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강호 481화 = 악마와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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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5-07-05 00:28 조회10,982회 댓글0건본문
열혈강호 481화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20150704
<프롤로그>
날씨가 꽤 더워졌지요?
본의 아니게 업데이트가 늦어졌고, 그래서 2회 분량을 한번에 올리렵니다.
아무쪼록 우리 열강 회원 여러분~
더위 조심하세요.
아, 물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메르스는 더더욱 조심하시구요.
<모정>
환자의 모습에 다름 아닌 그녀, 한비광의 엄마는 간신히 기운을 차려가며 담화린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한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그리고 또한 걱정스런 얼굴로 그녀는 담화린에게 손을 잡아볼 수 있느냐고 청한다. 깜짝 놀라지만 얼른 다가가서는 손을 건네는 담화린이다. 그 손을 잡은 그녀는 옆에 있는 아들, 한비광의 두 손을 또한 함께 잡더니 지그시 포갠다. 세 사람의 손이 하나로 모아져 있는 상황이다. 뜻밖의 상황에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매유진은 두어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런 광경을 접하고는 눈이 동그래진다. 어쩌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뗀다. 그동안 힘들게 이곳까지 함께 했다면 그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라는 것쯤은 엄마로서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왠지 슬픈 표정으로 담화린을 응시한다. 마치 자신의 며느리라도 될 사람인양 아들을 맡기는 시어머니의 심정인양 담화린에게 당부를 한다.
“보잘 것 없는 아들이지만, 잘 부탁할게. 아가씨....”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며 수줍어하는 담화린이다.
여자로서의 직감이랄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엄마가 하는 당부의 그 의미를 어찌 모를소냐.
그녀는 한 마디 더 말을 잇는다.
“사내들이란 늘 똑똑한 척 하지만, 항상 철없는 짓을 저지르곤 하거든... 그러니... 아가씨가 부디 우리 애 곁에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길 바래요.”
여기서 말하는 사내들이란...
바로 그녀의 남편과 아들을 지칭하는 것.
자신의 남편이 그러했듯 아들마저 그리될까 하는 노심초사가 아닐 수 없다.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아무런 말로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담화린에게 그녀는 약속이라도 받아내야 한다는 듯 재차 묻는다.
“약속해 줄 수 있죠?”
그제야 담화린은 얼떨결에 짧은 긍정의 대답을 건넬 뿐이다.
장면이 참 묘하다.
신지의 주군이라는 자가 있고 그 옆에 그의 부인이 있고 또 그녀 옆엔 아들이 있고 바로 그 옆에는 담화린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는 매유진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모르긴 해도 많은 외로움을 느낄 것만 같다.
<산산이 부서진 슬픈 그녀이어라>
!
그때다.
검마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진다.
퍼뜩 어떤 위기감이 느껴진 것이다.
아니 그의 눈에 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 몸에서 뭔가의 기운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하얀 기운이다. 그녀의 정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바로 그런 것이랄까?
그는 황급히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이다.
기운이 계속 소진되고 있으니 어서 빨리 빙관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허나, 그녀는 태연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남편의 얼굴에 손을 갖다대서는 어루만진다.
그리고 작정을 한 듯이 말한다.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고....
당신이란 사람을 만나 이미 충분히 행복했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저를....”
쩌 적 쩍
헉~
이건 또 무슨 소리?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아닌가!
눈물을 끝내 보이는 그녀는 그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으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얼굴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 고운 얼굴이 마치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얼굴을 시작으로 그녀의 온몸은 동시에 빠르게 조각조각 부서지기 시작한다. 미처 손을 쓸래야 쓸 수도 없는 순간이 진행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검마는 절규한다.
한비광 또한 경악한다.
“아... 안돼!!”
“어... 엄마!!”
파 앗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동안 빙관에 있어 수정처럼, 얼음처럼 투명하게 빛을 내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모든 기운이 소진되자마자 산산이 부서져 아주 작은 얼음 알갱이와도 같은 형태로 흩날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손을 내밀어보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검마는 아내의 이름을 그저 부르며 망연자실할 뿐이다. 한비광은 방금까지 자신의 눈앞에 있었던 엄마가 사라지자 절규하며 통곡한다. 분명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지 않은가! 허나, 이젠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으니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한비광은 통곡하고 흐느낀다. 엄마를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다.
“겨... 겨우 기억해 냈는데... 겨우 다시 만났는데...”
한비광은 절규하며 외친다.
이게 대체 뭐냐고...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말이다....
<본색>
“시끄러...”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흐느끼는 한비광을 향해 시끄럽다는 목소리 하나가 끼어든다.
누구?
그는 바로 조금 전까지 희연이란 이름을 부르며 비통해하던 한비광,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런데 느닷없이 시끄럽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있다. 게다가 차마 귀를 의심할 정도의 말을 내뱉고 있다.
“진즉에 죽었어야 했던 계집이다. 시끄럽게 굴지 마.”
한비광도 담화린도 매유진도...
너무도 뜻밖의 상황 전개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저자는 분명 한비광의 아빠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아들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귀를 의심하고픈 지경이다.
허나, 그들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 그는 비아냥거리며 말한다.
무슨 애새끼도 아니고 자꾸 아빠 아빠 하며 징징대지 말라고...말이다.
한비광은 이제 막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런 돌발 언행을 슬슬 참을 수가 없어지려 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그의 본색은 이미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린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오히려 지금 기분이 무척 괜찮다는 말이 어디 가당치나 하냔 말이다.
그때다.
검마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기라도 하다는 듯이...
갑작스럽게 왼손이 눈 깜빡할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강타!
그대로 몸이 뒤로 내동뎅이 쳐지는가 싶더니...
훌쩍 도약하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다.
잠시 정신을 잃은 듯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건만...
그의 몸은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뒤로 뒤로 날아가더니만...
양 손은 강력한 파괴음을 내며 등뒤의 동굴 벽에 깊숙이 박히고 만다.
마치 자신의 두 팔을 바위벽에 깊이 처박아 팔의 움직임을 구속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십자가에 두 팔이 고정된 예수의 모습을 얼핏 닮아있는 것도 같다. 덕분에 그의 두 팔은 팔꿈치까지 완전히 바위벽에 박혀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제야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는 검마.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한비광, 담화린, 매유진에게 그는 힘겹게 입을 연다. 부탁이 있노라고...
“나를... 나를 죽여다오... 난 악마와 거래를 했다. 네 엄마를 살려주는 대가로... 냐는 내 육체를 그에게 넘겼다.‘
헉~
이 무슨 충격적인 멘트란 말인가?
악마와 거래를 텄다니...
아하... 그랬구나.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랬구나.
그당시 목숨을 잃기 직전에 있었던 아내를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했단다. 빙관에 살려두기 위해 영혼을 판 것이다. 그런데 조금전 스스로 빙관에서 나온 그녀 덕분에 잠시나마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육체를 되찾을 수 있었으나 그것도 짧은 순간만이 유효했을 뿐,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게 되었노라고 한다. 허나, 이제는 그 조금의 영혼마저도 소멸할 상황에 처해진 것이란다.
“그러니 내 정신이 조금이나마 이 육체에 남아있는 동안에 나를 죽여!!”
그는 절규한다.
어서 자신을 죽이라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비광의 아빠로서, 희연이란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영혼이 작동하고 있으니... 내 의지가 내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지금의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어서 죽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가 다시 내 몸을 영원히 지배하게 될 테니 그때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말이다. 검마의 실력은 이미 세상의 최고 수준이니 그러하다.
그는 계속 절규한다. 더욱 소리를 높힌다. 어서 죽이라고... 더 이상은 기회가 없다고...
그의 몸이 심하게 요동친다. 바위벽에 박혀있던 두 팔이 꿈틀거린다. 그러자 두 팔 주변의 바위벽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다. 악마가 다시금 그의 영혼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극한의 대결이 그의 정신과 몸에서 벌어지고 있음이다. 영혼을 어떻게든 유지해보려는 자와 그 얼마남지 않은 인간의 영혼을 제압하여 육체를 차지하려는 자와의 대결이다.
악마가 다시 자신의 몸을 차지한다면, 한비광도 담화린도 매유진도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한비광의 아빠다. 현재까지는 적어도 그의 영혼이 남아있는 순간이기에 그렇다. 허나, 점차 힘이 부치는 순간에 허우적거린다.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이미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더욱 절규하며 소리친다. 어서 자기를 죽이라고 말이다.
오직 매유진만이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는 이윽고 현무파천궁에 화살 하나를 장전한다. 정확히 타겟을 향해 조준을 하고는 말한다. 그 뜻을 따르겠노라고... 옆에 있던 한비광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매유진은 작정한 듯 시위를 놓는다.
파 아 앙
이윽고 화살은 강렬한 파열음을 내며 공기를 가른다.
목표물은 저만치 바위벽에 기대 서있는, 조금전까지 한비광의 아빠였지만 지금은 단지 악마의 영혼에 지배되려 하고 있는 대상이다. 화살은 정확히 검마의 이마를 향해 쇄도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죽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미 늦었다. 늦어 버렸다.
화살은 우뚝 멈췄으니... 그의 이마를 꿰뚫기 직전에 멈추고야 말았다.
검마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화살은 멈췄다.
현무파천궁의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으로 잡아낸 것이다. 그가 살짝 손가락을 비틀자 화살은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며 땅에 우수수 떨어진다.
“아쉽게 되었군... 이로써...네놈들이 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
담화린은 감지한다.
조금전 한비광의 아빠였을 때와 지금의 기운은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이젠 더 이상 한비광의 아빠가 아님을 말이다.
허나, 한비광은 이성이 살짝 마비된 상태이니 그런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엄마가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는 아빠를 부르며 그 사내에게 다가서려 한다. 뒤에서 담화린이 말려보지만 이미 늦었다.
콰 앙
한비광의 가슴팍에 뭔가 박히는 소리다.
강력한 기의 공격이다.
동시에 십여미터를 족히 날아가 저만치의 바위벽에 내동뎅이 쳐지는 한비광이다. 피를 토할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는 한비광.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아빠를 자꾸만 자꾸만 부르고 있다. 어떻게 만나게 된 아빠인가! 비록 엄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지만 저 사람은 분명 아빠가 아니냔 말이다.
“크크크... 그 빙관을 없애지 않았던 건 잘한 짓이었군. 그 계집 덕분에 남아있던 녀석의 정신을 끌어내 깨끗이 말살시킬 수 있었으니...”
이제 비로소 악마는 온전히 육체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선언인가?
대단히 만족스러워 하는 그 사내는, 그러나 마지막의 그 무엇을 느낀다. 즉, 이 육체의 주인이 뭔가를 더 해보려고 애쓰는 느낌말이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까처럼 두 손이 꿈틀꿈틀 움직이려 하고 있으니 그렇다. 육체의 주인인 한비광의 아빠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몸부림이랄까?
허나, 악마는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단다.
감히 육체의 원래 주인에게 통첩을 보낸다. 포기하라고...
그는 서서히 기를 끌어모은다.
그러자 온몸의 주변 공기가 급속도로 팽창한다.
이윽고 굉장한 파열음과 함께 맹렬한 폭발음이 그의 몸을 감싼다.
갑작스런 상황 전개에 매유진도 담화린도, 그리고 겨우 정신 차리고 몸을 추슬러 세운 한비광도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에필로그>
아하...
그런 비극이 벌어지는군요.
그리고 검마의 육체와 정신이 그랬고 그랬었군요.
악마와의 거래를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모든 것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가슴이 뭉클...
그러나 이젠 완전히 육체를 빼앗긴, 그래서 조금의 영혼도 남겨져 있지 않은 그 사내의 존재는 아쉽게도 여기까지임을 또한 확인하는 순간이니 어찌 슬프지 않을소냐...
전극진/양재현 작품
비줴이 편집/20150704
<프롤로그>
날씨가 꽤 더워졌지요?
본의 아니게 업데이트가 늦어졌고, 그래서 2회 분량을 한번에 올리렵니다.
아무쪼록 우리 열강 회원 여러분~
더위 조심하세요.
아, 물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메르스는 더더욱 조심하시구요.
<모정>
환자의 모습에 다름 아닌 그녀, 한비광의 엄마는 간신히 기운을 차려가며 담화린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한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그리고 또한 걱정스런 얼굴로 그녀는 담화린에게 손을 잡아볼 수 있느냐고 청한다. 깜짝 놀라지만 얼른 다가가서는 손을 건네는 담화린이다. 그 손을 잡은 그녀는 옆에 있는 아들, 한비광의 두 손을 또한 함께 잡더니 지그시 포갠다. 세 사람의 손이 하나로 모아져 있는 상황이다. 뜻밖의 상황에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매유진은 두어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런 광경을 접하고는 눈이 동그래진다. 어쩌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는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뗀다. 그동안 힘들게 이곳까지 함께 했다면 그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라는 것쯤은 엄마로서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왠지 슬픈 표정으로 담화린을 응시한다. 마치 자신의 며느리라도 될 사람인양 아들을 맡기는 시어머니의 심정인양 담화린에게 당부를 한다.
“보잘 것 없는 아들이지만, 잘 부탁할게. 아가씨....”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며 수줍어하는 담화린이다.
여자로서의 직감이랄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엄마가 하는 당부의 그 의미를 어찌 모를소냐.
그녀는 한 마디 더 말을 잇는다.
“사내들이란 늘 똑똑한 척 하지만, 항상 철없는 짓을 저지르곤 하거든... 그러니... 아가씨가 부디 우리 애 곁에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길 바래요.”
여기서 말하는 사내들이란...
바로 그녀의 남편과 아들을 지칭하는 것.
자신의 남편이 그러했듯 아들마저 그리될까 하는 노심초사가 아닐 수 없다.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아무런 말로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담화린에게 그녀는 약속이라도 받아내야 한다는 듯 재차 묻는다.
“약속해 줄 수 있죠?”
그제야 담화린은 얼떨결에 짧은 긍정의 대답을 건넬 뿐이다.
장면이 참 묘하다.
신지의 주군이라는 자가 있고 그 옆에 그의 부인이 있고 또 그녀 옆엔 아들이 있고 바로 그 옆에는 담화린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는 매유진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모르긴 해도 많은 외로움을 느낄 것만 같다.
<산산이 부서진 슬픈 그녀이어라>
!
그때다.
검마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진다.
퍼뜩 어떤 위기감이 느껴진 것이다.
아니 그의 눈에 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 몸에서 뭔가의 기운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하얀 기운이다. 그녀의 정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바로 그런 것이랄까?
그는 황급히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이다.
기운이 계속 소진되고 있으니 어서 빨리 빙관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허나, 그녀는 태연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남편의 얼굴에 손을 갖다대서는 어루만진다.
그리고 작정을 한 듯이 말한다.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고....
당신이란 사람을 만나 이미 충분히 행복했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저를....”
쩌 적 쩍
헉~
이건 또 무슨 소리?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아닌가!
눈물을 끝내 보이는 그녀는 그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으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얼굴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 고운 얼굴이 마치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얼굴을 시작으로 그녀의 온몸은 동시에 빠르게 조각조각 부서지기 시작한다. 미처 손을 쓸래야 쓸 수도 없는 순간이 진행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검마는 절규한다.
한비광 또한 경악한다.
“아... 안돼!!”
“어... 엄마!!”
파 앗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동안 빙관에 있어 수정처럼, 얼음처럼 투명하게 빛을 내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모든 기운이 소진되자마자 산산이 부서져 아주 작은 얼음 알갱이와도 같은 형태로 흩날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손을 내밀어보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검마는 아내의 이름을 그저 부르며 망연자실할 뿐이다. 한비광은 방금까지 자신의 눈앞에 있었던 엄마가 사라지자 절규하며 통곡한다. 분명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지 않은가! 허나, 이젠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으니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한비광은 통곡하고 흐느낀다. 엄마를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다.
“겨... 겨우 기억해 냈는데... 겨우 다시 만났는데...”
한비광은 절규하며 외친다.
이게 대체 뭐냐고...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말이다....
<본색>
“시끄러...”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흐느끼는 한비광을 향해 시끄럽다는 목소리 하나가 끼어든다.
누구?
그는 바로 조금 전까지 희연이란 이름을 부르며 비통해하던 한비광,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런데 느닷없이 시끄럽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있다. 게다가 차마 귀를 의심할 정도의 말을 내뱉고 있다.
“진즉에 죽었어야 했던 계집이다. 시끄럽게 굴지 마.”
한비광도 담화린도 매유진도...
너무도 뜻밖의 상황 전개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저자는 분명 한비광의 아빠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아들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귀를 의심하고픈 지경이다.
허나, 그들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 그는 비아냥거리며 말한다.
무슨 애새끼도 아니고 자꾸 아빠 아빠 하며 징징대지 말라고...말이다.
한비광은 이제 막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런 돌발 언행을 슬슬 참을 수가 없어지려 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그의 본색은 이미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린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오히려 지금 기분이 무척 괜찮다는 말이 어디 가당치나 하냔 말이다.
그때다.
검마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기라도 하다는 듯이...
갑작스럽게 왼손이 눈 깜빡할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강타!
그대로 몸이 뒤로 내동뎅이 쳐지는가 싶더니...
훌쩍 도약하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다.
잠시 정신을 잃은 듯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건만...
그의 몸은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뒤로 뒤로 날아가더니만...
양 손은 강력한 파괴음을 내며 등뒤의 동굴 벽에 깊숙이 박히고 만다.
마치 자신의 두 팔을 바위벽에 깊이 처박아 팔의 움직임을 구속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십자가에 두 팔이 고정된 예수의 모습을 얼핏 닮아있는 것도 같다. 덕분에 그의 두 팔은 팔꿈치까지 완전히 바위벽에 박혀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제야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는 검마.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한비광, 담화린, 매유진에게 그는 힘겹게 입을 연다. 부탁이 있노라고...
“나를... 나를 죽여다오... 난 악마와 거래를 했다. 네 엄마를 살려주는 대가로... 냐는 내 육체를 그에게 넘겼다.‘
헉~
이 무슨 충격적인 멘트란 말인가?
악마와 거래를 텄다니...
아하... 그랬구나.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랬구나.
그당시 목숨을 잃기 직전에 있었던 아내를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했단다. 빙관에 살려두기 위해 영혼을 판 것이다. 그런데 조금전 스스로 빙관에서 나온 그녀 덕분에 잠시나마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육체를 되찾을 수 있었으나 그것도 짧은 순간만이 유효했을 뿐,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게 되었노라고 한다. 허나, 이제는 그 조금의 영혼마저도 소멸할 상황에 처해진 것이란다.
“그러니 내 정신이 조금이나마 이 육체에 남아있는 동안에 나를 죽여!!”
그는 절규한다.
어서 자신을 죽이라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비광의 아빠로서, 희연이란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영혼이 작동하고 있으니... 내 의지가 내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지금의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어서 죽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가 다시 내 몸을 영원히 지배하게 될 테니 그때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말이다. 검마의 실력은 이미 세상의 최고 수준이니 그러하다.
그는 계속 절규한다. 더욱 소리를 높힌다. 어서 죽이라고... 더 이상은 기회가 없다고...
그의 몸이 심하게 요동친다. 바위벽에 박혀있던 두 팔이 꿈틀거린다. 그러자 두 팔 주변의 바위벽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다. 악마가 다시금 그의 영혼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극한의 대결이 그의 정신과 몸에서 벌어지고 있음이다. 영혼을 어떻게든 유지해보려는 자와 그 얼마남지 않은 인간의 영혼을 제압하여 육체를 차지하려는 자와의 대결이다.
악마가 다시 자신의 몸을 차지한다면, 한비광도 담화린도 매유진도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한비광의 아빠다. 현재까지는 적어도 그의 영혼이 남아있는 순간이기에 그렇다. 허나, 점차 힘이 부치는 순간에 허우적거린다.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이미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더욱 절규하며 소리친다. 어서 자기를 죽이라고 말이다.
오직 매유진만이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는 이윽고 현무파천궁에 화살 하나를 장전한다. 정확히 타겟을 향해 조준을 하고는 말한다. 그 뜻을 따르겠노라고... 옆에 있던 한비광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매유진은 작정한 듯 시위를 놓는다.
파 아 앙
이윽고 화살은 강렬한 파열음을 내며 공기를 가른다.
목표물은 저만치 바위벽에 기대 서있는, 조금전까지 한비광의 아빠였지만 지금은 단지 악마의 영혼에 지배되려 하고 있는 대상이다. 화살은 정확히 검마의 이마를 향해 쇄도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죽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미 늦었다. 늦어 버렸다.
화살은 우뚝 멈췄으니... 그의 이마를 꿰뚫기 직전에 멈추고야 말았다.
검마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화살은 멈췄다.
현무파천궁의 화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으로 잡아낸 것이다. 그가 살짝 손가락을 비틀자 화살은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며 땅에 우수수 떨어진다.
“아쉽게 되었군... 이로써...네놈들이 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
담화린은 감지한다.
조금전 한비광의 아빠였을 때와 지금의 기운은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이젠 더 이상 한비광의 아빠가 아님을 말이다.
허나, 한비광은 이성이 살짝 마비된 상태이니 그런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엄마가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는 아빠를 부르며 그 사내에게 다가서려 한다. 뒤에서 담화린이 말려보지만 이미 늦었다.
콰 앙
한비광의 가슴팍에 뭔가 박히는 소리다.
강력한 기의 공격이다.
동시에 십여미터를 족히 날아가 저만치의 바위벽에 내동뎅이 쳐지는 한비광이다. 피를 토할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는 한비광.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아빠를 자꾸만 자꾸만 부르고 있다. 어떻게 만나게 된 아빠인가! 비록 엄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지만 저 사람은 분명 아빠가 아니냔 말이다.
“크크크... 그 빙관을 없애지 않았던 건 잘한 짓이었군. 그 계집 덕분에 남아있던 녀석의 정신을 끌어내 깨끗이 말살시킬 수 있었으니...”
이제 비로소 악마는 온전히 육체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선언인가?
대단히 만족스러워 하는 그 사내는, 그러나 마지막의 그 무엇을 느낀다. 즉, 이 육체의 주인이 뭔가를 더 해보려고 애쓰는 느낌말이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까처럼 두 손이 꿈틀꿈틀 움직이려 하고 있으니 그렇다. 육체의 주인인 한비광의 아빠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몸부림이랄까?
허나, 악마는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단다.
감히 육체의 원래 주인에게 통첩을 보낸다. 포기하라고...
그는 서서히 기를 끌어모은다.
그러자 온몸의 주변 공기가 급속도로 팽창한다.
이윽고 굉장한 파열음과 함께 맹렬한 폭발음이 그의 몸을 감싼다.
갑작스런 상황 전개에 매유진도 담화린도, 그리고 겨우 정신 차리고 몸을 추슬러 세운 한비광도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에필로그>
아하...
그런 비극이 벌어지는군요.
그리고 검마의 육체와 정신이 그랬고 그랬었군요.
악마와의 거래를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모든 것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가슴이 뭉클...
그러나 이젠 완전히 육체를 빼앗긴, 그래서 조금의 영혼도 남겨져 있지 않은 그 사내의 존재는 아쉽게도 여기까지임을 또한 확인하는 순간이니 어찌 슬프지 않을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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