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강호 스토리 402화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 201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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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정중동!
이번 스토리의 분위기입니다.
액션 장면은 하나 없지만 전반적으로 흐르는 느낌은 팽팽함의 연속이지요.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지만 물밑에서는 두 발을 파닥거리고 있는 그런 모습.
천신각과 지신각의 긴장이 묘합니다.
목감기로 고생중이라는 양재현 작가님과
3일 간 딸랑 6시간의 수면밖에 취하지 못하며 이번 스토리를 마감하셨다는 전극진 작가님의 투혼에 경의를 표하며....
1. 사음민과 종리우의 신경전
천신각주 사음민과 지신각주 종리우.
그들의 한 치 양보 없는 신경전이 신지의 어느 협곡에 금방이라도 균열을 만들기라도 할 것처럼 치열하며 팽팽하다.
무심코 던진 듯하나 그 이면에는 예리한 비수를 숨기고 있는 말들이 난무한다.
괴명검 이야기를 툭~ 던지며 분위기를 살피는 사음민.
허나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상황의 반전을 꾀하는 종리우.
“무림 팔대기보는 우리 신지에서 만들어졌는데 정작 이 신지에 남은 건 괴명검 하나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사음민은 지금 괴명검을 확보했다.
신지의 비고에 보관되어 있어야만 하는 그 물건을 말이다.
그것은 종리우가 관리하는 품목인 것이다.
사음민은 말을 잇는다.
“어쩌면 그 분은 팔대기보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으신 게... 아니, 심하게 말해 꺼려하시는 건 아닐까요?”
사음민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으나 굳이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으려 한다.
종리우의 입으로 그 무엇을 듣고 싶은 까닭이다.
그래야 그의 약점을 취할 수 있고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리우 또한 그런 사음민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는 간파하고 있다.
따라서 섣불리 대응하지 않으며 말을 일단 아끼려 애쓰고 있다.
순진한 척 종리우는 대꾸한다.
그 분이 팔대기보를 꺼리셨다면 그 물건, 즉 마령검을 찾으라는 명령을 혈뢰에게 내리셨겠느냐는 거다.
사음민은 자신감 있는 어조로 분명하게 되받아친다.
“그게 과연 진심이었을까요?”
흠칫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한 종리우.
그는 그런식으로 그 분의 명령에 대한 의심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음민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그 동안 과거에 그 분이 했던 말씀을 상기시키는 거다.
분위기로 미루어 보건대 그 옛날 무림을 핏빛으로 물들게 하며 엄청난 살육이 벌어졌던 그 당시를 거론하는 것 같다. 그가 무림에 나가 전 무림을 상대로 벌였던 참혹했던 전쟁을 말이다. 그때 그는 마령검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전쟁이 일단락 된 후 그는 마령검을 스스로 봉인했다는 소문은 이미 온 무림에 퍼져 있다. 신지에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사음민은 지적하고 있는 거다.
그도 그럴것이... 그 후에 무림에서는 끊임없이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마령검을 봤다는 목격담과 관련 정보가 신지에 흘러들어오고 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결국 신지의 주인인 그의 귀에까지 전해졌고 이를 불편하게 여긴 그는 마지못해 혈뢰를 보내 마령검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라는 게 사음민의 대담한 추측이다.
사음민의 생각이 대단한 부분은 바로 그 다음부터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그때 혈뢰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신지로 돌아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장면이 있다. 신지의 주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임무 실패에 대한 처벌을 기다리던 혈뢰를 말이다. 마땅히 죽어야 할 죄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는 혈뢰를 살려 둔다. 신지에서 유일하게 도종의 맥을 이어받은 혈뢰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그게 어떤식으로든 한비광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어떻든 사음민이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즉, 그분이 마령검에 대해 더 나아가 무림팔대기보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반증으로서, 그 이후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드는 사음민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사람을 보내 마령검 회수를 시도했어야 한다는 게 사음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사음민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다음의 한 마디였다.
그것은 바로 종리우의 목줄을 조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 말 한마디....
신지의 비고!
그곳은 어디인가?
말 그대로 신지에 있는 비밀스런 창고라는 뜻이다.
또한 지신각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사음민이 하고 싶었던 결론이었던 것이다.
비고의 관리 책임자는 바로 지신각주인 종리우.
어느날 그 비고에 보관되어 있어야 하는 괴명검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괴명검은 지금 천신각주인 사음민의 손에 있다.
그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대목이다.
신지의 주군인 그 분의 허락 없이 비고의 물건을 사용하고 게다가 분실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실로 막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사음민은 종리우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상황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언제든 이러한 사실을 그 분께 보고한다면 그에 대한 문책과 징계는 불을 보듯 뻔하다. 어쩌면 지신각주의 자리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러니 괴명검이 사음민의 수중에 있는 한, 종리우는 사음민에게 함부로 들이대지 말라는 싸늘한 경고다.
종리우는 안면에 핏발이 서는 것을 느끼며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두 사람은 한 동안 말 없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둘 사이에 엄청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 사람은 의기양양하고 또 한 사람은 애써 태연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2. 그 분의 아들이 한비광?!
팔각정에서 나와 고즈넉한 산길을 산책하는 두 사람이다. 아니 산길이라기 보다는 온통 암벽으로 둘러싸인 황량한 곳이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사음민은 묻는다.
“무림에서의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 지요?”
뜻밖의 질문에 종리우는 살짝 놀라지만 내색하지 않고 답한다.
이미 무림의 큰 세력은 대부분 신지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노라고 말이다.
언제든 그 분의 지시만 내려진다면 한 순간에 무림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라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종리우다. 그러나 사음민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는 대업을 이룩할 수 없다며 정중히 꼬집는다.
“당장 산해곡의 늙은이만 해도 우리에겐 부담이니까요.”
산해곡....
늙은이....
새로운 지역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함을 알리는 메시지다.
동령 에피소드가 종료되었으니 이젠 산해곡 에피소드가 시작되려나 보다.
늙은이라 함은 당연히 산해곡의 수장이라는 건 쉽게 짐작되는 부분이겠다.
그러나 종리우는 웃는다.
그 늙은이는 대수롭지 않은 상대라는 뜻이다.
어색한 웃음을 짓는 종리우가 사음민으로서는 딱할 뿐이다.
이번 동령 임무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으면서 너무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사음민은 의미있는 충고를 툭 던진다.
중원에서 실질적인 작업을 맡고 있는 지신각이 아닌가.
그렇게 얕보고 있다가 산해곡 정벌 임무마저 실패한다면 그야말로 지신각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뻔하지 않겠느냐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거다.
남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는, 한 마디로 오지랖이 넓은 사음민이다.
종리우의 안색이 또 한번 어두워지며 경직된다.
두 주먹을 꾸욱 쥐며 부르르 떠는 종리우다.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놈에게 능멸과 조롱을 당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분개를 표현하고 있지만 절대 표출할 수는 없는 이 지랄같은 분위기가 못내 참기 힘든 것이다. 종리우는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여우가 아닌가! 그는 상황의 전환을 꾀한다.
“그렇게 말씀을 듣고 보니 천신각의 일에 대해 생각난 게 있습니다만... 대체 언제부터입니까? 그 분의 존재를 숨기기 시작한 것이....”
야비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은 채 종리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사음민에게 나름대로의 회심의 일타를 날리고 있다. 그런 종리우를 힐끔 바라보며 짐짓 긴장한 기색을 살짝 보이는 사음민. 허나 일단 시치미를 떼고 본다.
“그 분이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한비광... 바로 그 분이죠.”
!
한비광을 결국 입에 올리며 싸늘한 표정을 아낌없이 보이고 있는 종리우다.
마치 비장의 카드를 꺼내 힘차게 날리는 분위기다.
사음민이 괴명검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리우 역시 사음민의 약점이랄 수 있는 결정적인 카드를 쓰고 있는 셈이랄까.
분위기는 일순간 반전된다.
의기양양한 표정의 종리우에 반해 사음민은 그 짧은 순간에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도저히 숨길 수 없으니 말이다. 포커페이스가 필요한 대목이다. 사음민은 대수롭지 않은 말을 들을 것처럼...딴청을 피워본다.
“흠... 한비광이라? 어디서 들어본 듯 한 이름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종리우는 이미 승세를 타고 있다.
시치미를 떼고 있는 사음민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곁들이기 시작한다.
그 설명을 압축하여 요약하자면 이렇다.
- 지금 지칭하고 있는 그 분은 검존이다.
- 그가 검존에 오르기 전에 중원에서 정체를 숨기고 살았었다.
- 그때 그는 중원에서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다.
- 검존의 유일한 혈육이 존재하는 거다.
- 그러나 신지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 왜냐하면 신지에는 도존 이외에도 이미 칠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검존의 아들일지언정 다른 칠존들의 견제가 당연하다.
- 할 수 없이 아들은 중원에 남겨두었다.
-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검존은 자신의 아들을 계속 돌보고 있다.
- 그 사실은 철저히 비밀이며 신지 내부 인물에게도 숨기고 있다.
- 세월이 흘러 검존은 다른 칠존들을 제압한다.
- 명실상부한 신지의 주군 자리에 오른 검존은 아들 생각을 한다.
- 이제는 아들을 신지로 데려와도 되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거다.
거기까지가 종리우의 설명이다.
그가 사음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 혈육이라는 사내가 바로 한비광!!.
푸훗
사음민은 길게 한 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과장되게 커다란 웃음을 터뜨린다.
종리우의 진지함에 같은 표정으로 대응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리고는 그러한 종리우의 설명과 추측에 일침을 가한다.
싸구려 저질 이야기라는 거다.
망상이라는 거다.
그런 쓸데 없는 추측이나 하고 있는 시간을 아껴 지신각이 맡은 임무에 있어서 실수를 줄일 방안이나 고민해보라는 거다.
다시한번 너털웃음을 웃는 사음민이다.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한 채 웃음소리를 남긴채 사음민은 발걸음을 돌려 사라진다.
그런 사음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종리우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이를 악물어 본다.
으득~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크다.
뭔가 손해만 본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까닭이다.
.................. 역시, 사음민... 목 끝까지 들이밀어도 끝내 그 가면을 벗지 않는군 ..................
3. 풍연 도련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종리 선생?”
소리다.
그러나 주변엔 아무도 없다.
사음민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말이다.
두리번 거리는 종리우.
잠시 후 저만치서 뭔가 움직임이 있다.
암벽뿐인줄 알았던 그 지점에서 뱀처럼 스르륵 검은 그림자 하나가 미끌어져 내려오고 있다. 곧 사람의 형체가 나타난다. 완벽한 위장술이었다. 신지 서열 12위인 종리우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바닥까지 미끄러져 내려온 그 인물은 우득 우드득 뼈가 맞춰지는 소리를 내며 일어서고 있다. 마치 연체동물이 감추고 있던 뼈를 하나씩 조립하여 완전한 형태가 되듯이 말이다. 이윽고 종리우 앞에 우뚝 서는 이 인물.
그 모습이 기이하다.
전체적으로 길쭉길쭉한 몸과 팔, 다리를 갖췄고 등에는 작은 방패 혹은 원형의 칼집이 붙어 있고 보통 검의 절반 길이에 불과한 칼 두 자루가 엇갈려 꽂혀 있다. 얼굴은 가늘게 찢어진 작은 눈과 길죽한 얼굴, 괴장히 빠르게 빠진 하관 때문에 더욱 길게 보인다. 콧부리는 날카롭고 눈꼬리는 위로 올라가 몹시 매서운 인상이다.
“아아... 이거, 서열 19위나 되시는 無痕潛影 관은명 나리가 이렇게 남의 이야기나 몰래 듣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종리우는 새삼스레 반가운 얼굴을 하며 그 앞에 서 있는 인물을 맞는다.
그가 언급한 이 인물은 바로 신지 서열 19위 관은명.
그런데 그는 지금 ‘나리’라는 호칭을 빼놓지 않았다. 분명 자신보다 서열이 한참이나 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깍듯이 존칭을 쓰는 것도 모자라 ‘나리’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있는 거다. 그에 대한 사연은 차차 알 수 있을 것 같다.
관은명은 다그친다.
그 분께 혈육이 있다는 말에 대한 확인이 궁금할 뿐인 관은명이다.
급하게 몰아치는 그를 종리우는 다독거린다.
일단 추측일 뿐이라는 거다.
그러나 관은명 또한 괜한 의심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자섬풍 이야기를 알고 있던 것이다.
자섬풍....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신지의 주군의 명을 받고 그의 후예를 찾기 위해 무림에 갔다가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총각이 아닌가. 예상치 못한 자섬풍의 죽음에 그 당시 신지에서는 추측이 분분했던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신지에서는... 확실하게 지신각에서는... 자섬풍의 죽음과 천신각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는 거다. 어떤 식으로든 자섬풍의 죽음에 천신각이 관여를 했다고 말이다. 종리우는 추측 하나를 더 던진다.
“흠... 어쩐지 그 분이나, 천신각이 풍연 도련님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죠.”
풍연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인물이 거론되었다.
풍연 도련님이라 칭했다.
그는 또 누군가?
관은명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그를 좀 더 알 수 있겠다.
“난처하지 않습니까? 우린 그간 풍연 도련님을 그 분의 후계자로 지지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 다른 혈육이라니...”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고 있음이다.
방금 등장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풍연이라는 자는 분명코 신지의 역학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신지 전체의 권력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인물이다. 지금 신지의 후계자까지 거론되고 있지 않은가!
관은명의 걱정은 이렇다.
천신각이 찾고 있는 그 분의 혈육, 즉 한비광을 앞세워 풍연을 지지하고 있는 지신각을 친다면 사태가 어찌 될이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리우는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며, 그런 관은명의 생각을 일축해버린다.
분명 천신각은 지신각에 비해 서열이 높다.
그러나 그 활동영역과 임무는 극명하게 다른다.
즉, 천신각은 신지 안에서만 활동하며 지신각은 중원 무림과의 연락망을 총괄하고 있는 것이다. 신지 내부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물론 천신각이 절대적인 힘을 쓸 수 있지만, 무림정벌이라는 신지의 대의를 추진하는 지금의 상황이라면 신지의 주군 또한 절대 지신각을 내칠 수는 없다는 게 종리우의 판단이다.
4. 천마신군의 여섯째 제자 vs. 신지 주군의 혈육
추측들을 정리해보자.
천신각은 어쩌면 그 분의 밀명을 받고 유일한 혈육인 한비광을 몰래 돌봐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한비광이 신지에 무사히 입성한다면 천신각은 그야말로 날개를 다는 셈이다. 신지의 확실한 후계자를 등에 업고 실로 어마어마한 위세와 권력을 휘두를 게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지신각의 운명은 아마도 풍전등화가 될지도 모른다. 풍연 도련님을 후계자로 밀고 있는 지신각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관은명의 짧은 생각이다.
종리우는 역시 지신각주다.
그는 그 다음을 계산에 넣고 있는 거다.
그 근거는 바로 이렇다.
지금 상황에서 한비광이 그 분의 혈육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신지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만일 조금 전의 추측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쳐도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바로 그 분과 사음민이다. 그러나 그 두 사람 모두 함구하고 있다. 그 말을 뒤집어 본다면, 아직 한비광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재까지의 사실은 그저 한비광은 천마신군의 여섯째 제자라는 것일 뿐!
무림정벌을 위해서는 그 역시 신지에 의해 제거되어야만 할 무림이라는 사실일 뿐이라는 거다. 그것만이 모두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 점을 종리우는 확실히 알고 있다. 따라서 지신각을 포함한 신지의 모든 무사들의 임무는 한비광을 처단하는 것이다. 만일 그를 죽였을 때, 그런 이후에 그가 그 분의 혈육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천신각이 떠안아야만 하는 부분이라는 게 종리우의 계산이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은명은 종리우의 치밀함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무식하게 싸움만 잘 할 것 같은 관은명은 당연한 걱정을 던진다.
그 분의 혈육이라면 실력 또한 무시무시할 게 아니냐는 거다.
그것 또한 종리우에게는 대수롭지 않다.
왜냐하면 실력은 비록 대단할 수 있으나 한비광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담..화..린..!
언제든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최고의 카드가 아닐 수 없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내놓을 수 있는 게 한비광이라는 것을 종리우는 분명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종리우와 관은명은 지신각으로 돌아가 최근의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논하고 있다. 일단 분명한 건 괴명검은 현재 사음민의 수중에 있다. 그걸 그 분이 알게 된다면 참으로 난처한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러나 당장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음민은 더 중요한 순간에 그 카드를 꺼낼 것이기 때문이다. 사음민은 괴명검 카드를 갖고 일단 지신각에 목줄을 걸어놓고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의미를 전달한 것이다.
그때 전령이 메시지를 전한다.
그 분의 호출이 있다는 거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번의 동령 사태에 대한 문책을 하려는 게 틀림없다.
걱정이 가득한 관은명에게 종리우는 안심을 시키며 말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직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은 있으니 말입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종리우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며 긴장감이 역력하다.
5. 신녀의 낚시
아까부터 담화린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한비광.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쉴새없이 떠들어 대고 있다.
벌써 며칠째다.
그때 총괄표두 하연에게 당한 기습 키스에 대한 해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일로 담화린은 단단히 삐져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여자라고 할 수 없겠지... ^^;
강아지처럼 촐랑거리는 한비광을 발견한 노호.
일단 빈정거린다.
며칠씩이나 그렇게 쫓아다니다니 참 대단하다고 말이다.
그건 노호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노호는 한비광을 신녀에게 안내한다.
신녀는 한비광의 몸을 살펴봐주기 위해 부른 거다.
신녀는 알고 있다.
한비광은 지금 신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알고 있다.
그의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비록 본인의 몸도 정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비광의 몸을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런 신녀의 마음을 알아주지도 않은 채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는 한비광에게 신녀는 진지하게 묻는다.
“한비광님은 아직도 신지로 가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신녀는 신지의 위력에 대해 각성시키고 있다.
단 두 명에 의해 폐허가 된 동령의 심장부를 상기시키고 있는 거다.
그런 엄청난 고수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신지가 아닌가.
그 말을 듣자 한비광 역시 궁금증이 인다.
그렇다면... 즉, 두 명으로 동령을 부술 수 있다면... 서너 명 정도면 진작에 동령을 정복하고도 남았을텐데 왜 그동안 내버려둔 거냐는 궁금증을 신녀에게 묻는다.
동령은 신지가 무림으로 수월하게 진출하기 위해 꼭 지나가야 할 길목과도 같은 곳이다. 신지의 목표가 중원 정복이라면 벌써 동령을 접수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이제 거래가 되겠네요. 몸 상태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면 차근차근 설명해 드릴게요.”
신녀는 떡밥을 덥썩 문 한비광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진다. 옷을 벗으면 말해주겠다는 뭐... 그런 거..... ^^;
<에필로그>
영챔프에 실린 전극진/양재현 작가님들의 후기를 홈피의 극진과재현 코너에 옮겼습니다. 격려의 댓글 하나 날리는 센스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