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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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정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3-04-14 10:25 조회3,537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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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4 (11:28) from 211.204.3.166' of 211.204.3.166' Article Number : 72
유일한 (ihy@duke.edu) Access : 2978 , Lines : 64
<어느날 갑자기> 독서실 (25)
<제 허락 없이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은혜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박 형사였다. 나는 그를 보자, 안도감이 느
껴지며, 이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내 생각과는 달리 싸늘하고 살기까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박 형사의
얼굴표정이 이상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시하고 다급하게 말을 했다.
"형사님! 잘 오셨어요?
여기서 빨리 나가요! 꼼짝없이 여기 갇히는 줄 알았네.."
박형사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안 하고, 다시 방안을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추어보더니 차가
운 목소리로 물어봤다.
“일한씨, 이 시체들은 뭐죠? 솔직히 말해보세요.”
나는 그제서야 박 형사는 이 방에 널려져 있는 시체들을 보고 놀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도 이 끔찍한 시체들이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연히 여기 들어왔다가 발견한거예요. 확신
할 순 없지만 독서실 주인이 미친 살인범 일거예요. 처음부터 저에게 여기 열쇠도 주지 않고 여기
들어오지 못하게 했거든요. 뭐 숨기는 것도 있는 것 같았고...“
박 형사는 내 얘기를 들으면서, 상의 주머니에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권총을 꺼내 나를 겨
냥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리둥절해졌지만, 박 형사의 살벌한 얼굴을 보고 뭔가를 깨닫게 되었
다. 박 형사는 천천히 다가오면서, 놀랄만한 얘기를 했다.
“설마했는데...
인간이 이렇게 될 수까지 있다니.
오늘 제보를 하나 받았소. 독서실 주인한테서. 사실 그 동안 나는 당신과 그 사람을 둘 다 의심하
고 있었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당신이 이 창고에서 뭔가 수상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며, 오
늘 밤에 이 창고에서 뭔가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소. 그 사람의 제보를 100% 믿는 것은 아니지
만, 우선 한번 와보기로 했소. 아니나 다를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당신은 이 방에 들어와 뭔
가를 하고 있더군. 자기가 죽인 희생자들을 망치로 들고 다시 한번 훼손하려고...
나야 정신 분석학자가 아니라서, 당신의 이런 미치광이 짓의 동기를 알 수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
소. 미친놈이지 뭐. 단지 나는 너 같은 새끼 잡아넣는 것이니까.
자 피곤하게 하지 마자고. 하긴 니가 반항하면 나는 더 좋지, 그 핑계로 네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은혜 시체는 어디다 둔거야! 엉?“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정신이 멍해지고 아찔했다. 내가 범인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박
형사는 나의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총을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 수갑을 꺼내며
다가왔다. 독서실 주인이 나를 모함했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확신이 들었다.
“박 형사님, 이거 내가 한 짓 아니라니까요!
독서실 주인이 미치광이 살인범이라니까요. 나를 모함한 거예요! 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라
니까요.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나는 절규하듯 소리를 치고,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박형사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야, 반항하지 말랬잖아! 누가 독서실 주인 결백하다고 했어? 우선 너부터 잡고, 다음은 그 사람
차례야. 그 놈도 확실히 뭔가 숨기는 거 있어. 그래도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야지. 나는 멀티테스
킹에 약하거든. 그리고, 손에 든 망치 좀 내려놓을래. 자꾸 니가 그러면, 나도 손에서 땀이 나서 방
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미끄러질 수도 있거든. 정 원하면 계속 해. 나야 여기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편하니까.”
박 형사의 말을 듣고 보니, 망치를 손에 꽉 쥔 채 마치 뭔가를 내리치기 직전의 자세로 있는 것이
었다. 나는 얼른 망치 든 손을 내리고 애걸하듯이 한 마디 했다.
“형사님, 제발 내 말 좀 믿어줘요.
나는 여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 놈이 진짜 범인이라니까요!“
박 형사는 내 말에 전혀 동요를 하지 않고 오히려 단호하게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얘기를 들려주
었다.
“야, 내가 아무리 돌팔이라고 해도, 아무런 근거 없이 너를 잡으려고 하는 줄 알아? 내가 결정적으
로 독서실 주인의 제보를 믿고 여기 오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어. 그 사람이 제보와 함께 자네가
타고 다니던 봉고에서 발견했다며, 피 묻은 칼을 경찰서로 보내왔어. 그 결과 보고 오느라고 내가
좀 늦은 거야.
검사 결과는 네가 생각하듯이, 바로 니가 이 서경기를 살해할 때 쓴 칼이었어. 칼에 묻어있는 혈액
은 서경기 것으로 확인되었고, 칼 손잡이에는 네 지문이 더덕더덕 찍혀있었어. 나머지를 살해할
때 쓴 것은 아직 발견하지 않았지만, 우리 시간은 많으니까..
여하튼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해? 내가 판사라면 내가 여기서 목격한 것과 그 칼 한 자루로 너 같
은 놈은 곧장 사형시킬걸. 자 조용히 이 기분 나쁜 곳을 빨리 떠나자니까!“
나는 그 박 형사의 말을 듣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놈이 물질적인 증거까지 조작해
서 나를 모함할지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박 형사 말대로 이 정도의 증거만 있으면, 나의 결백
주장은 미친놈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것 같았다. 그런데 확신에 찬 박 형사의 목소리를 듣
고, 그의 살기에 찬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반적인 경찰이고 내게 그
런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면, 이런 구차한 설명도 하기 전에 체포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 것 같았
다. 더구나 이런 미친 살인 용의자를 검거하는데,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파트너 없이 혼
자 온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나는 박 형사도 이 시체들과 어떤 식으로
도 연관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경찰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끔찍한 광경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박 형사가 단순히 나를 잡으러 온 경찰이 아니고,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자 좀 더 다급해졌다. 박 형사는 한 손에는 권총을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나도
그 사람이 다가오는 것에 따라 뒷걸음질쳤지만, 박 형사가 총을 더욱더 위협적으로 겨냥하며 나
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내 바로 앞까지 와서, 양손을 머리위에 들고 뒤로 돌아서라고 했
다. 나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손을 올리면서 뒤로 돌았다. 운이 좋아 그냥 여기
서 경찰에 잡혀간다고 하더라도, 내 누명이 벗겨질 확률이 높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무죄
라고 주장해도 내 지문이 묻어있는 칼이 증거로 있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박 형사가 이 사건의 공모자는 진범이라면 나 역시 내 발 밑에 핏빛 없는 얼굴로 널브러져 있는 서
경기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박 형사는 뒤로 돌아선 나를 보고, 뒤춤에서 수갑을 꺼내려는지 철그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
간, 나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로 뒤로 힘껏 찼다. 박 형사의 복부에 퍽 하고 발길에 허리 부
분이 차이는 소리가 들리고, ‘억!’하는 짧은 비명소리와 손전등, 권총등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
렸다. 떨어지는 충격에 의해서인지 박 형사가 들고 있던 손전등이 불이 나갔다.
방안은 다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새까만 암흑이 찾아왔다. 나는 뒤돌아볼 것도 없이 무조
건 앞으로 뛰었다. 발끝에 시체 같은 것이 채이고, 얼굴이 시체가 들어가 있는 매달린 비닐 봉투
에 부딪히고 제대로 몇 발짝 갈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개새끼!”라는 소리와 함께 방안 전체가 떠나갈 듯하게 큰 소리로 “탕!”하는
총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에 총알이 스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박 형사가 권총을 쏜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손전등을 찾지 못해 아무데나 보고 쏜 것 같았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최대한 숨소
리도 내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 어디가 출입구 쪽인지 알 수도 없었다.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
았다.
박 형사는 이제 몸을 일으켰는지 콜록콜록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이 개새끼야!
얌전히 가자고 했지! 개새끼.
대갈통을 날려 버리겠어!
어디 있어? 씨팔!!“
나는 최대한 숨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였다. 박 형사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
이었다. 박 형사 역시 불이 없는 여기에선 귀 밖에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숨소리를 죽
이고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나를 자극하려는지 갑자기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시작했
다.
“이봐. 자네가 이러는 거 이해 못하는 거 아냐.
자네, 지금 여기 있는 시체들 보고 놀랐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독서실 주인이 자네 모함한 것 같
고... 그게 맞을 수도 있어. 내가 틀렸고. 그러니까 한번 가서 조사해 보자니까. 여기서 도망간다
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전부 자네가 진범이라고 생각할 거야. 누명을 벗을 기회를 놓치는 거지. 안
그래?“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그 질문에 대답할 뻔 했다. 박 형사는 내가 말을 하게해서 내 위치를 찾아
낼 생각인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전에 책에서 읽은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기억 못한
데.. 다중인격장애도 그런 것 중에 하나지. 내가 읽은 증세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과도한 스
트레스로 인해, 혼자 있을 때 또는 특정한 시간이 되면 원래 자기와 전혀 다른 성향의 행동을 한다
고 해. 그리고 잊어먹고...
자네 뒷 조사 해봤어. 열렬히 좋아했던 여자 친구는 교통사고로 죽고 학교에는 취미도 잃고 군대
갈 생각이나 하고. 아무런 낙도 없는 생활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겠어. 그러던 차에 늦은
시간에 독서실이라는 자네만의 공간이 생긴거야.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 그
때 자네는 변했을 거야. 다들 증언이 그래. 자네 어머니도 독서실에 늦게 돌아올때 마다 자네 방
에 들어가 괴로운 듯 술을 마시는 등 변했다는 거야. 그 때 귀찮게 하는 사람들 하나씩 없애기 시
작했지. 자네 일에 자꾸 간섭하는 괴팍한 고시 준비생이며 이전에 여기 총무였던 서경기나, 귀신
얘기하면 자꾸 자네를 귀찮게 하던 은혜나... 자네 잘못 아냐. 자네 속에 숨어있는 괴물이 한 거
지, 그러니 나와 같이 가서 의사를 만나자니까.“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데 순간적으로 열이 받아서 소리치고 싶어졌지만, 참았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설마 하면서도 내가 정말 이런 짓을 저지른 것 아닐까라는 의심도 조금씩 드는 것 같
았다. 갑자기 괴로워졌다. 그런데 박 형사가 그 말을 하면서 뭔가 “탁탁” 하고 치는 소리가 작게 들
렸다. 얘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그 소리는 들려왔다. 무슨 소리가 의아해하는데, 그 소리의 의미
를 아는 순간 내 심장박동을 빨라졌다.
박 형사는 손전등을 찾아서 불을 켜기 위해 손으로 손전등을 치고 있던 것이었다. 박 형사가 불을
켜면 내 머릿속에 총알이 박히던지 누명을 쓰고 경찰서로 끌려가던지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나
는 본능적으로 ‘탁탁’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박 형사는 결국 손전등의 불을 켰지만, 박 형사를 향해 몸을 던지던 내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
다. 나는 미식축구 하듯이 박 형사를 덥쳤고, 손전등은 불 켜진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는 손
전등 불빛이 비춰지는 가운데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역시 경찰이라 격투
기에 단련 받았는지, 넘어지는 순간만 놀랐지 힘으로도 나를 압도했다. 순식간에 나는 박형사 밑
에 깔려서 얼굴에 주먹 세레를 받게 되었다.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얼굴이 붓고 입안에 피가 터져서 찝찌름한 핏맛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흥분되는 것 같았다. 나
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두르던 박 형사의 목을 조르듯이 잡고 옆으로 내동댕이 쳐댔다. 박형
사는 갑작스런 나의 반격에 놀랐는지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급히 박 형사 위
로 올라타 복수하듯이 얼굴을 갈겨댔다. 손이 아픈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박 형사의 얼굴에서 피
가 튀자 은근한 쾌감마져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두들겨 맞고 있던 박 형사도 손을 뻗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의 강철 고리 같은 손가락이
내 목을 감고 있어, 아무리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쳐도 꼼짝도 안하는 것이었다. 목을 조이는 손
을 풀기 위해 바동거렸지만, 어림없었다.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몸에 힘
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죽는 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버둥거리는 내 손끝에 떨어트린 망치가 다았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 나는 간신히 망치
를 쥐고, 내 몸을 죄고 있던 손을 향해 쳤다. 아무리 쳐도 꼼짝을 못하던 박 형사의 손이 풀리고 간
신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내 속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증오
가 밀려왔다. 이 놈이 나를 죽이려했다는 생각과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실 둘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사실 등이 머릿속에 뒤섞이면서 내 눈앞에 있는 이 놈을 죽이
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팔이 고통스러운지 내 밑에 깔린 채 움직이지 못하는 박형사의 목을 한손으로 쥐
고, 망치를 쥐고 있던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 그의 정수리를 겨낭했다. 그대로 내리치면 박형사는
머리가 꺼져서 죽을 것이 확실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했다. 겁에 질려 커질 대
로 커진 그의 눈을 보니 나의 승리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대로 망치를 내려치라는 마음 속 명령이
점점 강해졌다. 내가 여기서 박 형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
가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내리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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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4 (11:28) from 211.204.3.166' of 211.204.3.166' Article Number : 72
유일한 (ihy@duke.edu) Access : 2978 , Lines : 64
<어느날 갑자기> 독서실 (25)
<제 허락 없이 이 글을 다른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입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은혜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박 형사였다. 나는 그를 보자, 안도감이 느
껴지며, 이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내 생각과는 달리 싸늘하고 살기까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박 형사의
얼굴표정이 이상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시하고 다급하게 말을 했다.
"형사님! 잘 오셨어요?
여기서 빨리 나가요! 꼼짝없이 여기 갇히는 줄 알았네.."
박형사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안 하고, 다시 방안을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추어보더니 차가
운 목소리로 물어봤다.
“일한씨, 이 시체들은 뭐죠? 솔직히 말해보세요.”
나는 그제서야 박 형사는 이 방에 널려져 있는 시체들을 보고 놀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도 이 끔찍한 시체들이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연히 여기 들어왔다가 발견한거예요. 확신
할 순 없지만 독서실 주인이 미친 살인범 일거예요. 처음부터 저에게 여기 열쇠도 주지 않고 여기
들어오지 못하게 했거든요. 뭐 숨기는 것도 있는 것 같았고...“
박 형사는 내 얘기를 들으면서, 상의 주머니에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권총을 꺼내 나를 겨
냥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리둥절해졌지만, 박 형사의 살벌한 얼굴을 보고 뭔가를 깨닫게 되었
다. 박 형사는 천천히 다가오면서, 놀랄만한 얘기를 했다.
“설마했는데...
인간이 이렇게 될 수까지 있다니.
오늘 제보를 하나 받았소. 독서실 주인한테서. 사실 그 동안 나는 당신과 그 사람을 둘 다 의심하
고 있었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당신이 이 창고에서 뭔가 수상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며, 오
늘 밤에 이 창고에서 뭔가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소. 그 사람의 제보를 100% 믿는 것은 아니지
만, 우선 한번 와보기로 했소. 아니나 다를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당신은 이 방에 들어와 뭔
가를 하고 있더군. 자기가 죽인 희생자들을 망치로 들고 다시 한번 훼손하려고...
나야 정신 분석학자가 아니라서, 당신의 이런 미치광이 짓의 동기를 알 수도 없고 사실 관심도 없
소. 미친놈이지 뭐. 단지 나는 너 같은 새끼 잡아넣는 것이니까.
자 피곤하게 하지 마자고. 하긴 니가 반항하면 나는 더 좋지, 그 핑계로 네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은혜 시체는 어디다 둔거야! 엉?“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정신이 멍해지고 아찔했다. 내가 범인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박
형사는 나의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총을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 수갑을 꺼내며
다가왔다. 독서실 주인이 나를 모함했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확신이 들었다.
“박 형사님, 이거 내가 한 짓 아니라니까요!
독서실 주인이 미치광이 살인범이라니까요. 나를 모함한 거예요! 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라
니까요.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나는 절규하듯 소리를 치고,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박형사를 보고 뒷걸음질 쳤다.
“야, 반항하지 말랬잖아! 누가 독서실 주인 결백하다고 했어? 우선 너부터 잡고, 다음은 그 사람
차례야. 그 놈도 확실히 뭔가 숨기는 거 있어. 그래도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야지. 나는 멀티테스
킹에 약하거든. 그리고, 손에 든 망치 좀 내려놓을래. 자꾸 니가 그러면, 나도 손에서 땀이 나서 방
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미끄러질 수도 있거든. 정 원하면 계속 해. 나야 여기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편하니까.”
박 형사의 말을 듣고 보니, 망치를 손에 꽉 쥔 채 마치 뭔가를 내리치기 직전의 자세로 있는 것이
었다. 나는 얼른 망치 든 손을 내리고 애걸하듯이 한 마디 했다.
“형사님, 제발 내 말 좀 믿어줘요.
나는 여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 놈이 진짜 범인이라니까요!“
박 형사는 내 말에 전혀 동요를 하지 않고 오히려 단호하게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얘기를 들려주
었다.
“야, 내가 아무리 돌팔이라고 해도, 아무런 근거 없이 너를 잡으려고 하는 줄 알아? 내가 결정적으
로 독서실 주인의 제보를 믿고 여기 오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어. 그 사람이 제보와 함께 자네가
타고 다니던 봉고에서 발견했다며, 피 묻은 칼을 경찰서로 보내왔어. 그 결과 보고 오느라고 내가
좀 늦은 거야.
검사 결과는 네가 생각하듯이, 바로 니가 이 서경기를 살해할 때 쓴 칼이었어. 칼에 묻어있는 혈액
은 서경기 것으로 확인되었고, 칼 손잡이에는 네 지문이 더덕더덕 찍혀있었어. 나머지를 살해할
때 쓴 것은 아직 발견하지 않았지만, 우리 시간은 많으니까..
여하튼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해? 내가 판사라면 내가 여기서 목격한 것과 그 칼 한 자루로 너 같
은 놈은 곧장 사형시킬걸. 자 조용히 이 기분 나쁜 곳을 빨리 떠나자니까!“
나는 그 박 형사의 말을 듣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놈이 물질적인 증거까지 조작해
서 나를 모함할지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박 형사 말대로 이 정도의 증거만 있으면, 나의 결백
주장은 미친놈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것 같았다. 그런데 확신에 찬 박 형사의 목소리를 듣
고, 그의 살기에 찬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일반적인 경찰이고 내게 그
런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면, 이런 구차한 설명도 하기 전에 체포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 것 같았
다. 더구나 이런 미친 살인 용의자를 검거하는데,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파트너 없이 혼
자 온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나는 박 형사도 이 시체들과 어떤 식으로
도 연관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경찰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끔찍한 광경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박 형사가 단순히 나를 잡으러 온 경찰이 아니고,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자 좀 더 다급해졌다. 박 형사는 한 손에는 권총을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나도
그 사람이 다가오는 것에 따라 뒷걸음질쳤지만, 박 형사가 총을 더욱더 위협적으로 겨냥하며 나
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내 바로 앞까지 와서, 양손을 머리위에 들고 뒤로 돌아서라고 했
다. 나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손을 올리면서 뒤로 돌았다. 운이 좋아 그냥 여기
서 경찰에 잡혀간다고 하더라도, 내 누명이 벗겨질 확률이 높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무죄
라고 주장해도 내 지문이 묻어있는 칼이 증거로 있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박 형사가 이 사건의 공모자는 진범이라면 나 역시 내 발 밑에 핏빛 없는 얼굴로 널브러져 있는 서
경기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박 형사는 뒤로 돌아선 나를 보고, 뒤춤에서 수갑을 꺼내려는지 철그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
간, 나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로 뒤로 힘껏 찼다. 박 형사의 복부에 퍽 하고 발길에 허리 부
분이 차이는 소리가 들리고, ‘억!’하는 짧은 비명소리와 손전등, 권총등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
렸다. 떨어지는 충격에 의해서인지 박 형사가 들고 있던 손전등이 불이 나갔다.
방안은 다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새까만 암흑이 찾아왔다. 나는 뒤돌아볼 것도 없이 무조
건 앞으로 뛰었다. 발끝에 시체 같은 것이 채이고, 얼굴이 시체가 들어가 있는 매달린 비닐 봉투
에 부딪히고 제대로 몇 발짝 갈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개새끼!”라는 소리와 함께 방안 전체가 떠나갈 듯하게 큰 소리로 “탕!”하는
총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에 총알이 스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박 형사가 권총을 쏜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손전등을 찾지 못해 아무데나 보고 쏜 것 같았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최대한 숨소
리도 내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 어디가 출입구 쪽인지 알 수도 없었다.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
았다.
박 형사는 이제 몸을 일으켰는지 콜록콜록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이 개새끼야!
얌전히 가자고 했지! 개새끼.
대갈통을 날려 버리겠어!
어디 있어? 씨팔!!“
나는 최대한 숨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였다. 박 형사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
이었다. 박 형사 역시 불이 없는 여기에선 귀 밖에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숨소리를 죽
이고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나를 자극하려는지 갑자기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시작했
다.
“이봐. 자네가 이러는 거 이해 못하는 거 아냐.
자네, 지금 여기 있는 시체들 보고 놀랐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독서실 주인이 자네 모함한 것 같
고... 그게 맞을 수도 있어. 내가 틀렸고. 그러니까 한번 가서 조사해 보자니까. 여기서 도망간다
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전부 자네가 진범이라고 생각할 거야. 누명을 벗을 기회를 놓치는 거지. 안
그래?“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그 질문에 대답할 뻔 했다. 박 형사는 내가 말을 하게해서 내 위치를 찾아
낼 생각인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전에 책에서 읽은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기억 못한
데.. 다중인격장애도 그런 것 중에 하나지. 내가 읽은 증세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과도한 스
트레스로 인해, 혼자 있을 때 또는 특정한 시간이 되면 원래 자기와 전혀 다른 성향의 행동을 한다
고 해. 그리고 잊어먹고...
자네 뒷 조사 해봤어. 열렬히 좋아했던 여자 친구는 교통사고로 죽고 학교에는 취미도 잃고 군대
갈 생각이나 하고. 아무런 낙도 없는 생활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겠어. 그러던 차에 늦은
시간에 독서실이라는 자네만의 공간이 생긴거야.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 그
때 자네는 변했을 거야. 다들 증언이 그래. 자네 어머니도 독서실에 늦게 돌아올때 마다 자네 방
에 들어가 괴로운 듯 술을 마시는 등 변했다는 거야. 그 때 귀찮게 하는 사람들 하나씩 없애기 시
작했지. 자네 일에 자꾸 간섭하는 괴팍한 고시 준비생이며 이전에 여기 총무였던 서경기나, 귀신
얘기하면 자꾸 자네를 귀찮게 하던 은혜나... 자네 잘못 아냐. 자네 속에 숨어있는 괴물이 한 거
지, 그러니 나와 같이 가서 의사를 만나자니까.“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데 순간적으로 열이 받아서 소리치고 싶어졌지만, 참았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설마 하면서도 내가 정말 이런 짓을 저지른 것 아닐까라는 의심도 조금씩 드는 것 같
았다. 갑자기 괴로워졌다. 그런데 박 형사가 그 말을 하면서 뭔가 “탁탁” 하고 치는 소리가 작게 들
렸다. 얘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그 소리는 들려왔다. 무슨 소리가 의아해하는데, 그 소리의 의미
를 아는 순간 내 심장박동을 빨라졌다.
박 형사는 손전등을 찾아서 불을 켜기 위해 손으로 손전등을 치고 있던 것이었다. 박 형사가 불을
켜면 내 머릿속에 총알이 박히던지 누명을 쓰고 경찰서로 끌려가던지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나
는 본능적으로 ‘탁탁’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박 형사는 결국 손전등의 불을 켰지만, 박 형사를 향해 몸을 던지던 내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
다. 나는 미식축구 하듯이 박 형사를 덥쳤고, 손전등은 불 켜진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는 손
전등 불빛이 비춰지는 가운데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역시 경찰이라 격투
기에 단련 받았는지, 넘어지는 순간만 놀랐지 힘으로도 나를 압도했다. 순식간에 나는 박형사 밑
에 깔려서 얼굴에 주먹 세레를 받게 되었다.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얼굴이 붓고 입안에 피가 터져서 찝찌름한 핏맛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흥분되는 것 같았다. 나
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두르던 박 형사의 목을 조르듯이 잡고 옆으로 내동댕이 쳐댔다. 박형
사는 갑작스런 나의 반격에 놀랐는지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급히 박 형사 위
로 올라타 복수하듯이 얼굴을 갈겨댔다. 손이 아픈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박 형사의 얼굴에서 피
가 튀자 은근한 쾌감마져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두들겨 맞고 있던 박 형사도 손을 뻗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의 강철 고리 같은 손가락이
내 목을 감고 있어, 아무리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쳐도 꼼짝도 안하는 것이었다. 목을 조이는 손
을 풀기 위해 바동거렸지만, 어림없었다.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몸에 힘
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죽는 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버둥거리는 내 손끝에 떨어트린 망치가 다았다.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 나는 간신히 망치
를 쥐고, 내 몸을 죄고 있던 손을 향해 쳤다. 아무리 쳐도 꼼짝을 못하던 박 형사의 손이 풀리고 간
신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내 속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증오
가 밀려왔다. 이 놈이 나를 죽이려했다는 생각과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실 둘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사실 등이 머릿속에 뒤섞이면서 내 눈앞에 있는 이 놈을 죽이
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망치로 얻어맞은 팔이 고통스러운지 내 밑에 깔린 채 움직이지 못하는 박형사의 목을 한손으로 쥐
고, 망치를 쥐고 있던 오른손을 높이 쳐들어 그의 정수리를 겨낭했다. 그대로 내리치면 박형사는
머리가 꺼져서 죽을 것이 확실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했다. 겁에 질려 커질 대
로 커진 그의 눈을 보니 나의 승리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대로 망치를 내려치라는 마음 속 명령이
점점 강해졌다. 내가 여기서 박 형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
가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내리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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