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의 어느 어두컴컴한 동굴.
두 개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하나는 뒷짐을 지고 있고 또 하나는 그런 그의 등 뒤에 서 있다.
사음민은 지금 보스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놀랍게도 종리우가 감행하고 있는 작전에 대해서다.
마치 옆에서 보며 설명을 해주듯 매우 정확하게 보고하고 있다.
천검대와 수많은 신지 무사들을 이끌고 간 종리우의 작전이 왜 실패하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을 포함해서 말이다.
놀랍도록 정확한 사음민의 예견.
싸움이나 전투에서 대부분의 경우 숫자의 압도적인 우세는 그대로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상대가 검황이라면 더욱 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
수적 우위를 앞세워 당연히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가진 자들이, 상식을 훨씬 뛰어 넘는 절대적인 무공의 차이를 목격했을 때 벌어지는 상황.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몸이 굳어져 버리는 그것.
보스는 알고 있었다.
이번 작전 또한 사음민이 고의적으로 종리우를 부추겨 감행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아까운 신지 무사들을 백여명도 넘게 잃을 게 뻔한 작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도록 계략을 꾸민 사음민의 진짜 생각을 묻고 있다.
천신각과 지신각의 암투는 기정사실이며 보스 또한 어느 정도는 용인하고 있는 상태다. 허나,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완전히 초토화시킬 정도로 피해를 보게 하는 것 또한 보스로서는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다. 두 세력이 균형을 맞추며 신지를 위해 각자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는 것이 보스가 바라는 정보세력 간 균형인 것이다.
그렇기에 보스는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이번 일이 만약 단순히 지신각을 견제하여 그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만 감행된 것이라면, 그에 따른 천검대와 신지 무사들의 손실에 대해 종리우는 물론 사음민에게 또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이다.
사음민은 입을 연다.
산해곡의 늙은이, 즉 검황에 대해서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그를 없애기 위해 많은 신지 무사들이 산해곡을 찾았었다. 하지만 번번이 대결에서 졌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승부에서 진 신지 무사들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검술에 대한 토론 상대로 받아들여 무사로서의 본분을 자연스럽게 감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검황에게 마음을 주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신지 내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일 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중원으로 가는 길목인 산해곡을 막고 있는 검황에 대해 이젠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을 사음민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 점을 우려하고 있는 사음민으로서는 어떻게든 그런 상황을 도려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해서, 이번 작전을 부추겨 종리우로 하여금 뛰어들도록 만든 것이다.
그동안의 개인적인 대결이 아닌, 수 백명이 동원된 대규모의 공격을 말이다.
물론 사음민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비록 천검대와 수 백의 무사들이 공격한다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바로 검황이기 때문이다.
진짜 목적은 이것이다.
검황이 실제로 얼마나 신지에게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각인시키고자 함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제거해야만 할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어느새 만들어진 추종세력 조차 생각을 바꿔줄만한 커다란 사건을 만들고자 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큰 희생이 필요하다. 한 두명이 죽어서는 택도 없다. 이처럼 수 백명 정도는 사상자가 발생해야만 비로소 신지에 경각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치밀했다.
사음민의 전략은 종리우의 교활함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계략은 보기 좋게 성공하고 있는 거다.
종리우의 무모한 공격으로 말이다.
3. 작전 실패
종리우는 이빨을 부딪히며 떨고 있다.
경련에 가깝다.
조금 전까지도 다 되는 줄 알았다.
막무가내 인해전술과 천검대의 초마검기가 잘 먹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철그물까지 펼쳐지면서 다 됐다고 믿었다.
그러나 꼭 거기까지였다.
검황의 초식 한 번에 그 모든 것들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 현실이 너무도 믿기지 않는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도저히 어쩔 줄 모르겠다.
사색이 되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보려 애쓰고 있는 종리우다.
“종리우라고 했던가?”
검황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는 종리우다.
애초에 그랬다.
이번엔 목숨을 받아 간다고....
종리우로서는 피할 수 없는 도발과도 같다.
이판사판이다.
칼 한 자루를 움켜쥐고는 자세를 갖춘다.
................... 그래!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
이번 작전은 어쩌면 종리우로서는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기좋게 성공시키고 싶었다.
검황을 없앤다면 주군으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음민에게도 보기좋게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었던 최고의 작전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그것도 너무도 처참하게 말이다. 이렇게 물러선다면, 그래서 신지로 돌아간다면 주군에게 받을 문책은 어쩌면 죽음일 것이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지금 여기서 검황과 정면대결을 하는 게 낫다. 그래서 죽어도 이곳에서 죽는 게 낫다.
종리우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검황에게 자신의 실력은 너무 보잘것 없음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게 바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검황의 손에 죽자!!
그때다.
검황에게 쇄도하는 종리우의 사이에 만들어진 공간....
그 중간에 갑자기 나타난 인물 하나 있다.
바로 풍연이다.
종리우에게 일격을 가한다.
물론 그를 죽이고자 하는 공격은 아니었다.
일단 종리우를 제지시키는 풍연.
갑작스런 풍연의 출현과 검황을 공격하는 자신을 막아서는 상황에 일단 혼란스러운 종리우다. 그는 외친다. 왜 검황을 도와주려고 하느냐고 말이다.
“돌아가!”
풍연은 지금 종리우의 목숨을 보전해주고 있는 거다.
그리고 지금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건가!
풍연 또한 알고 있다.
종리우가 목숨을 던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를 살리고 싶을 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검황은 풍연의 뜻을 받아들여준다.
그렇게 끝이 나고 있다.
풍연의 개입으로 종리우는 일단 검황에게 목숨을 구걸 받았다.
이미 백명도 넘는 무사들을 잃었지만 더 이상의 손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모든 판단을 정리한 종리우는 깍듯이 예를 갖춰 검황에게 고한다.
“어르신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이번 작전의 종료를 선언한다.
그런 태도에 천검대는 당황스럽다.
허나 어쩌랴.
철수를 명하는 종리우를 따를 수밖에.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풍연이다.
풍연은 나름 충고를 한다.
“천검대까지 깨지고 돌아간 이상 이걸로 끝나진 않을 거야. 앞으로는 더더욱 조심하라구!”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풍연의 뒷모습을 또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검황이다.
뭔가 생각에 급히 잠기는 듯하다.
그는 지금 풍연을 보며 대체 무슨 상념에 잠기는 걸까? 몹시 궁금할 뿐이다.
4. 신녀와 담화린
동령의 신전.
신전의 신녀 집무실.
담화린을 기다리고 있는 신녀.
잠시 후 찾아 온 화린에게 따끈한 차를 한 잔 권하는 신녀.
동령을 떠나려는 담화린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함이다.
그런 위험한 곳을 함께 따라 가려고 하는 용기가 대단하며, 그것도 동료를 위해 간다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위험한 곳?
거긴 어디를 말하고 있음인가?
신지....!!
지금 한비광이 가고자 하는 그곳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떨구는 담화린.
표정에는 뭔가 미안함이 가득하다.
스산하다.
이윽고 입을 여는 담화린.
“그 녀석이 신지로 가는 거, 저 때문이니까요.”
<에필로그>
검황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무공만으로 백여명의 신지 무사들을 초토화시키는 가공할 능력.
신지 서열 12위의 종리우의 몸을 꽁꽁 얼려버린 절대 강자의 무공.
그래서 정파5절 중 으뜸이라는 검황이 아니겠냐고요~~~ ^^
이번 작전의 모든 면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음민의 혜안이 그저 놀라울 지경입니다. 신지의 보스가 사음민의 생각과 함께 하고 있는 것 또한 말입니다. 어떻든 완벽한 작전 실패를 맛보고 신지로 돌아가는 종리우의 발걸음은 천근이겠지요. 갑자기 나타나 목숨을 살려 준 풍연 도련님에 대한 종리우의 생각은 또 어떻게 전개될까요?
드디어 담화린이 동령을 떠나는군요.
신지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할아버지인 검황을 찾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