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강호 528화 --- 무승부 그리고 매유진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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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08-03 23:15 조회12,696회 댓글1건본문
열혈강호 528화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170803목 휴가 첫날, 무더위와 싸우며 열강 숙제를...
<프롤로그>
문득 거실 창밖 벚나무에서 매미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다.
여름의 중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슬슬 떠날 준비를 하나보다.
아무튼 몹시 시끄럽다. ^^;
오늘이 휴가 첫날인데 후다닥 숙제를 해치울 심산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생각한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을까?
신지에도 맛집이 있을까?
그들은 끼니를 때워가며 싸우고는 있을까?
<아, 담화린>
“응?”
누구의 외마디 내뱉음?
이 자는 신지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바로 그 자다.
그의 주의를 끄는 상황이 갑자기 벌어지고 있기에 그렇다.
그가 시선을 돌려 바라보는 그곳이 뭔가 심상치 않다.
“의외로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연달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밝은 섬광이 뿜어져 나온다.
그 자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바로 담화린이 있다.
그녀의 몸에서 굉장히 눈부신 빛이 발산되고 있는 상황.
천하제일 극강의 고수인 신지 주군의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다.
허나,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런 현상은 매우 낮설기는 하다.
담화린...
그녀의 몸은 수직으로 곧게 서있다.
두 눈은 언제 뜰지 기약하지 않은 체 감겨있다.
그녀의 온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전투 모드의 패왕귀면갑.
귀면갑의 두 눈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것만 같다.
고 오 오 오 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몸은 지금 허공에 둥실 떠 있다.
공중부양.
뿐만 아니다.
작은 알갱이 크기의 에너지 덩어리로 보이는 것들이 잔뜩 있다.
그것들은 담화린의 몸을 휘감으며 에워싸고 있다.
마치 방어막이라도 친 것만 같은 모양이다.
게다가 반짝 반짝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눈이 부실 정도다.
만일 컬러로 표현한다면 분명 황금색을 입히고 싶다.
그런 담화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그래, 알겠군. 이곳 봉신구의 기운이 놈들을 일깨웠던 건가?”
음...
이건 또 뭔 소리?
이 자가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지 않은가?
봉신구 어느곳에 고이고이 모셔둔 담화린은 여전히 의식이 없고...
그런 그녀의 온몸에서 갑자기 섬광 같은 광채가 번쩍이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인가?
해답은 역시 봉신구...
신비로운 기운이 담화린에게 뭔가 변화를 가하고 있다.
신지 수장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무엇!
봉신구에 가득한 그 어떤 기운....
그가 말하는 “놈들”은 또 누구를 일컬음인가?
그의 말이 맞다면, 봉신구의 기운이 놈들을 일깨웠고 그로인해 지금 담화린의 몸에 뭔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거다. 그런 모양들이 그에게는 재미로 느껴지나 보다. 그저 담화린을 보며 이런 현상으로 인해 곧 벌어질 재미있는 일들을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아... 이제 넌 어떤 선택을 할 거냐? 사음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봉신구의 기운이 아직은 정체를 모를... 놈들을 일깨웠고...
그래서 담화린의 온몸이 광채를 뿜기 시작했는데...
그 장면에서 다짜고짜 사음민을 떠올리며 선문답을 하다니.
한창 격전장을 지휘하고 있을 사음민이라니 말이다.
선택이라고 했다.
사실상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모두 사음민의 전략이었다.
그것을 승인해주고 일단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는 신지 수장이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며 사음민의 능력과 충성심을 시험하는 거다.
그것을 알기에 사음민은 더욱 죽기 살기로 작전에 임하고 있는 거다.
그런 사음민이 과연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다.
봉신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담화린의 신비한 변화...
그것을 사음민은 아직은 모르고 있을 테니 더욱 복잡하다.
그것까지는 전략에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음민의 임기웅변을 기대하며 계속 기다려주는 신지 수장이다.
담화린을 제압하고 마령검을 손에 쥔 사음민.
그 덕분에 지금 진풍백과 대등하게 대결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마령검의 주인인 담화린에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봉신구의 기운이 놈들을 깨웠다는 것은....
혹시 팔대신보를 하나씩 하나씩 깨우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의식 없이 쓰러져 있던 매유진이 벌떡 일어난 것도 그것 때문?
그렇다면 복마화령검 또한 담화린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음민의 손에 있는 마령검은 언제까지 얌전히 있을 것인가?
<무승부>
최고의 명승부였다.
무한내공의 진풍백 vs. 마령검의 사음민
두 사나이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날 것만 같은 대결.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두 사람은 없다.
이제 이 대결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다.
혈우만건곤, 혈우폭풍, 화령방패, 사환신검, 신기휘혼참...
거침없이 나름의 필살기를 펼치며 초접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두 사내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내상을 교환하고 있다.
엄청난 내공을 소진하며 그렇게 두 사람은 지쳐가고 있다.
강자와 강자, 고수와 고수의 대결은 그런 것이다.
누가 더 완벽한지, 누가 더 실수를 하지 않는지의 싸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가 더 방심하지 않고 집중하는지의 승부다.
진풍백의 진기가 거의 바닥에 다다르고 있다.
아니, 이미 바닥을 찍고 있는 상황.
이제 몇 번의 공격과 방어를 해낼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하는 정도랄까?
그것을 사음민은 알아채버렸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혈우환은 마령검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기의 힘이 더해져야 위력을 내는 혈우환인데 그게 한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승부의 추는 확연히 기울었다는 뜻이다.
마령검을 혈우환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대로 베인다는 의미다.
혈우환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는 진풍백은 담담하다.
극적인 최후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건만 이정도가 그런 순간이라니...
진풍백이 그렇게 최후의 순간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느닷없이 매유진의 화살이 날아든 것이다.
신지 수장이 뇌까린... 봉신구의 기운이 일깨운 그 놈들...
그로인해 그러한 것인지 아직은 명백하진 않지만 그럴 것만 같다.
어쨌거나 현무파천궁이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이라고나 할까?
진풍백으로서는 천우신조라고 할 밖에 없다.
사음민으로서는 다 잡은 고기를 눈앞에서 놓치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 화살의 정체를 사음민은 대번에 알아챈다.
이것은 분명 현무파천궁이다.
“난처하게 됐군. 저 놈을 상대하려고 간신히 마령검과 균형을 맞춰가며 싸웠는데...”
그것이 사음민의 고민이다.
마령검은 그런 검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깨진다면, 순식간에 검을 쥔 자를 잡아먹는...
자신을 쥔 자를 폭주시켜 실성하게 만들어버리는 검이 바로 마령검!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사음민이기에 싸우는 내내 긴장했었다.
상대와 대결하면서도 마령검과의 균형도 맞춰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분명히 지금 승기를 잡긴 잡았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녀석을 끝장낼 수 있다.
허나, 자신 또한 마령검과의 힘의 균형이 못내 신경쓰인다.
그런데....
돌발변수 하나가 또 발생하고 있다.
사음민의 눈에 저만치 진풍백의 이상한 행동이 꽂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진풍백의 발작!
............ 제... 제길!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진풍백은 가슴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지녔지만 그 반대급부로 천형의 체질을 받은 몸.
마치 시한폭탄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것 같은 진풍백이었다.
그가 늘 염세적이고 반항아 짓을 하는 것 또한 그런 연유가 크다.
그런데 하필 이런 중대한 순간에 발작이 시작되다니....
이런 상태라면 적의 단 한 번의 공격도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
사음민은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과 판단을 시도한다.
분명히 저 자의 몸에 문제가 발생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다가 갑자기 저럴 리는 없다.
혹시 허허실실 혹은 뭔가 유인작전은 아닐까?
허나, 저 자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검은 망토의 부하 표정이 심상찮다.
저들끼리는 뭔가를 알고 있다.
저런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결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지금 저 앞에서 격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작 증세를 보이는 저 자.
이건 농담도 장난도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이겼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의 공격으로 놈을 죽일 수 있는 기회다.
그렇게 사음민은 결단을 내린다.
주저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 마당에 다 잡은 고기를 놔줄 순 없다.
그런데...
마령검이 어쩐지 이상하다.
검을 쥔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음민은 더욱 생각이 복잡해진다.
주변인들은 모르겠지만 본인은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다.
마령검의 기운이 어느새 자신의 기운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 녀석과 싸우느라 생각보다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해버린 탓이다.
아... 단 일초, 단 한 번의 공격이면 충분한데...
............ 치잇... 역시 무리인가...? ............
못내 아쉬워하는 사음민이다.
그러나 역시 사음민은 나름 냉철한 지략가요 큰 그림을 보는 사내다.
사소한 욕심과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너무 잘 안다.
지금 저 놈을 죽이기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마령검에게 먹힐 수 있다.
그럴 확률이 비록 적더라도 지금 그 게임에 자신을 맡길 수는 없는 법.
그렇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사음민 스타일이다.
철 컥
마령검이 칼집에 꽂히는 소리다.
결국 사음민은 더 이상의 모험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이거 모처럼 쥔 검이다 보니, 아무래도 흥을 너무 낸 것 같군요.”
“훗... 도망이냐?”
“좋은 만남은 항상 헤어짐이 아쉬운 법이지요.”
두 사나이의 대화가 참 살갑다.
조금 전까지 서로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던 그들이 아닌가!
아쉬움을 삭히며 마령검을 다시 거두는 사음민이 던진 한 줄의 어록.
마지막까지 예의를 잃지 않는 바른 사나이다.
진풍백은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을까?
동귀어진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던 그였다.
원하던 멋진 최후의 모습이 아니라서 그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허나 싸움을 접는 상대방에게 기껏 내뱉는 말이 도망이냐? 라니...
역시 진풍백은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스타일?
그런 적에게 헤어짐의 아쉬움이 좋은 만남이었기에 그렇다는 사음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보자는 멘트를 툭 남기는 사라진다.
사라지는 실력 또한 최고수급이다.
진풍백의 눈앞에서 단 0.5초 만에 완전히 그 흔적을 없애니 말이다.
<매유진의 원수>
어쨌거나 그렇게 치열했던 대결은 한 순간에 마무리가 되었다.
엄청난 내상은 물론 발작까지 시작된 진풍백은 고통에 몸을 가누기 힘들다.
한순간에 풀린 긴장까지 더해지면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린다.
바로 그때...
진풍백의 등뒤에 누군가 나타나 서있다.
언제부터 와있었던 걸까?
사음민이 있을 때는 아니었을 테니 방금 당도한 듯하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는 진풍백의 눈에 여인 하나 들어온다.
매유진 궁사.
주변은 일순간에 술렁인다.
조금 전 날아들었던 강력한 공격의 주인공임을 단번에 알아챈다.
은총사로서도 사실관계는 알겠으나 그 위력은 납득이 좀 어렵다.
자기가 아는 매유진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매유진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진풍백이 도움을 받은 모양새다.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닐지언정 말이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진풍백.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런 진풍백을 너무도 차분하게 당당하게 쳐다보고 있는 매유진.
두 사람의 분위기가 한껏 묘하다. 뭔가 이상하다.
이윽고 입은 여는 매유진.
“당신인가요? 제 가족을 죽인 원수가?”
뜬금없이 던지는 여인의 질문에 진풍백은 뭔소리냐고 반문할 수밖에.
매유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말을 이어붙인다.
“천마신군 제자에 의해 멸문한 대도문의 매준기 문주가 제 아버지예요.”
그제야 뭔가 상황 파악이 된다.
천마신군의 제자를 찾아내 복수하고자 하는 딸이 저 여인이다.
가만있자...
그게 대도문이었던가?
그때 왜 그 가문에 갔으며 왜 멸문까지 시켰어야 했던가?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날의 기분이 그냥 그러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대도문인지 소도문인지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저 앞에 복수심 가득한 여인 하나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그게 대도문이었나보다.
저 여인이 말하는 천마신군의 제자는 그렇다면 내가 맞을 게다.
눈빛을 보니 오직 복수심으로 가득하다.
흠....
뭔가 멋진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는데...
아까 신지놈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지경에까지 가기도 했었는데...
그 놈에게 죽는 것은 정말 원치 않았기에 그리 안 된건 참 다행이다.
이번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겠다는 여인이다.
부모의 원수를 갚게 해주는 것은 뭐, 그리 나쁘지 않겠다.
인과응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 몸의 상태가 너무 최악이다.
천형을 지닌 빌어먹을 체질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평소 생각하던 멋진 최후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발작을 일으키다가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것보단 낫겠다.
적어도 자기 부모의 원수를 갚아 한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리라.
하필이면 이런 발작 타이밍에 나타난 것 또한 운명일 수 있지 않은가!
저 여인으로서는 참 좋은 순간이다.
“흔치 않은 기회거든. 날 죽일 수 있는 건...”
“그 말은?”
“그래. 내가 니가 찾던 원수다.”
촤 아 악
두 사람의 대화는 짧고 명확했다.
서로의 사실 관계를 묻고 답한 것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드디어 원수를 눈앞에 두게 된 매유진은 주저 없이 시위를 당긴다.
화살은 진풍백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시위를 놓는 순간 상대의 가슴은 구멍이 뚫릴 것이다.
가족의 원수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치는 매유진.
그때 황급히 은총사가 기다려 달라며 외친다.
복수심은 알겠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다.
원수라는 것은 알겠으나 지금 상황은 아군이라는 거다.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된다는 거다.
부디 다음 기회에 복수를 하라는 거다.
그러자 진풍백의 콧방귀가 터진다.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촌극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나보다.
다음 기회에 복수를 해도 된다는 그 멍청한 말 때문이다.
진풍백은 은총사를 노려본다.
아무 때나 찾아가 원수를 갚으면, 죽여버리면 된다는 그 멘트.
감히 천마신군의 제자를 두고 그게 할 소린가?
천마신군 제자라는 명예를 걸고 그 말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장마다 꼴뚜기냐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라는 게 있기나 할 거 같으냐?”
진기는 이미 바닥이 났고 발작은 일단 시작이 되어버렸고...
아까 신지놈과 싸우느라 모든 내공은 소진이 된 지금의 상태.
이런 상황은 살면서 진풍백 자신도 생전 처음 겪어보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누가 누구에게 복수니 원수니 지껄인단 말인가!
사부님 이외에 자신을 어찌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믿는 내게 말이다.
“죽여라. 지금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없다! 어서!!”
진풍백의 표정은 결연하다.
마치 어서 죽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로 보인다.
그렇게 당당히 나서자 오히려 당황스러운 매유진이다.
시위를 잔뜩 당기고 있고 금방이라도 심장에 구멍을 낼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동안 한으로 맺혀있던 부모님의 원수도 갚을 수 있는데...
왜 망설이게 되고 시위를 놓지 못하고 있는지 그녀도 혼란스럽다.
“그만!!”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협곡을 울린다.
일순간 집중된 시선의 끝에 천마신군 첫째 제자인 백강이 있다.
“그만들 해둬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저벅저벅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다가서고 있는 진풍백의 대사형.
쓰러져있던 대사형이 마침내 기운을 차리셨는가.
성큼성큼 걸어 매유진의 곁에 우뚝 선 백강.
잔뜩 시위를 당기고 있는 그녀 등 뒤에 큰 산처럼 백강이 섰다.
매유진은 미동도 없이 백강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대가 진 사제에게 빚이 있는 줄은 몰랐다.”
“방해할 건가요?”
“그걸 잊으라고는 않겠다. 다만, 복수는 이곳을 나간 뒤로 미뤄줄 수는 없겠나?”
<에필로그>
이번 이야기에서 몇 가지 굵직한 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습니다.
봉신구에 갇혀있는 담화린에게 생기고 있는 신비한 변화.
그것을 재미있어 하는 신지 수장.
그런 변수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을 사음민의 다음 전략은?
치열했던 진풍백과 사음민의 대결이 급작스럽게 마무리 되었고.
매유진이 마침내 찾아낸 부모의 원수 진풍백.
이렇게 최후를 맞이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의 진풍백은 죽음을 자초하고.
그런 매유진을 말리고 있는 백강.
그렇게 몇 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백강의 부탁을 과연 그녀가 무시할 수 있을는지.
백강이 얼마나 개고생을 하며 자신을 돌봐주며 구출해줬는지 알기에...
그런 생명의 은인이 지금 자신의 복수를 말리고 나섰다는 상황이 아닌가.
지금 이 시위만 놓으면 가문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없을 거라는 그 말.
저 자의 그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님을 매유진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순간을 잘게 쪼개며 고민이 깊어만 가는 매유진이다.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170803목 휴가 첫날, 무더위와 싸우며 열강 숙제를...
<프롤로그>
문득 거실 창밖 벚나무에서 매미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다.
여름의 중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슬슬 떠날 준비를 하나보다.
아무튼 몹시 시끄럽다. ^^;
오늘이 휴가 첫날인데 후다닥 숙제를 해치울 심산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생각한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을까?
신지에도 맛집이 있을까?
그들은 끼니를 때워가며 싸우고는 있을까?
<아, 담화린>
“응?”
누구의 외마디 내뱉음?
이 자는 신지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바로 그 자다.
그의 주의를 끄는 상황이 갑자기 벌어지고 있기에 그렇다.
그가 시선을 돌려 바라보는 그곳이 뭔가 심상치 않다.
“의외로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연달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밝은 섬광이 뿜어져 나온다.
그 자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바로 담화린이 있다.
그녀의 몸에서 굉장히 눈부신 빛이 발산되고 있는 상황.
천하제일 극강의 고수인 신지 주군의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다.
허나,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런 현상은 매우 낮설기는 하다.
담화린...
그녀의 몸은 수직으로 곧게 서있다.
두 눈은 언제 뜰지 기약하지 않은 체 감겨있다.
그녀의 온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전투 모드의 패왕귀면갑.
귀면갑의 두 눈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것만 같다.
고 오 오 오 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몸은 지금 허공에 둥실 떠 있다.
공중부양.
뿐만 아니다.
작은 알갱이 크기의 에너지 덩어리로 보이는 것들이 잔뜩 있다.
그것들은 담화린의 몸을 휘감으며 에워싸고 있다.
마치 방어막이라도 친 것만 같은 모양이다.
게다가 반짝 반짝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눈이 부실 정도다.
만일 컬러로 표현한다면 분명 황금색을 입히고 싶다.
그런 담화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그래, 알겠군. 이곳 봉신구의 기운이 놈들을 일깨웠던 건가?”
음...
이건 또 뭔 소리?
이 자가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지 않은가?
봉신구 어느곳에 고이고이 모셔둔 담화린은 여전히 의식이 없고...
그런 그녀의 온몸에서 갑자기 섬광 같은 광채가 번쩍이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인가?
해답은 역시 봉신구...
신비로운 기운이 담화린에게 뭔가 변화를 가하고 있다.
신지 수장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무엇!
봉신구에 가득한 그 어떤 기운....
그가 말하는 “놈들”은 또 누구를 일컬음인가?
그의 말이 맞다면, 봉신구의 기운이 놈들을 일깨웠고 그로인해 지금 담화린의 몸에 뭔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거다. 그런 모양들이 그에게는 재미로 느껴지나 보다. 그저 담화린을 보며 이런 현상으로 인해 곧 벌어질 재미있는 일들을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아... 이제 넌 어떤 선택을 할 거냐? 사음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봉신구의 기운이 아직은 정체를 모를... 놈들을 일깨웠고...
그래서 담화린의 온몸이 광채를 뿜기 시작했는데...
그 장면에서 다짜고짜 사음민을 떠올리며 선문답을 하다니.
한창 격전장을 지휘하고 있을 사음민이라니 말이다.
선택이라고 했다.
사실상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모두 사음민의 전략이었다.
그것을 승인해주고 일단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는 신지 수장이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며 사음민의 능력과 충성심을 시험하는 거다.
그것을 알기에 사음민은 더욱 죽기 살기로 작전에 임하고 있는 거다.
그런 사음민이 과연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다.
봉신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담화린의 신비한 변화...
그것을 사음민은 아직은 모르고 있을 테니 더욱 복잡하다.
그것까지는 전략에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음민의 임기웅변을 기대하며 계속 기다려주는 신지 수장이다.
담화린을 제압하고 마령검을 손에 쥔 사음민.
그 덕분에 지금 진풍백과 대등하게 대결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마령검의 주인인 담화린에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봉신구의 기운이 놈들을 깨웠다는 것은....
혹시 팔대신보를 하나씩 하나씩 깨우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의식 없이 쓰러져 있던 매유진이 벌떡 일어난 것도 그것 때문?
그렇다면 복마화령검 또한 담화린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음민의 손에 있는 마령검은 언제까지 얌전히 있을 것인가?
<무승부>
최고의 명승부였다.
무한내공의 진풍백 vs. 마령검의 사음민
두 사나이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 끝이 날 것만 같은 대결.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두 사람은 없다.
이제 이 대결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다.
혈우만건곤, 혈우폭풍, 화령방패, 사환신검, 신기휘혼참...
거침없이 나름의 필살기를 펼치며 초접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두 사내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내상을 교환하고 있다.
엄청난 내공을 소진하며 그렇게 두 사람은 지쳐가고 있다.
강자와 강자, 고수와 고수의 대결은 그런 것이다.
누가 더 완벽한지, 누가 더 실수를 하지 않는지의 싸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가 더 방심하지 않고 집중하는지의 승부다.
진풍백의 진기가 거의 바닥에 다다르고 있다.
아니, 이미 바닥을 찍고 있는 상황.
이제 몇 번의 공격과 방어를 해낼 수 있을지를 따져봐야 하는 정도랄까?
그것을 사음민은 알아채버렸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혈우환은 마령검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기의 힘이 더해져야 위력을 내는 혈우환인데 그게 한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승부의 추는 확연히 기울었다는 뜻이다.
마령검을 혈우환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대로 베인다는 의미다.
혈우환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는 진풍백은 담담하다.
극적인 최후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건만 이정도가 그런 순간이라니...
진풍백이 그렇게 최후의 순간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느닷없이 매유진의 화살이 날아든 것이다.
신지 수장이 뇌까린... 봉신구의 기운이 일깨운 그 놈들...
그로인해 그러한 것인지 아직은 명백하진 않지만 그럴 것만 같다.
어쨌거나 현무파천궁이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이라고나 할까?
진풍백으로서는 천우신조라고 할 밖에 없다.
사음민으로서는 다 잡은 고기를 눈앞에서 놓치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 화살의 정체를 사음민은 대번에 알아챈다.
이것은 분명 현무파천궁이다.
“난처하게 됐군. 저 놈을 상대하려고 간신히 마령검과 균형을 맞춰가며 싸웠는데...”
그것이 사음민의 고민이다.
마령검은 그런 검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깨진다면, 순식간에 검을 쥔 자를 잡아먹는...
자신을 쥔 자를 폭주시켜 실성하게 만들어버리는 검이 바로 마령검!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사음민이기에 싸우는 내내 긴장했었다.
상대와 대결하면서도 마령검과의 균형도 맞춰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분명히 지금 승기를 잡긴 잡았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녀석을 끝장낼 수 있다.
허나, 자신 또한 마령검과의 힘의 균형이 못내 신경쓰인다.
그런데....
돌발변수 하나가 또 발생하고 있다.
사음민의 눈에 저만치 진풍백의 이상한 행동이 꽂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진풍백의 발작!
............ 제... 제길!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진풍백은 가슴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지녔지만 그 반대급부로 천형의 체질을 받은 몸.
마치 시한폭탄을 가슴에 지니고 사는 것 같은 진풍백이었다.
그가 늘 염세적이고 반항아 짓을 하는 것 또한 그런 연유가 크다.
그런데 하필 이런 중대한 순간에 발작이 시작되다니....
이런 상태라면 적의 단 한 번의 공격도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
사음민은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과 판단을 시도한다.
분명히 저 자의 몸에 문제가 발생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다가 갑자기 저럴 리는 없다.
혹시 허허실실 혹은 뭔가 유인작전은 아닐까?
허나, 저 자를 도련님이라 부르는 검은 망토의 부하 표정이 심상찮다.
저들끼리는 뭔가를 알고 있다.
저런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결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지금 저 앞에서 격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작 증세를 보이는 저 자.
이건 농담도 장난도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이겼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의 공격으로 놈을 죽일 수 있는 기회다.
그렇게 사음민은 결단을 내린다.
주저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 마당에 다 잡은 고기를 놔줄 순 없다.
그런데...
마령검이 어쩐지 이상하다.
검을 쥔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사음민은 더욱 생각이 복잡해진다.
주변인들은 모르겠지만 본인은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다.
마령검의 기운이 어느새 자신의 기운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 녀석과 싸우느라 생각보다 너무 많은 진기를 소모해버린 탓이다.
아... 단 일초, 단 한 번의 공격이면 충분한데...
............ 치잇... 역시 무리인가...? ............
못내 아쉬워하는 사음민이다.
그러나 역시 사음민은 나름 냉철한 지략가요 큰 그림을 보는 사내다.
사소한 욕심과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너무 잘 안다.
지금 저 놈을 죽이기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마령검에게 먹힐 수 있다.
그럴 확률이 비록 적더라도 지금 그 게임에 자신을 맡길 수는 없는 법.
그렇게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사음민 스타일이다.
철 컥
마령검이 칼집에 꽂히는 소리다.
결국 사음민은 더 이상의 모험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이거 모처럼 쥔 검이다 보니, 아무래도 흥을 너무 낸 것 같군요.”
“훗... 도망이냐?”
“좋은 만남은 항상 헤어짐이 아쉬운 법이지요.”
두 사나이의 대화가 참 살갑다.
조금 전까지 서로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던 그들이 아닌가!
아쉬움을 삭히며 마령검을 다시 거두는 사음민이 던진 한 줄의 어록.
마지막까지 예의를 잃지 않는 바른 사나이다.
진풍백은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을까?
동귀어진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던 그였다.
원하던 멋진 최후의 모습이 아니라서 그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허나 싸움을 접는 상대방에게 기껏 내뱉는 말이 도망이냐? 라니...
역시 진풍백은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스타일?
그런 적에게 헤어짐의 아쉬움이 좋은 만남이었기에 그렇다는 사음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보자는 멘트를 툭 남기는 사라진다.
사라지는 실력 또한 최고수급이다.
진풍백의 눈앞에서 단 0.5초 만에 완전히 그 흔적을 없애니 말이다.
<매유진의 원수>
어쨌거나 그렇게 치열했던 대결은 한 순간에 마무리가 되었다.
엄청난 내상은 물론 발작까지 시작된 진풍백은 고통에 몸을 가누기 힘들다.
한순간에 풀린 긴장까지 더해지면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린다.
바로 그때...
진풍백의 등뒤에 누군가 나타나 서있다.
언제부터 와있었던 걸까?
사음민이 있을 때는 아니었을 테니 방금 당도한 듯하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는 진풍백의 눈에 여인 하나 들어온다.
매유진 궁사.
주변은 일순간에 술렁인다.
조금 전 날아들었던 강력한 공격의 주인공임을 단번에 알아챈다.
은총사로서도 사실관계는 알겠으나 그 위력은 납득이 좀 어렵다.
자기가 아는 매유진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매유진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진풍백이 도움을 받은 모양새다.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닐지언정 말이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진풍백.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런 진풍백을 너무도 차분하게 당당하게 쳐다보고 있는 매유진.
두 사람의 분위기가 한껏 묘하다. 뭔가 이상하다.
이윽고 입은 여는 매유진.
“당신인가요? 제 가족을 죽인 원수가?”
뜬금없이 던지는 여인의 질문에 진풍백은 뭔소리냐고 반문할 수밖에.
매유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말을 이어붙인다.
“천마신군 제자에 의해 멸문한 대도문의 매준기 문주가 제 아버지예요.”
그제야 뭔가 상황 파악이 된다.
천마신군의 제자를 찾아내 복수하고자 하는 딸이 저 여인이다.
가만있자...
그게 대도문이었던가?
그때 왜 그 가문에 갔으며 왜 멸문까지 시켰어야 했던가?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날의 기분이 그냥 그러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대도문인지 소도문인지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저 앞에 복수심 가득한 여인 하나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그게 대도문이었나보다.
저 여인이 말하는 천마신군의 제자는 그렇다면 내가 맞을 게다.
눈빛을 보니 오직 복수심으로 가득하다.
흠....
뭔가 멋진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는데...
아까 신지놈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지경에까지 가기도 했었는데...
그 놈에게 죽는 것은 정말 원치 않았기에 그리 안 된건 참 다행이다.
이번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겠다는 여인이다.
부모의 원수를 갚게 해주는 것은 뭐, 그리 나쁘지 않겠다.
인과응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 몸의 상태가 너무 최악이다.
천형을 지닌 빌어먹을 체질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평소 생각하던 멋진 최후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발작을 일으키다가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것보단 낫겠다.
적어도 자기 부모의 원수를 갚아 한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리라.
하필이면 이런 발작 타이밍에 나타난 것 또한 운명일 수 있지 않은가!
저 여인으로서는 참 좋은 순간이다.
“흔치 않은 기회거든. 날 죽일 수 있는 건...”
“그 말은?”
“그래. 내가 니가 찾던 원수다.”
촤 아 악
두 사람의 대화는 짧고 명확했다.
서로의 사실 관계를 묻고 답한 것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
드디어 원수를 눈앞에 두게 된 매유진은 주저 없이 시위를 당긴다.
화살은 진풍백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시위를 놓는 순간 상대의 가슴은 구멍이 뚫릴 것이다.
가족의 원수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치는 매유진.
그때 황급히 은총사가 기다려 달라며 외친다.
복수심은 알겠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다.
원수라는 것은 알겠으나 지금 상황은 아군이라는 거다.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된다는 거다.
부디 다음 기회에 복수를 하라는 거다.
그러자 진풍백의 콧방귀가 터진다.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촌극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나보다.
다음 기회에 복수를 해도 된다는 그 멍청한 말 때문이다.
진풍백은 은총사를 노려본다.
아무 때나 찾아가 원수를 갚으면, 죽여버리면 된다는 그 멘트.
감히 천마신군의 제자를 두고 그게 할 소린가?
천마신군 제자라는 명예를 걸고 그 말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장마다 꼴뚜기냐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라는 게 있기나 할 거 같으냐?”
진기는 이미 바닥이 났고 발작은 일단 시작이 되어버렸고...
아까 신지놈과 싸우느라 모든 내공은 소진이 된 지금의 상태.
이런 상황은 살면서 진풍백 자신도 생전 처음 겪어보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누가 누구에게 복수니 원수니 지껄인단 말인가!
사부님 이외에 자신을 어찌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믿는 내게 말이다.
“죽여라. 지금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없다! 어서!!”
진풍백의 표정은 결연하다.
마치 어서 죽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로 보인다.
그렇게 당당히 나서자 오히려 당황스러운 매유진이다.
시위를 잔뜩 당기고 있고 금방이라도 심장에 구멍을 낼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동안 한으로 맺혀있던 부모님의 원수도 갚을 수 있는데...
왜 망설이게 되고 시위를 놓지 못하고 있는지 그녀도 혼란스럽다.
“그만!!”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협곡을 울린다.
일순간 집중된 시선의 끝에 천마신군 첫째 제자인 백강이 있다.
“그만들 해둬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저벅저벅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다가서고 있는 진풍백의 대사형.
쓰러져있던 대사형이 마침내 기운을 차리셨는가.
성큼성큼 걸어 매유진의 곁에 우뚝 선 백강.
잔뜩 시위를 당기고 있는 그녀 등 뒤에 큰 산처럼 백강이 섰다.
매유진은 미동도 없이 백강에게 집중하고 있다.
“그대가 진 사제에게 빚이 있는 줄은 몰랐다.”
“방해할 건가요?”
“그걸 잊으라고는 않겠다. 다만, 복수는 이곳을 나간 뒤로 미뤄줄 수는 없겠나?”
<에필로그>
이번 이야기에서 몇 가지 굵직한 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습니다.
봉신구에 갇혀있는 담화린에게 생기고 있는 신비한 변화.
그것을 재미있어 하는 신지 수장.
그런 변수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을 사음민의 다음 전략은?
치열했던 진풍백과 사음민의 대결이 급작스럽게 마무리 되었고.
매유진이 마침내 찾아낸 부모의 원수 진풍백.
이렇게 최후를 맞이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의 진풍백은 죽음을 자초하고.
그런 매유진을 말리고 있는 백강.
그렇게 몇 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백강의 부탁을 과연 그녀가 무시할 수 있을는지.
백강이 얼마나 개고생을 하며 자신을 돌봐주며 구출해줬는지 알기에...
그런 생명의 은인이 지금 자신의 복수를 말리고 나섰다는 상황이 아닌가.
지금 이 시위만 놓으면 가문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없을 거라는 그 말.
저 자의 그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님을 매유진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순간을 잘게 쪼개며 고민이 깊어만 가는 매유진이다.
댓글목록
jkyk님의 댓글
jkyk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만화로 봤을때는 사실 좀 맥이 빠진다 싶은 연재였는데
글로보니 이렇게 흥미진진 한가요? ^^
엄청난 필력이라는 말씀밖에 드릴것이 없습니다.
담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