사실을 연계시킬 수 없습니다.
단지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실종된 종현군과 없어진 워크맨과 뭔가 연관이 있었다는 점입니
다.
저희 취재진은 종현 군을 찾기 위해, 경찰과 합동으로 종현군의 집에서 독서실로 가는 길을 샅샅
히 조사했습니다.
일주일간 30명이 넘는 인원이 그 짧은 길을 조사했지만, 특별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수사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유일한 단서입니다.
너덜너덜해진 운동화 한짝입니다.
종현군을 마지막으로 촬영한 CC-TV에서 한 3분거리에 있는 하수구에서 발견했습니다.
부모님의 확인을 거쳐 이 한짝의 운동화가 종현군이 신었던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감히 한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종현군은 가출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인해 납치나 유괴를 당한 것입니다.
만약 가출을 하려고 했다면, 신발 한짝을, 그것도 길거리에
버리고 사라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에 의해 종현군이 납치당할 때
반항하다가 이 운동화가 벋겨졌을 거라는 것입니다.
종현군의 사진을 잘 봐 주십시오.
여러분 주위에 이 얼굴을 발견하시면, 아래의 경찰서 전화로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우리는 명확한 진실에 접근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얻은 수확은 지금도 어떤 이유에 의해서 우리들의 아이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있다가는 제2, 제3의 종현군과 개구리 소년들의 비극이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어디선가 천진난만하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떤 아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죄자에게 납치될 지도 모릅니다... 내일 밤에도...."
프로그램은 없어진 종현이란 아이의 사진을 클로즈 업 상태로 끝났다. 어느새 나는 담배를 네까치
나 피웠다.
섬뜩한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 내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종현이란
아이의 얼굴이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봤고 눈에 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사실 그 종현이란 애에 대해 아는 것은 은혜가 들려준 얘기가 전부였다.
독서실에 워크맨 훔치러 들어왔다가 은혜 오빠 일행에게 잡혔는데,
여자 독서실에서 무슨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기절한 상태였다는...
그러니 내가 그 종현이란 애의 얼굴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독서실에 드나드는 애들 중에 비슷한 얼굴이 있어서 그랬나
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봤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종현이란 애의 사진을 정지화면으로 두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알 듯 말 듯 그 애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귀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갑자기 끔직한 소리와 겁에 질려 크게 뜬 눈동자가 떠 올랐다.
화면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비명 소리, 거친 숨소리, 두려움에 떠는
모습들, 뭔가 어둠속에 다가오는 것들이 연상되었다.
나도 모르고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끼쳐왔다.
이런 공포스런 연상속에 종현군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하던 그 소름끼치던
영상이 갑자기 멈추고, 종현군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기억해 낸 충격적인 사실 때문에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종현군의 얼굴이 왜 낯이 익었는지, 드디어 생각해낼 수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shs850: 7회부터 소름이 돋는군요..ㅠㅠ 무섭네요...빨리 완결이나와야하는데 ... 근데 이거 실화인가요..?? 7화에서출저가 유일한 님이고..해서 궁금하네요..;; --[03/23-13:00]--
아트모: 흠 혹시 그 사진에 은헤네 오빠랑 친구들이 독서실안에 매복했을때 찍은 사진안에 있던 그 사람이 아닐까요? --[03/23-13:22]--
아트모: 독서실.. 아무래도 이거 범인 독서실 주인같다.. 너무 수상해~~~~~ --[03/23-13:36]--
스풋트니크: 아트모 님 말씀이 맞는거 같아요. 그 사진안에 나왔던 사람이 종현군... 그 은철군 친구들이 독서실에 잠복했을때 친구중 한명이 『 아니 너는...? 네가 여기 왜? 』이랬잖아요? --[03/23-13:40]--
스풋트니크: sbs850님~ 이 글은... 유일한 님의 『어-느-날-갑-자-기』 시리즈 중의 하나랍니다. 야후에서 '유일한' 을 키워드로 검색해보세요~ --[03/23-13:41]--
도황검제: 모든사건의 실마리는 독서실 창고에 있을듯 한데.. 자물쇠로 잠겨있던 창고..... --[03/23-13:48]--
아트모: 혹시 은철이도 범인이 아닐까? -_- --[03/23-14:17]--
아트모: 혹시 그 창고에 시체가 있지 않을까요? -_- --[03/23-14:19]--
서 경기마저 실종되다니...
난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이번에는 죽을 각오를 했는지, 눈빛부터 달랐어요.
아니, 풍기는 분위기가 좀 이상했지요.
뭐랄까... 사지에서 빠져 나온 사람처럼 보였죠.
내가 무슨 번뇌가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몇 번 권했지만, 아
무 것도 아니라면서 대답을 안 했소.
내 생각 같아서는 그 학생 뭔가에 괴롭힘당하는 것 같았지만, 본인
이 도움을 청해야지...
여하튼 그 학생이 암자에 올라와서 한 일이라곤 공부와 밥 먹는
일이 전부였소.
자기 방에 틀여 박혀 식사할 때만 얼굴 볼 수 있는 정도 였으니까.
내 경험상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꼭 시험에 붙길래, 그 학생도
좋은 결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밤에 어쩌다 그 학생이 묵고 있는 방을 지나다 보면, 방안
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들려 놀라 뛰어가 보면, 학생이 먼저 방안
에서 나오며, 달려간 우리들에게 악몽을 꿨다며 걱정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학생의 그 때 모습은 악몽을 꿨다보다는 지옥을
목격한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우리는 좀 걱정을 했지만, 시험의 스
트레스를 받아 그런가 넘어갔죠.
어느날 밤은 방안에서 뭔가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불경을 읽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슨 주문을 외우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밤 늦게까지 그 이상한 소리는 들려올때도 있었어요.
다음 날 물어보니, 법전을 소리내서 외웠다고 대답하더군요.
좀 이상하긴 했어요. 내가 대충 들은 그 소리는 의미 있는 소리
라기 보다는 무슨 주문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공부하는 비법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 일도 가볍게 흘러보냈죠..
그 학생은 그런 식으로 생활했죠.
그 일이 발생한 것은 바로 사흘 전이었소.
저녁 식사 때부터 그 학생이 안절부절 해 보였어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기 기다리는 사람 같아 보였어요.
그러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식사 후에는 반드시 하던 경내 산책도
안하고 곧장 자기 방안으로 들어가는 거요.
난 그 모습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공부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어
요.
밤 11시 쯤 되었을 때였을까...
달도 밝길래 암자 근처를 산책하게 되었어요.
그 학생은 그때까지도 공부하고 있는지, 방안에 불은 켜져 있었어
요. 잠깐 말동무가 되 줄 생각으로 방 밖에 서서 그 학생을 불렀
소. 몇번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는 거였소.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봤지만, 책상에 책은 펴놓은 채로 없어진
거요. 쓰고 있던 싸이펜의 뚜껑이 열려진 채로 있는 걸로 봐서는
화장실이나 잠 깨려고 가까운 곳에 산책 간 걸로 생각했어요.
잠시 기다릴 생각으로 방에 들어가 앉아있었어요.
한참을 기다려도 멀리 갔는지 오지 않는 거예요.
좀 멀리 산책갔으려니 하고, 일어서려는데 그 학생이 공부하던
책들이 눈이 띠었어요.
법전이나 참고서 같은 것이 아니라, 이상한 기호와 문자들이 뒤죽
박죽되어 있는 책들이었어요.
남의 물건을 허락없이 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걱정되는 마음
에 책을 들어보았지요.
그런데, 그 책은 무슨 일본책 같은데, 한문제목을 읽어보니 심령학
관련 책이었어요. 혹시나 하고 그 학생이 가져온 책들을 살펴보니.
전부 유령, 살인, 악마, 등등 불경한 내용의 책들이었어요.
학생의 눈이 그렇게 불안해 보이던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돌아오면, 당장 주지 스님께 설법을 들어보라고 얘기할 생각으로
그 방에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다음 날 아침이 밝어도, 그 학생은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주지 스님께 곧장 그 학생이 없어진 것에 대해 보고 드렸죠.
스님께서는 그 학생이 답답한 마음에 마을로 내려가 술 한잔했을
지도 모른다며 하루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셨죠.
하루를 더 기다리고 아무 소식이 없기에, 오늘 경찰에 신고했어요.
경찰 말로는 그 학생이 어디로 갔는지는 가족도 모른다는 거예요.
덕분에, 조용하던 우리 절이 경찰들로 북적거리게 되었지만...
그런데, 그 일에 대해 꼬치 꼬치 캐묻는 분은 누구시죠?"
한참을 수다스럽게 얘기하고 난 그 스님은 갑자기 내가 의심스러운
지, 친구라고 밝힌 내게 다시 정체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군데요..
이 친구 요즘 공부 잘 하고 있나해서 전화해봤어요..."
갑자기 수화기 저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아무 소리가 안 들렸지만,
그 스님이 이제 나를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스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잠깐! 당신 누구요?
서경기 학생이 우리 암자에 올라왔을 때, 자기가 여기 온 것은
가족도 모른다고 얘기했소. 한 동안 속세를 끊고 살고 싶다며...
그런데, 친구인 당신이 그 학생이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말이요?"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더듬거리며 뭔가 대답할 말을 생각해내려
했다.
"그...저...저는..요....친구가.. 아니라...."
하지만, 그럴듯한 거짓말을 생각해낼 수 없어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
다. 그 스님은 분명히 나와의 통화 내용을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가뜩이나 은혜 실종 사건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로써는
나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걱정도 잠시뿐, 서
경기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큰 충격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단지 이 독서실에
대해 뭔가 의심하고 이상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실종되거나
죽는 것 같았다. 슬슬 겁이 나기도 했다.
잠시 담배를 꺼내 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가능성이 생각났다.
만약에 그 서 경기라는 전 총무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면....
그 사람이 한 얘기가 지어낸 것이었다면...
그렇다면 은혜는 납치당한 것인가, 그냥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그
애 역시 스스로 어딘가 숨어버린 것인가...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복잡해 졌다. 어디까지가 진실인고, 어디까지
가 허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독서실에서 일어나는 괴기하고 무시무시
한 일들과 사람들의 실종과는 분명히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차례는 나인가 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무서워졌다.
그러다 단 한사람, 독서실에서 끔직한 경험을 하고 아직도 이상없는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군대 가 있다는 은혜의 오빠였다.
하지만, 어느 부대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연락할 길이 막
막했다. 그렇다고 은혜네 집에 전화를 걸어 알아볼 수도 없는 일이
었다.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의심받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독서실에 등록되어 있는
아이들 중에 은혜 오빠와 같은 고등학교 나오고, 같은 나이에 재수
하는 애들을 찾아봤다. 혹시 은혜 오빠, 은철이의 연락처를 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중 한 아이가 은철이와 꽤 친했는지, 부대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의정부 지역 부대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 부대 이름이 낮이 익었다.
바로 친한 선배가 ROTC 장교로 가있는 그 부대였다. 술 얻어 먹으
로 나도 그 부대에 몇번 놀러간 적이 있었다.
허겁지겁 수첩을 꺼내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저 일한이예요."
"어, 네가 왠 일이야? 너 군대 간다고 전화한거야?"
"그건 아니고요. 형은 어때요? 이제 1년정도 남았죠?"
의례적인 질문이었지만, 선배는 힘든 일을 겪었는지 한숨을 내쉬더
니 얘기했다.
"요즘 말도 마라.. 우리 부대에 사고가 터져 며칠 밤새고
난리 났었다."
"사고라뇨? 무슨 일 있었어요?"
"야, 야, 이런 건 보안 사항이야. 전화로 말해줄 수 없어.
그건 그렇고, 너 정말 무슨 일로 전화했니?"
"다른 게 아니라.. 형이 혹시 알까 해서요...
김은철이라고 혹시 아세요. 성남 출신이고.. 지금쯤이면 일병정도
일텐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배의 놀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
려왔다.
"아니. 니가 왜 김은철이를 찾냐?
너 뭐 아는거 있냐?"
오히려 선배가 내게 반문하는 것을 듣고,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
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는거라뇨?
무슨 일 있어요?"
"너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니?
그렇다면 그 자식은 왜 찾아?"
"요즘 제가 총무로 있는 독서실에 한 여자애가 실종된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혹시 그 애 오빠인 김은철이 뭔가 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요. 마침 형이 같은 부대에 있다기에 한 번 전화해
봤는데..."
"뭐라고?
네가 김은철 동생이 다니던 독서실 총무로 있다고?
휴... 세상 참 좁긴 좁아...."
선배의 목소리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형도 그 김은철이라는 사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가능하다면
내게 전화해 달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독서실과 동생 문제로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텐데..."
내 부탁을 들은 선배는 약간 망설이다가, 뭔가 결심한 듯 김은철에
관련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또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
휴... 어떡하나....
하긴 여기서 아무리 쉬쉬 해봤자, 며칠 후면 다들 알테니까...
그 김은철 일병은 사실 내 소대원이야.
그런데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게 되었어.
그저께 밤, 그 자식이 부대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어...
탈영을 했는지, 월북을 했는지..
여하튼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것은 정말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는 거야...."
은혜의 오빠가 부대에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수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선배는 김은철의 실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틀전 밤이었어. 그날 내가 일직 사관이었지.
병영주변을 순찰하는데, 초소에 서 있는 은철이를 봤지.
평소에도 말이 없는 녀석이었지만, 그 날밤은 표정이 좀 달랐어.
일이 발생한 후 생각해보니, 뭐랄까.. 그 녀석은 뭔가 겁에 질려있
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해 하는 것 같았어.
사실 나는 그 녀석이 원래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어.
1년이 넘게 군대생활을 했지만, 내무반에서 친한 사람이 없이 외토
리로 생활하고 있었지. 그렇다고 뺀질거리거나 성격이 나뻐 왕따를
당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단지 자기 스스로가 남과 어울리기를 꺼
려하는 것 같았어. 한번은 포상휴가를 받았는데 반납하기도 해서
좀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을 받던 놈이야. 공휴일날 특별한 업무나
훈련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축구하고 운동하는데, 그 녀석은
내부반에 멍하니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앉아 있곤 했지. 사
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좀 주위깊게 살펴봤지.. 아니나 다를까 결
국 사고를 쳤지만... 그런데, 그렇게 혼자 지내길 좋아하는 녀석이
죽기보다 싫어하는 일이 하나 있었어. 바로 밤에 혼자 보초를 서는
것이지. 왜 있잖아? 초소에서 보초 설 때, 고참은 초소에 들어가
졸고 있고 쫄따구가 혼자 보초서다가 장교가 오나 감시하곤 하잖
아. 그런데 그 녀석은 이병때 부터도 그렇게 죽어도 못 하겠다고
해서, 고참들에게 한참 얻어터진 것 같아. 그런데도 배째라는 식이
었나봐. 결국 그 놈과 보초 서게 되면, 아무리 짬밥이 높아도 같이
졸지도 못하고 같이 섰지. 당연히 그 놈과 보초 서기를 모두 꺼려
했지. 내가 한번 불러 그 이유를 물어봤어.
그랬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니?
'아무도 없는 어둠 속이 두렵습니다...'
황당한 대답이었지. 군인이 그런 거 무서워해서 어떻하냐고 나도
다그치고 군기 교육대까지 보냈지만, 소용없었어. 하긴 원칙대로
하면 그 자식 원하는대로 같이 보초 서는 것이 맞는 것이니 나도
더 이상 터치는 않했지..
그리고 생각해 보니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어.
내가 이 부대로 온지 며칠 안되서의 일이었지. 그 녀석도 이 부대
에 배속되자마자의 일이었어.
야간 당직을 서고 있는데, 그 녀석 내무반장이 속옷바람으로 허겁
지겁 사무실로 달려오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보고하는 거야.
새로 들어온 신병이 자다가 발작을 했다는 거야.
무슨 일인가 들어보니, 바로 그 녀석이 자다가 비명을 지르고 거의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는 거야.
'난 아냐!!! 날 그만 나줘!!!!'
그 바람에 모두들 깜짝 놀라 깨어나서, 그 녀석을 때리고 난리를
쳤다는 거야. 그런데 평범한 잠꼬대 같지가 않았다는 거야.
마치 간질병 환자처럼 몸을 바르르 떨고 난리가 났다는 거지 뭐..
내가 내무반으로 가보니, 그 녀석은 어찌나 맞었는지, 온 몸에 멍
투성이에 얼굴도 부어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치 마라톤을
뛴 사람처럼 온 몸이 땀 투성이었고,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
처럼 겁에 질린 눈빛이었어.
나는 처음에 그 녀석이 무슨 정신병 흉내내서 군대에서 의가사 제
대 하려는 놈으로 의심했어. 그런 놈들이 간혹 있거든..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어서, 육군 병원으로 보내서 정신 감정을 의
뢰했지. 문제가 없다는 거야. 그리고 본인도 설사 이상이 있더라도
군대에 계속 있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들어보니 적어도 군대에서 나가려는 놈 같지는 않았어.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병원에 갔다온 이유로 그런 발작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거야.
오히려 너무 죽은 듯이 잠을 자서, 밤에 보초 설 때 깨우기가 너무
힘들 정도였다고들 했으니까.
갑자기 그런 잠꼬대인지 발작인지 그 이상한 증상이 없어진 이유
에 대한 해답은 그 녀석이 없어진 후에 사물을 조사하다가 밝혀졌
지. 그 녀석은 어디서 구했는지, 매일 밤 수면제를 먹고 잔 거였어.
그래서 그렇게 깨우기 힘들었던 거고...
어쨌든 그 녀석은 군대 오기 전에 뭔가 기억하기 싫을 정도의 끔
직한 일을 겪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어.
생각해보면 그 녀석이 없어지기 전에 어떤 조치를 내렸어야 하는
데... 사람이란 것이 간사해서 처음엔 불편하고 이상하더라도 시간
이 지나면 그러려니 하고 적응이 되잖아. 그 녀석도 그런 셈이였
어. 처음에는 참 괴상한 놈이다라고 생각하고 요주의 인물로 생각
했지만, 오히려 일할때는 성실하고 특별한 말썽을 피우는 일이 없
으니 좀 괴팍한 놈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지.
그래서 그 녀석이 없어진 그 날도 그냥 넘어간 거야.
그 놈이 보초를 서고 있는 초소를 지나는데, 왠일인지 그 녀석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상기되어 있는 거야. 항상 침울해 있던 놈이
었는데, 그 때는 좀 흥분된 모습이었어. 뭔가를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 같아 보였지. 하지만 그 때 나는, 그 녀석도 초소에서 몰래
포르노 사진 같은 것 보고 흥분한 걸로 쉽게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반 농담조로 그 녀석에게 말을 했지.
'김상병 보초 똑바로 서!
초소안에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런데 그 녀석은 내 얘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다시 한번 다그치니까 그제서야 내 얘기를 들
었는지, 알았다고 대답하는 거야.
좀 짜증이 났지만, 그럴수도 있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돌아
섰어. 그때 통 말이 없던 그 놈이 내게 괴상한 말을 지껄이는 거
야.
'중대장님, 이 세상에 악마가 정말 있을까요?'
황당하더구나. 무슨 얘기냐 물었더니, 더 황당한 말을 하는거야.
'우리는 군인인데, 이 총으로 그 악마를 잡을 수 있을까요?'
기가막혔지만, 이 놈 역시 한창 부대에서 유행하는 공포소설 나부
랭이 읽고 쓸데없는 상상하는가 싶어 한 마디 주위주고 돌아섰어.
'야, 새끼야, 너는 군인이야. 빨갱이 때려잡는.
악마나 귀신 나부랑이가 네 상대가 아니라는 거야!
정신차리고 근무나 잘해!'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려야 했어. 한 마디
로 내 실수였지. 치명적인....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 꺼야.
교대조가 그 초소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주위를 살펴보니, 그 놈과 같이 근무를 하고 있던 놈은 개머리판으
로 머리를 얻어맞아 기절한 상태였고, 그 새끼는 기절한 동료의 실
탄까지 챙겨 사라진 거야.
전 부대에 비상이 걸렸지. 탈영도 실탄 소지 탈영이니까..
월북 가능성과 탈영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것이 헌병대의 의견이야.
군대 생활에는 적응을 잘하고, 좋아했지만, 부대 동료들과의 생활
에는 적응못했기 때문에, 북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야.
그런데, 오늘 아침 탈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
되었어. 한국통신의 협조를 구해, 영내 공중전화의 통화기록을 조
사해 봤어. 우선 그 놈의 집이나 근처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해봤
지. 그랬더니 통화기록에 그 놈의 집이 나왔고, 그리고... 그 놈 집
근처의 무슨 독서실인가가 나왔어.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걸었던 곳을 확인시키고 나니, 남은
곳은 그 두군데 뿐이었어.
아마 그 놈이 자기 집에 일어난 일 때문에 탈영했을 수도 있는 거
야...."
나는 선배의 말을 듣고 있다가, 깜짝 놀라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독서실이라뇨? 무슨 독서실이요?"
"글세. 이름이 뭐더라... 잠깐만... 여깄다. 독서실 이름은..."
선배가 말해준 독서실 이름을 듣고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내가 있는 독서실이었던 것이다. 전화를 건 시간을 물어 보니,
새벽 3시라는 것이었다. 아마 야간 근무하기 위해 밤에 나왔다가
전화를 건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었다.
선배는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이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
"아! 이거 안 말해 줬구나.
몇시간 전에 발견된 흔적인데, 그게 좀 이상해..
우리 부대 북쪽 산을 면하고 있는 철조망 한 군데가 파손되 있는
것이 발견되었어. 철조망이 잘려나간 면이 하나도 녹이 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최근에 잘려나간 것 같은데, 헌병 조사관들은 그 녀
석이 그곳을 통해 부대 밖으로 나갔다고 추측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 부대 경험 많은 고참 원사 하나가 그 잘려나간 철조
망을 자세히 살피더니, 내게 슬그머니 놀라운 사실을 얘기해 주었
어. 확실치는 않지만, 잘려나간 모습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철조망을 훼손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야.
그 원사 말로는 그 철조망 흔적은 그 녀석이 만든 것이 아닐 확률
이 높고, 다른 누군가가 부대에 몰래 들어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출입구일수도 있다는 거야.
물론 그 원사의 지적은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수사대에게 묵살되었
지만, 나는 좀 이상한 생각도 들었어.
만약에 탈영을 해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면, 길하고 반대편쪽인
북쪽을 통해 나갔을 리가 없거든..
여하튼 그 놈이 잡히기 전에는 모를 일이야.
물론 살아서 잡힌다는 가정하에서지만..
선배는 이제는 자기 차례라며, 내게 질문을 했다.
나는 독서실을 둘러싼 괴기한 사건들을 곧이곧대로
얘기했다가는 미친놈 취급 받을까봐, 대충 둘러댔다.
독서실에서 날 잘 따르던 은혜라는 여자애가 실종되었는데,
혹시 몰라서 군대갔다는 그 애 오빠가 혹시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전화해 봤다고 얘기했다.
선배는 약간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그냥 알았다며 이 사건
마무리 되면 한번 만나자면 전화를 끊었다. 물론 끊기전에
은혜나 탈영한 은혜의 오빠에 대해 뭔가 알게되면 전화해
달라는 부탁은 서로 잊지 않았다.
은혜 오빠 은철의 탈영, 아니 실종일지도 모르는 사건에
대해 듣고 나자, 내 머리속은 다시 혼란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 독서실을 둘러싼 기괴한 사건들은 무엇들이며,
왜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독서실과 특별히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슨 일을 당하고 있고, 이제 얼마 안 가서 내 차례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은혜의 실종사건으로 경찰에게 의심마저 받고 있으니 미칠 것 같았다.
독서실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단지 총무실에 멍하니 앉아 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것만 보고 있었다.
내가 제 정신을 차린 것은 주인 아저씨로부터의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 독서실에 들리지 못하니까,
알아서 있다가 퇴근하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 으시시시한 독서실에 밤 늦게 남기 싫어서,
마지막 아이가 나가자 마자 독서실의 문을 닫고 나섰다.
시계를 보니 12시 이전이었다.
시간이 12시가 되지 않은 것을 보니, 괜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집에 오는 길 내내 모든 괴기한
사건들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복잡해지고 알수가 없었다.
신체적으로 한 일은 없지만, 정신적인 피로 때문인지
집에 도착하니까 온 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 방에 들어오자 마자, 녹초가 된 몸을 침대로 던졌다.
그런데, 침대에 누운 내 눈에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하나가 눈에 띠었다.
평범한 황토색 포장지로 쌓인 소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소포를 보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
온 몸에 느끼고 있던 피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책상 위의 소포를 집어 들었다.
소포는 방송국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방송국에서 내게 보내올 것이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포를 뜯어봤다.
비디오 테이프 하나가 들어있었다.
테이프에 써 있는 제목을 보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이프에는 '청소년 가출인가? 실종인가?' 라고 써 있었다.
바로 내가 며칠 전에 방송국에 주문한 것이었다.
은혜가 얘기해 주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던 차에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청소년 가출인가? 실종인
가?' 라는 제목의 방송이 나간 적이 있었대요. 거기서 한달 전에
실종된 애를 하나 보여주는데, 바로 독서실에 들었던 도둑이었데
요....'
나는 잠자기를 포기하고, 테이프를 비디오에 넣고 틀었다.
처음 시작은 전형적인 고발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급증하는 청소년 실종 실태에 대해서 취재된 것을 보여주었다.
서울 일대에 많은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 중 일부분은 가출해서
유흥가로 흘러가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의 몇몇은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실종이 유괴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유괴를 저지르기에는 실종된
아이들이 너무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통상 유괴 범죄는 다루기 쉬운 초등학생
정도로 집중되어 있고, 또 실제로 없어진 아이들에 대하여 몸값을
요구하는 등의 연락이 없었다는 등의 얘기가 프로그램의 전반부에 나왔다.
담배를 하나 빼어물고 그 프로그램을 계속 보던 나는, 그 유명한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 대해서 나오는 것을 보고 어느새 나도 잊어버린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을 생각났다.
프로그램 속의 기자는 메마른 목소리로 그 사건을 요약했다.
'...김영규, 김종식, 박찬인, 우철원, 조호연, 대구 성서초등학교 개구쟁이들(3~6년).
메뚜기 잠자리를 쫓아 들판으로 달리며 마냥 천진난만했던 아이들..'
26일로 벌써 실종된 지 몇년째를 맞은 '개구리 소년들'의 당시 모습이다.
성서초등학교 6년에 다니던 우군을 비롯한 5명이 대구 달서구 이곡동 집뒤편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선 것은 1991년 3월26일. 이후
개구리 소년들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는 세인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졌습니다.
기자는 이들의 '실종'이 못내 안타깝고 '혹시나'하는 생각에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젠 찾는 일은 포기했어요. 제발 조용히 잊도록 전화도 하지 마세요..'
일부 부모들은 잊으려 하지만결코 잊을 수 없는 자식 생각에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습니다.
'개구리 소년들'은 이제 세월의 흐름속에 잔상조차 찾기 어렵지만 이들의
실종사건은 한때 전국을 들쑤셔 놓았습니다.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찾아 헤맸고, 이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까지 제작됐다. 대통령의 특별지시, 현상금 4,200만원, 전단지 2억여장
등, 이들을 찾기 위한 국민적인 노력도 전개되었습다.
그러나 이미 대구 달서경찰서에 설치됐던 수사본부는 '개점휴업'에 들어갔고,
이들이 살던 농촌은 고층아파트 숲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실종에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구 멸망의 징조, 휴거의 게시,
납북설, 소록도에 입원설, UFO 납치설 등 황당무계한 추측과 가설이 난무했지만,
아무도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잊혀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전에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한달 전 경기도 성남시의 살던 모범적인 중학생 최종현 군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독서실로 공부하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이에 취재진은 최정현 군의 최후 행적을 정밀 조사해 봤습니
다...'
긴장된 상태로 TV를 주시하고 있던 나는 최종현이라는 실종된
학생의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어디서 그 아이를 봤는지는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내가 이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은혜가 들려준 얘기가 전부였다.
독서실에 워크맨 훔치러 들어왔다 뭔가에 놀라 기절하고, 은혜 오빠 친구
일행에게 붙잡혔던 아이라는 것 밖에 몰랐다. 당연히 얘기만 들었기 때문에
이 아이의 얼굴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웬일인지 아이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나는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TV에서 시선을 때지 않았다.
"실종 당일 최종현 군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1시간동안 TV를 시청하고 있다가, 어머니 김모씨의 꾸중을 듣고
책가방을 챙겨 평소 다니던 독서실로 나갔습니다.
이 때가 밤 8시 반, 늦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 김모씨는 꾸중이라기 보다는 종현군에게 독서실에서 가 공부하라고
타이른 정도였다며, 그때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을 나간 종현군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종현군의 독서실에서는 그날 밤 종현군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종현이라는 아이가 다니던 독서실은 내가 총무로 있는
독서실은 아니었다. 거기서 한 7,8Km 떨어진 옆동네 독서실 같았다.
음산한 톤의 화면은 그날 밤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었다.
" 종현군은 바로 독서실과 집에서 10분간의 거리, 2Km 남짓한 거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취재진은 주변의 증언에 따라 종현군이 평소 독서실에 갈 때 지나가는
길들을 따라가 봤습니다. 길 주변 상가 상인들에게 종현군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날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거의 모두가
종현 군의 모습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사람 종현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표와 음료수를 팔고 있는 신모 할머니였습니다.
그 분은 종현군의 모습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맞수다. 이 학생..
그 날밤 똑똑히 기억하고 있수다.
손님도 뜸해지고, 문 닫을 시간도 되서, 가게 밖에 있는 물건을 안
으로 들이고,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수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하나가 나를 부딪히며 황급하게 지나가는 거
였수다. 넘어질뻔한 나는 그 애를 보고 소리를 쳤수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얼굴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수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겁에 질려있는 것였수다.
그리고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획 돌아서 저쪽으로 뛰어가는
거였수다. 하도 이상해서 나는 그 애를 계속 쳐다봤수.
그 애는 저쪽으로 뛰어가면서도, 뭔가에 쫓기듯이 자꾸 뒤를 돌아
다 보는 거였수. 나도 뭔가 하고 그 애가 뒤돌아 보는 쪽을 쳐다보
았지만, 아무 것도 안보이고 새까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수.
지금도 그 애의 겁에 질린 표정을 생각하면... 휴...'
할머니의 진술이 확실하다면, 종현군은 그 무엇, 아니 그 누군가에
의해 쫓기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로 종현군의 갔던 길가 주변에 위치한 상점들이나 은행에 설치되어
있던 CC-TV 화면을 확인해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CC-TV들은 주로 상점 안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길가에 종현군의
모습이 찍혔을 확률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CC-TV를 가지고 있는 주변의 모든 상가에 협조를 구해 그 시간대의 테잎을 입수해 분석에 들어
갔습니다.
대부분의 테잎은 상점안의 모습만 찍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히
일부부분이지만, 길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거리의 모습이라는 것도 행인들의 다리 정도만
찍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은 실종 당시 종현군이
입었던 바지와 신었던 운동화를 파악하고 그것을 단서로 테잎들을 판독했습니다.
길고 지루한 작업 끝에 우리는 종현군의 실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는 화면을 하나 찾아
냈습니다.
자 보시죠.
이 화면은 은행 현금 인출기에서 찍힌 것입니다.
저희가 확대시킨 부분은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길거리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카메라의 각도상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정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은 8시 34분, 그러니까 종현군이 집에서 나온지 4분 남짓 지났을
때의 시간입니다. 이때 종현군은 이 카메라 앞을 지났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 동그라미 친 부분에 나오는 나이키 신발과 청바지가
그날 종현군이 착용하고 있던 것입니다.
여기 찍힌 다리의 주인공이 종현군이 맞다면, 걸음걸이의 상태를
봐서 종현군은 그때까지 그 누군가에 쫓기지 않고 있는 상태로
파악됩니다. 전혀 다급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면바지와 흰색 운동화 차림의 다리가 보입니다.
여기 붉은 동그라미를 주시해 주십시오.
이 사람의 다리가 종현군과 엇갈려 지나갑니다.
그리고 몇초 후, 무슨 일이지 오던 방향을 반대로 해서, 종현군의
뒤를 따르는 것이 보입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이 다리의 주인공이
종현군의 실종과 관계되어 있는 이 자료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화면을 확대하던 우리 방송국 기술진이 또 하나의
괴기하고 충격적인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그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시청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지 저희가 주장하는 것이
감히 사실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것은 현대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심령세계와도 연관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방송국 기술자가 발견한 문제의 장면은 바로 여기입니다.
종현군을 뒤따라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람의 다리를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종현군쪽으로 걸어오다가, 종현군과 지나치고 잠시 후 돌아서서
종현군을 따라갑니다. 그 사람이 돌아서는 부분을 확대하고 천천히 다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돌아서는 부분, 그 부분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봐와 같이 이 사람이 돌아설 때 다리는 일반
사람이 걷다가 돌아서는 모습과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걷다가 돌아서기 위해서는 한 발을 축으로
해서 회전을 합니다. 그리고 이 때 축이 되는 발의 발꿈치는
땅에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다리는 보시는 바와
같이 두발이 동시에 180도 돌아섭니다. 그것도 양 발을 땅에
붙힌채로 회전을 합니다. 미세한 차이라 언뜻 발견하기 힘든 장면이었지만,
확대하고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게 들어섭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발 밑에 바퀴가 달려있는 것처럼 양발이 동시에 180도 회전을 해서 돌아섰습
니다.
전문가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분석을 의뢰한 결과,
지구상에서 이렇게 몸을 회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물론 CC-TV가 정밀한 화질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필림에 끊임이나
이상이 있어 이런 식의 기괴한 모습이 찍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찍힌 것을 가지고만 분석할 때는 분명 이것은 현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름끼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다리가 돌 때를 다시 한번 주시해 주시
길 바랍니다.
여기 지면을 잘 살펴 보세요.
종현군을 뛰따르던 사람의 다리는 걷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땅에서 약간 떠 있습니다.
다시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은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뜬 상태로 종현군의 뒤를 따라간 것
입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마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은 방송국이 시청률을 위해 또 헛소리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테지만, 그 동안 이상한 것들을 직접 목격했던 나로서는 그것이 진짜같이 믿겨졌다.
그렇다면 종현을 쫓아갔다는 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기자의 진지한 목소리가 TV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여기서 저희는 여러분께 다시 한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희가 보여드린 화면은 결코 조작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화면이 정말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찍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필림상의 문제로 잘못
찍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종현군을 쫓아갔단 사람의 다리가 정말 허공에 떠 있는 상
태라면,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풀리지 않는 의문점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다리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과학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심령체라는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해, 취재진은 용하다고 소문난 무속
인들을 찾아가 화면을 보여주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무속인 A씨는 그 화면을 보자.
'이럴수가... 이 다리의 주인은 악귀여..
여기 뻗치는 살기를 보라니까....
사람이 아녀... 사람을 죽여뻔지는 악귀라니까...'
무속인 A는 마름 침을 삼키며, 몸까지 떨면서 화면안의 모습을 보]
고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운명철학자 B씨는 이 화면을 보자 화부터 냈습니다.
'너희 방송국, 또 조작된 테잎을 가지고 와서 무슨 장난이여!!
이거 다 가짜여!! 특별한 기란 하나도 느낄 수 없어!
썩 꺼져!!!'
B씨는 A씨와 상반대 의견을 보였습니다. 뒤이어 찾아간 6명의 전
문가들도 각기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거기에 어떤 사진 전문가는
이 화면이 기능이 떨어지는 CC-TV에서 촬영된 것이기 때문에 이
필름에 찍힌 것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이 의견이 분분한 것에 대해 저희는 여러분에게 판단의 몫
을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최종현군 실종 사건으로 돌아가서, 우리 취재진은 실종된 종
현군이 어떤 학생이었고, 실종 직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학교 친구
들과 선생님을 만나봤습니다.
종현군의 담임 선생님은 눈에 띠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증언
했습니다.
'종현군은 어떻게 보면, 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조용한
학생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없어도 별로 눈에 띠지 않는 학생이라
고 할 수 있었죠. 그래도 왠일인지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것
같았어요. 수업시간에 한 마디도 안하고, 특별히 튀거나 말썽을 피
우지도 않았지만, 쉬는 시간되면 다른 학생들이 항상 종현군 책상
에 몰려와 떠들곤 했으니까요..
아,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좀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종례시간를 마치고, 반장이 일어나 선생님께 인사하려는데, 종현군
만 고개를 빳빳히 세우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저는 이 친구가 제게 무슨 불만이 있어 반항하는줄 알고, 종현군의
이름을 불렸죠.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반 학생
들이 다 돌아보고, 제가 여러분 불러도 멍하니 창밖만 쳐다보고 있
는 것이예요.
솔직히 좀 화가 났죠.
종현군의 자리로 다가가, 어깨를 흔들며 무슨 일이야라고 소리치니
까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는듯이 시선을 돌렸어요.
이상했던 것은 그 때 종현군의 눈빛은 겁에 질린 그 자체였어요.
교무실로 불러가 좀 야단쳤지만, 아무 말 없이 잘못했다고 얘기하
고 다른 얘기는 하지 않더군요.
그 때 좀 이상한 점을 느꼈지만, 그 학생이 실종되리라는 정말 상
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죠.
이 일만 빼고는 정말 평범 그 자체, 선생님으로서는 참 편한 학생
이었어요..'
최근의 있었던 종현군의 변화에 대해서는 반 친구들의 증언도 많
습니다. 그 중에는 엇갈리는 것도 있었습니다.
'종현이가 그렇게 될지 몰랐어요.
최근까지 별 이상한 조짐도 안 보였는데요..
그 애 아빠가 일본 출장을 자주 가서 그런지, 워크맨을 많이 가지
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그것들을 싼 값에 팔았죠.
그 외에는 그리 사교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왕따를 당하는
애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좀 이상하긴 이상했어요.
어디든 혼자 가기 싫어하는 거 였어요.
체육도구 있는 창고에 배구공 가질려 신부름 갈 일이 있었는데요.
종현이는 죽어도 혼자는 안 가겠다고 난리쳐서 제가 같이 간 적이
있어요. 남자 놈이 뭐가 무섭냐고 핀잔 주었는데,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화를 내는 거예요.
너도 한 번 당해보라고.. 무슨 얘기인줄 잘 몰랐지만, 나도 걔한테
워크맨 싸게 사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갔아요.
아직도 그 떄 창고 혼자 가기 무서워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 XX 사기꾼이예요.
자기가 쓰던 워크맨이라고 해서 샀는데, 완전 고장난 거예요.
그리고 안에 있던 테잎을 들어보니, 기분 나쁜 쉭쉭 소리만 나고
여하튼 다 이상했어요.
그 기분나쁘고 음산한 소리가 나는 테잎을 그 XX에게 들어보라며
돌려주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그 테잎을 뚫어지게 보며
벌벌 떠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 테잎을 낚아채서 발로 짓이기고 미친 듯이 지랄했어
요. 마치 그 테잎에 귀신이라도 씌운 것처럼 무서워했어요.
나는 고장난 워크맨이나 다른 워크맨으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항상 다른 것으로 바꿔주던 그 놈이 이제 더 이상
워크맨이 생길 일이 없을테니, 그냥 돈으로 줬어요.
여하튼 이상한 XX였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종현군이 다니던 독서실의 총무에게 종현군의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물어보았
습니다.
'글쎄요..
항상 밤늦게 까지 공부하던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학생은 아니
었어요. 규칙적인 생활을 했어요.
항상 문닫기 1시간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독서실을 나갔아요.'
여기서 우리는 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의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종현군이 독서실 갔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2시 30분 경이었답니다.
그런데 독서실 총무의 증언에 의하면, 종현군은 새벽 1시경에 독서실을 항상 떠났다고 합니다.
그럼 매일 밤 1시간 반 동안 종현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종현군과 놀았다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가정을 해 봤습니다.
우선 종현군의 가족들에 따르면, 종현군이 친구들 말처럼 워크맨을
많이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종현군 주위에서 워크맨을 잊어버린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띠는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취재진중에 한 사람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이 다니던 학교나 독서실에서는 워크맨을 도난당한 사례가 없었지만,
좀 떨어진 학교나 독서실에는 몇 주전부터 워크맨을 도난당한 사례가
빈번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현군이 친구들에게 워크맨을 팔기
시작했다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만을 가지고 종현군과 워크맨 도난 사실을 연계시킬 수 없습니다.
단지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실종된 종현군과 없어진 워크맨과 뭔가 연관이 있었다는 점입니
다.
저희 취재진은 종현 군을 찾기 위해, 경찰과 합동으로 종현군의 집에서 독서실로 가는 길을 샅샅
히 조사했습니다.
일주일간 30명이 넘는 인원이 그 짧은 길을 조사했지만, 특별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수사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유일한 단서입니다.
너덜너덜해진 운동화 한짝입니다.
종현군을 마지막으로 촬영한 CC-TV에서 한 3분거리에 있는 하수구에서 발견했습니다.
부모님의 확인을 거쳐 이 한짝의 운동화가 종현군이 신었던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감히 한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종현군은 가출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인해 납치나 유괴를 당한 것입니다.
만약 가출을 하려고 했다면, 신발 한짝을, 그것도 길거리에
버리고 사라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에 의해 종현군이 납치당할 때
반항하다가 이 운동화가 벋겨졌을 거라는 것입니다.
종현군의 사진을 잘 봐 주십시오.
여러분 주위에 이 얼굴을 발견하시면, 아래의 경찰서 전화로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우리는 명확한 진실에 접근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얻은 수확은 지금도 어떤 이유에 의해서 우리들의 아이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있다가는 제2, 제3의 종현군과 개구리 소년들의 비극이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어디선가 천진난만하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떤 아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죄자에게 납치될 지도 모릅니다... 내일 밤에도...."
프로그램은 없어진 종현이란 아이의 사진을 클로즈 업 상태로 끝났다. 어느새 나는 담배를 네까치
나 피웠다.
섬뜩한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 내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종현이란
아이의 얼굴이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봤고 눈에 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사실 그 종현이란 애에 대해 아는 것은 은혜가 들려준 얘기가 전부였다.
독서실에 워크맨 훔치러 들어왔다가 은혜 오빠 일행에게 잡혔는데,
여자 독서실에서 무슨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기절한 상태였다는...
그러니 내가 그 종현이란 애의 얼굴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독서실에 드나드는 애들 중에 비슷한 얼굴이 있어서 그랬나
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봤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종현이란 애의 사진을 정지화면으로 두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알 듯 말 듯 그 애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귀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갑자기 끔직한 소리와 겁에 질려 크게 뜬 눈동자가 떠 올랐다.
화면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비명 소리, 거친 숨소리, 두려움에 떠는
모습들, 뭔가 어둠속에 다가오는 것들이 연상되었다.
나도 모르고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끼쳐왔다.
이런 공포스런 연상속에 종현군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하던 그 소름끼치던
영상이 갑자기 멈추고, 종현군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기억해 낸 충격적인 사실 때문에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종현군의 얼굴이 왜 낯이 익었는지, 드디어 생각해낼 수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shs850: 7회부터 소름이 돋는군요..ㅠㅠ 무섭네요...빨리 완결이나와야하는데 ... 근데 이거 실화인가요..?? 7화에서출저가 유일한 님이고..해서 궁금하네요..;; --[03/23-13:00]--
아트모: 흠 혹시 그 사진에 은헤네 오빠랑 친구들이 독서실안에 매복했을때 찍은 사진안에 있던 그 사람이 아닐까요? --[03/23-13:22]--
아트모: 독서실.. 아무래도 이거 범인 독서실 주인같다.. 너무 수상해~~~~~ --[03/23-13:36]--
스풋트니크: 아트모 님 말씀이 맞는거 같아요. 그 사진안에 나왔던 사람이 종현군... 그 은철군 친구들이 독서실에 잠복했을때 친구중 한명이 『 아니 너는...? 네가 여기 왜? 』이랬잖아요? --[03/23-13:40]--
스풋트니크: sbs850님~ 이 글은... 유일한 님의 『어-느-날-갑-자-기』 시리즈 중의 하나랍니다. 야후에서 '유일한' 을 키워드로 검색해보세요~ --[03/23-13:41]--
도황검제: 모든사건의 실마리는 독서실 창고에 있을듯 한데.. 자물쇠로 잠겨있던 창고..... --[03/23-13:48]--
아트모: 혹시 은철이도 범인이 아닐까? -_- --[03/23-14:17]--
아트모: 혹시 그 창고에 시체가 있지 않을까요? -_- --[03/23-14: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