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신지의 고수급인 관은명을 가지고 놀며 만신창이를 만들 정도니 말이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풍연은 의아스럽다.
그는 굉장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잠재력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신지의 후계자로 지명 받은 몸이다. 또한 신지의 무공은 중원을 당연히 압도하고도 남는다고 익히 알고 있었다. 허나, 그 녀석을 보고난 후 생각은 달라졌다. 절대 자기에 비해 실력이 뒤지지 않는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가 아니던가. 그런 괴물같은 자가 중원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힘든 거다. 중원의 실력자를 대면한 풍연의 느낌은 그 정도로 격렬했다.
그 대목에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한비광에게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으며 그에 걸맞은 엄청난 실력을 가진 놈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저런 것들을 관은명에게 꼬치꼬치 따져 묻는 풍연이다. 그러나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다. 그런 얘기는 지신각주에게 여쭈어보라며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물어봤다. 지신각주 역시 확실한 정보가 없다며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음을 확인한 상태다. 호기심만 증폭되는 풍연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중원 사람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지 않겠는가? 그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라면 중원인이라면 익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중원인이라면 한 명 알고 있다. 그는 바로 검황!!!
<풍연과 담화린의 첫 대결>
그랬다.
풍연이 질주하며 가고 있는 곳은 바로 검황의 처소다.
그 늙은이가 모든 궁금증을 풀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이윽고 도착한 그곳.
그러나...
먼발치에서 발견한 것은 검황이 아닌 한 젊은이다.
그는 지금 엄청 열심히 검술을 연습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예사로운 실력은 아닌 듯하다.
“어라? 저 녀석은? 그 녀석과 함께 다니던 그 여자애 아냐?”
풍연은 담화린이 남장을 하고 있지만 단번에 여자임을 알아챈 동물적 감각의 소유자다.
오랜 금욕 생활에서 터득된 감각이 아닐까? ^^;;
맹렬한 기세로 검술 연마에 여념이 없는 담화린을 주시하고 있는 풍연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순간....
나름대로 은밀히 조심을 한다고 하긴 했지만....
그 정도의 움직임을 놓칠 담화린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전의 어리바리한 그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공이 일취월장하고 있다고나 할까?
어쨌든 풍연은 들켰다.
“거기 누구냐? 어서 나와!!”
파 아 앗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계면쩍은 듯한 표정으로 담화린 앞에 훌쩍 모습을 드러내는 풍연이다. 자신의 움직임을 감지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수급이라는 사실의 반증인 셈이다.
갑자기 나타난 풍연을 보며 놀라는 담화린이다.
그가 한비광과 대결하는 모습을 지켜봤기에 그의 실력을 알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비광과 비슷한 고수가 아닌가!
“그건 그렇고 여기 있던 늙은이는 어디 갔어? 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다짜고짜 담화린에게 묻는 풍연이다.
이 자가 찾고 있는 사람은 바로 검황, 할아버지가 아닌가!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왜 그 분을 찾는 거죠? 당신은 뭐예요?”
“아, 나? 그 늙은이를 죽이러 온 분이지.”
그 한마디....
풍연의 그 말은 담화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이러 왔다는 이방인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결투다!!
결투를 신청하는 담화린!!!!
칼을 뽑으라는 선전포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행동에 옮기는 담화린이다.
거침없이 칼을 뻗는 그녀다.
파 아 앙
날카롭다.
급히 몸을 뒤로 물리며 피하는 풍연.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가 싶은 찰나에 득달같이 쇄도하는 담화린의 복마화령검을 풍연은 연거푸 가까스로 피해내고 있다. 요리조리 잘도 피하고 있긴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공격은 예리함과 강맹함이 점점 커지고만 있는 게 아닌가!
“어서 칼을 뽑으라니까!!”
담화린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여전히 칼은 뽑지도 않고 미꾸라지처럼 피하기만 하는 풍연이 얄미운 거다.
단단히 열 받고 있는 그녀.
칼을 뽑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면서 그녀는 심호흡을 한다.
비장의 검술을 쓸 모양이다.
할아버지를 지켜야 하는 손녀의 필사적인 공격이랄까?
정파 거두의 손녀로서 칼도 뽑지 않은 상대방과 대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파답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무 설 만 천 !!
슈 콰 콰 쾅
풍연은 그제야 뭔가 심각성을 느낀다.
무설만천이 펼쳐지자 피할 수도, 맨 손으로 막을 수도 더더욱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풍연은 등에 지고 있던 칼집에서 검을 뽑아든다.
동시에 무설만천 초식을 허겁지겁 막아내기에 바쁘다.
채 채 챙
실로 강맹한 초식이다.
신지 후계자를 이렇게 순식간에 궁지에 몰고 있으니 말이다.
풍연은 당황스럽다.
겨우 막아냈다는 생각이 미치자 더욱 화가 치미는 걸 느낀다.
더구나 상대는 계집애가 아닌가!
이거 대충 놀아주려고 했는데 절대 그럴 상대가 아니란 걸 안 거다.
한편으론 기분이 몹시 나쁘다.
담화린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몰아치면 제압할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다.
기회가 왔을 때 틈을 주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회심의 일격이랄까?
담화린은 초식을 펼친다.
기다렸다는 듯이 풍연 또한 대응을 시작한다.
칠 성 발 파 !!
구 천 혼 뢰 !!
장백검법과 신지 후계자의 신지 검법이 한바탕 충돌을 한다.
복마화령검과 풍연의 검은 정확히 그 칼끝을 마주친다.
두 개의 초식이 맞부닥뜨린 거다.
꽈 쩌 웅
결과는?
담화린의 승기가 확실하다.
그녀가 우뚝 서 있는 반면 풍연은 그 충격으로 대여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 것! 풍연은 한마디로 몹시 혼란스럽다.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눈치다. 더 이상 장난으로 하다가는 정말 뭔 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풍연이다.
바로 그 순간...
담화린의 머리캡이 벗겨진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출렁거리는 긴 머리카락의 물결이 펼쳐진다.
잘생긴 선머슴에서 아름다움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했다고나 할까?
그 모습을 목격한 풍연은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본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대결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눈치다.
그만큼 그의 눈에 담화린의 자태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거다.
신 뢰 격 정 !!
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재차 공격을 퍼붓는다.
신뢰격정 초식이다.
검을 힘차게 뻗는 그녀.
잠시 정신줄 놓고 있던 풍연은 화들짝 놀라며 성급히 방어한다.
쩌 어 엉
굉장한 충격이다.
그만큼 담화린의 초식이 강력하다는 증거다.
두 개의 검이 부딪히며 발생된 충격파는 실로 대단했다.
풍연의 몸이 훅~ 하고 튕기며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고 있는 게 아닌가!
확실히 업그레이드 된 담화린의 무공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참 다행이다.
<에필로그>
걸렸지요?
담화린의 아름다움에 걸려들지 않을 남자가 있다면 고자거나 게이겠지요. ^^;
풍연 또한 남자는 남자인가 봅니다.
하긴... 한비광 또한 그녀의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과 그에 최고로 잘 어울리는 미모를 본 순간 홀딱 반해버렸으니까요. 풍연이라고 별 수 있을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