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재운다는건 고독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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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3-19 01:31 조회3,086회 댓글0건본문
아기를 재운다는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 출입문 열쇠 구멍에 열쇠를 밀어넣기 전에 가만히 문에 귀를 대본다. 혹시 서현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하고.... 확인 후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집안의 조명등이 모두 꺼져 있거나 주방에만 불이 밝혀져 있다. 옳거니... 둘 다 자는구나. 언제부터 자는걸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밤 9시? 10시? 아니면 11시? 살금살금 안방에 들어가보면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져있다.
안방에는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붙여져 있다. 하나는 매트리스 두 장짜리 더블 침대이고 하나는 한 장짜리 서현이의 싱글 침대다. 오늘도 어김없이 넓다란 침대는 텅 비어있고 좁은 싱글 침대위에 모녀가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다. 사실은 나란히가 아니다. 서로 얽혀있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일거다. 일단 서현이는 가로로 누워있고 주영이는 세로로 누워있다. 서현이의 한쪽 다리는 벽에 달랑달랑 걸쳐져 있고 한쪽 팔은 주영이의 목을 휘감아 돌면서 머리칼을 한 주먹 가득 움켜쥐고 있다. 그러는 통에 주영이의 얼굴의 반 쯤은 온통 머리칼로 대충 뒤덮혀 산발이 되어 있고... 물론 아랑곳 않고 둘은 씩씩거리며 열심히 자고 있는거다. 아~~ 주영이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걸 보면서 동시에 나는 속으로 뇌까린다.
"음... 오늘도 역시 주영이의 악전고투가 있었겠군... 애를 재운다는건 정말..."
혹시 싱크대에 설거지 꺼리가 남아 있으면 조심조심 해놓고...새벽에 꼭 분유를 먹어야 하는 서현이를 위해 분유 준비를 해가지고 방에 들어간다. 넓은 침대에서 나 혼자 자는게 미안해(?) 나동그라져 있는 주영이를 흔들어 침대 위로 올려놓을라치면... 양치 해야 한다며 비틀거리며 화장실에 간다. 애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이와 비슷한 고생을 하고 있는거겠지. 매일매일 애를 편하게 재운다는게 정말 말처럼 쉽지 않다는걸 나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서현이를 편안하게 꿈나라에 맡기기 위해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겠지...
섬집 엄마는 굴 따러 가서 굴을 따고 또 따서 산을 이루었겠고...섬집 아이는 또 얼마나 많이 집에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팔 베고 홀로 잠이 들어야만 했을까나.... 그렇게 오래 팔 베고 자면 쥐나는데....팔이 무지하게 저릴텐데.... 팔이 저려 퍼래질때쯤 양떼들이 몰려왔겠지. 첫 번째 양은 노래부르고, 두 번째 양은 춤을 추고 세 번째 양은 재주를 넘고 네 번째 양은 지휘를 하고 다섯 번째 양은 뛰어다니고 여섯 번째 양은 굴러다니고 일곱 번째 양, 여덟 번째 양, 아홉번째 양.... 열번째 양은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하고.....
그러나 살다보면 때때로 뜻밖의 횡재를 할 때도 더러 있다.
오늘같은 경우, 서현이가 좀 더 어렸을 때 즐겨 읽어주었던 "Polar bear polar bear, What do you hear?" 라는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세트로 되어있는 카세트 테잎을 틀어주었드랬다. 두 번을 완독하고 세 번째 읽고 있는데, 서현이가 수상하다. 혹시나 해서 살짝 들여다봤더니, 흐흐흐... 서현이가 고개를 살짝살짝 끄덕거리며 졸고 있는게 아닌가? 오~ 예~~ 이런 횡재(?)가~~~ 겨우 책 세 번 읽어주고 서현이를 재우다니....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다. ^^;
오늘은 서현이가 태어난지 14개월 + 17일째 되는 날.
겨우 3.0 kg으로 나왔던 애가 지금은 11 kg이 되었다. 어쩌다가 서현이 앨범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깜짝 놀란다. 정말 많이 자란게 실감이 난다. 지금 안방에서는 서현이와 주영이가 늘 그렇듯 서로 부둥켜 안고 자고 있다. 아까 자기전에 기분좋게 놀 때, 그 쬐그만 입술을 달싹거리며 뭐라뭐라 신나게 말을 해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저것이 얼마나 재롱을 떨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며 두통이 사라진다. 나도 별 수 없이 아버지가 되어가나 보다. 딸 아이 재롱에 바깥일의 스트레스를 푸는 평범한 아빠가 되어간다.
200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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