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일기 <26>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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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용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3-06-25 13:33 조회1,104회 댓글0건본문
밤 11시.
늘 골프투어에 함께 하셨던 선배님으로부터의 전화.
하루종일 설사에 시달리는 바람에 기력이 쇠해져 내일 새벽의 골프에 동참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아
직 장담할 수 없노라는... 일단 약속시간인 6시 30분까지 기다렸다가 오지 않으면 그냥 떠나라
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메세지를 전하신다. ㅡ.ㅡ
다음날 6시 30분...35분...
끝내 그 선배님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의 골프투어 멤버이자 선생인 P군과 길을 나섰다.
UFO Golf Club은 36홀짜리 골프장으로 나름대로의 규모와 깔끔한 그린을 자랑하고 있었다.
티오프 시간인 7시 30분이 되어 도착한 1번홀.
왠 흑인 아저씨가 혼자 털래털래 몸을 풀고 있다. 몸을 푼다기보다 그저 서성거리고 있었겠다.
눈치를 보니 우리가 두 명이니 아마도 우리랑 동반하지 않을까...
역시 그랬다.
꽤 과묵해보이는 아저씨다. 그의 이름은 챨스.
1번홀.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폼은 썩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샷과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를 보유한...그래서 골프를 좀 칠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보다 점수는
더 형편없었다. 108점 정도 쳤나보다. 슬슬 말을 걸어보니, 그래도 베스트 스코어는 85타였고 일주
일에 적어도 한 번은 골프를 친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 아저씨의 날이 절대 아니었으니... 후
반홀 초반에 카트가 그만 뚝~ 하고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이다. 고쳐보겠다고 한 손엔 부러진 카
트를...다른 한 손엔 무거운 골프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머지를 돌았으니...힘도 부쳐보이고 기분
도 물론 엉망이었을게다. 그러니 골프가 잘 될리 만무하다.
몇번 홀인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그러나...
여우였다 그것은 분명.
티샷 후 페어웨이를 걸어나가는데 저 만치서 뭔가 숲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니 슬금슬금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걸어나오지 않는가. 앞서 나가던 챨스가 껄껄 웃으며 " Hey, Look~ Fox " 하며 손으
로 가리키고 있다. 처음엔 여우인지 잘 몰랐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여우같아 보이긴 하더
라. 생각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아주 윤기나는 털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치 재롱이라도 떠는듯 우리
가 다가가고 있거나 말거나 벌렁 눕더니 한 두바퀴 왼쪽 오른쪽으로 구르기를 한다. 물끄러미 우
리를 쳐다보고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어슬렁 어슬렁 옆으로 비켜준다. 골프장에 여우가 나타난다
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무척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후반홀에서는 비버라는 놈을 봤으니... 여우도 그렇고 비버도 그렇고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
는 눈치다. 그저 총총총 제 갈길을 가는 여우와 비버. 다름번에는 카메라를 챙겨가야겠다. ^^
이번 골프부터는 기록을 철저히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막무가내로 쳐나가기 보다는 기록에 의한 나름대로의 학습이 필요할것만 같아서이다.
그래서 오늘의 기록은...
- 그린피 : 39 $
- 소요시간 : 4시간 30분 (7:30 am ~ 12:00)
- 점수 : 102 타 (올시즌 최고점수 타이)
- 버디 : 0
- 파 : 0
- 보기 : 8
- 더블보기 : 7
- 트리플 : 2
- 더블파 : 1
- 페어웨이 안착률 : 11 %
- 그린 적중률 : 17 %
- 평균 퍼팅수 : 1.8 개
기록이 말해주듯, 오늘의 골프에서 드라이버 샷은 그야말로 꽝~~
그러나 퍼팅은 아주아주 괜찮았다. 퍼팅 1개로 홀 아웃을 여러번 했기 때문이다. ^^
비록 드라이버는 완벽하게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이언 샷이 안
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고질병이던 타핑이 단 한 번밖에 없었고 나머지 모든 아이언 샷은 잘 맞아
날아간거다. 방향만 조금씩 좋았더라면 온그린도 여러차례 성공시킬 수 있었을뻔했으니...
지난 2주동안 한번도 연습장에 나가지 못했었는데, 그에따른 참혹한 드라이버 샷의 난조!! 허망했
다. 도저히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잘 맞으면 300 야드 가까이도 날아가는 드라이버 샷
이건만, 이날은 더할 나위 없이 날 외면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ㅠ.ㅠ
동반자 P군은 큰 기복없는 실력을 뽐냈고, 무엇보다 동반자들을 기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마지
막 18번 홀에서의 PGA 선수를 보는듯한 그 완벽함이었으니...
395야드짜리 파 4홀.
티샷은 멀리 저멀리 날아가더니 그린을 80여 야드 남겨둔 지점의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안착!
그러면...드라이버 샷의 비거리는 무려 315야드 정도 였다는 사실~ 오, 놀라워라!!
자신감이 붙은 P군은 피칭으로 온그린.
그러나 그 세컨 샷은 그린의 가장자리라서 보통의 경우 투 펏이 예상되는 긴 거리를 남겨둔 것.
내심 버디를 노리고 있던 그는 신중하게 그린을 읽은 후 확고하게 롱 퍼팅.
곧 멈출것만 같았던 그 공은 끈기를 발휘하더니 홀 컵으로 쏙~ 사라졌으니.... 완벽한 버디 !!!
흑인 아저씨 챨스와 나는 마치 자기일인양 환호성을 지르며 P군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너무도 완벽한 18번 홀을 보여준데 대한 당연한 답례라고나 할까.
마치 내가 버디를 잡은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지는 까닭은 또 뭘까?
" 이런 맛에 또 골프를 치게 되는거 같아요. "
입이 귀에 걸리며 홀아웃된 공을 집어드는 P군의 첫마디였다.
그의 오늘 점수는 84타. 거의 싱글 수준이다.
그런가보다.
그는 가끔 300 야드를 날리며 버디를 하나 둘 낚는 마력에 홀려 있고
나는 나대로 역시 이따금씩 300 야드 가까이 드라이버 샷을 날리며 파를 듬성듬성 잡아내는 마력
에 푹 빠져 있을테고...... 바로 그런게 골프라는 것인가 보다. 다음 투어때에는 제발 오늘처럼만
아이언 샷이 딱딱~ 잘 맞아주길 바라며.... 그때에는 드라이버 역시 내 마음에 조금은 호응을 해주
리라 굳게 믿으며 다음 일요일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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