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화 === 신지 지주의 아들. 그리고 화룡도의 주인이자 신지의 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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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0-07 02:44 조회10,869회 댓글0건본문
열혈강호 532화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20171006금 기나긴 연휴는 오늘도 이어지고...
<프롤로그>
사상 최장의 추석 연휴가 오늘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기쁘다 연휴 오셨네... ^^
그래서 이렇게 마음 편하게 열강 스토리 편집에 나서고 있다지요.
이번 긴 연휴 덕분에 두 분 작가님들도 그동안의 피로가 좀 풀리시기를...
이왕이면 작품 몇 개쯤 세이브 해놓으시고 한 걸음 앞에서 긴장 늦춰주시기를...
헉~ 23년간 없었던 일을 새삼 바라지 말라굽쇼?
아, 녜....
<한비광의 사자후>
쩌렁쩌렁 온 계곡과 산을 뒤흔드는 포효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다.
그 사자후를 듣지 않은 이 또한 신지에 없을 게다.
백강은 그 울부짖음을 들으며 마음으로 ‘사제’를 읊조리고...
사음민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며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홍균과 함께 길을 나선 진풍백은 올 것이 왔다는 투다.
그 포효에 대해 묻는 홍균에게 대답 대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니 말이다.
“흥, 녀석... 이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건가?”
진풍백은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 거다.
녀석이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있는... 아니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뭔가 제 정신이 아닐 것만 같은 언행을 보며 어떤 느낌이 있었던 터다.
다들 쑤군거리기를...
어설펐던 초급 무공 실력의 한비광이 정말 크게 성장했다고...
역시 천마신군의 제자라고...
그렇게 얘기할 때도 진풍백은 뭔가 다른 점을 감지하고 있었던 거다.
그건 성장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조금전 들었던 한비광의 사자후...
그 포효를 들으며 진풍백은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녀석의 그 눈빛은 틀림없이 그런 것이었으므로...
성장한 게 아니라 다른 놈이 된 거였다는 그 말...
이제야 제 정신을 차린 거라는 진풍백의 말에 홍균은 걱정이 크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한비광이기에 그러하다.
그런 염려에 진풍백은 부러움 섞인 말로 홍균을 안심시킨다.
“누구와는 달리, 걱정해주는 놈들이 많은 듯 하니 말이야.”
여기서 말하는 그 누구는 바로 자신, 진풍백을 가리키는 것이렷다.
무림의 이단아 취급을 받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녀석은 담화린, 매유진 등등 사방에서 걱정해주느라 난리니 말이다.
그런 말을 내뱉는 진풍백이 이럴 때는 좀 귀엽게 보인다.
<신지의 지배자>
“나약한 놈... 결국 인간의 경계를 넘지 못했단 말이냐?”
신지의 어느 곳...
자하마신은 혀를 끌끌끌 차고 앉아 있다.
한비광의 포효를 들으며 뭔가 입맛이 씁쓸한 모양이다.
눈빛이 맛이 가보였는데... 그래서 최고의 무공에 맛을 들인 줄 알았는데...
그것을 붙잡기만 하면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데...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못했음을 확인하며 못내 아쉬운 자하마신.
그래서 지금껏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그동안 참 많이도 심심했더랬는데... 이제야 재밌는 걸 보나 싶었는데...
재미의 배가를 위해 녀석의 애인까지 잡아뒀는데 말이다.
허나, 이왕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 놈 또한 이 바닥을 어느 정도는 맛 보지 않았겠는가!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무한한 힘의 세계를 말이다.
그 힘의 맛을 본 이상 결코 이 세계를 외면하진 못할 거라고...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녀석은 이곳으로 찾아오게 되어 있다.
인질이 있으므로... 담화린이 내 손에 있으므로....
자하마신은 여전히 그렇게 믿고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두 눈 지그시 감고 마치 죽은 듯이 고요한 담화린을 바라보며 말이다.
<천검대>
한비광의 포효는 세 개의 천검대에게도 생생했다.
분명히 아까 그 자는 뚜벅뚜벅 이리로 다가왔다.
자신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 앞에는 바로 신지의 중심부가 있으며 그곳으로 가려했다.
헌데, 갑자기 날아든 화살 세례에 뭔가 일이 틀어진 듯하다.
작전상 무조건 후퇴할 수밖에 없어 지금 이렇게 물러서 있지만...
더 이상 그 놈은 전진하지 않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갑자기 엄청난 포효라니....
혹시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닌지... 원래대로 후퇴에 급급한 건 아닌지...
그 무린 놈들을 쫓아가 도륙을 냈어야 했는데 이 상황은 좀 답답하다.
그렇다고 다시 쫓다가는 또다시 그 엄청난 화살 공격을 받을 것 같고.
진웅검의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허나, 무턱대고 돌격을 했다가는 천검대의 절반 이상이 전멸했을 터...
지금의 답답한 상황은 어쩔 수는 없다.
더구나 양옆이 꽉 막힌 계곡 지형이 아닌가!
성질이 치솟는 진웅검은 화풀이를 신지의 윗 서열에게 퍼붓는다.
사태가 이지경인데 대체 그 높은 분들은 뭐하고 있냐며 말이다.
<사음민>
마록의 죽음을 보고 받는 사음민.
자신의 부관이 죽었다. 그것도 신지의 소지주의 손에...
게다가 그러고는 갑자기 환종과 함께 적의 편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음민은 뭔가 잡히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 둔한 놈마저도 뭔가 냄새를 맡은 건가?”
사음민의 중얼거림이 의미심장하다.
둔한 놈은 물론 풍연을 말하는 거다.
냄새라는 것은 신지의 비밀 중 하나겠고...
그것은 다름 아닌 신지의 지주에 관련된 것이겠고...
사음민이 알고 있는 것을 풍연마저 알게 된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음민이다.
<백강>
그의 주변에 환종의 수하 서 넛이 둘러싸고 있다.
이런저런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다.
환존이 어떻게 그동안 거사를 도모하셨으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도존의 신지 방문을 이용해 지주의 정체 파악을 시도했다는 것도...
지주에게 인질로 잡혀있던 여섯 존자를 구하려 나섰다는 것 또한
모두 자신이 책임지고 도모한 것이라는 말씀 등등을 전하고 있다.
그는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일 거사가 실패했을 경우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럴지언정 자신의 죽음이 백강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진 원치 않았다.
그 대목을 힘주어 백강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백강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저런 일들에서 그 분의 마음 쓰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그 분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두 말이다.
백강은 이제 자신에게 남겨진 임무가 무엇인지를 잘 안다.
환존이 목숨을 버려서까지 하고자 했던 과업을 전부 안다.
지체없이 그는 환종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은신하라...
주변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지금 퇴각하는 무림인들이 안전한 곳까지 대피할 수 있게 하라...
“환존의 명을 받듭니다!”
백강의 명령에 환종의 수하들은 일제히 존명을 외친다.
그것은 백강에게가 아니다.
바로 환존이라 했다.
그들에게 이제 백강은 새로운 환존인 것이다.
환종의 새로운 존자인 것이다.
그렇게 환종의 수하들은 소리없이 임무 수행을 위해 사라진다.
그런 모습을 저만치서 전부 지켜보고 있던 한 사내... 풍연.
잠시 머뭇거리더니 성큼 백강에게 나아가 정식 인사를 청한다.
“신지의 소지주... 였던 풍연. 환존을 뵙겠습니다.”
나른 분위기를 파악한 풍연은 그를 주저 없이 환존이라 칭하며 인사한다.
백강에게는 이미 풍연은 구면이다.
조금 편안해진 풍연은 이때다 싶은지 질문을 쏟아낸다.
갑자기 질문의 왕자가 되어버린 듯한 풍연이다.
그도 그럴 것이... 풍연에게는 거의 모든 상황들이 궁금하다.
다음은 풍연의 질문 리스트다.
1. 환종은 언제부터 지주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었나?
2. 환존은 지주의 정체를 완벽히 파악하고도 왜 그것을 알리지 않았나?
다음은 백강의 대답이다.
그 의심의 시작은 무림에서부터였다.
팔대기보전을 계기로 신지는 무림의 저력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고...
특히 환종은 많은 인원을 무림에 파견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환영문이 탄생했고, 덕분에 자하신공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무림 최강이자 최악의 무공이었다.
최강이자 최악의 무공...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 강하지만 일반인은 쓸 수 없는 무공이라서 그렇고
워낙에 독특한 운공법이라서 함부로 운용 시 미치거나 폐인이 되어서 그렇다.
오죽했으면...
그 무공의 창시자인 자하마신조차도 주화입마가 되어 폐인이 되었을까!
그런데 이상한 점 또한 알게 되었다.
환종의 막강한 정보력에 의해 알게 된 것은 현재의 신지 지주의 무공이...
그러한 자하신공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참 이상했다.
당시엔 당연하게도 자하신공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었는데도...
신지의 누군가는 이미 자연스럽게 자하신공을 쓰고 있었으니....
헌데 더욱 이상한 사실은...
지주 뿐만 아니라 검종 일통을 이끌었던 과거의 지주들도 그랬다는 거다.
그들 또한 자하신공을 사용할 줄 알았다는 사실.
그것이 쉽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자하신공의 괴이성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오래 살지 못했다.
그때부터가 이상했다.
지주가 사망하고 새로운 지주가 등극되면 자연스럽게 자하신공을 썼다.
마치 같은 사람이 몸만 갈아타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환종의 정보망에 의해 파악된 기록들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니 이상한 점에 대해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입증하고 싶었으나 한동안 막연한 추측으로만 둘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아 지배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때문이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그런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어느날.
“그때 등장한게 바로 내 사제 한비광이었다네.”
백강의 입에서 드디어 한비광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눈을 휘둥그레 굴리며 놀라고 있을 뿐인 풍연.
한비광이 이렇게... 이런 식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게다.
허나, 지금 그런 설명을 하고 있는 이는 바로 환존이다.
한비광이 누군가?
바로 현재 지주의 친아들이 아닌가!
그의 아버지가 자하신공을 쓰는 신지의 지주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주의 진면목을 파악하기에는 최적의 인물이란 뜻이다.
그 부분을 간과할 리 없는 환존은 모든 정보력을 한비광에 집중시킨다.
그 대목에서 버럭 화를 내는 풍연이다.
즉, 그러려고 한비광을 미끼로 쓴 건 아니냐며 따지듯 묻는다.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는 한비광.
매유진의 설득에 마음을 돌리고 다시 돌아오던 중이었던 거다.
백강의 설명은 어디서부터 듣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풍연의 말처럼, 자신이 미끼로 이용당한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이유도, 굳이 구해줄 이유도 없었겠지.”
한비광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못해 약간은 화가 안 듯도 하다.
사형인 백강이 자신을 가로막은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는 한비광.
일단 실력 확인이랄까 평가랄까 뭐 그런 목적이 일단 하나 있었고...
진짜 이유는 흑풍회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탈출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한비광을 신지에서 빼내야 하는데 그때 흑풍회가 필요했을 테니까.
그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대결 운운 하며 시간을 끌었다는 거다.
그것이 한비광이 파악하고 있는 그 이유다.
그렇게 따지듯이 추론을 던지고 대답을 기다리는 한비광.
백강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싸늘하지만 굳은 눈빛으로 한비광을 잠시 응시하는 백강.
뭔가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려는 참일까?
허나, 그의 대답은 깔끔한 긍정이다.
한비광의 추론이 정확했음을 인정하는 백강.
그러자 한비광은 더욱 언성을 높힌다.
어쩐지 백강에게 속아서 그런 대결도 벌이고 등등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영문도 모르고 뭔가에 홀린 듯 끌려만 다닌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로 인해 담화린이 잡혀갔다는 것이다.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이 빌어먹을 현실인 것이다.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자신이 아니었는가!
그저 철없는 철부지였다.
어느날 굴러들어가 덜컥 천마신군의 여섯 째 제자가 된 상황이다.
그런 사제에게 한 마디 귀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잖느냐고 따진다.
격앙된 목소리다.
냅다 버럭 화를 내는 한비광이 걱정스러운 풍연이 말리고 나선다.
좀 진정하라고...
“어쩌면 난 기적을 바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백강은 작심한 듯 입을 연다.
기적이라 했다.
계획이나 생각만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바라는 것.
그것을 말하고 있는 거다.
백강의 지금껏 수집한 정보를 통해 파악한 신지 지주라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자연스럽게 자하신공을 쓸 줄 알았다.
허나 그래서인지 대부분 단명의 운명이었다.
바로 자하신공의 부작용 때문이다.
특이한 기의 운용을 견디지 못한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지주는 달랐다.
마치 그는 자하신공에 최적화된 사람 같았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완벽하게 자하신공을 구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 아래 최고의 실력자란 뜻이다.
혼자의 힘으로도 능히 무림을 정복하고도 남을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자가 신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자네 어머니... 즉, 그의 부인 때문이었다네.”
백강의 설명이 거기까지 연결되자 한비광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로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백강의 판단인 즉슨,
그 이유는 자하마신의 혼이 씌였지만 인간일 때의 정신과 마음이...
아직은 그 육체를 제어하고 있음이었다.
한비광의 아버지는 자기 부인을 지키기 위해 육체를 포기하지 않고 있던 거다.
백강의 그 말이 맞다면 참으로 눈물겨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기꺼이 양도한 남편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지켜내고 싶었던 아버지였다.
“게다가 자네는 혼자 힘으로 신지 도존의 위치에 오른 자...그랬기에 기대를 했다.”
백강의 기대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한비광의 진짜 아버지와...
겨우 목숨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한비광의 어머니와...
한비광을 만나게 해주면... 그렇게 가족이 재회를 하게 된다면...
그렇게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면...
그들의 힘으로 육체를 속박하고 있던 자하마신의 혼마저도...
소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백강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백강의 기대이자 신지의 희망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무림의 정파와 사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이어진 백강의 설명을 다 듣고 있던 한비광.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지만 그러기엔 분노가 더 크다.
자신의 마음대로... 의지대로 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 아닌가!
자신은 그저 백강의 꾸민 계획의 일부였을 따름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미끼로 어쩌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있었던가?
“누가... 누가 멋대로.. 그런 기대를 하랬어?”
한비광은 분노에 치를 떤다.
마치 커다란 퍼즐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조각처럼 살아왔었던가?
좋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금 그가 화내는 까닭은 바로 상실의 아픔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자기 맘대로 기대를 하고는 그것을 위해 맘대로 계획을 짠거라니...
“당신... 당신의 기대 덕분에 난 엄마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화린이마저 잃게 되었어.”
마치 주먹이라도 날릴 듯이 성큼성큼 백강에게 다가서며 그는 외친다.
거의 절규에 가깝다.
이제는 엄마도 아빠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화린이마저 영영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어찌 분개하지 않을수 있으랴!
“그래... 자넨 분명 소중한 부모님의 아들이자 사랑스런 여인의 연인이겠지.”
백강의 진지한 멘트에 한비광은 성큼성큼 옮기던 발길을 우뚝 멈춘다.
철부지 아이에게 타이르는 어른 같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네는 천마신군의 여섯 번째 제자이자 신지 지주의 아들. 그리고 화룡도의 주인이자 신지의 도존이기도 하네.”
묵직하다.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사사로운 개인적인 관계만을 집착하고 있던 한비광에게 그런 말이라니...
아들이자 연인이고만 싶어 했을지도 모를 한비광이었지 않았을까?
허나, 백강은 더 큰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대의명분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꿀 사명을 일깨워주려 함인가?
한비광은 그 말에 몸이 순간적으로 굳은 것만 같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한 느낌이다.
개인적인 가족에 대한 슬픔과 애인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
그것만이 지금의 한비광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면 이젠 아니라는 거다.
백강은 그 부분을 아프지만 격렬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마치 자신 또한 그러하다는 듯이 말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슬픔만 보지 말고 주위를 좀 둘러보란다.
무림에서 달려와 이곳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한비광이란 사람에게 걸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신지인으로 평생을 살아오다 갑자기 한비광의 편에 선 사람들.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
한비광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생각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는 백강이다.
그 기대가 막말로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해도 그건 이미 본질이 아니다.
이미 혼자의 몸이 아닌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운명 같은 거다.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 선을 넘어섰기 때문인 거다.
누군가를 이끄는 존재가 되는 순간부터 저절로 생기는 기대와 의무.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어찌 그들 몫이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궤변 늘어놓지 마!!! 난, 당신이 미리 이 사실을 알려만 줬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거야! 난....”
백강의 충분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한비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너무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허나 백강의 생각은 확연히 한비광과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운명이라서다.
한비광이 짊어진 운명은 아무리 피해 다녀도 결국은 찾아갔을 거라는...
잠시 시간을 늦출 수는 있어도 끝내 회피하진 못했을 거라는...
부모가 목숨을 잃은 것도... 연인이 그럴 위험에 처한 것도,..
그런 모든 일들이 못내 유감스럽지만 그것 또한 마주쳐야만 할 운명,
그러니 귀띔을 미리 주었던 아니었던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비광의 표정은 점점 사나워진다.
이를 악물고 백강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만 있다.
분노가 치밀어 도저히 어쩌지 못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태다.
지금껏 설명을 열심히 해준 백강의 말이 양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은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다시 부들부들 몸을 떨며 갑자기 주먹을 꽈득~ 하며 힘주어 쥐는 한비광.
금방이라도 백강에게 한 대 주먹을 날릴 것만 같은 기세다.
그동안의 백강의 설명이 모두 헛수고가 되려는 순간이다.
이쯤에서 백강과 한 판 뜨려는 한비광의 분노가 표출되려는 참이다.
대의명분이니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고통이니 운명이니 어쩌구 저쩌구.
그딴 것들은 다 필요 없고 그저 상실의 슬픔과 분노가 전부인 한비광이다.
운명을 거부하려는 한비광의 몸짓일 수도 있다.
바로 그때다.
“도존!!”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 하나 귓가를 울린다.
도존이라 했다.
백강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에 끼어든 한 단어, 도존이라 했다.
그 말에 본능적으로 멈칫...
한비광은 뒤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누굴까?
타이밍도 참 절묘하다.
<에필로그>
이번에는 설명이 상당히 많아 편집에 나름 애를 먹었습니다.
일일이 다 적자니 너무 양이 많고...
그렇다고 대충 하자니 상황 묘사가 빈약해지고...
그래서 힘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네...네.... ^^;
어쨌든 이렇게 신지와 한비광의 비밀이 하나 더 풀린 셈입니다.
자하마신과 자하신공 그리고 신지의 수장들 이야기.
한비광을 더욱 한비광 답게 만들어주는 비밀 중의 하나겠습니다.
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곧 완결을 볼 수도....?
^^;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20171006금 기나긴 연휴는 오늘도 이어지고...
<프롤로그>
사상 최장의 추석 연휴가 오늘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기쁘다 연휴 오셨네... ^^
그래서 이렇게 마음 편하게 열강 스토리 편집에 나서고 있다지요.
이번 긴 연휴 덕분에 두 분 작가님들도 그동안의 피로가 좀 풀리시기를...
이왕이면 작품 몇 개쯤 세이브 해놓으시고 한 걸음 앞에서 긴장 늦춰주시기를...
헉~ 23년간 없었던 일을 새삼 바라지 말라굽쇼?
아, 녜....
<한비광의 사자후>
쩌렁쩌렁 온 계곡과 산을 뒤흔드는 포효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다.
그 사자후를 듣지 않은 이 또한 신지에 없을 게다.
백강은 그 울부짖음을 들으며 마음으로 ‘사제’를 읊조리고...
사음민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며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홍균과 함께 길을 나선 진풍백은 올 것이 왔다는 투다.
그 포효에 대해 묻는 홍균에게 대답 대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니 말이다.
“흥, 녀석... 이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건가?”
진풍백은 진작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 거다.
녀석이 정상은 아니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있는... 아니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뭔가 제 정신이 아닐 것만 같은 언행을 보며 어떤 느낌이 있었던 터다.
다들 쑤군거리기를...
어설펐던 초급 무공 실력의 한비광이 정말 크게 성장했다고...
역시 천마신군의 제자라고...
그렇게 얘기할 때도 진풍백은 뭔가 다른 점을 감지하고 있었던 거다.
그건 성장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조금전 들었던 한비광의 사자후...
그 포효를 들으며 진풍백은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녀석의 그 눈빛은 틀림없이 그런 것이었으므로...
성장한 게 아니라 다른 놈이 된 거였다는 그 말...
이제야 제 정신을 차린 거라는 진풍백의 말에 홍균은 걱정이 크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한비광이기에 그러하다.
그런 염려에 진풍백은 부러움 섞인 말로 홍균을 안심시킨다.
“누구와는 달리, 걱정해주는 놈들이 많은 듯 하니 말이야.”
여기서 말하는 그 누구는 바로 자신, 진풍백을 가리키는 것이렷다.
무림의 이단아 취급을 받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녀석은 담화린, 매유진 등등 사방에서 걱정해주느라 난리니 말이다.
그런 말을 내뱉는 진풍백이 이럴 때는 좀 귀엽게 보인다.
<신지의 지배자>
“나약한 놈... 결국 인간의 경계를 넘지 못했단 말이냐?”
신지의 어느 곳...
자하마신은 혀를 끌끌끌 차고 앉아 있다.
한비광의 포효를 들으며 뭔가 입맛이 씁쓸한 모양이다.
눈빛이 맛이 가보였는데... 그래서 최고의 무공에 맛을 들인 줄 알았는데...
그것을 붙잡기만 하면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데...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못했음을 확인하며 못내 아쉬운 자하마신.
그래서 지금껏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그동안 참 많이도 심심했더랬는데... 이제야 재밌는 걸 보나 싶었는데...
재미의 배가를 위해 녀석의 애인까지 잡아뒀는데 말이다.
허나, 이왕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 놈 또한 이 바닥을 어느 정도는 맛 보지 않았겠는가!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무한한 힘의 세계를 말이다.
그 힘의 맛을 본 이상 결코 이 세계를 외면하진 못할 거라고...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녀석은 이곳으로 찾아오게 되어 있다.
인질이 있으므로... 담화린이 내 손에 있으므로....
자하마신은 여전히 그렇게 믿고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두 눈 지그시 감고 마치 죽은 듯이 고요한 담화린을 바라보며 말이다.
<천검대>
한비광의 포효는 세 개의 천검대에게도 생생했다.
분명히 아까 그 자는 뚜벅뚜벅 이리로 다가왔다.
자신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 앞에는 바로 신지의 중심부가 있으며 그곳으로 가려했다.
헌데, 갑자기 날아든 화살 세례에 뭔가 일이 틀어진 듯하다.
작전상 무조건 후퇴할 수밖에 없어 지금 이렇게 물러서 있지만...
더 이상 그 놈은 전진하지 않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갑자기 엄청난 포효라니....
혹시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닌지... 원래대로 후퇴에 급급한 건 아닌지...
그 무린 놈들을 쫓아가 도륙을 냈어야 했는데 이 상황은 좀 답답하다.
그렇다고 다시 쫓다가는 또다시 그 엄청난 화살 공격을 받을 것 같고.
진웅검의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허나, 무턱대고 돌격을 했다가는 천검대의 절반 이상이 전멸했을 터...
지금의 답답한 상황은 어쩔 수는 없다.
더구나 양옆이 꽉 막힌 계곡 지형이 아닌가!
성질이 치솟는 진웅검은 화풀이를 신지의 윗 서열에게 퍼붓는다.
사태가 이지경인데 대체 그 높은 분들은 뭐하고 있냐며 말이다.
<사음민>
마록의 죽음을 보고 받는 사음민.
자신의 부관이 죽었다. 그것도 신지의 소지주의 손에...
게다가 그러고는 갑자기 환종과 함께 적의 편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음민은 뭔가 잡히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 둔한 놈마저도 뭔가 냄새를 맡은 건가?”
사음민의 중얼거림이 의미심장하다.
둔한 놈은 물론 풍연을 말하는 거다.
냄새라는 것은 신지의 비밀 중 하나겠고...
그것은 다름 아닌 신지의 지주에 관련된 것이겠고...
사음민이 알고 있는 것을 풍연마저 알게 된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음민이다.
<백강>
그의 주변에 환종의 수하 서 넛이 둘러싸고 있다.
이런저런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다.
환존이 어떻게 그동안 거사를 도모하셨으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도존의 신지 방문을 이용해 지주의 정체 파악을 시도했다는 것도...
지주에게 인질로 잡혀있던 여섯 존자를 구하려 나섰다는 것 또한
모두 자신이 책임지고 도모한 것이라는 말씀 등등을 전하고 있다.
그는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일 거사가 실패했을 경우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럴지언정 자신의 죽음이 백강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진 원치 않았다.
그 대목을 힘주어 백강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백강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저런 일들에서 그 분의 마음 쓰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그 분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두 말이다.
백강은 이제 자신에게 남겨진 임무가 무엇인지를 잘 안다.
환존이 목숨을 버려서까지 하고자 했던 과업을 전부 안다.
지체없이 그는 환종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은신하라...
주변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지금 퇴각하는 무림인들이 안전한 곳까지 대피할 수 있게 하라...
“환존의 명을 받듭니다!”
백강의 명령에 환종의 수하들은 일제히 존명을 외친다.
그것은 백강에게가 아니다.
바로 환존이라 했다.
그들에게 이제 백강은 새로운 환존인 것이다.
환종의 새로운 존자인 것이다.
그렇게 환종의 수하들은 소리없이 임무 수행을 위해 사라진다.
그런 모습을 저만치서 전부 지켜보고 있던 한 사내... 풍연.
잠시 머뭇거리더니 성큼 백강에게 나아가 정식 인사를 청한다.
“신지의 소지주... 였던 풍연. 환존을 뵙겠습니다.”
나른 분위기를 파악한 풍연은 그를 주저 없이 환존이라 칭하며 인사한다.
백강에게는 이미 풍연은 구면이다.
조금 편안해진 풍연은 이때다 싶은지 질문을 쏟아낸다.
갑자기 질문의 왕자가 되어버린 듯한 풍연이다.
그도 그럴 것이... 풍연에게는 거의 모든 상황들이 궁금하다.
다음은 풍연의 질문 리스트다.
1. 환종은 언제부터 지주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었나?
2. 환존은 지주의 정체를 완벽히 파악하고도 왜 그것을 알리지 않았나?
다음은 백강의 대답이다.
그 의심의 시작은 무림에서부터였다.
팔대기보전을 계기로 신지는 무림의 저력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고...
특히 환종은 많은 인원을 무림에 파견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환영문이 탄생했고, 덕분에 자하신공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무림 최강이자 최악의 무공이었다.
최강이자 최악의 무공...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 강하지만 일반인은 쓸 수 없는 무공이라서 그렇고
워낙에 독특한 운공법이라서 함부로 운용 시 미치거나 폐인이 되어서 그렇다.
오죽했으면...
그 무공의 창시자인 자하마신조차도 주화입마가 되어 폐인이 되었을까!
그런데 이상한 점 또한 알게 되었다.
환종의 막강한 정보력에 의해 알게 된 것은 현재의 신지 지주의 무공이...
그러한 자하신공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참 이상했다.
당시엔 당연하게도 자하신공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었는데도...
신지의 누군가는 이미 자연스럽게 자하신공을 쓰고 있었으니....
헌데 더욱 이상한 사실은...
지주 뿐만 아니라 검종 일통을 이끌었던 과거의 지주들도 그랬다는 거다.
그들 또한 자하신공을 사용할 줄 알았다는 사실.
그것이 쉽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자하신공의 괴이성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오래 살지 못했다.
그때부터가 이상했다.
지주가 사망하고 새로운 지주가 등극되면 자연스럽게 자하신공을 썼다.
마치 같은 사람이 몸만 갈아타는 것처럼....
그런 것들이 환종의 정보망에 의해 파악된 기록들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니 이상한 점에 대해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입증하고 싶었으나 한동안 막연한 추측으로만 둘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아 지배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때문이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그런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어느날.
“그때 등장한게 바로 내 사제 한비광이었다네.”
백강의 입에서 드디어 한비광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눈을 휘둥그레 굴리며 놀라고 있을 뿐인 풍연.
한비광이 이렇게... 이런 식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게다.
허나, 지금 그런 설명을 하고 있는 이는 바로 환존이다.
한비광이 누군가?
바로 현재 지주의 친아들이 아닌가!
그의 아버지가 자하신공을 쓰는 신지의 지주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주의 진면목을 파악하기에는 최적의 인물이란 뜻이다.
그 부분을 간과할 리 없는 환존은 모든 정보력을 한비광에 집중시킨다.
그 대목에서 버럭 화를 내는 풍연이다.
즉, 그러려고 한비광을 미끼로 쓴 건 아니냐며 따지듯 묻는다.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는 한비광.
매유진의 설득에 마음을 돌리고 다시 돌아오던 중이었던 거다.
백강의 설명은 어디서부터 듣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풍연의 말처럼, 자신이 미끼로 이용당한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이유도, 굳이 구해줄 이유도 없었겠지.”
한비광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못해 약간은 화가 안 듯도 하다.
사형인 백강이 자신을 가로막은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는 한비광.
일단 실력 확인이랄까 평가랄까 뭐 그런 목적이 일단 하나 있었고...
진짜 이유는 흑풍회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탈출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한비광을 신지에서 빼내야 하는데 그때 흑풍회가 필요했을 테니까.
그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대결 운운 하며 시간을 끌었다는 거다.
그것이 한비광이 파악하고 있는 그 이유다.
그렇게 따지듯이 추론을 던지고 대답을 기다리는 한비광.
백강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싸늘하지만 굳은 눈빛으로 한비광을 잠시 응시하는 백강.
뭔가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려는 참일까?
허나, 그의 대답은 깔끔한 긍정이다.
한비광의 추론이 정확했음을 인정하는 백강.
그러자 한비광은 더욱 언성을 높힌다.
어쩐지 백강에게 속아서 그런 대결도 벌이고 등등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영문도 모르고 뭔가에 홀린 듯 끌려만 다닌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로 인해 담화린이 잡혀갔다는 것이다.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이 빌어먹을 현실인 것이다.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자신이 아니었는가!
그저 철없는 철부지였다.
어느날 굴러들어가 덜컥 천마신군의 여섯 째 제자가 된 상황이다.
그런 사제에게 한 마디 귀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잖느냐고 따진다.
격앙된 목소리다.
냅다 버럭 화를 내는 한비광이 걱정스러운 풍연이 말리고 나선다.
좀 진정하라고...
“어쩌면 난 기적을 바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백강은 작심한 듯 입을 연다.
기적이라 했다.
계획이나 생각만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바라는 것.
그것을 말하고 있는 거다.
백강의 지금껏 수집한 정보를 통해 파악한 신지 지주라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자연스럽게 자하신공을 쓸 줄 알았다.
허나 그래서인지 대부분 단명의 운명이었다.
바로 자하신공의 부작용 때문이다.
특이한 기의 운용을 견디지 못한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지주는 달랐다.
마치 그는 자하신공에 최적화된 사람 같았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완벽하게 자하신공을 구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 아래 최고의 실력자란 뜻이다.
혼자의 힘으로도 능히 무림을 정복하고도 남을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자가 신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자네 어머니... 즉, 그의 부인 때문이었다네.”
백강의 설명이 거기까지 연결되자 한비광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로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백강의 판단인 즉슨,
그 이유는 자하마신의 혼이 씌였지만 인간일 때의 정신과 마음이...
아직은 그 육체를 제어하고 있음이었다.
한비광의 아버지는 자기 부인을 지키기 위해 육체를 포기하지 않고 있던 거다.
백강의 그 말이 맞다면 참으로 눈물겨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기꺼이 양도한 남편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지켜내고 싶었던 아버지였다.
“게다가 자네는 혼자 힘으로 신지 도존의 위치에 오른 자...그랬기에 기대를 했다.”
백강의 기대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한비광의 진짜 아버지와...
겨우 목숨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한비광의 어머니와...
한비광을 만나게 해주면... 그렇게 가족이 재회를 하게 된다면...
그렇게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면...
그들의 힘으로 육체를 속박하고 있던 자하마신의 혼마저도...
소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백강은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백강의 기대이자 신지의 희망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무림의 정파와 사파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이어진 백강의 설명을 다 듣고 있던 한비광.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지만 그러기엔 분노가 더 크다.
자신의 마음대로... 의지대로 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 아닌가!
자신은 그저 백강의 꾸민 계획의 일부였을 따름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미끼로 어쩌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있었던가?
“누가... 누가 멋대로.. 그런 기대를 하랬어?”
한비광은 분노에 치를 떤다.
마치 커다란 퍼즐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조각처럼 살아왔었던가?
좋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금 그가 화내는 까닭은 바로 상실의 아픔이 너무 컸다는 것이다.
자기 맘대로 기대를 하고는 그것을 위해 맘대로 계획을 짠거라니...
“당신... 당신의 기대 덕분에 난 엄마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화린이마저 잃게 되었어.”
마치 주먹이라도 날릴 듯이 성큼성큼 백강에게 다가서며 그는 외친다.
거의 절규에 가깝다.
이제는 엄마도 아빠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화린이마저 영영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어찌 분개하지 않을수 있으랴!
“그래... 자넨 분명 소중한 부모님의 아들이자 사랑스런 여인의 연인이겠지.”
백강의 진지한 멘트에 한비광은 성큼성큼 옮기던 발길을 우뚝 멈춘다.
철부지 아이에게 타이르는 어른 같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네는 천마신군의 여섯 번째 제자이자 신지 지주의 아들. 그리고 화룡도의 주인이자 신지의 도존이기도 하네.”
묵직하다.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사사로운 개인적인 관계만을 집착하고 있던 한비광에게 그런 말이라니...
아들이자 연인이고만 싶어 했을지도 모를 한비광이었지 않았을까?
허나, 백강은 더 큰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대의명분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꿀 사명을 일깨워주려 함인가?
한비광은 그 말에 몸이 순간적으로 굳은 것만 같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한 느낌이다.
개인적인 가족에 대한 슬픔과 애인을 잃은 것에 대한 슬픔...
그것만이 지금의 한비광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면 이젠 아니라는 거다.
백강은 그 부분을 아프지만 격렬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마치 자신 또한 그러하다는 듯이 말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슬픔만 보지 말고 주위를 좀 둘러보란다.
무림에서 달려와 이곳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한비광이란 사람에게 걸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신지인으로 평생을 살아오다 갑자기 한비광의 편에 선 사람들.
그 와중에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
한비광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생각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는 백강이다.
그 기대가 막말로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해도 그건 이미 본질이 아니다.
이미 혼자의 몸이 아닌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운명 같은 거다.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 선을 넘어섰기 때문인 거다.
누군가를 이끄는 존재가 되는 순간부터 저절로 생기는 기대와 의무.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어찌 그들 몫이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궤변 늘어놓지 마!!! 난, 당신이 미리 이 사실을 알려만 줬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거야! 난....”
백강의 충분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한비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너무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허나 백강의 생각은 확연히 한비광과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운명이라서다.
한비광이 짊어진 운명은 아무리 피해 다녀도 결국은 찾아갔을 거라는...
잠시 시간을 늦출 수는 있어도 끝내 회피하진 못했을 거라는...
부모가 목숨을 잃은 것도... 연인이 그럴 위험에 처한 것도,..
그런 모든 일들이 못내 유감스럽지만 그것 또한 마주쳐야만 할 운명,
그러니 귀띔을 미리 주었던 아니었던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비광의 표정은 점점 사나워진다.
이를 악물고 백강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만 있다.
분노가 치밀어 도저히 어쩌지 못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태다.
지금껏 설명을 열심히 해준 백강의 말이 양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사실은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다시 부들부들 몸을 떨며 갑자기 주먹을 꽈득~ 하며 힘주어 쥐는 한비광.
금방이라도 백강에게 한 대 주먹을 날릴 것만 같은 기세다.
그동안의 백강의 설명이 모두 헛수고가 되려는 순간이다.
이쯤에서 백강과 한 판 뜨려는 한비광의 분노가 표출되려는 참이다.
대의명분이니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고통이니 운명이니 어쩌구 저쩌구.
그딴 것들은 다 필요 없고 그저 상실의 슬픔과 분노가 전부인 한비광이다.
운명을 거부하려는 한비광의 몸짓일 수도 있다.
바로 그때다.
“도존!!”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 하나 귓가를 울린다.
도존이라 했다.
백강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에 끼어든 한 단어, 도존이라 했다.
그 말에 본능적으로 멈칫...
한비광은 뒤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누굴까?
타이밍도 참 절묘하다.
<에필로그>
이번에는 설명이 상당히 많아 편집에 나름 애를 먹었습니다.
일일이 다 적자니 너무 양이 많고...
그렇다고 대충 하자니 상황 묘사가 빈약해지고...
그래서 힘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네...네.... ^^;
어쨌든 이렇게 신지와 한비광의 비밀이 하나 더 풀린 셈입니다.
자하마신과 자하신공 그리고 신지의 수장들 이야기.
한비광을 더욱 한비광 답게 만들어주는 비밀 중의 하나겠습니다.
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곧 완결을 볼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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