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라인 비욘드 : 4화 - 솔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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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5-06 17:19 조회3,356회 댓글0건본문
시시각각 조명이 바뀌는 컴퓨터 본체가 테이블 밑에서 웅웅~거리며 냉각팬이 바쁘게 회전하고 있다. 대형 모니터 두 개가 듀얼로 잘 세팅되어 있다. 제법 넓은 책상 위 여기저기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음료수 캔과 컵라면 용기와 과자봉지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컴퓨터 책상 옆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 멀뚱멀뚱 천정을 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한다.
“토요일... 또 주말...”
뭉기적 뭉기적 몸을 일으켜 앉는가 싶더니 허리를 반으로 접는다. 마치 폴더폰처럼 몸을 다시 침대에 포갠다. 반쯤 감은 눈으로 억지스레 일어나 커튼 한가운데에 선다. 양쪽 커튼을 양손으로 하나씩 움켜쥐어 활짝 열어젖히는 게 아니라 자기 얼굴 양 뺨에 갖다 댄다. 마치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눈만 빼꼼 내놓은 모양새다. 한참을 그런 엉거주춤한 자세로 창밖을 초점 없는 눈으로 멀뚱히 바라보며 넋두리를 잇는다.
“만날 여친도 없고 딱히 놀러 갈 데도 없는데, 비나 좍좍 와라와라왈라숑...”
요상한 주문이나 외우는 꼴이 무기력한 청년 그 자체다.
두 팔을 위로 죽 뻗으니 몸 여기저기서 우두둑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으아아함~ ”
입이 찢어질 듯 벌리며 하품을 한다.
“아이고, 삭신이야. 어제도 밤새웠더니 이거 컨디션이 장난 없네. 그래도 모처럼 1승은 했어. 아자아자! 흐흐~”
어젯밤 치열했던 게임 속 전투 장면들이 여전히 생생한가 보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가며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니 말이다.
그때, 아래층에서의 외침이 들려온다.
“잘생긴 아들~ 밥 먹어~ 설거지 부탁해! 엄마 나간다.”
그 소리에 갑자기 현실 세계로 돌아온 듯, 녀석은 스마트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1시다.
진지한 표정으로 읊조린다.
... 울 엄마, 참 대단하셔. 어떻게 한 번을 안 빼먹냐...
내 이름은 솔찬이다. 정솔찬. 그냥 대학생이다. 장래에 뭐가 되고 싶었냐고? 앞으로 뭐가 되려고 하냐고? 하.... 글쎄다. 꿈이 있는지 없는지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돈 많이 벌어서 멋진 스포츠카 한 대 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가끔 하기는 한다. 물론 옆자리에 몸매도 좋고 얼굴도 아주 예쁜 여자친구를 태우고 말이다.
어렸을 때 장래희망이 뭐냐고 어른들이 물어보면 습관적으로 과학자라고 대답했던 기억은 있다. 솔직히 과학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하얀 실험복을 입고 우주선이나 로봇을 만드는, 오타쿠 같은 사람 정도의 느낌이었다. 사실은 그런 느낌의 과학자가 바로 아버지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구소 실험실에 처박혀 일하고 어떨 땐 며칠씩 집에 오지도 않으셨다. 덕분에 아버지랑 신나게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바쁜 거라면 과학자라는 직업이 별로라는 생각도 그즈음에 한 것 같다.
며칠 후면 아버지 기일이다.
그렇게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그날의 기억은 빠짐없이 생생하다. 어느 주말 오전이었다. 그 전날도 거의 밤새다시피 게임 하다 쓰러져 자는 바람에 토요일 11시가 다 되어 깼다. 오줌 마렵지 않았으면 아마 오후까지 잤을 거다. 어기적어기적 주방에 내려가 보니 웬일인지 아버지가 집에 계셨다. 의아해하는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머쓱한 표정으로 그러셨다. 그동안 추진했던 프로젝트의 데모 버전 테스트가 무사히 잘 끝났다고. 그래서 이번 주말엔 오랜만에 푹 쉴 수 있다고.
그러면서 가족을 위해 브런치를 손수 준비하고 계셨다. 식빵을 굽고 달걀을 부치고 치즈도 얹고 소시지까지 구워낸 거의 완벽한 브런치였다. 게다가 목초우에서 짜낸 신선한 우유까지 곁들이니 최고의 식사였다. 우리 네 식구는 아주 오랜만에 행복한 주말 오전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한 접시를 채 비우기도 전에 아버지는 전화를 받았다.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다녀올 데가 있다시면서 황급히 집을 나가셨다.
그 뒷모습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며칠 후면 장례 후 꼭 1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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