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 588화 스토리 == 괴개와 신공의 아스라한 인연, 그리고 자격지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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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4-07 00:33 조회1,758회 댓글0건본문
열혈강호 588화 스토리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
<프롤로그>
드디어 한비광이 쇄절옥에서 자유롭게 무공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답니다. 잔머리라고 하기엔 너무 그럴듯한 해법이라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요. 옛말에 “궁즉통”라 했다지요. 궁하면 통한다는 뜻인데요, 어떻게든 요동치는 바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절실함의 결과겠습니다. 자, 한 번 보실까요?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최고점에 다다르는 순간을 포착하자>
두 발이나 적어도 한 발은 땅에 착지하고 균형을 잡고 힘을 딱 주어야 원하는대로의 뭔가를 해볼 수 있을 텐데, 지금 이렇게 심하게 요동치는 바닥 상태라면 도무지 불가능하다.
..............이건, 뭐... 아예 바닥을 밟지 않는 이상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쳤다는 바로 그 장면을 겹쳐도 될만한 순간이다. 바닥을 아예 밟지 않는다는 그 발상! 바로 역발상이다. 바닥이 요동치니 힘들다. 그렇다면 바닥을 밟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바닥을 밟지 않을 수 있나? 음.... 허공에 몸을 띄운다는 건데.... 오호~ 그거 내가 할 수 있는 거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한비광은 곧바로 실천에 옮긴다. 그 첫 단계로서 불쑥불쑥 솟구치는...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기둥들을 주시한다. 이 공간은 동굴같은 곳이다. 바닥이 있고 벽이 있고 천정이 있다. 바닥에 장치한 기관이 솟아오르는 높이는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 어떤 기둥도 천정을 뚫지도 않고 또 천정에 맞닿지도 않는다.
즉, 어느정도의 높이 한계가 있다. 최대 높이가 있는 거다. 그래서 저 늙은이가 여기저기 기둥을 뛰어다니며 그걸 밟으며 공격을 퍼붓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즉, 저 늙은이도 나처럼 사람인데... 요동치는 바닥위에서는 저 자도 나처럼 제대로 균형 잡으며 공격을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저 자는 지금 바닥이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둥 바닥을 디뎌가며 공격을 수월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최고 지점에서 멈출 수만 있다면...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
한비광은 신묘각주의 공격을 다소 소극적으로 피하면서 주위의 기둥들을 살피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둘 하나 둘 셋 넷
덜컥!
감지했다. 덜컥 하며 솟아오르던 기둥이 멈춘 바로 그 시점을 말이다. 이제 찰나의 순간일지언정 지금 이 기둥은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지금이다.
부 우 우
쩌 어
더욱 기세를 몰아 공격해오는 신묘각주를 향해 지금 이 순간 한비광은 두 다리에 힘을 딱 주고 오른 팔에 기를 잔뜩 끌어모으더니 순식간에 신묘각주 정면을 향해 타격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격에 신묘각주는 십 여미터 후방으로 나동그라진다.
뭐...뭐냐? 어떻게 요동치는 기관 위에서 이런 공격을...?
그렇게 어안이벙벙 놀란 표정의 신묘각주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바로 허공에 둥둥 떠있는 한비광이 아닌가! 잔뜩 솟아오른 기둥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의 공중에 부양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바닥만 밟고 있지 않으면 해결되는 게 아니냐며 한비광은 자신의 해법을 얘기한다. 저 밑에서 그런 한비광을 올려다보고 있는 신묘각주의 표정은 그야말로 아연실색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외마디 질문에 한비광은 태연하게 대답해준다. 그거 별거 아니라고.... 그건 이전에 대사형이 보여줬던 경공술이라고 말이다.
“천마등공과 허공답보의 응용이라고나 할까?”
그 말을 들은 신묘각주는 등골이 서늘해지며 반문한다. 허...허공답보?
“그래. 그러니까 말이야...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파 파 팡
한비광은 허공을 껑충껑충 뛰듯이 도약한다. 아무런 바닥을 딛지 않고 있지만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징검다리라도 있는 듯이 한 발 한 발 공중을 찍어가며 허공을 뛰기 시작한다. 신묘각주를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다가오는 한비광을 향해 신묘각주는 소리친다. 그래봤자 화룡도도 없이 맨몸이 아니냐는 거다.
“무기도 없는 네놈이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번엔 등에 매고 있는 기관을 작동시킨다. 날카로운 칼날이 부착된 원반형의 표창 세 개가 발사되었다.
퍼 컹
투 광
퍼 퍼 펑
이게 무슨 소리인고?
신묘각주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란 것은 자신의 무기들이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기가 막힐 장면이다. 지금 저놈은 화룡도가 없이 그저 맨몸인데 말이다. 지금 저놈은 그저 공중에서 마치 태권도 앞지르기처럼 주먹을 쭉쭉 뻗어대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주먹이 한 개도 두 개도 아니다. 헛것을 보는 게 아니다. 지금 저놈의 주먹이 다섯 개로 보인다. 별이 다섯 개가 아니라 주먹이 다섯 개!!! 그렇다면 이것은.... 이 초식은 설마...?!!
................ 백 열 권 풍 아 .................?
신묘각주의 등에서 발사된 작살들이 모두 작살이 나고... 계속 이어지는 백열권풍아는 신묘각주를 향해 쇄도하고 있따. 얼른 강철장갑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그의 양 손에 장착되어 있던 그것들 또한 작살이 나고야 만다. 이제 그는 맨손이 되었다. 이제 그 또한 더 이상 무기가 없다. 이제 저 두 사람은 공평하게 되었다.
신묘각주는 표정이 몹시 안좋다. 부들부들 치를 떨고 있다. 뭔가에 엄청나게 분개하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네놈이 백리사우의 무공을 안단 말이냐!!”
“백리사우?”
“속일 생각 마라. 네놈이 방금 쓴 초식은 틀림없이 백리사우... 괴개의 백열권풍아였어!!” “괴개의 무공은 절대 쉽게 배울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마신군의 제자인 네놈이 어떻게...”
그래서였다. 신묘각주가 저토록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까지 몹시 분개하고 있는 까닭은 분명 있었다. 그와 괴개의 인연이 그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한비광은 약간은 허탈한 표정으로 답한다.
“쳇! 그러고보니... 나, 괴개 사부의 본명도 모르고 있었떤 건가?”
“뭐? 사부?”
“그래, 그분도 내 사부님이야!”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말을 그냥 믿을 수는 결코 없는 말이기도 했다. 적어도 신묘각주한테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알고 있는 백리사우는 천마신군과 씻을 수 없는 평생의 원한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괴개는 제자를 받지 않으려 정체를 숨기고 수많은 명문 정파 인재들을 피해 도망다녔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천마신군의 제자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그래. 천마신군 사부와 얽힌 그 이야기... 나도 괴개 사부에게 직접 들었어.” “그래서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왜 그런 분이 나같은 놈에게 당신의 무공을 남겨 주셨는지....”
(그런데 비광아... 아버지뻘인... 아니 큰외삼촌뻘인 어르신에게 계속 이따위로 반말로 지껄일래? 보는 내가 좀 민망해서 그래.... ^^;)
한비광의 표정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녀석 또한 괴개 사부를 떠올리고 있음이다.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왜 그분이 자신의 평생에 걸쳐 이룩한 무공을 전수해 주셨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분이 어떤 분이셨다는 것 정도는...
“다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건 그분은 정파와 사파에 대한... 아니 이 세상에 대한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던 분이셨다는 거야. 그분은 그저 순수하게 사람을 보고 인간 대 인간의 관게를 좋아하셨던 분 같아.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왜 나같이 모자란 놈에게 당신의 무공을 전수하셨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
한비광은 또박또박 괴개 사부에 대한 기억을 추스르며 느낌과 감상을 잔잔하게 읊조리듯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내내 신묘각주 아니 이제는 신공이라 부르는 편이 조금 더 낫겠다. 아무튼 신공의 표정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임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동공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허공답보를 쓰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한비광을 올려다보며 신공은 생각한다.
............. 저놈이 정말... 백리사우... 그놈의 제자라고...? ................
<괴개와 신공의 인연>
퍼 퍼 퍼 펑
.............. 대단하다. 이것이 괴개의 무공? ..............
조금전 괴개가 펼친 무공은 백열권풍아를 포함한 “춘야뇌몽무”였다. 그저 맨주먹으로 시전하는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은 마치 대단한 무기를 휘두르며 내뿜는 강맹한 기운과도 비견될만 하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위력적일 것이다.
젊은 시절의 괴개과 신공이 묘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회상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다.
신공이 부탁을 해서 괴개는 자신의 비기인 무공을 시범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위력을 멍하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신공의 눈에 괴개의 대단함은 더욱 더 크게 느껴지고 있다. 그럴수록 신공의 자신감은 한층 더 위축되어만 가고 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어때? 됐어? 이걸로 ‘춘야뇌몽무’는 다 펼쳐 보였는데...”
뭔가 살짝 장난기가 섞인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신공을 쳐다보며 괴개가 약간은 고무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러자 갑자기 신공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손을 교차시키며 고개를 숙이며 깍뜻하게 예의를 갖추며 말한다.
“백리 대협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견문을 넓혔습니다.”
“아, 그 친구... 참 딱딱하긴... 거, 우리 사이에 무슨 빌어먹을 예의야? 편하게 좀 말하라구!”
콧등을 긁적이며 심드렁하게 말하는 괴개의 표정에서 방금 전 그의 말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신공은 더욱 더 조심하며 예의를 갖추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대꾸한다. 그리고는...
“백리 대협은 과거 삼다문의 문주님이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현재도 수많은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는 분! 저 따위와는 태생도 위치도 다릅니다.”
그랬다.
지금 저 말 속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신공이 바라보는 괴개의 위상과 신공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태생과 위치가 핵심이다. 어엿한 하나의 문파의 문주를 지냈던 괴개와 그저 시장에서 굴러먹던 자기를 비교하고 있다. 무림인들에게 존경 받는 위치인 괴개와 아무도 사실상 알아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자신의 위치를 신공은 너무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신공의 자신을 가둬둔 한계치이기도 하다.
신공의 말을 물끄러미 듣고 있던 괴개는 뭐 별일 아니라는 듯이, 표정은 조금 더 장난스럽게 지으며 말한다. 어느새 괴개는 신공의 목덜미를 팔로 감으며 마치 아이들이 부대끼며 노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정말로 같이 장난치고 싶은 괴개의 심정이랄까?
“그래, 좋아 좋아! 그렇다면 말이야...이 앞 주점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면서 친해져 보는 건 어때? 물론 돈은 네가 내는 걸로...”
“그러고 나면 너의 그 딱딱한 말투도 좀 고쳐지지 않겠어?”
그러나 그렇게까지 익살스럽게 장난을 걸며 말을 친근감 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공은 여전히 뻣뻣하다. 그런 괴개의 장난과 제안에 응해줄 마음이 조금도 없는 듯하다. 제안은 고맙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라는 너무 급조한 느낌의 거짓말까지 둘러대면서 말이다. 그러자 괴개도 다소 실망스런 표정이다.
(속마음 : 어? 이 자식 이거... 술값 좀 내라고 했다고 그러냐? 그거 얼마나 나온다고... 에이, 그래. 내가 술값 낼테니 다시한번 가자고 해볼까?)
그렇게 돌아서는 신공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괴개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게 있다. 그냥 심심해서 무공을 보여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괴개의 무공을 몰래 훔쳐서라도... 베껴서라도 그의 무공을 배워보고 싶다는 속마음을 말이다.
........... 괴개... 당신이 쓴 초식은 확실히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본 걸 잊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서 이걸 기록에 남겨둬야 해............
바로 그거다. 신공이 괴개를 찾아간 본질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남의 특허를 몰래 도용하듯이 지금 신공은 그런 짓이라도 해서 괴개의 무공을 익혀서 강해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서둘러 이 자리를 뜨려고 하고 있는 거다. 까먹기 전에 다 기록을 해두기 위해서 말이다.
여전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괴개는 묻는다. 그렇게 바쁘다는 사람이 왜 굳이 내 무공을 보러 온거냐고....
그 질문은 신공으로서는 촌철살인급이다. 속마음을 다 들킨 것만 같아 당황스럽다.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말을 얼버무리고 있는데 괴개가 먼저 이야기한다.
“야! 너 혹시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보러 온 거였어?”
뜨끔
들켰다. 속마음을 들켜버렸다. 그러나 최대한 당황하지 말고 발뺌을 해야 한다. 말 더듬지 않게... 침착하게...
“지... 지금 무슨 의심을 하시는 겁니까? 설마 제가 귀공의 무술을 훔치기라도 하려는....”
침착하려 했는데 실패했다. 말 더듬지 않으려 했는데 티가 나버렸다. 신공은 그렇게 도둑이 제발 저리듯이 어버버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괴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극순심천공’부터 먼저 익혀야 해.”
지금 괴개는 극순심천공이라 했다. 그것은 바로 삼다문에 내려오는 그 전설의 내공심법이 아닌가! 신공의 표정은 한껏 진지해져 있다. 지금 괴개는 진심으로 신공을 대하며 대화를 하고 있는 거다. 극순심천공의 운행을 바탕으로 만든 무공이 바로 춘야뇌몽무! 그러니 그거 없으면 춘야뇌몽무는 그냥 춤사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 젠장... 기껏 집중해서 머릿속에 초식을 다 외워놨는데..........
신공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 같다.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은데 극순심천공을 먼저 배워야만 하다니... 일이 뭔가 점점 꼬여가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엄습하는 신공이다.
“아! 혹시 극순심천공 배우고 싶어? 알려줄까?”
“저... 정말입니까?”
괴개의 떡밥을 냉큼 물어버리는 신공이다. 관심 없다더니... 바쁘다더니 그건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다 눈치채버리는 괴개다. 그래서인지 괴개는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아하하하! 너, 역시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었던 거지?”
이젠 발뺌해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결국 속마음을 다 들키고 말았다. 원래는 몰래 베껴서 혼자 수련하려고 했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까놓고 말하고 부탁해서 진짜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는 신공이다.
괴개는 일단 신공의 맥을 짚어보기로 한다. 그의 손을 잡아끌어 손목의 맥박을 살펴보는 괴개다. 지금 신공의 심장은 매우 빨리 뛰기 시작한다.
............. 정말 배울 수 있는 걸까? 내가 극순심천공을? .............
진짜 배울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하는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까닭이다. 맥을 짚어 본 괴개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그 결과를 말해준다.
“와! 너 대단하구나!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너 내공 수준이 엄청나!”
그런 칭찬에 신공은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배운 것이라고는 무림에서 제일 흔한 삼원신공 정도만 내공수련법으로 배웠을 뿐이라서 그렇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개나 소나 다 배우고 있는 기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정도 가지고 지금 괴개가 내공 수준이 엄청나다고 치켜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극순심천공을 가르쳐 준다면서 갑자기 맥을 짚어본 괴개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당연하게도 배우려는 사람 몸의 기가 극순심천공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싶어서 확인해 보았던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튼 큰 문제는 없겠다며 안심시켜 준다. 그러니 이제부터 느긋하게 배울 생각으로 배우면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자 신공은 얼른 묻는다. 그 느긋하게라는 말의 뜻을 해석하고 싶은 거다. 느긋하게 배우면 대체 얼마나 걸리겠냐는 것이 신공의 질문이다.
“글세...한 10년? 20년? 뭐, 넉넉잡아 한 30년 예상하고 배우면 충분하지 않겠어?”
신공의 어깨에 두 손을 턱 올리며 괴개는 아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건성건성 말하듯이 말하고 있는 분위기다. 극순심천공을 진정 배우고 싶은 신공이다. 그래서 춘야뇌몽무를 익히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한 신공이다. 그런데 지금 30년을 느긋하게 배우면 될 거라는 괴개의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버금가는,,, 빡치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그거 하나 배우다가 늙어 죽겠다 싶은 거다. 그러니 빡 돌아 안 돌아?
조금전까지 예의를 갖추며 머리를 조아리던 신공은 이제 괴개의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태도가 180도로 완전히 뒤바뀐다. 표정은 차갑게 아주 냉정하게 지으며, 어쩌면 빡 돌고 있는 표정을 애써 숨기려 하면서 일단 욕 비슷한 외마디 소리를 시작으로 속마음을 털어낸다.
“젠장! 그래. 그렇게 아주 멋대로 가지고 노는군 그래! 뭔가 이상하더니... 결국 이렇게 놀릴 생각이었던 거였군!”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그 말을 남기고는 휙~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리를 떠나기 시작하는 신공이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다. 씩씩대며 생각한다.
............. 멍청하게... 이렇게 말도 안되는 놀림에 넘어가다니............
그렇게 휙 돌아서 가버리는 신공의 등에 대고 괴개는 다급히 말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말이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지 말이다. 참나... 그런 말이 더 화나는 거다. 실컷 놀려놓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 토라지면 그걸 또 왜 그러느냐고 묻는 상황 말이다. 다 알면서, 놀린 거면서 아닌척 하는 표정으로 왜 그러냐고 묻는 그 엿같은 상황 말이다. 지금 괴개는 신공이 느끼기에 딱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공은 다시 몸을 휙 돌려 괴개를 쳐다보며 삿대질도 해가며 고래고래 외친다.
“이제 그만 좀 해둬. 대체 사람을 언제까지 놀릴 생각이야? 실력도 안되는 천한 놈이 뭐라도 배워보려고 매달리는 꼴이 그렇게 재밌어?”
그렇게 태도가 돌변하자 괴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지금 상대방은 그렇게 느끼고 이해하며 자격지심을 뿜어내며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전의 그 깍뜻이 예의와 격식을 차리던 분은 어디 가고 없고 지금은 잔뜩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상한 놈이 막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야! 왜 그래? 난...”
괴개의 얼버무림에 신공은 더욱 더 싸늘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괴개에게 일성을 날린다.
“당신에게는 이게 우스운 일인지 몰라도 난 그만큼 절실하다고!!”
<에필로그>
그랬군요. 신공과 괴개의 회상 장면을 보니 다 이해가 되는 듯도 합니다. 왜 신공이 무림 천하 5절이라는 칭송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무림을 배신하고 신지에 붙었는지를 말입니다. 출신과 위치가 태생적으로 달랐던, 그래서 원초적으로 자격지심으로 가득한 마음이 신공의 선택과 결정을 부추긴 방아쇠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쨌든 왠지 신공이 측은해지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그런 심정은 같은 처지에 놓여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
<프롤로그>
드디어 한비광이 쇄절옥에서 자유롭게 무공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답니다. 잔머리라고 하기엔 너무 그럴듯한 해법이라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요. 옛말에 “궁즉통”라 했다지요. 궁하면 통한다는 뜻인데요, 어떻게든 요동치는 바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절실함의 결과겠습니다. 자, 한 번 보실까요?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최고점에 다다르는 순간을 포착하자>
두 발이나 적어도 한 발은 땅에 착지하고 균형을 잡고 힘을 딱 주어야 원하는대로의 뭔가를 해볼 수 있을 텐데, 지금 이렇게 심하게 요동치는 바닥 상태라면 도무지 불가능하다.
..............이건, 뭐... 아예 바닥을 밟지 않는 이상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쳤다는 바로 그 장면을 겹쳐도 될만한 순간이다. 바닥을 아예 밟지 않는다는 그 발상! 바로 역발상이다. 바닥이 요동치니 힘들다. 그렇다면 바닥을 밟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바닥을 밟지 않을 수 있나? 음.... 허공에 몸을 띄운다는 건데.... 오호~ 그거 내가 할 수 있는 거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한비광은 곧바로 실천에 옮긴다. 그 첫 단계로서 불쑥불쑥 솟구치는...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기둥들을 주시한다. 이 공간은 동굴같은 곳이다. 바닥이 있고 벽이 있고 천정이 있다. 바닥에 장치한 기관이 솟아오르는 높이는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 어떤 기둥도 천정을 뚫지도 않고 또 천정에 맞닿지도 않는다.
즉, 어느정도의 높이 한계가 있다. 최대 높이가 있는 거다. 그래서 저 늙은이가 여기저기 기둥을 뛰어다니며 그걸 밟으며 공격을 퍼붓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즉, 저 늙은이도 나처럼 사람인데... 요동치는 바닥위에서는 저 자도 나처럼 제대로 균형 잡으며 공격을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저 자는 지금 바닥이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둥 바닥을 디뎌가며 공격을 수월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최고 지점에서 멈출 수만 있다면...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
한비광은 신묘각주의 공격을 다소 소극적으로 피하면서 주위의 기둥들을 살피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넷 둘 하나 둘 셋 넷
덜컥!
감지했다. 덜컥 하며 솟아오르던 기둥이 멈춘 바로 그 시점을 말이다. 이제 찰나의 순간일지언정 지금 이 기둥은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지금이다.
부 우 우
쩌 어
더욱 기세를 몰아 공격해오는 신묘각주를 향해 지금 이 순간 한비광은 두 다리에 힘을 딱 주고 오른 팔에 기를 잔뜩 끌어모으더니 순식간에 신묘각주 정면을 향해 타격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격에 신묘각주는 십 여미터 후방으로 나동그라진다.
뭐...뭐냐? 어떻게 요동치는 기관 위에서 이런 공격을...?
그렇게 어안이벙벙 놀란 표정의 신묘각주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바로 허공에 둥둥 떠있는 한비광이 아닌가! 잔뜩 솟아오른 기둥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의 공중에 부양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바닥만 밟고 있지 않으면 해결되는 게 아니냐며 한비광은 자신의 해법을 얘기한다. 저 밑에서 그런 한비광을 올려다보고 있는 신묘각주의 표정은 그야말로 아연실색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외마디 질문에 한비광은 태연하게 대답해준다. 그거 별거 아니라고.... 그건 이전에 대사형이 보여줬던 경공술이라고 말이다.
“천마등공과 허공답보의 응용이라고나 할까?”
그 말을 들은 신묘각주는 등골이 서늘해지며 반문한다. 허...허공답보?
“그래. 그러니까 말이야...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파 파 팡
한비광은 허공을 껑충껑충 뛰듯이 도약한다. 아무런 바닥을 딛지 않고 있지만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징검다리라도 있는 듯이 한 발 한 발 공중을 찍어가며 허공을 뛰기 시작한다. 신묘각주를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다가오는 한비광을 향해 신묘각주는 소리친다. 그래봤자 화룡도도 없이 맨몸이 아니냐는 거다.
“무기도 없는 네놈이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번엔 등에 매고 있는 기관을 작동시킨다. 날카로운 칼날이 부착된 원반형의 표창 세 개가 발사되었다.
퍼 컹
투 광
퍼 퍼 펑
이게 무슨 소리인고?
신묘각주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란 것은 자신의 무기들이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기가 막힐 장면이다. 지금 저놈은 화룡도가 없이 그저 맨몸인데 말이다. 지금 저놈은 그저 공중에서 마치 태권도 앞지르기처럼 주먹을 쭉쭉 뻗어대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주먹이 한 개도 두 개도 아니다. 헛것을 보는 게 아니다. 지금 저놈의 주먹이 다섯 개로 보인다. 별이 다섯 개가 아니라 주먹이 다섯 개!!! 그렇다면 이것은.... 이 초식은 설마...?!!
................ 백 열 권 풍 아 .................?
신묘각주의 등에서 발사된 작살들이 모두 작살이 나고... 계속 이어지는 백열권풍아는 신묘각주를 향해 쇄도하고 있따. 얼른 강철장갑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그의 양 손에 장착되어 있던 그것들 또한 작살이 나고야 만다. 이제 그는 맨손이 되었다. 이제 그 또한 더 이상 무기가 없다. 이제 저 두 사람은 공평하게 되었다.
신묘각주는 표정이 몹시 안좋다. 부들부들 치를 떨고 있다. 뭔가에 엄청나게 분개하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네놈이 백리사우의 무공을 안단 말이냐!!”
“백리사우?”
“속일 생각 마라. 네놈이 방금 쓴 초식은 틀림없이 백리사우... 괴개의 백열권풍아였어!!” “괴개의 무공은 절대 쉽게 배울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마신군의 제자인 네놈이 어떻게...”
그래서였다. 신묘각주가 저토록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까지 몹시 분개하고 있는 까닭은 분명 있었다. 그와 괴개의 인연이 그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한비광은 약간은 허탈한 표정으로 답한다.
“쳇! 그러고보니... 나, 괴개 사부의 본명도 모르고 있었떤 건가?”
“뭐? 사부?”
“그래, 그분도 내 사부님이야!”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말을 그냥 믿을 수는 결코 없는 말이기도 했다. 적어도 신묘각주한테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알고 있는 백리사우는 천마신군과 씻을 수 없는 평생의 원한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괴개는 제자를 받지 않으려 정체를 숨기고 수많은 명문 정파 인재들을 피해 도망다녔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천마신군의 제자를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그래. 천마신군 사부와 얽힌 그 이야기... 나도 괴개 사부에게 직접 들었어.” “그래서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왜 그런 분이 나같은 놈에게 당신의 무공을 남겨 주셨는지....”
(그런데 비광아... 아버지뻘인... 아니 큰외삼촌뻘인 어르신에게 계속 이따위로 반말로 지껄일래? 보는 내가 좀 민망해서 그래.... ^^;)
한비광의 표정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녀석 또한 괴개 사부를 떠올리고 있음이다.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왜 그분이 자신의 평생에 걸쳐 이룩한 무공을 전수해 주셨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분이 어떤 분이셨다는 것 정도는...
“다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건 그분은 정파와 사파에 대한... 아니 이 세상에 대한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던 분이셨다는 거야. 그분은 그저 순수하게 사람을 보고 인간 대 인간의 관게를 좋아하셨던 분 같아.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왜 나같이 모자란 놈에게 당신의 무공을 전수하셨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
한비광은 또박또박 괴개 사부에 대한 기억을 추스르며 느낌과 감상을 잔잔하게 읊조리듯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내내 신묘각주 아니 이제는 신공이라 부르는 편이 조금 더 낫겠다. 아무튼 신공의 표정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임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동공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허공답보를 쓰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한비광을 올려다보며 신공은 생각한다.
............. 저놈이 정말... 백리사우... 그놈의 제자라고...? ................
<괴개와 신공의 인연>
퍼 퍼 퍼 펑
.............. 대단하다. 이것이 괴개의 무공? ..............
조금전 괴개가 펼친 무공은 백열권풍아를 포함한 “춘야뇌몽무”였다. 그저 맨주먹으로 시전하는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은 마치 대단한 무기를 휘두르며 내뿜는 강맹한 기운과도 비견될만 하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위력적일 것이다.
젊은 시절의 괴개과 신공이 묘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회상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다.
신공이 부탁을 해서 괴개는 자신의 비기인 무공을 시범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 위력을 멍하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신공의 눈에 괴개의 대단함은 더욱 더 크게 느껴지고 있다. 그럴수록 신공의 자신감은 한층 더 위축되어만 가고 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어때? 됐어? 이걸로 ‘춘야뇌몽무’는 다 펼쳐 보였는데...”
뭔가 살짝 장난기가 섞인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신공을 쳐다보며 괴개가 약간은 고무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러자 갑자기 신공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손을 교차시키며 고개를 숙이며 깍뜻하게 예의를 갖추며 말한다.
“백리 대협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견문을 넓혔습니다.”
“아, 그 친구... 참 딱딱하긴... 거, 우리 사이에 무슨 빌어먹을 예의야? 편하게 좀 말하라구!”
콧등을 긁적이며 심드렁하게 말하는 괴개의 표정에서 방금 전 그의 말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신공은 더욱 더 조심하며 예의를 갖추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대꾸한다. 그리고는...
“백리 대협은 과거 삼다문의 문주님이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현재도 수많은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는 분! 저 따위와는 태생도 위치도 다릅니다.”
그랬다.
지금 저 말 속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신공이 바라보는 괴개의 위상과 신공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태생과 위치가 핵심이다. 어엿한 하나의 문파의 문주를 지냈던 괴개와 그저 시장에서 굴러먹던 자기를 비교하고 있다. 무림인들에게 존경 받는 위치인 괴개와 아무도 사실상 알아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 자신의 위치를 신공은 너무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신공의 자신을 가둬둔 한계치이기도 하다.
신공의 말을 물끄러미 듣고 있던 괴개는 뭐 별일 아니라는 듯이, 표정은 조금 더 장난스럽게 지으며 말한다. 어느새 괴개는 신공의 목덜미를 팔로 감으며 마치 아이들이 부대끼며 노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정말로 같이 장난치고 싶은 괴개의 심정이랄까?
“그래, 좋아 좋아! 그렇다면 말이야...이 앞 주점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면서 친해져 보는 건 어때? 물론 돈은 네가 내는 걸로...”
“그러고 나면 너의 그 딱딱한 말투도 좀 고쳐지지 않겠어?”
그러나 그렇게까지 익살스럽게 장난을 걸며 말을 친근감 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공은 여전히 뻣뻣하다. 그런 괴개의 장난과 제안에 응해줄 마음이 조금도 없는 듯하다. 제안은 고맙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라는 너무 급조한 느낌의 거짓말까지 둘러대면서 말이다. 그러자 괴개도 다소 실망스런 표정이다.
(속마음 : 어? 이 자식 이거... 술값 좀 내라고 했다고 그러냐? 그거 얼마나 나온다고... 에이, 그래. 내가 술값 낼테니 다시한번 가자고 해볼까?)
그렇게 돌아서는 신공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괴개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게 있다. 그냥 심심해서 무공을 보여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괴개의 무공을 몰래 훔쳐서라도... 베껴서라도 그의 무공을 배워보고 싶다는 속마음을 말이다.
........... 괴개... 당신이 쓴 초식은 확실히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본 걸 잊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서 이걸 기록에 남겨둬야 해............
바로 그거다. 신공이 괴개를 찾아간 본질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남의 특허를 몰래 도용하듯이 지금 신공은 그런 짓이라도 해서 괴개의 무공을 익혀서 강해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서둘러 이 자리를 뜨려고 하고 있는 거다. 까먹기 전에 다 기록을 해두기 위해서 말이다.
여전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괴개는 묻는다. 그렇게 바쁘다는 사람이 왜 굳이 내 무공을 보러 온거냐고....
그 질문은 신공으로서는 촌철살인급이다. 속마음을 다 들킨 것만 같아 당황스럽다.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말을 얼버무리고 있는데 괴개가 먼저 이야기한다.
“야! 너 혹시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보러 온 거였어?”
뜨끔
들켰다. 속마음을 들켜버렸다. 그러나 최대한 당황하지 말고 발뺌을 해야 한다. 말 더듬지 않게... 침착하게...
“지... 지금 무슨 의심을 하시는 겁니까? 설마 제가 귀공의 무술을 훔치기라도 하려는....”
침착하려 했는데 실패했다. 말 더듬지 않으려 했는데 티가 나버렸다. 신공은 그렇게 도둑이 제발 저리듯이 어버버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괴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극순심천공’부터 먼저 익혀야 해.”
지금 괴개는 극순심천공이라 했다. 그것은 바로 삼다문에 내려오는 그 전설의 내공심법이 아닌가! 신공의 표정은 한껏 진지해져 있다. 지금 괴개는 진심으로 신공을 대하며 대화를 하고 있는 거다. 극순심천공의 운행을 바탕으로 만든 무공이 바로 춘야뇌몽무! 그러니 그거 없으면 춘야뇌몽무는 그냥 춤사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 젠장... 기껏 집중해서 머릿속에 초식을 다 외워놨는데..........
신공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 같다.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은데 극순심천공을 먼저 배워야만 하다니... 일이 뭔가 점점 꼬여가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엄습하는 신공이다.
“아! 혹시 극순심천공 배우고 싶어? 알려줄까?”
“저... 정말입니까?”
괴개의 떡밥을 냉큼 물어버리는 신공이다. 관심 없다더니... 바쁘다더니 그건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다 눈치채버리는 괴개다. 그래서인지 괴개는 크게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아하하하! 너, 역시 춘야뇌몽무를 배우고 싶었던 거지?”
이젠 발뺌해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결국 속마음을 다 들키고 말았다. 원래는 몰래 베껴서 혼자 수련하려고 했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까놓고 말하고 부탁해서 진짜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는 신공이다.
괴개는 일단 신공의 맥을 짚어보기로 한다. 그의 손을 잡아끌어 손목의 맥박을 살펴보는 괴개다. 지금 신공의 심장은 매우 빨리 뛰기 시작한다.
............. 정말 배울 수 있는 걸까? 내가 극순심천공을? .............
진짜 배울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하는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까닭이다. 맥을 짚어 본 괴개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그 결과를 말해준다.
“와! 너 대단하구나!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너 내공 수준이 엄청나!”
그런 칭찬에 신공은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배운 것이라고는 무림에서 제일 흔한 삼원신공 정도만 내공수련법으로 배웠을 뿐이라서 그렇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개나 소나 다 배우고 있는 기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정도 가지고 지금 괴개가 내공 수준이 엄청나다고 치켜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극순심천공을 가르쳐 준다면서 갑자기 맥을 짚어본 괴개는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당연하게도 배우려는 사람 몸의 기가 극순심천공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싶어서 확인해 보았던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튼 큰 문제는 없겠다며 안심시켜 준다. 그러니 이제부터 느긋하게 배울 생각으로 배우면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자 신공은 얼른 묻는다. 그 느긋하게라는 말의 뜻을 해석하고 싶은 거다. 느긋하게 배우면 대체 얼마나 걸리겠냐는 것이 신공의 질문이다.
“글세...한 10년? 20년? 뭐, 넉넉잡아 한 30년 예상하고 배우면 충분하지 않겠어?”
신공의 어깨에 두 손을 턱 올리며 괴개는 아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건성건성 말하듯이 말하고 있는 분위기다. 극순심천공을 진정 배우고 싶은 신공이다. 그래서 춘야뇌몽무를 익히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한 신공이다. 그런데 지금 30년을 느긋하게 배우면 될 거라는 괴개의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버금가는,,, 빡치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그거 하나 배우다가 늙어 죽겠다 싶은 거다. 그러니 빡 돌아 안 돌아?
조금전까지 예의를 갖추며 머리를 조아리던 신공은 이제 괴개의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태도가 180도로 완전히 뒤바뀐다. 표정은 차갑게 아주 냉정하게 지으며, 어쩌면 빡 돌고 있는 표정을 애써 숨기려 하면서 일단 욕 비슷한 외마디 소리를 시작으로 속마음을 털어낸다.
“젠장! 그래. 그렇게 아주 멋대로 가지고 노는군 그래! 뭔가 이상하더니... 결국 이렇게 놀릴 생각이었던 거였군!”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그 말을 남기고는 휙~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리를 떠나기 시작하는 신공이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다. 씩씩대며 생각한다.
............. 멍청하게... 이렇게 말도 안되는 놀림에 넘어가다니............
그렇게 휙 돌아서 가버리는 신공의 등에 대고 괴개는 다급히 말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냐고 말이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지 말이다. 참나... 그런 말이 더 화나는 거다. 실컷 놀려놓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 토라지면 그걸 또 왜 그러느냐고 묻는 상황 말이다. 다 알면서, 놀린 거면서 아닌척 하는 표정으로 왜 그러냐고 묻는 그 엿같은 상황 말이다. 지금 괴개는 신공이 느끼기에 딱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공은 다시 몸을 휙 돌려 괴개를 쳐다보며 삿대질도 해가며 고래고래 외친다.
“이제 그만 좀 해둬. 대체 사람을 언제까지 놀릴 생각이야? 실력도 안되는 천한 놈이 뭐라도 배워보려고 매달리는 꼴이 그렇게 재밌어?”
그렇게 태도가 돌변하자 괴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지금 상대방은 그렇게 느끼고 이해하며 자격지심을 뿜어내며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전의 그 깍뜻이 예의와 격식을 차리던 분은 어디 가고 없고 지금은 잔뜩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상한 놈이 막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야! 왜 그래? 난...”
괴개의 얼버무림에 신공은 더욱 더 싸늘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괴개에게 일성을 날린다.
“당신에게는 이게 우스운 일인지 몰라도 난 그만큼 절실하다고!!”
<에필로그>
그랬군요. 신공과 괴개의 회상 장면을 보니 다 이해가 되는 듯도 합니다. 왜 신공이 무림 천하 5절이라는 칭송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무림을 배신하고 신지에 붙었는지를 말입니다. 출신과 위치가 태생적으로 달랐던, 그래서 원초적으로 자격지심으로 가득한 마음이 신공의 선택과 결정을 부추긴 방아쇠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쨌든 왠지 신공이 측은해지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그런 심정은 같은 처지에 놓여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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