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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승무원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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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8-31 21:44 조회4,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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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의 미소


여행은 그 단어 자체로 아드레날린을 머금게 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리라는 생각은 수년전부터 해왔지만, 늘 그렇듯이 생업에 쫓기고 학문에 목덜미를 채여 사는 탓에 결혼 11년이 넘도록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의 한 마디에 충격을 받고는 바로 그 다음날 여행계획을 손수 짜기 시작한다. 그 말인 즉슨, 반에서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거다. 더 나아가 친구들은 대부분 방학 때마다 가족과 외국 여행을 다녀온다는 거다. 외국 여행은 둘째 치고 일단 자기도 제주도에 너무 가보고 싶단다. 친구들이 제주도 얘길 하면 자기는 그 대화에 낄 수 없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딸의 고백이었다.

중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은 꽹과리채로 이마를 가격하는 체벌을 즐겨하셨는데, 그때마다 이마에는 밤톨만한 혹이 부풀어 오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때의 머리통이 쪼개질 것만 같은 충격을 떠올리게 할 만큼, 딸아이의 고백 더하기 간청은 내게 커다란 공명을 남기기에 충분했음이다. 해서 우리 가족은 이번 여름에 제주도 3박 4일의 여행을 전격 감행했다.

 제주항공이었을 게다. 연예인 뺨치는 미모의 승무원이 갑자기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하고 나타났다. 분홍색과 초록색의 알록달록한 가발을 들고 승객들에게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그렇게 통로를 오가며 원색의 가발을 씌워주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즐거운 장면을 촬영해주기 시작했다. 정말 뜻밖의 풍경에 처음엔 낯설기도 했지만 가만히 지켜보노라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 우리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고 그래서 모두가 적당히 기분 좋고 들뜬 마음이며 잠시 후 시작될 제주도 여행에 한껏 기대를 하고 있겠다. 그때 나타나 생글거리며 분위기를 띄워주는 하늘 위의 미소천사를 누가 반기지 않으리오. 대체 저런 상큼한 아이디어는 누가 낸 걸까? 고객만족을 위한 그들의 무한질주가 더욱 기대된다.

내가 다니는 연구소는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데 온갖 민항기의 노선이 바로 머리 위 하늘에 겹겹이 걸쳐 있는 탓에 하루종일 비행기 엔진 소리를 듣고 있다. 늘 똑같은 소음과 모양새지만 실외에 있다면 난 늘 고개를 들어 그것들을 시야에서 놓칠 때까지 응시하곤 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하늘이 바다이고 비행기는 물고기가 아닐까? 그래서 저렇게 하얀 배를 날렵하게 미끄러뜨리며 유영하고 있는 것일 거야. 비행기는 지금 날아가는 게 아니라 헤엄치고 있는 거라는 착각을 즐겨 한다. 저런 물고기들이 뻐끔거리며 하얀 수증기를 늘어뜨리고, 헤엄치는 동안 바람결이 하얀 아랫배의 비늘을 씻겨 떨어뜨리고 그런 것들이 밑으로 가라앉아 내 머리에 스미며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이는 건 아닐까.

오늘도 비행기의 하얀 뱃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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