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1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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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정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3-04-14 10:25 조회3,860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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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5 (02:31) from 211.204.3.166' of 211.204.3.166' Article Number : 73
유일한 (ihy@duke.edu) Access : 2831 , Lines : 98
<어느날 갑자기> 독서실 (26)
<제 허락 없이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깽!” 하는 소리와 함께 망치는 박 형사 머리를 비켜 바닥을 쳤다. 나는 박 형사의 목을 잡았던 손
을 풀고 옆으로 비켜 앉았다. 박 형사도 나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던 내 자신의 잔인함이 놀랍고 무섭기까지 했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일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뻔 한 것이었다. 우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는 안도감이 밀려와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박 형사에게 먼저 말을 했
다.
“이제 나를 믿어요? 헉헉...
안 믿어도 할 수 없지... 경찰소로 갑시다. 거기서 밝혀지겠죠. 헉헉...“
박형사는 한 동안 말이 없다가,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말을 했다.
“당신 생긴 갓과는 달리 주먹이 맵군.
으윽. 허리도 다쳤나 봐.
이런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더 이상 뒹굴지 말고 나가지.
나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면서 얘기하자고...“
박 형사와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박
형사는 떨어진 손전등과 권총을 집어 들었다. 아직도 나에 대한 의심이 전부 가시지 않았던지 권
총을 내게 겨누었다.
“자, 이번에는 정말 그냥 나가자고. 나도 흥분 가라앉혔으니까...
자 앞장서지.“
박 형사는 권총을 흔들면서 나보고 앞장서라고 했다. 나 역시 박 형사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았
지만, 이제는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인마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권총까지 들고 있는 상황
에서 등을 보이기 싫었지만, 체념한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서있던 박 형사가 고목나무 쓰러지듯이 앞으로 고끄라졌다. 나는
놀라 바라보았다. 쓰러진 박 형사 뒤로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삽을 들고 서 있었다. 너무 놀라 움
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박 형사가 들고 있다 놓
친 권총을 집어 들어 나를 겨냥했다. 그리고는 지옥에서나 들려올 것 같은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는데..
너 잘 하다가, 왜 마지막에서 땅 바닥을 쳤니?
너 제대로 했으면, 내가 폭력을 쓸 필요가 없었잖아. 안 그래?“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독서실 주인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평소에 약간 멍청하
지만 부드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사악한 기분까지 풍기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목소리 역시 싸
늘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하지만 제일 소름이 끼치는
것은 그 광기가 넘치는 그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는 쓰러진 박 형사를 발로 슬쩍 건드리고는 나를 향해 결어왔다.
“이 새끼 아직 안 죽었네. 오히려 잘 되었지. 이렇게 죽으면 더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
자네는 이번 작품의 주연이니까, 가만히 내 말 잘 들으라니까“
나는 너무 놀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이 모든 일의 범인은 독서실 주인이었던 것이었다.
“당신이... 당신이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당신은 도대체 뭐야?“
“나? 그냥 보통 사람이야. 너랑 똑같은...
단지 다른 것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용감한 사람이고 너는 소심한
병신이지...“
그런 말을 하고는 권총을 겨누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시체
를 발견했을 때 보다 더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보더니 천천히 한 손에
든 삽을 옆으로 쳐들었다. 나는 여기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겨냥한 권총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뱀에 눈에 홀린 먹이처럼
온 몸의 힘이 쫙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서웠다.
그는 나를 보고 씨익 하고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좀 있다 준비 끝난 다음에 보자고.”
그러더니 들고 있던 삽으로 내 옆머리를 내려쳤다.
머리가 멍해지고 세상이 아득해지며 다리가 풀리고 몸이 거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내
눈에 보인 것은 독서실 주인의 사악한 미소였다...
갑자기 차가움이 느껴지고, 눈이 떠졌다. 온 몸이 불편한 것이 느껴지고 머리가 지끈 거렸다. 눈
을 뜨려고 했지만, 잘 떠지지 않았다. 차가움과 축축함이 한 번 더 느껴졌다. 찬 물이었다. 물이 피
와 섞여서 입에 들어왔다. 찝찌름한 피맛이 느껴졌다. 눈을 뜨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데 다시 한
번 귀에 거슬리는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더 이상 잘 시간 없으니까, 이제 슬슬 읽어나지.
준비는 그럭저럭 다 되었으니까...“
나는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 나는 쪽으로 보았다. 거기에는
독서실 주인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시체를 둘러싸 놓았던 비
닐들이 풀어져 있었다. 나는 움직이려 했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묶여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건
포장할 때 쓰는 비닐 노끈으로 온 몸이 동여매져 있었다. 아무리 움직여봤자 꼼짝도 할 수 없었
다.
“뭐 하는 짓이야!”
“소리질러봤자 소용없어. 지금 밤 3시가 넘었고 이 빌딩에는 아무도 없어. 아마 근방 2,3 킬로미
터 반경에 눈 뜨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걸...
그건 그렇다지지만, 생각할 수록 아까워. 아까 형사를 조질 때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하던데...
끝장을 내버리는 게, 형사놈 한테는 더 좋았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끔찍한 광경이 눈에 띠었다. 박 형사는 온 몸에 칼로 난도질한 상
처를 입은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온 몸에 담배로 지진 자국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욱 잔혹한 것은 그 상처에 소금을 대고 비빈 흔적이 보이는 것이었다. 다행히 박형사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누구한테 까지 보고했는지 좀 알아보려고 했는데... 별것도 알지
못하고 설친 거였어. 괜히 걱정했네. 너랑 은혜년만 조지면 되는 것이었는데..”
“무슨 얘기야...”
“내가 그랬지. 여기서 시키는대로 총무일만 하라고. 괜히 은혜년 말 듣고 쓸데없는 짓 하다가 피보
게 되었잖아? 안 그래. 여하튼 너랑 은혜 그년 때문에 그 동안 아무런 문제 없는 이 보금자리를 없
애야 되잖아. 복잡하게 머리도 좀 쓰게 되었고...”
그는 얘기를 하면서 기름통을 방 주변 여기저기 뿌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려 애써 봤지만,
뒤로 묶인 손가락과 목만 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이 방을 아예 태워버릴 생각인지 기름을 사방
으로 뿌리고 있는 것이다. 기름을 뿌리던 주인은 이제 다 끝났는지, 몸을 일으키더니 장갑 낀 손으
로 칼을 들어 매달려 있는 형사에게 다가가 등에 칼을 대고 죽 그어대었다. 박 형사는 의식이 돌아
왔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났다. 칼로 박 형사의 몸에 그어대면서 나를 보고 기분나쁘게 웃더
니 얘기를 했다.
“걱정마,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을 거야. 상처와 이 칼이 발견 되야 되니까. 그러면 어떤 흉기로 상
처 받았는지 알게 되고, 자연히 이 칼의 지문 주인을 범인으로 생각할테니까...”
나는 그제서야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박 형사를 그 칼로 죽인다음 나에게 모든 누명을 뒤집어
씌울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던 시간을 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다 죽인 거지? 도대체 왜 이 많은 사람을... ”
“이유라? 내가 설명하지 않았나, 하고싶어서라고.
그러다 방해하는 놈들도 처치해야 했고.
서경기도 총무주제에 너무 많이 알려 했어. 결국에 독서실을 떠나더니 다시 나타나서까지 귀찮게
했으니까 응징을 받아야지. 그 워크맨 도둑놈도 그래. 그냥 걸렸으면 사라질 것이지. 여기서 본 것
의 정체를 파헤친다고 난리치다고 이 방에 까지 들어오고...“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애는 자기 동네 독서실 가다가 납치된 것으로 생각했는
데, 그게 아니라 뭔가 알아내려 여기에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성급
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일을 했다. 대답하게도 기름을 방안에 뿌려놓고도 담배
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잘 부축이면 그가 무슨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까지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여기에 시체를 숨켰죠? 그런데, 왜 암매장하지 않고, 여기다 보관했죠. 그것도
이상하게 포장하고.”
“자네도 알아낸 게 별로 없군. 내가 왜 독서실을 시작했는 줄 알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간섭이 적
은 곳이야. 경찰도 정부도 대충 환경기준만 맞추어 놓으면 노터치야. 더구나 애들 공부하는데를
누가 건드려. 그리고 총무만 고용하면 봉고 몰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지. 또 독서실 간판
단 봉고에는 한 밤중에 애들을 태우고 다녀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지.
시체도 그래. 어디 산에다 묻어놓았다가 누가 발견하면 그 때부터 실종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 되
어 경찰이 조사해 나서잖아. 차라리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좋지. 또한 이렇게 포장하면 부패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잖아. 왜 사냥꾼들이 사냥한 동물들을 박제로 만드는지 나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 이렇게 걸어놓으면 뿌듯해. 솔직히 말하면 황홀하지. 흥분되기도 하고...한마디로
죽이지... 이렇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칼로 난도질을 하는 것을 그만두었지. 죽
일 때의 쾌감도 쾌감이지만, 계속해서 그 황홀함을 맛 볼 수 있는 것도 대단한 것이지. 이해 못 하
겠지?“
그가 칼이라는 얘기를 했을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는 내 셔츠 앞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칼이 생각
났다. 총무실에서 나올때 집었다가 망치를 발견해서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이 기억난 것이
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시체 몇 구를 골라놓고 한 구씩 어깨에 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틈
을 타서 고개를 숙여 입으로 셔츠 주머니에 있는 칼을 꺼내 보려 했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을 몸을 흔들어보니까, 간신이 입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칼 손잡
이 닿을 듯 했다.
그 순간, 주인은 다음 시체를 나르러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바로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있었다. 그는 나를 힐끔 보고 한마디 했다.
“지루하지. 이제 2개만 더 처리하면 너랑 놀아줄게. 기다린 보람이 있을 거야.”
그리고는 다음 시체를 어깨에 걸치고 나갔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입으로 칼을 꺼내기 위해 필
사적으로 노력했다. 목이 끊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
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입을 대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칼 끄트머리를 물 수 있었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 의자 뒤로 묶여있는 손으로 칼을 떨어트려 보려 했다. 목에 쥐가 날 정도로 고
개를 돌렸지만, 기껏해야 어깨 위로 밖에 칼을 옮길 수 없었다.
주인이 독서실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급해졌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칼을
입에 문채 고개를 반대쪽으로 했다가 반동을 이용해서 어깨너머로 던졌다. 워낙 힘이 약해서 어깨
를 맞고 뒤로 떨어졌다. 칼은 오른쪽 어깨위에서 건들거렸다.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왔다. 어깨를
위로 쳐올렸다. 칼은 아슬아슬하게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 주인이 들어왔다. 다행히 칼은 의자위
에 내 손위로 떨어졌다.
주인은 나를 보았지만,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옆에 치워진 마지막 시체를 들었다. 아무 일
도 없다는 듯이 시체를 짐처럼 들고 나가는 주인을 보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다 대고 한 마디 물어보았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게 있어. 이 독서실에 맴도는 희생자들의 원귀들은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이
나타나면 더 많이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아무런 기척도 없고 잠잠하잖아. 나 혼자 있을때
는 소름끼칠 정도로 많이 나타났는데...”
주인은 내 질문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그것들... 그 조그만 것들 무섭지. 소름도 끼치고... 자나 깨나 자기들 여기 있다고 알리려고 난
리고.. 그러니까 내가 너 걱정해서 일찍 나가라고 했잖아. 그 놈들 꽤 무섭거든. 나도 처음엔 그랬
지. 하지만,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찾았지. 그 이후에는 나도 발 쭉 뻗고 잘 수 있었지”
그리고는 시체를 들고 나갔다. 나는 손으로는 칼로 노끈을 끊기 위해 버둥거리면서, 그가 말한 비
책을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끝없는 원한으로 가득 찬 귀신들이 꼼짝을 못하는 것
일까. 무슨 주문일까, 십자가 일까, 마늘일까, 아니면 무슨 부적일까... 좀 생각해 봤지만, 지금 상
황에서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순간적인 고통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더구나 옆에 피투
성이가 되어 매달려 있는 박 형사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더욱 멈출 수 없었다. 칼로 노끈을 긁을수
록 손목을 움직이기가 쉬어졌다.
주인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여서 손목을 묶은 끈을 끊었다. 이제
는 손이 자유로워졌다. 그가 돌아와서도 눈치 채지 못하게 끈을 헐겁게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대충 보기에는 여전히 꼭 묶여있는 것처럼 했다.
그가 방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어깨에 뭔가를 지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시체를 다시 가져온
줄 알았는데, 그가 내려놓은 것을 보고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것은 은혜였다. 정신을 잃었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동안 고생을
했는지, 얼굴도 핼쑥해지고 옷도 지저분해졌지만 확실히 은혜였다. 나의 표정이 바뀐 것을 눈치
챘는지 주인이 먼저 한마디 건냈다.
“걱정마, 안 죽었어. 너와 함께 오늘의 하이라이트인데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없지. 자 이제 여기
서 치울 것도 다 치웠으니까 슬슬 시작해볼까...”
그러더니 우선 물을 부어 기절해 있던 은혜를 깨웠다. 은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괴로운 듯이 정
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그는 박 형사를 밸때 썼던 피묻은 칼을 들었다. 그리고는 정신을 아직 차
리지 못한 은혜를 향해 쳐들었다.
그걸 보고,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나는 끈을 풀고 은혜를 향해 칼을 쳐든 주인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은혜를 향해 칼를 들고 있는데 신경쓰고 있는 그는, 생각지도 못한 나의 기습을 받게 되었
다. 그는 들고 있던 칼을 놓치고 나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박 형사와 격투를 생각하면서, 재빨리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가볍게 내 주먹을 피하고, 나의 옆구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지만, 복부에 받은 충
격이 심해 고개를 둘 수도 없었다.
그는 떨어진 칼을 집어들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넌 새끼야, 끝까지 말 듣지 않는구나!
원래는 널 끝까지 남겨둘 생각이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 시간만 일찍 가 있어라!“
나는 그가 칼을 들어 나를 내리찍으려 하는 것을 빤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꼼짝마! 멈춰!”
칼을 들고 있던 그도, 배를 움켜쥐고 움직일 수 없었던 나도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
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총으로 우리를 겨냥하며 서 있었다. 그는 나와 박 형사
가 그리고 몸부림치며 의식을 회복해가는 은혜를 쳐다봤다. 주인은 그를 알아본 듯 주춤거리며 대
답했다.
“제발 용서해... 참을 수가 없었어... 제발.”
도대체 누구길래, 그 살인마가 두려워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 사람이 얼굴이 보이는 곳으로 걸
어나올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그 사람은 군복을 입고 완전 무장한 채, K-1 기관총을 들고 있는 탈영을 했다는 은혜의 오빠 은철
이 였다. 그의 얼굴 표정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띤 채로 주인을 향해 당장이라도 발사할 것 같은 기
세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계속>
* 뒷 이야기
- 출판사와 여러분과의 약속도 있고해서, 열심히 쓸 생각입니다.
감히 약속드리면, <독서실> 마무리 지을 때까지, 어제(8/4)부터 매일 올릴 생각입니다.
내일 뵙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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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5 (02:31) from 211.204.3.166' of 211.204.3.166' Article Number : 73
유일한 (ihy@duke.edu) Access : 2831 , Lines : 98
<어느날 갑자기> 독서실 (26)
<제 허락 없이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깽!” 하는 소리와 함께 망치는 박 형사 머리를 비켜 바닥을 쳤다. 나는 박 형사의 목을 잡았던 손
을 풀고 옆으로 비켜 앉았다. 박 형사도 나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던 내 자신의 잔인함이 놀랍고 무섭기까지 했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일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뻔 한 것이었다. 우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는 안도감이 밀려와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박 형사에게 먼저 말을 했
다.
“이제 나를 믿어요? 헉헉...
안 믿어도 할 수 없지... 경찰소로 갑시다. 거기서 밝혀지겠죠. 헉헉...“
박형사는 한 동안 말이 없다가,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말을 했다.
“당신 생긴 갓과는 달리 주먹이 맵군.
으윽. 허리도 다쳤나 봐.
이런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더 이상 뒹굴지 말고 나가지.
나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면서 얘기하자고...“
박 형사와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서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박
형사는 떨어진 손전등과 권총을 집어 들었다. 아직도 나에 대한 의심이 전부 가시지 않았던지 권
총을 내게 겨누었다.
“자, 이번에는 정말 그냥 나가자고. 나도 흥분 가라앉혔으니까...
자 앞장서지.“
박 형사는 권총을 흔들면서 나보고 앞장서라고 했다. 나 역시 박 형사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았
지만, 이제는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인마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권총까지 들고 있는 상황
에서 등을 보이기 싫었지만, 체념한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서있던 박 형사가 고목나무 쓰러지듯이 앞으로 고끄라졌다. 나는
놀라 바라보았다. 쓰러진 박 형사 뒤로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삽을 들고 서 있었다. 너무 놀라 움
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박 형사가 들고 있다 놓
친 권총을 집어 들어 나를 겨냥했다. 그리고는 지옥에서나 들려올 것 같은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는데..
너 잘 하다가, 왜 마지막에서 땅 바닥을 쳤니?
너 제대로 했으면, 내가 폭력을 쓸 필요가 없었잖아. 안 그래?“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독서실 주인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평소에 약간 멍청하
지만 부드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사악한 기분까지 풍기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목소리 역시 싸
늘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하지만 제일 소름이 끼치는
것은 그 광기가 넘치는 그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는 쓰러진 박 형사를 발로 슬쩍 건드리고는 나를 향해 결어왔다.
“이 새끼 아직 안 죽었네. 오히려 잘 되었지. 이렇게 죽으면 더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
자네는 이번 작품의 주연이니까, 가만히 내 말 잘 들으라니까“
나는 너무 놀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이 모든 일의 범인은 독서실 주인이었던 것이었다.
“당신이... 당신이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당신은 도대체 뭐야?“
“나? 그냥 보통 사람이야. 너랑 똑같은...
단지 다른 것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용감한 사람이고 너는 소심한
병신이지...“
그런 말을 하고는 권총을 겨누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시체
를 발견했을 때 보다 더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보더니 천천히 한 손에
든 삽을 옆으로 쳐들었다. 나는 여기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겨냥한 권총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뱀에 눈에 홀린 먹이처럼
온 몸의 힘이 쫙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서웠다.
그는 나를 보고 씨익 하고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좀 있다 준비 끝난 다음에 보자고.”
그러더니 들고 있던 삽으로 내 옆머리를 내려쳤다.
머리가 멍해지고 세상이 아득해지며 다리가 풀리고 몸이 거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에 내
눈에 보인 것은 독서실 주인의 사악한 미소였다...
갑자기 차가움이 느껴지고, 눈이 떠졌다. 온 몸이 불편한 것이 느껴지고 머리가 지끈 거렸다. 눈
을 뜨려고 했지만, 잘 떠지지 않았다. 차가움과 축축함이 한 번 더 느껴졌다. 찬 물이었다. 물이 피
와 섞여서 입에 들어왔다. 찝찌름한 피맛이 느껴졌다. 눈을 뜨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데 다시 한
번 귀에 거슬리는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더 이상 잘 시간 없으니까, 이제 슬슬 읽어나지.
준비는 그럭저럭 다 되었으니까...“
나는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 나는 쪽으로 보았다. 거기에는
독서실 주인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시체를 둘러싸 놓았던 비
닐들이 풀어져 있었다. 나는 움직이려 했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묶여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건
포장할 때 쓰는 비닐 노끈으로 온 몸이 동여매져 있었다. 아무리 움직여봤자 꼼짝도 할 수 없었
다.
“뭐 하는 짓이야!”
“소리질러봤자 소용없어. 지금 밤 3시가 넘었고 이 빌딩에는 아무도 없어. 아마 근방 2,3 킬로미
터 반경에 눈 뜨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걸...
그건 그렇다지지만, 생각할 수록 아까워. 아까 형사를 조질 때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하던데...
끝장을 내버리는 게, 형사놈 한테는 더 좋았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끔찍한 광경이 눈에 띠었다. 박 형사는 온 몸에 칼로 난도질한 상
처를 입은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온 몸에 담배로 지진 자국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욱 잔혹한 것은 그 상처에 소금을 대고 비빈 흔적이 보이는 것이었다. 다행히 박형사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누구한테 까지 보고했는지 좀 알아보려고 했는데... 별것도 알지
못하고 설친 거였어. 괜히 걱정했네. 너랑 은혜년만 조지면 되는 것이었는데..”
“무슨 얘기야...”
“내가 그랬지. 여기서 시키는대로 총무일만 하라고. 괜히 은혜년 말 듣고 쓸데없는 짓 하다가 피보
게 되었잖아? 안 그래. 여하튼 너랑 은혜 그년 때문에 그 동안 아무런 문제 없는 이 보금자리를 없
애야 되잖아. 복잡하게 머리도 좀 쓰게 되었고...”
그는 얘기를 하면서 기름통을 방 주변 여기저기 뿌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려 애써 봤지만,
뒤로 묶인 손가락과 목만 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이 방을 아예 태워버릴 생각인지 기름을 사방
으로 뿌리고 있는 것이다. 기름을 뿌리던 주인은 이제 다 끝났는지, 몸을 일으키더니 장갑 낀 손으
로 칼을 들어 매달려 있는 형사에게 다가가 등에 칼을 대고 죽 그어대었다. 박 형사는 의식이 돌아
왔는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났다. 칼로 박 형사의 몸에 그어대면서 나를 보고 기분나쁘게 웃더
니 얘기를 했다.
“걱정마,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을 거야. 상처와 이 칼이 발견 되야 되니까. 그러면 어떤 흉기로 상
처 받았는지 알게 되고, 자연히 이 칼의 지문 주인을 범인으로 생각할테니까...”
나는 그제서야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박 형사를 그 칼로 죽인다음 나에게 모든 누명을 뒤집어
씌울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던 시간을 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다 죽인 거지? 도대체 왜 이 많은 사람을... ”
“이유라? 내가 설명하지 않았나, 하고싶어서라고.
그러다 방해하는 놈들도 처치해야 했고.
서경기도 총무주제에 너무 많이 알려 했어. 결국에 독서실을 떠나더니 다시 나타나서까지 귀찮게
했으니까 응징을 받아야지. 그 워크맨 도둑놈도 그래. 그냥 걸렸으면 사라질 것이지. 여기서 본 것
의 정체를 파헤친다고 난리치다고 이 방에 까지 들어오고...“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애는 자기 동네 독서실 가다가 납치된 것으로 생각했는
데, 그게 아니라 뭔가 알아내려 여기에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성급
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일을 했다. 대답하게도 기름을 방안에 뿌려놓고도 담배
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잘 부축이면 그가 무슨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까지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여기에 시체를 숨켰죠? 그런데, 왜 암매장하지 않고, 여기다 보관했죠. 그것도
이상하게 포장하고.”
“자네도 알아낸 게 별로 없군. 내가 왜 독서실을 시작했는 줄 알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간섭이 적
은 곳이야. 경찰도 정부도 대충 환경기준만 맞추어 놓으면 노터치야. 더구나 애들 공부하는데를
누가 건드려. 그리고 총무만 고용하면 봉고 몰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지. 또 독서실 간판
단 봉고에는 한 밤중에 애들을 태우고 다녀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지.
시체도 그래. 어디 산에다 묻어놓았다가 누가 발견하면 그 때부터 실종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 되
어 경찰이 조사해 나서잖아. 차라리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좋지. 또한 이렇게 포장하면 부패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잖아. 왜 사냥꾼들이 사냥한 동물들을 박제로 만드는지 나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 이렇게 걸어놓으면 뿌듯해. 솔직히 말하면 황홀하지. 흥분되기도 하고...한마디로
죽이지... 이렇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칼로 난도질을 하는 것을 그만두었지. 죽
일 때의 쾌감도 쾌감이지만, 계속해서 그 황홀함을 맛 볼 수 있는 것도 대단한 것이지. 이해 못 하
겠지?“
그가 칼이라는 얘기를 했을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는 내 셔츠 앞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칼이 생각
났다. 총무실에서 나올때 집었다가 망치를 발견해서 그냥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이 기억난 것이
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시체 몇 구를 골라놓고 한 구씩 어깨에 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틈
을 타서 고개를 숙여 입으로 셔츠 주머니에 있는 칼을 꺼내 보려 했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을 몸을 흔들어보니까, 간신이 입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칼 손잡
이 닿을 듯 했다.
그 순간, 주인은 다음 시체를 나르러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바로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
처럼 있었다. 그는 나를 힐끔 보고 한마디 했다.
“지루하지. 이제 2개만 더 처리하면 너랑 놀아줄게. 기다린 보람이 있을 거야.”
그리고는 다음 시체를 어깨에 걸치고 나갔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입으로 칼을 꺼내기 위해 필
사적으로 노력했다. 목이 끊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
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입을 대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칼 끄트머리를 물 수 있었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 의자 뒤로 묶여있는 손으로 칼을 떨어트려 보려 했다. 목에 쥐가 날 정도로 고
개를 돌렸지만, 기껏해야 어깨 위로 밖에 칼을 옮길 수 없었다.
주인이 독서실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급해졌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칼을
입에 문채 고개를 반대쪽으로 했다가 반동을 이용해서 어깨너머로 던졌다. 워낙 힘이 약해서 어깨
를 맞고 뒤로 떨어졌다. 칼은 오른쪽 어깨위에서 건들거렸다.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왔다. 어깨를
위로 쳐올렸다. 칼은 아슬아슬하게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 주인이 들어왔다. 다행히 칼은 의자위
에 내 손위로 떨어졌다.
주인은 나를 보았지만,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옆에 치워진 마지막 시체를 들었다. 아무 일
도 없다는 듯이 시체를 짐처럼 들고 나가는 주인을 보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다 대고 한 마디 물어보았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게 있어. 이 독서실에 맴도는 희생자들의 원귀들은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이
나타나면 더 많이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아무런 기척도 없고 잠잠하잖아. 나 혼자 있을때
는 소름끼칠 정도로 많이 나타났는데...”
주인은 내 질문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더니,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그것들... 그 조그만 것들 무섭지. 소름도 끼치고... 자나 깨나 자기들 여기 있다고 알리려고 난
리고.. 그러니까 내가 너 걱정해서 일찍 나가라고 했잖아. 그 놈들 꽤 무섭거든. 나도 처음엔 그랬
지. 하지만,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찾았지. 그 이후에는 나도 발 쭉 뻗고 잘 수 있었지”
그리고는 시체를 들고 나갔다. 나는 손으로는 칼로 노끈을 끊기 위해 버둥거리면서, 그가 말한 비
책을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끝없는 원한으로 가득 찬 귀신들이 꼼짝을 못하는 것
일까. 무슨 주문일까, 십자가 일까, 마늘일까, 아니면 무슨 부적일까... 좀 생각해 봤지만, 지금 상
황에서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순간적인 고통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더구나 옆에 피투
성이가 되어 매달려 있는 박 형사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더욱 멈출 수 없었다. 칼로 노끈을 긁을수
록 손목을 움직이기가 쉬어졌다.
주인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여서 손목을 묶은 끈을 끊었다. 이제
는 손이 자유로워졌다. 그가 돌아와서도 눈치 채지 못하게 끈을 헐겁게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대충 보기에는 여전히 꼭 묶여있는 것처럼 했다.
그가 방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어깨에 뭔가를 지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시체를 다시 가져온
줄 알았는데, 그가 내려놓은 것을 보고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것은 은혜였다. 정신을 잃었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동안 고생을
했는지, 얼굴도 핼쑥해지고 옷도 지저분해졌지만 확실히 은혜였다. 나의 표정이 바뀐 것을 눈치
챘는지 주인이 먼저 한마디 건냈다.
“걱정마, 안 죽었어. 너와 함께 오늘의 하이라이트인데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없지. 자 이제 여기
서 치울 것도 다 치웠으니까 슬슬 시작해볼까...”
그러더니 우선 물을 부어 기절해 있던 은혜를 깨웠다. 은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괴로운 듯이 정
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그는 박 형사를 밸때 썼던 피묻은 칼을 들었다. 그리고는 정신을 아직 차
리지 못한 은혜를 향해 쳐들었다.
그걸 보고,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나는 끈을 풀고 은혜를 향해 칼을 쳐든 주인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은혜를 향해 칼를 들고 있는데 신경쓰고 있는 그는, 생각지도 못한 나의 기습을 받게 되었
다. 그는 들고 있던 칼을 놓치고 나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박 형사와 격투를 생각하면서, 재빨리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가볍게 내 주먹을 피하고, 나의 옆구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지만, 복부에 받은 충
격이 심해 고개를 둘 수도 없었다.
그는 떨어진 칼을 집어들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넌 새끼야, 끝까지 말 듣지 않는구나!
원래는 널 끝까지 남겨둘 생각이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 시간만 일찍 가 있어라!“
나는 그가 칼을 들어 나를 내리찍으려 하는 것을 빤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꼼짝마! 멈춰!”
칼을 들고 있던 그도, 배를 움켜쥐고 움직일 수 없었던 나도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
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총으로 우리를 겨냥하며 서 있었다. 그는 나와 박 형사
가 그리고 몸부림치며 의식을 회복해가는 은혜를 쳐다봤다. 주인은 그를 알아본 듯 주춤거리며 대
답했다.
“제발 용서해... 참을 수가 없었어... 제발.”
도대체 누구길래, 그 살인마가 두려워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 사람이 얼굴이 보이는 곳으로 걸
어나올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그 사람은 군복을 입고 완전 무장한 채, K-1 기관총을 들고 있는 탈영을 했다는 은혜의 오빠 은철
이 였다. 그의 얼굴 표정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띤 채로 주인을 향해 당장이라도 발사할 것 같은 기
세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계속>
* 뒷 이야기
- 출판사와 여러분과의 약속도 있고해서, 열심히 쓸 생각입니다.
감히 약속드리면, <독서실> 마무리 지을 때까지, 어제(8/4)부터 매일 올릴 생각입니다.
내일 뵙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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