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 589화 스토리 == 신묘각주는 동귀어진 스위치를 작동시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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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4-07 22:34 조회1,858회 댓글0건본문
열혈강호 589화 스토리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
<프롤로그>
괴개가 어떤 사람인지... 신공이 바라보는 백리사우는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번 스토리입니다. 쇄절옥 에피소드도 이제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는 분위기이며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도 조금은 짐작이 가는 대목도 들어있습니다. 자, 그럼 이번에도 인내심을 잃지 않으며 가보실까요?
<삼원심공의 정수>
“내가 약한 무공 때문에 얼마나 얕잡아 보이는 줄 알아?”
신공은 버럭버럭 화를 내며 말을 쏘아 부치고 있다. 아까의 그 깍듯이 보여주었던 예의범절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다. 반말을 내뱉으며 속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거다. 그동안 그가 무림인들에게 느껴왔던 감정을 쏟아내기라도 할 모양이다. 저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신분도 위치도 실력도 시원찮은 처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걸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강해지려고...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고 싶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강한 무공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그야말로 치열하고 절실하게 살아오고 있었다는 신공의 푸념이랄지 한이랄지 울분이랄지를 절절히 외치고 있는 신공이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는 신공을 보며 괴개는 그저 황당한 표정이다.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더니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오히려 그 말이 신공을 조금 더 열받게 만든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며 놀려먹으려고 그랬다고 확신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괴개의 무공을 훔쳐 배우려는 수작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굳이 극순심천공이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 한 게 아니냐는 거다. 그걸 익히는 데 뭐? 30년이라고? 그게 놀려먹은 게 아니면 뭐냐?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30년은 커녕 10년쯤 배우다가 늙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물며 그런데 30년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놈도 늙어서 죽을 나이다.
“아닌데?”
더욱 멀뚱거리는 눈빛으로 참으로 순박한 눈빛으로 괴개는 신공을 바라보며 딱 한 마디를 건넨다. 그게 아니라고 말이다. 놀려먹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렷다. 자기는 그저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제대로 가르쳐주려고 했을 뿐이었다는 게 괴개의 속마음이었다.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신공도 표정이 한결 풀어진다. 그럼 정말로 그걸 가르쳐주려고 했냐고 되묻는데 그 말을 얼른 짤라 먹으며 괴개가 하는 말...
“하지만 지금 네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필요가 없는 거 같다.”
“너, 대체 사람을...”
또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신공에게 괴개는 그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준다. 상대방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으므로 이제는 고객 맞춤형으로 지도해주면 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바라는 것이 바로 당장 쓸 수 있는 강한 무공이라고 하니까 그에 맞는 처방을 주겠다는 것이다. 10년 20년씩 아니 그 이상 시간이 걸리는 춘야뇌몽무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걸 배우기 위해 극순심천공이라는 삼다문 전통의 내공을 익힐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다. 그런 무공은 아주 어릴때부터 입문해야 이삼십년 걸려 이룰 수 있는 것이니 그런 거 말고...
그동안 신공이 쌓아왔던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부터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바로 괴개가 내놓은 “신공을 위한 맞춤형” 처방인 것이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공이라니? 내가 익힌 운공법이라야...”
“삼원심공이지?”
“그... 그래. 무림에서 가장 흔하고 하찮은 그 운공법이야.”
신공이 겨우 그 흔하고 흔한 삼원심공을 익힌 이유는 딴 게 아니다. 너무 흔해서 개나 소나 다 배울 수 있고 수련할 수 있다는 이유가 전부다.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고 무슨무슨 문파에서 대대로 후계자들에게만 은밀하게 전해지는 유명한 내공심법은 감히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개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삼원심공이 흔한 것은 맞지만 그런만큼 많은 사람들이 익히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은 이미 검증이 끝난 확실한 운공법이라는 증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뭐, 몇가지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타 타 탁
괴개는 느닷없이 신공의 몸 몇 군데에 강하고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타격을 한다. 맥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자 동시에 신공의 몸에서 무엇인가 강한 기운이 발생되기 시작하고 그 기운을 당연하게도 신공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어때? 기혈이 뚫리니 몸이 한결 더 가볍게 느껴지지?”
그랬다.
괴개는 아까 신공의 맥을 짚어보면서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는 엄청나게 쌓였는데 몇 군데 기혈이 막혀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가 놀랍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 흔하고 평범한 삼원심공을 이렇게 진심으로 열심히 이렇게 많이 내공을 쌓아놓은 사람을 처음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공으로서는 괴개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가 알고 있던 삼원심공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를 모아 내공을 높이는 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리고 그렇게 쌓은 내공 운용법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해서 그저 초보자의 입문용 운공법으로 치부될 뿐, 그 본질은 훌륭한 운공법이라는 것이 바로 괴개가 생각하는 삼원심공의 모습이다. 그걸 모르고 사람들이 그저 유명하다는 소문만 듣고는 그런 무공을 배워보겠다고, 이름만 거창한 운공법들을 철새처럼 쫓아다니는 꼴이 영 못마땅한 괴개다. 그런면에서 그런 삼원심공으로 이렇게 많은 내공을 쌓아놓은 신공을 아낌없이 칭찬하는 괴개다.
“저... 정말 내 몸에 그런 내공이 쌓여있다고?”
조금전 기혈이 풀리자마자 갑자기 기가 충만해지는 것을 직접 느껴본 신공은 자신의 두 손바닥을 펼쳐 물끄러미 바라보며 믿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내가 보장하지! 너한테 다른 내공심법 따위는 필요없어! 넌 지금의 너로도 충분히 대단하니까 말이야!”
뭔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순수한 표정으로, 그리고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괴개는 엄지 척을 하며 괴개를 추켜세운다. 그런 괴개를 말없이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신공은 다시 예의를 갖추며 존댓말로 이런다.
“왜... 제게 이런 친절을 베푸시는 겁니까?”
“응? 왜냐니? 넌 내 친구잖아!”
그렇게 진심으로 말을 하고 있는데도 신공은 좀처럼 도무지 이런저런 말들이 믿기지가 않는다. 아무리 괴개의 심성이 착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 거다. 왜 자기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는지를 말이다. 신공으로서는 괴개를 처음 보게 된 것은 검마와의 대결 때 잠깐 본 게 다였다. 그 전에는 알지도 만난 적도 없었다. 단지 검마가 무림에 나타나 살육을 벌이고 있을 때 그 자를 막겠다고 나섰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처음 본 것이다. 다행히도 다섯 명이 힘을 합쳐 검마를 물리쳤고 그래서 무림인들은 그들을 정파의 천하오절이라 칭송했던 것이다. 그정도의 아주 짧은 만남이 전부인데 왜 이렇게까지.......
“너, 평생 그때처럼 누군가를 믿고 함께 목숨 걸고 싸워본 적이 있어? 없지? 아마 앞으로도 없을걸?”
그 부분이었다. 괴개가 신공을 친구로 인정한 상황 말이다. 그때 처음 서로 만났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서서 검마와 싸움을 함께 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경험을 나눴으면 그걸로도 충분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의 괴개인 것이다.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며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머뭇거리는 신공이다. 그저 자신은 무공도 형편없고 출신도 비천하고 무슨무슨 문파 출신도 아니고... 그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기계를 좀 잘 다룬다는 것뿐.
자꾸 신공이 주춤거리며 움츠러들자 괴개는 신공의 등짝을 한 대 갈기며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 그때 검마를 한바탕 싸울 때 제일 용감하게 나섰으면서 뭘 그리 자꾸 빼냐는 거냐며 좀 그러지 말라는 제스처다. 그 장면에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노라고.... 무림에 이런 용감한 놈이 있었구나 하며 연거푸 칭찬을 날려준다. 그런 괴개의 표정에서 어떤 과장도 거짓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때 생각했지. 이놈 열라 진지하네... 이런 놈이랑 친구 먹으면 정말 재밌겠다라고.”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너스레를 떤다. 사실 그때 무서워서 몇 번이나 오줌 쌀 뻔 했다고 말이다. 윙크를 슬쩍 날리면서 말이다.
“정말 다행이지 뭐야. 그때 죽었더라면 오줌싸개로 역사에 남을 뻔 했으니 말이야.”
괴개가 그렇게까지 너스레를 떨며 허풍도 섞어가며 주저리주저리 떠드니까 그제야 표정을 풀며 풋~ 하고 웃음을 지어보이는 신공이다. 이제 좀 기분이 나아졌나보다. 괴개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계속 죽상을 하고 있으면 그건 정말 예의가 아니지. 암...
괴개는 더욱 활짝 웃으며 다시 한번 신공의 목에 팔을 감으면서, 이제 오해도 풀렸으니, 술이나 한잔 하면서 좀 친해져 보자며 잡아끈다. 물론 술값은 신공이 내는 거라는 걸 잊지 않고 덧붙여 주면서 말이다.
<신묘각주의 마지막 승부수>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백리사우와의 그 소중하고 진정어린 과거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며 신묘각주는 자신을 친구로 인정해주었고 친구도 대해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괴개를 추억하고 있었다. 백리사우... 유일하게 나에게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주었던 친구... 단 하나의 내 친구...
신묘각주는 고개를 들어 허공에 여전히 둥실둥실 떠있는 한비광을 쳐다본다.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피싯~ 하고 옅은 미소를 짓는다.
“훗, 하긴... 그놈이라면 ....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자신의 원수였던 천마신군의 제자마저도 제자로 받아들이는게...”
허공에서 아래에 있는 신묘각주를 내려다보고 있던 한비광은 스윽스윽 허공에 계단이라도 있는 듯 즈려 밟으며 바닥에 내려선다.
“이봐요, 신공 어르신, 승부가 났다고 생각하면 그만하시죠. 보아하니 괴개 사부와 친분이 두터우신 거 같은데, 굳이 그런분과 끝장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한비광의 말을 들으면서 신묘각주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런 그에게.... “제가 잠시 열받아 손을 쓰긴 했지만 굳이 선배 어르신께 몹쓸 짓을 하고 싶지는...” 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니 신묘각주는 빡이 돌았달지 뚜껑이 열렸달지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놈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굳은 결심이 섰달지... 뭐 그런 오묘한 심정이 그의 표정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크크크크... 네놈마저도 날 동정하는 거냐?”
“.......”
“크크크...하긴 이건 충분히 동정받을 상황이긴 하군 그래...”
지금 이순간 신묘각주의 심정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만큼 복잡하고 심란하고 어지럽다. 백리사우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잠시나마 그 친구를 그리워했는데...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에게 반말을 듣질 않나... 이제는 뭐? 열 받아서 손을 썼다고? 끝장을 보고 싶지 않으니 항복하라고? 자기는 평생을 그토록 강한 무공을 갈망하며 발버둥을 쳤건만, 그래도 극순심천공의 근처에도 못갔거늘... 30년이 걸릴거라는 백리사우의 농담 아닌 농담이 아직도 귀에 선하거늘... 저 애송이는 극순심천공을 익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춘야뇌몽무라는 무공을 펼치고 있거늘... 그런 꼴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나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게 그렇게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다... 저 애송이가 극순심천공은 물론 천마신군의 무공까지 익혔는데 말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빡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괴개 사부는 제게 무공을 전수하며 무림의 평화가 위협받을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지금도 무겁게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크크크... 그래, 그래. 잘난 놈들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 내... 그렇게 잘난 놈들이 활개치는 게 더러워서 이런 기관까지 만들었던 건데...”
말을 마치자마자 신묘각주는 발 밑의 바닥을 발로 탁 탁 때려 밟아 기관을 다시 작동시킨다. 훌쩍 저만치로 도약해 자리를 옮기더니 이번엔 벽면을 손으로 탁 탁 탁 하고 기관 작동 스위치를 눌러댄다.
“아무리 발광을 해 부족한 걸 메꿔보려고 해도, 너같은 놈들한테는 어쩔 수 없나?”
그러자 여기저기 기관들이 철겅 철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한다. 우선 어지럽게 솟구쳐 있던 바닥 기둥들이 일제히 하강하여 바닥이 평탄해진다. 어? 그러고보니 기관 작동을 개시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기관들의 움직임을 다시 원위치로 복귀시킨 것이다.
“쇄절옥의 작동은 이제 멈췄다.”
“이제라도 제 뜻을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비광은 조금 전에 한 말이 약발이 먹혔다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끝내자는 말을 알아들은 줄로만 알았다. 이제 더 이상 싸움은 하지 않고 무사히 쇄절옥을 나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예의를 갖춰 인사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게 아니었다. 한비광의 착각이었다.
신묘각주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니 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나이가 평생을 살면서 갈구하던 그 꿈이 결국 허망했음을 눈앞에서 생생히 확인하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그런 극단적인 결심을 하기에 딱 안성맞춤이 아닌가.
“천부적인 무공 앞에서는 기계를 이용하는 수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이해했다. 그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직접 네놈이 오른 그 경지에 올라가 싸워보도록 하마.”
신묘각주는 오른 손의 검지와 중지를 나란히 모아 세우더니 뒤통수의 두 군데에 점혈을 찍고 이어서 가슴에 세 곳의 점혈을 강하게 찍는다.
그가 찍은 저 점혈들... 그 위치를 보는 순간 한비광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점혈들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라는 것을 말이다.
화 르 르
그러자 갑자기 신묘각주의 온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느껴지느냐? 내 몸의 타오르는 타오르는 기가? 어떠냐? 이제야 네놈을 상대할 정도의 자격이 되었다고 느껴지느냐?”
신묘각주의 얼굴은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변해있다. 눈에는 살기가 가득한 듯하다. 몸에서는 강한 기운이 힘차게 솟구치고 있다. 자폭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그런 모습을 본 한비광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이제 다시 반말이다.
“어리석은 짓 하지만! 나, 지금 당신이 하려는 그게 뭔지 알아. 당신... 그걸 쓰면 죽을 거야.”
한비광이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채고는 그걸 말린다며 한 마디 지껄이는 꼴이 지금 신묘각주의 눈에는 정말 정말 꼴불견이다. 아니, 자신의 자격지심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는 것과 진배없다. 한비광의 말을 듣자 신묘각주는 이빨을 꽉 깨물며 온몸을 부르르 떤다.
“으으으.... 네놈이... 네놈이 뭐라고 감히 내게 충고를 하는 거냐!!”
<쇄절옥 기관실>
각자의 자리에서 기관을 움직이고 멈추고 변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던 무사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뭔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진 점, 조용해도 너무너무 조용해진 점... 기관의 상태를 점검해보니 침입자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렇다면 그놈이 멈춰있다는 상태라는 건데... 각주님이 그자를 해치웠다면 물론 당연히 직접 그런 사실을 알려 오셨을텐데 그건 아니고...
쿠 르 릉
그때 갑자기 다시 울려퍼지는 굉음 하나. 쇄절옥 담당자들이 느끼기에는 이 충격음은 매우 이상스럽다. 쇄절옥이 작동 정지된 이런 상태에서는 절대 이런 정도의 충격이 올 리가 없는데 말이다. 그때 한 무사가 다급히 소리친다.
“부장님! 쇄절옥의 모든 기관 작동이 강제 정지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각주님이 조작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쾅~!! 쿠르릉
그때 다시 울려퍼지는 엄청난 굉음. 분명 이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주님과 침입자는 지금 어떤 상황일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부장은 쇄절옥이 있는 천정 방향을 올려다보며 잔뜩 걱정스럽고 불안한 표정으로 읊조린다. 대체 쇄절옥,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말이냐...
<4장로의 직감>
신지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네 명의 장로가 지금 그 굉음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커다란 기 또한 감지했다. 어딘가의 복도를 함께 모여 걷고 있던 4장로들은 일제히 우뚝 걸음을 멈춘다.
“이거 신묘각주 맞지?”
그들은 동시에 생각한다. 뭔가 이상한 일이 지금 벌어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신묘각주가 뿜어내는 기운을 그들은 동시에 감지한 것이고 그런 기운을 발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신묘각주는 이미 적을 함정에 몰아넣은 상태인데... 그런데 왜?
“나도 이해할 수가 없군. 왜 신묘각주가 굳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
“어쩌면...”
금구연이 내뱉은 그 한 마디... ‘어쩌면...’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나머지 세 명 또한 그 어쩌면이라는 의미를 알았기에 동시에 표정이 굳어진다. 심각하다.
<에필로그>
동귀어진을 택한 것일까요? 신묘각주는 이쯤에서 목숨을 버릴 결심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입니다. 뼛속까지 사무친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한낱 철부지의 소망으로 종결되었음을 생생히 확인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 또한 소거되어버린 듯한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아... 과연....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
<프롤로그>
괴개가 어떤 사람인지... 신공이 바라보는 백리사우는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번 스토리입니다. 쇄절옥 에피소드도 이제 서서히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는 분위기이며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도 조금은 짐작이 가는 대목도 들어있습니다. 자, 그럼 이번에도 인내심을 잃지 않으며 가보실까요?
<삼원심공의 정수>
“내가 약한 무공 때문에 얼마나 얕잡아 보이는 줄 알아?”
신공은 버럭버럭 화를 내며 말을 쏘아 부치고 있다. 아까의 그 깍듯이 보여주었던 예의범절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다. 반말을 내뱉으며 속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거다. 그동안 그가 무림인들에게 느껴왔던 감정을 쏟아내기라도 할 모양이다. 저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신분도 위치도 실력도 시원찮은 처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걸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강해지려고...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고 싶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강한 무공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그야말로 치열하고 절실하게 살아오고 있었다는 신공의 푸념이랄지 한이랄지 울분이랄지를 절절히 외치고 있는 신공이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는 신공을 보며 괴개는 그저 황당한 표정이다.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더니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오히려 그 말이 신공을 조금 더 열받게 만든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며 놀려먹으려고 그랬다고 확신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괴개의 무공을 훔쳐 배우려는 수작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굳이 극순심천공이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 한 게 아니냐는 거다. 그걸 익히는 데 뭐? 30년이라고? 그게 놀려먹은 게 아니면 뭐냐?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30년은 커녕 10년쯤 배우다가 늙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물며 그런데 30년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놈도 늙어서 죽을 나이다.
“아닌데?”
더욱 멀뚱거리는 눈빛으로 참으로 순박한 눈빛으로 괴개는 신공을 바라보며 딱 한 마디를 건넨다. 그게 아니라고 말이다. 놀려먹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렷다. 자기는 그저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제대로 가르쳐주려고 했을 뿐이었다는 게 괴개의 속마음이었다. 그 말을 듣자 그제야 신공도 표정이 한결 풀어진다. 그럼 정말로 그걸 가르쳐주려고 했냐고 되묻는데 그 말을 얼른 짤라 먹으며 괴개가 하는 말...
“하지만 지금 네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필요가 없는 거 같다.”
“너, 대체 사람을...”
또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신공에게 괴개는 그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준다. 상대방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으므로 이제는 고객 맞춤형으로 지도해주면 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바라는 것이 바로 당장 쓸 수 있는 강한 무공이라고 하니까 그에 맞는 처방을 주겠다는 것이다. 10년 20년씩 아니 그 이상 시간이 걸리는 춘야뇌몽무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걸 배우기 위해 극순심천공이라는 삼다문 전통의 내공을 익힐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다. 그런 무공은 아주 어릴때부터 입문해야 이삼십년 걸려 이룰 수 있는 것이니 그런 거 말고...
그동안 신공이 쌓아왔던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부터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바로 괴개가 내놓은 “신공을 위한 맞춤형” 처방인 것이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공이라니? 내가 익힌 운공법이라야...”
“삼원심공이지?”
“그... 그래. 무림에서 가장 흔하고 하찮은 그 운공법이야.”
신공이 겨우 그 흔하고 흔한 삼원심공을 익힌 이유는 딴 게 아니다. 너무 흔해서 개나 소나 다 배울 수 있고 수련할 수 있다는 이유가 전부다.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고 무슨무슨 문파에서 대대로 후계자들에게만 은밀하게 전해지는 유명한 내공심법은 감히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개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삼원심공이 흔한 것은 맞지만 그런만큼 많은 사람들이 익히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은 이미 검증이 끝난 확실한 운공법이라는 증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뭐, 몇가지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타 타 탁
괴개는 느닷없이 신공의 몸 몇 군데에 강하고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타격을 한다. 맥을 건드린 것이다. 그러자 동시에 신공의 몸에서 무엇인가 강한 기운이 발생되기 시작하고 그 기운을 당연하게도 신공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어때? 기혈이 뚫리니 몸이 한결 더 가볍게 느껴지지?”
그랬다.
괴개는 아까 신공의 맥을 짚어보면서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는 엄청나게 쌓였는데 몇 군데 기혈이 막혀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가 놀랍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 흔하고 평범한 삼원심공을 이렇게 진심으로 열심히 이렇게 많이 내공을 쌓아놓은 사람을 처음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공으로서는 괴개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가 알고 있던 삼원심공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를 모아 내공을 높이는 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리고 그렇게 쌓은 내공 운용법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해서 그저 초보자의 입문용 운공법으로 치부될 뿐, 그 본질은 훌륭한 운공법이라는 것이 바로 괴개가 생각하는 삼원심공의 모습이다. 그걸 모르고 사람들이 그저 유명하다는 소문만 듣고는 그런 무공을 배워보겠다고, 이름만 거창한 운공법들을 철새처럼 쫓아다니는 꼴이 영 못마땅한 괴개다. 그런면에서 그런 삼원심공으로 이렇게 많은 내공을 쌓아놓은 신공을 아낌없이 칭찬하는 괴개다.
“저... 정말 내 몸에 그런 내공이 쌓여있다고?”
조금전 기혈이 풀리자마자 갑자기 기가 충만해지는 것을 직접 느껴본 신공은 자신의 두 손바닥을 펼쳐 물끄러미 바라보며 믿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내가 보장하지! 너한테 다른 내공심법 따위는 필요없어! 넌 지금의 너로도 충분히 대단하니까 말이야!”
뭔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순수한 표정으로, 그리고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괴개는 엄지 척을 하며 괴개를 추켜세운다. 그런 괴개를 말없이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신공은 다시 예의를 갖추며 존댓말로 이런다.
“왜... 제게 이런 친절을 베푸시는 겁니까?”
“응? 왜냐니? 넌 내 친구잖아!”
그렇게 진심으로 말을 하고 있는데도 신공은 좀처럼 도무지 이런저런 말들이 믿기지가 않는다. 아무리 괴개의 심성이 착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 거다. 왜 자기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는지를 말이다. 신공으로서는 괴개를 처음 보게 된 것은 검마와의 대결 때 잠깐 본 게 다였다. 그 전에는 알지도 만난 적도 없었다. 단지 검마가 무림에 나타나 살육을 벌이고 있을 때 그 자를 막겠다고 나섰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처음 본 것이다. 다행히도 다섯 명이 힘을 합쳐 검마를 물리쳤고 그래서 무림인들은 그들을 정파의 천하오절이라 칭송했던 것이다. 그정도의 아주 짧은 만남이 전부인데 왜 이렇게까지.......
“너, 평생 그때처럼 누군가를 믿고 함께 목숨 걸고 싸워본 적이 있어? 없지? 아마 앞으로도 없을걸?”
그 부분이었다. 괴개가 신공을 친구로 인정한 상황 말이다. 그때 처음 서로 만났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서서 검마와 싸움을 함께 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경험을 나눴으면 그걸로도 충분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의 괴개인 것이다. 여전히 머리를 조아리며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느냐고 머뭇거리는 신공이다. 그저 자신은 무공도 형편없고 출신도 비천하고 무슨무슨 문파 출신도 아니고... 그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기계를 좀 잘 다룬다는 것뿐.
자꾸 신공이 주춤거리며 움츠러들자 괴개는 신공의 등짝을 한 대 갈기며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 그때 검마를 한바탕 싸울 때 제일 용감하게 나섰으면서 뭘 그리 자꾸 빼냐는 거냐며 좀 그러지 말라는 제스처다. 그 장면에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노라고.... 무림에 이런 용감한 놈이 있었구나 하며 연거푸 칭찬을 날려준다. 그런 괴개의 표정에서 어떤 과장도 거짓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때 생각했지. 이놈 열라 진지하네... 이런 놈이랑 친구 먹으면 정말 재밌겠다라고.”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너스레를 떤다. 사실 그때 무서워서 몇 번이나 오줌 쌀 뻔 했다고 말이다. 윙크를 슬쩍 날리면서 말이다.
“정말 다행이지 뭐야. 그때 죽었더라면 오줌싸개로 역사에 남을 뻔 했으니 말이야.”
괴개가 그렇게까지 너스레를 떨며 허풍도 섞어가며 주저리주저리 떠드니까 그제야 표정을 풀며 풋~ 하고 웃음을 지어보이는 신공이다. 이제 좀 기분이 나아졌나보다. 괴개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계속 죽상을 하고 있으면 그건 정말 예의가 아니지. 암...
괴개는 더욱 활짝 웃으며 다시 한번 신공의 목에 팔을 감으면서, 이제 오해도 풀렸으니, 술이나 한잔 하면서 좀 친해져 보자며 잡아끈다. 물론 술값은 신공이 내는 거라는 걸 잊지 않고 덧붙여 주면서 말이다.
<신묘각주의 마지막 승부수>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백리사우와의 그 소중하고 진정어린 과거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며 신묘각주는 자신을 친구로 인정해주었고 친구도 대해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괴개를 추억하고 있었다. 백리사우... 유일하게 나에게 순수하게 마음을 열어주었던 친구... 단 하나의 내 친구...
신묘각주는 고개를 들어 허공에 여전히 둥실둥실 떠있는 한비광을 쳐다본다.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피싯~ 하고 옅은 미소를 짓는다.
“훗, 하긴... 그놈이라면 ....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자신의 원수였던 천마신군의 제자마저도 제자로 받아들이는게...”
허공에서 아래에 있는 신묘각주를 내려다보고 있던 한비광은 스윽스윽 허공에 계단이라도 있는 듯 즈려 밟으며 바닥에 내려선다.
“이봐요, 신공 어르신, 승부가 났다고 생각하면 그만하시죠. 보아하니 괴개 사부와 친분이 두터우신 거 같은데, 굳이 그런분과 끝장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한비광의 말을 들으면서 신묘각주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런 그에게.... “제가 잠시 열받아 손을 쓰긴 했지만 굳이 선배 어르신께 몹쓸 짓을 하고 싶지는...” 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니 신묘각주는 빡이 돌았달지 뚜껑이 열렸달지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놈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굳은 결심이 섰달지... 뭐 그런 오묘한 심정이 그의 표정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크크크크... 네놈마저도 날 동정하는 거냐?”
“.......”
“크크크...하긴 이건 충분히 동정받을 상황이긴 하군 그래...”
지금 이순간 신묘각주의 심정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만큼 복잡하고 심란하고 어지럽다. 백리사우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잠시나마 그 친구를 그리워했는데...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에게 반말을 듣질 않나... 이제는 뭐? 열 받아서 손을 썼다고? 끝장을 보고 싶지 않으니 항복하라고? 자기는 평생을 그토록 강한 무공을 갈망하며 발버둥을 쳤건만, 그래도 극순심천공의 근처에도 못갔거늘... 30년이 걸릴거라는 백리사우의 농담 아닌 농담이 아직도 귀에 선하거늘... 저 애송이는 극순심천공을 익히고 아무렇지도 않게 춘야뇌몽무라는 무공을 펼치고 있거늘... 그런 꼴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나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게 그렇게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다... 저 애송이가 극순심천공은 물론 천마신군의 무공까지 익혔는데 말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빡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괴개 사부는 제게 무공을 전수하며 무림의 평화가 위협받을 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을 지금도 무겁게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크크크... 그래, 그래. 잘난 놈들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 내... 그렇게 잘난 놈들이 활개치는 게 더러워서 이런 기관까지 만들었던 건데...”
말을 마치자마자 신묘각주는 발 밑의 바닥을 발로 탁 탁 때려 밟아 기관을 다시 작동시킨다. 훌쩍 저만치로 도약해 자리를 옮기더니 이번엔 벽면을 손으로 탁 탁 탁 하고 기관 작동 스위치를 눌러댄다.
“아무리 발광을 해 부족한 걸 메꿔보려고 해도, 너같은 놈들한테는 어쩔 수 없나?”
그러자 여기저기 기관들이 철겅 철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한다. 우선 어지럽게 솟구쳐 있던 바닥 기둥들이 일제히 하강하여 바닥이 평탄해진다. 어? 그러고보니 기관 작동을 개시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기관들의 움직임을 다시 원위치로 복귀시킨 것이다.
“쇄절옥의 작동은 이제 멈췄다.”
“이제라도 제 뜻을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비광은 조금 전에 한 말이 약발이 먹혔다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끝내자는 말을 알아들은 줄로만 알았다. 이제 더 이상 싸움은 하지 않고 무사히 쇄절옥을 나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예의를 갖춰 인사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게 아니었다. 한비광의 착각이었다.
신묘각주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니 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나이가 평생을 살면서 갈구하던 그 꿈이 결국 허망했음을 눈앞에서 생생히 확인하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그런 극단적인 결심을 하기에 딱 안성맞춤이 아닌가.
“천부적인 무공 앞에서는 기계를 이용하는 수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이해했다. 그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직접 네놈이 오른 그 경지에 올라가 싸워보도록 하마.”
신묘각주는 오른 손의 검지와 중지를 나란히 모아 세우더니 뒤통수의 두 군데에 점혈을 찍고 이어서 가슴에 세 곳의 점혈을 강하게 찍는다.
그가 찍은 저 점혈들... 그 위치를 보는 순간 한비광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점혈들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라는 것을 말이다.
화 르 르
그러자 갑자기 신묘각주의 온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느껴지느냐? 내 몸의 타오르는 타오르는 기가? 어떠냐? 이제야 네놈을 상대할 정도의 자격이 되었다고 느껴지느냐?”
신묘각주의 얼굴은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변해있다. 눈에는 살기가 가득한 듯하다. 몸에서는 강한 기운이 힘차게 솟구치고 있다. 자폭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그런 모습을 본 한비광은 냅다 소리를 지른다. 이제 다시 반말이다.
“어리석은 짓 하지만! 나, 지금 당신이 하려는 그게 뭔지 알아. 당신... 그걸 쓰면 죽을 거야.”
한비광이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채고는 그걸 말린다며 한 마디 지껄이는 꼴이 지금 신묘각주의 눈에는 정말 정말 꼴불견이다. 아니, 자신의 자격지심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는 것과 진배없다. 한비광의 말을 듣자 신묘각주는 이빨을 꽉 깨물며 온몸을 부르르 떤다.
“으으으.... 네놈이... 네놈이 뭐라고 감히 내게 충고를 하는 거냐!!”
<쇄절옥 기관실>
각자의 자리에서 기관을 움직이고 멈추고 변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던 무사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뭔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진 점, 조용해도 너무너무 조용해진 점... 기관의 상태를 점검해보니 침입자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렇다면 그놈이 멈춰있다는 상태라는 건데... 각주님이 그자를 해치웠다면 물론 당연히 직접 그런 사실을 알려 오셨을텐데 그건 아니고...
쿠 르 릉
그때 갑자기 다시 울려퍼지는 굉음 하나. 쇄절옥 담당자들이 느끼기에는 이 충격음은 매우 이상스럽다. 쇄절옥이 작동 정지된 이런 상태에서는 절대 이런 정도의 충격이 올 리가 없는데 말이다. 그때 한 무사가 다급히 소리친다.
“부장님! 쇄절옥의 모든 기관 작동이 강제 정지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각주님이 조작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쾅~!! 쿠르릉
그때 다시 울려퍼지는 엄청난 굉음. 분명 이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주님과 침입자는 지금 어떤 상황일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부장은 쇄절옥이 있는 천정 방향을 올려다보며 잔뜩 걱정스럽고 불안한 표정으로 읊조린다. 대체 쇄절옥,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말이냐...
<4장로의 직감>
신지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네 명의 장로가 지금 그 굉음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커다란 기 또한 감지했다. 어딘가의 복도를 함께 모여 걷고 있던 4장로들은 일제히 우뚝 걸음을 멈춘다.
“이거 신묘각주 맞지?”
그들은 동시에 생각한다. 뭔가 이상한 일이 지금 벌어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신묘각주가 뿜어내는 기운을 그들은 동시에 감지한 것이고 그런 기운을 발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신묘각주는 이미 적을 함정에 몰아넣은 상태인데... 그런데 왜?
“나도 이해할 수가 없군. 왜 신묘각주가 굳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
“어쩌면...”
금구연이 내뱉은 그 한 마디... ‘어쩌면...’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나머지 세 명 또한 그 어쩌면이라는 의미를 알았기에 동시에 표정이 굳어진다. 심각하다.
<에필로그>
동귀어진을 택한 것일까요? 신묘각주는 이쯤에서 목숨을 버릴 결심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입니다. 뼛속까지 사무친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한낱 철부지의 소망으로 종결되었음을 생생히 확인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 또한 소거되어버린 듯한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아...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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