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펑크에 대한 작가님들의 독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36쪽의 방대한 분량에 촉촉이 녹아있는 것만 같습니다. 게다가 근래에 보기 힘든 이 빼곡한 대사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몇 번이나 숨을 쉬어야 겨우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답니다. 아무튼 새로운 이야기의 서막이랄 수도 있을 몇 개의 암시가 내포된 이번 430화 스토리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들여다볼까요?
<검황이 이 여자의 할아버지?>
타 앗
큐 튜 앙 !!
담화린과 풍연의 격돌이 한창이다.
놀랄만큼 성장한 담화린의 실력이 눈에 띈다.
풍연은 연속되는 그녀의 공격에 그저 피해내기에 바쁜 상황이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풍연을 그냥 놔두지 않는 화린.
마치 토끼를 쫓는 사냥꾼처럼 세차게 몰아붙인다.
날카로운 검은 빠르게 궤적을 그리며 풍연을 노리고, 풍연은 휘청~ 허리를 뒤로 꺾으며 정확한 시차를 두고 칼끝을 비켜낸다.
간신히 대여섯 걸음의 간격을 확보하며 자세를 가다듬어보는 풍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고 있다.
“제 길 !”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모양이다.
중원에서 온 무림인에게 수세에 처한 상황도 그러하거니와 상대는 여자가 아닌가! 신지의 후계자라는 자신이 한낱 무명의 여자에게 밀리고 있다는 게 너무도 짜증나는 까닭이다.
“후회하게 될 거라고 했지?”
담화린의 두 눈은 더욱 매서워진다.
아까 풀어진 머리카락이 더욱 흩날리며 화린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 모습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는 풍연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때다.
화린의 등 뒤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하나.
검황이다.
“화린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할아버지! 마침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이 자가...”
그 상황이 너무도 뜻밖인 풍연.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한 마디가 순간 믿기지 않는 눈치다.
............... 할 아 버 지 ? ..............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다.
분명 그녀는 검황에게 할아버지라 했다.
할아버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풍연은 아까보다 더욱 짜증이 솟구친다.
표정까지 일그러진다.
“젠장! 그랬었나?”
풍연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중얼거린다.
갑자기 몸을 휙 돌리며 내달리는 풍연.
파 아 앙 ! !
경공을 펼치며 마구 뛰는 풍연.
“젠장! 젠장!!”
순식간에 담화린의 시야에게 사라지는 풍연이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검황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허허... 녀석, 왔으면 좀 천천히 있다가 갈 것이지... 바쁜 일이라도 있나?”
그런 검황의 태도에 담화린은 당황스럽다.
분명 할아버지를 죽이러 왔다고 했는데...
그래서 지금 그 자와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저 자를 잘 알고 있는 눈치가 아닌가!
더구나 두 사람이 친해 보이는 분위기는 또 뭔가?
한편, 풍연은 그저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다.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달린다.
그러면서 연신 고함을 질러댄다.
뭔가 수틀린 모양이다.
아니, 잔뜩 화가 난다.
그는 지금 담화린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
뭔가 이상하다 했다....
그 늙은이의 혈육이라니.... 그 늙은이가 할아버지라니....
그런 실력을 속이고 있었다니....
그래서 화가 난다.
다음에 만나면 꼭 죽여 버릴 거라고 다짐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갑자기 반전되는 생각 하나 그의 가슴에 치민다.
동시에 풍연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두근! 두근!!
마구 내달리고 있는 풍연의 머릿속은 지금 이 순간 온통 담화린 생각뿐이다. 그럴수록 그의 심장은 더욱 더 두근거린다. 마치 터질 것만 같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그 커다란 눈망울로 자기를 쳐다보던 그녀, 날카롭게 검을 휘두르며 놀랄만한 실력을 보여준 그녀... 갑자기 저만치 앞 공간에 하얀 도화지가 펼쳐진다. 그 안을 가득 메운 담화린의 숨막힐 듯 아름다운 자태다.
.................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또 뭐야? ................
<응목>
더 이상 폐허가 된 마을에서 머무를 수 없게 된 응목.
살아남은 아이들을 인솔하고 근처의 마을로 피신한다.
첩첩산중의 동령 땅 어느 작은 마을을 찾은 응목과 한비광과 매유진.
한비광은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 마을 역시 동령이긴 하나 신지와 인접한 위치가 아닌가!
언제든 신지의 침입을 받을 수 있기에 불안한 것.
응목은 나름의 대비책을 설명한다.
즉, 살성에게 보고하여 이 부근 지역의 특별보호를 부탁하는 방안이다.
더구나 이 지역은 신지와 최인접 위치라는 사실을 확인한 상태.
다른 지역의 동령칠절들이 와서 함께 지켜준다면 신지라고 하더라도 이전처럼 쉽게 습격을 하진 못할 거라는 게 응목의 생각이다.
그런 응목의 나름 대비책을 듣긴 들었지만 한비광의 속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응목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이상 한비광도 어 이상 어쩔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 지역의 안보는 동령인들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며 예의인 것! 한비광은 응목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길을 떠난다. 그의 옆에는 매유진이 있다.
<검마>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신지의 깊숙한 어느 곳!
말 그대로 천혜의 요새다.
그 어느 한 지점에 동굴이 있다.
어두침침한 넓은 공간.
그 제일 안쪽의 높은 계단 위에 커다란 의자가 놓여있다.
신지의 절대자, 신지의 주인이 그 의자의 주인이다.
검마!!!
그리고 두 사람이 더 있다.
천신각주 사음민과 지신각주 종리우다.
검마는 지금 보고를 받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군. 정파의 호위를 받으며 흑풍회가 동령으로 오고 있다라...”
장백산 인근까지 질풍처럼 진출했으며 이건 틀림없이 이곳 신지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보고다. 그러나 검마는 좀 시큰둥하다. 옆에 있는 사음민은 노골적으로 종리우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사음민은 말한다.
“어이가 없군요. 사파의 정예부대라는 흑풍회가 장백산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했다니..... 이래서야 지신각의 정보 능력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뭇 빈정거림이다.
신지의 정보를 총괄하는 양대 축인 천신각과 지신각의 수장들이 지금 검마 앞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사음민의 말을 들은 종리우는 눈썹을 실룩거리며 불쾌감을 표시한다. 이런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는 사음민이 눈에 가시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둘의 신경전을 보고 있던 검마는 말을 가로막는다.
“천마신군의 제자 한비광이라..... 들어본 기억이 있는데 누구였지?”
검마의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이는 종리우다.
그 틈에 얼른 답을 올리는 사음민.
“전에 혈뢰와 관련되어 잠시 언급되었던 자로 알고 있습니다.”
검마는 잠시잠깐 생각에 잠긴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아아.... 화룡지보의 주인... 놈이 아직 살아있었나? 그런데 왜 그 놈이 이리로 온다는 거지? 종리우!”
검마의 일성은 종리우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구나 그에게 지금 질문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왜 한비광이 신지로 오려고 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는 거다.
허나, 종리우 역시 그 답을 모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럽기만 한 종리우는 말을 더듬는다.
“예? 옛! 그... 그건 저도 잘...”
그저 그런 궁색한 답변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종리우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지금까지의 그의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질 수도 있는 순간일 수 있는 것!
종리우는 그동안 이렇게 믿어왔다.
한비광이 신지로 오고 있는 건 순전히 어르신의 지시로 천신각이 손을 썼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라는 그 믿음은 불과 조금 전까지도 확고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어르신의 저 뜬금없는 말씀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천신각의 작업이 아니었던가? 어르신이 사전에 지시를 내렸던 게 아니었던가? 그게 아니었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미고 있다는 말인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신지의 정보통이라는 자신이 까맣게 모르고 있는 일이 어떻게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벌어지고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는 종리우다. 그의 생각은 자꾸만 혼돈에 빠진다.
그런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마는 말한다.
“이유가 뭐든 도종의 신물을 든 놈이 신지로 온다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지. 더구나 꼬리까지 달고 온다니 말이야....”
그 말에 황급히 대책 마련을 다짐하는 종리우다.
허나, 검마의 생각은 이미 그것을 넘어서 있다.
갑자기 의문이 든 거다.
정파와 사파가 무엇인가?
무림을 둘로 나누어 갖고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서로의 원수 관계가 아닌가! 그런 그들이 지금 함께 힘을 모으고 있는 형국이라니 믿기지가 않는 거다. 사파의 흑풍회가 어떻게 정파의 호위를 받으며 정파 한 가운데라 할 수 있는 장백산을 거쳐 동령으로 향하고 있단 말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검마는 더욱 궁금해진다.
“대체 뒤에 어떤 놈이 있단 말이냐?”
<은총사>
이곳은 장백산 하고도 검황의 본거지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다.
드넓은 연병장.
은총사와 곽준형이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먼저 은총사의 기분을 묻는 곽준형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들이 은총사의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기분을 말하는 거다. 그 물음에 은총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 지그시 눈을 감고는 답한다. 뭔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복잡한 감정이군요. 이게 가장 옳은 방법이라는 건 머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거기까지 말하고 있을 때 곽준형이 끼어든다.
“그래, 나도 눈이 믿겨지지가 않는군!”
그랬다.
그들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차마 믿을 수도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묘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무엇이 그들 앞에 있기에 그러는 것일까? 대체 무엇이.....
“내가 살이있는 동안 장백산에 흑풍회가 몰려드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그렇다.
곽준형의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은총사와 곽준형의 눈앞에 있는 장면.
그것은 바로 흑풍회였다.
송무문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히 장백산에 입성한 흑풍회 제 7 돌격대.
수백명의 흑풍회를 중앙에 두고 그 양 옆으로 수 천의 정파 무사들이 도열하고 있는, 그야말로 엄청난 풍경이 아닌가! 이런 장면은 지금까지의 무림 역사상 처음 벌어진 일이다. 사파의 흑풍회가 정파의 심장 한 가운데에 이렇게 운집해있을 수 있다니 말이다.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은총사 역시 눈앞의 광경이 차마 믿기지 않을 뿐이다.
<풍연의 흠모>
한편, 풍연은 몹시 이상한 어떤 기분을 참지 못하고 날뛰고 있는 중이다. 애꿎은 땅과 주변 바위들만 검으로 찍고 파고 부수고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좀 풀릴 것만 같다. 괴성도 지르며 마구 휘두르고만 있다. 그런 모습을 발견한 이는 종리우다.
조금 전 검마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오며 온갖 생각에 잠긴 종리우다. 여전히 그의 머리는 복잡하다. 이해가 불가한 상황이다. 사음민이 분명 한비광에 대한 뭔가 조치를 취해놓은 것만 같은데 그 실체를 종잡을 수 없는 거다. 그 또한 어르신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 단정 짓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딱히 그것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게다가 오히려 해치울 것을 명령하고 계시지 않는가 말이다.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그런 복잡한 심경으로 걷고 있는 종리우의 눈에 저만치에서 혼자 있는 풍연의 모습이 들어온다. 뭔가 무술을 연마중인 것으로 보인다. 고함 소리와 함께 바위가 깨져 우수수 날리고 있다. 헉헉 대며 풍연은 계속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진다. 담화린의 모습이, 얼굴이, 그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대답 한 마디!
........... 서.. 설마... 나... 그 계집애한테.... 반 한 건 가??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야말로 풍연은 미칠 지경이다.
딱 두 번 본 게 전부가 아닌가?
그랬는데 빠지다니......
게다가 그 계집애는 애인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퍼뜩 한비광을 떠올리는 풍연.
그 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터질 것만 같다.
그 계집애의 애인이라는데... 남자친구라는데... 그렇다면 잘 알고 있겠지? 녀석의 정체에 대해 물어나 볼까? 풍연은 지금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자 더욱 더 미치겠는 거다.
그런 그에게 말을 거는 종리우.
대뜸 묻는다.
그때 관은명이 처치하려 했던 그 자에 대해서다.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짐작이 가느냐는 질문이다.
의아해하는 풍연에게 종리우는 속내를 말한다.
아무래도 그 자를 해치워야만 할 것 같다고....
그 자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풍연의 우려에 종리우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현음독고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듣게 된 풍연은 뜻밖의 사실에 놀란다.
춘연향의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이용해 너무도 간단하고 쉽게 그 자를 죽일 수 있다는 종리우의 말이 풍연으로서는 너무도 이상하게 들리는 거다.
그런 종리우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풍연이다.
그 놈을 해치워야 한다는 종리우의 말이 일단 이해는 간다.
도종의 신물은 바로 화룡도.
그 물건을 들고 신지에 오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신지에서 무슨 분란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일찌감치 해치우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맞다.
그러나....
현음독고!
바로 그 대목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찜찜함이 풍연을 괴롭힌다.
현음독고.....
풍연은 지금 쓸데없이(?)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 자신이 너무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풍연이다.
<세 번째 만남>
자신도 모르게 풍연은 검황의 처소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것이 그녀와의 세 번째 만남이다.
우선 긴장감이 앞서는 풍연.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싸울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보는 풍연.
그는 말한다.
단지 전해줄 말이 있어서 온 거라고..........
그러나 뭔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는 풍연.
담화린이 반갑게 풍연을 맞이하는 게 아닌가!
그간의 일에 대해 검황에게 대충 이야기를 전해들은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많이 도와줬다고 들었나 보다.
그 얘기를 꺼내며 밝은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담화린이다.
“미안해. 신지 무사들에 대해서는 그간 안 좋은 기억밖에 없어서 오해를 했지 뭐야. 고마워. 그동안 할아버지를 많이 도와줘서.”
생긋 웃고 있는 담화린의 얼굴이 풍연의 두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녀는 지금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는 거다.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생글거리는 그녀의 황홀한 얼굴....
풍연은 지금 이 순간 거의 미칠 지경이다.
가슴은 쿵쾅거리며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뭔가 어색함이.....
한비광은 지금 어디 있냐고도 물어보고.....
애인이냐고도 물어보고.....
혼자 대체 어딜 간 거냐고도 물어보고.....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는다.
풍연은 헛기침을 하며 작업 멘트를 슬쩍 날린다.
“흠, 흠! 아참! 그건 그렇고 너 참 세더라. 정말 놀랐어. 내가 본 여자 중엔 젤 센 거 같아!”
그 칭찬에 반색을 하는 담화린이다.
“고마워. 나, 최근에 세다는 말 처음 들어봤어.”
다시 한 번 싱긋 미소를 보여주는 담화린.
그런 그녀의 살인 미소에 또다시 넋을 쏙 빼놓는 풍연이다.
물론 심장은 또다시 두근거리며 얼굴엔 홍조가 가득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풍연.
그런 모습이 좀 이상하게 보이는 담화린은 슬쩍 풍연에게 다가간다.
담화린이 가까이 다가오자 괜히 화들짝 놀라며 용수철처럼 몇 걸음을 뒤로 후다닥 물러서는 풍연. 창피한가 보다. 당황스러워 내뱉은 말이라는 것이 참 황당하면서도 귀엽다.
“아! 너.. 너... 혹시 멧돼지 좋아해? 그...그래. 거기서 잠깐만 기다려!!”
담화린이 뭐라고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후다닥 뒷걸음질 치더니 냅다 달려가 버리는 풍연이다. 진짜 멧돼지를 잡아올 모양이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풍연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저 멀리 내달리고 있다. 그 모습에 담화린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저렇게 엉뚱하고 정신없이 행동하는 걸 보면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한비광과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처소로 돌아서는 담화린이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반가운 목소리 하나 있다.
“어? 혼자 있었던 거야?”
얼른 고개를 돌린다.
저만치서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 바로 한비광이다.
벌써 다녀온 거냐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왔냐는 질문에 한비광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다 방법이 있다고....
그때, 한비광의 등 뒤에서 스윽 모습을 내미는 여인 하나.
바로 매유진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담화린에게, 놀랐냐며 한비광은 천연덕스럽게 응수한다. 원래는 동령 신전에 가서 노호를 데려오려 했었다. 중간에 은총사의 부탁으로 길을 떠났던 매유진을 우연히 만났고 이렇게 같이 오게 된 거라는 사연을 얘기해준다. 은총사의 부탁이라는 것은 바로 담화린을 장백산으로 데려와달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