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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창작 만화, 더 이상 버틸 곳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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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줴이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1-10-15 02:41 조회4,4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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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만화, 더 이상 버틸 곳이 없네" (2001.02.27) 주간조선

무료 인터넷만화-게임 호황…작년 잡지7개 폐간ㆍ대여점 40% 부도 서울 여의도 한양아파트단지
안의 '책빌리지' 대여점이 문을 닫은 것은 지난해 10월. 문을 연 지 10년 만의 일이다. 개점 초만
해도 골방이 아닌 상가 2층에 자리한 데다 인테리어도 깔끔해 인근 초ㆍ중ㆍ고교생들이 즐겨 찾
는 만화 전문 대여점으로 자리잡았다. 장사가 잘되면서 인근에 다른 대여점들이 여럿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97년 중반부터 주춤하던 매출이 결국 지난해 들어 가게 운영이 힘들 정도로 급격하게 줄었
다. 지난 99년 8월 가게를 인수한 김희준(29)씨는 "처음 인수했을 때부터 계속 수익이 줄어들어 5
개월 만에 가게를 내놓았다"며 "만화를 정말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주로 찾아올 뿐 대다수 학생들
이 인근 게임방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화 매니아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이 만화
대여점 자리엔 최근 약국이 들어섰다

만화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2000년 국내 출판 만화시장이 바닥까지 내려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쎈'(시공사) '코믹엔진'(삼양출판사) '히트'(서울미디어랜
드) '코믹펀치'(삼양출판사) 등 소년만화 잡지 4개가 무더기로 폐간됐고, 만화 비평지 '오즈'와 성
인지 '빅점프'(서울문화사), 순정지 '나인'(서울문화사)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출간
을 포기했다.

출판사들이 잡지ㆍ단행본 발행부수를 20~30%씩 줄이자 만화 전문 대여점들도 타격을 입었다. 작
년 한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은 대여점만 5000여곳. 현재 전국 만화전문 대여점은 6200여곳으로
이는 97년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친다. 대여점이 주요 고객인 만화 총판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어
서 대구지역 최대의 동일출판을 비롯한 유수의 도매상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결국 판매실적
이 저조하자 출판사는 발행 규모를 줄이고, 이에 따라 대여점과 도매상들이 연이어 타격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돼 온 것이다.

●발행 판매 부수 30%로 격감

이 배경에 대해 업계는 전반적인 출판 경기 불황과 무료 인터넷 만화의 확산, 게임시장의 급성장
을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만화의 주 독자층인 청소년들의 관심사가 온라인 게임으로 돌아섰고,
이에 따라 만화방을 채우던 이들이 PC방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얘기다. 오프라인 만화시장의 한계
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인터넷 만화’는 오히려 ‘만화는 공짜로 보는 것’이란 인식을
확대시켜 시장 파이를 축소시켰다.

만화 평론가 이동훈씨는 “PC방에서 게임에 열중해 있는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끌어올 수는 없는
법”이라며 “예측했어야 할 시장 판도 변화에 재빨리 대처하지 못한 실책은 차치하고서라도 오래
전부터 지적돼 온 시장구조의 근본적 변신을 꾀하지 못한 건 만화계 전체의 책임”이라고 주장했
다. 한국 만화 출판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판매가 아닌 ‘대여’ 중심 구조다.

만화 출판시장이 곧 대여점시장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얼마나 책을 살 것인가’ 라는 수요 예측없
이 대여점 수만큼의 책만 찍어낸다. 출판사는 마케팅 전략 및 프로모션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그
저 많은 종류의 책을 출판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이런 식의 물량 공세가 낳은 것이 바로 여러 명
의 만화가들이 단시간에 작품을 완성시키는 ‘만화 공장’이다.

국내 만화시장이 질적 상승을 간과하고 있는 사이 90년대부터 흥행이 검증된 일본 만화들이 싼값
에 밀려들었고 만화시장은 일본 만화에 잠식돼 갔다. 현재 일본 만화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70~80%. ‘만화 공장’의 영향으로 경쟁력을 잃어버린 국내 만화시장에 기발한 소재와 아이디어로
무장한 일본 만화가 빠른 시간에 수요층을 형성한 것이다. ㈜대원씨아이의 단행본 팀장 장재용씨
는 “단행본 판매는 ‘열혈강호’ ‘짱’등 일부 흥행작을 제외하곤 1만부도 넘기기 힘들고,
잡지도 대부분이 대여점으로 빠져나가 판매실적이 형편없다”며 상대적으로 출판비용이 적게 들
고 인기높은 일본 만화 출판이 이득”이라고 말했다.

국내 만화계를 더욱 옥죄는 것은 창의적이어야 될 작가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 청소년
보호법이다. 97년 시행된 이 법은 당시 폭력과 섹스가 난무한 일본 불법 복제만화로부터 우리 청
소년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일본 해적판은 통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
히려 통제된 것은 국내 작가들의 소재 선택 범위와 창의력이다. 그 대표적 예가 사법부의 기성 만
화가 L씨에 대한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판결이다. 아직도 몇몇 작가들은 자신이 그린 작품이 청소
년에게 유해하다는 사법부의 판결에 반발해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정부의 검열이 심해지자
출판사는 위험 부담을 없애기 위해 아예 성인 만화시장에서 발을 뺐고 소재 선택의 한계로 인해
능력있는 기성 작가들의 활동은 현저히 수그러졌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만화시장의 해법은 악순환을 고리를 끊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그
것이 대작 만화일 수도 있고 출판사의 파격적인 변화, 또는 독자들의 ‘만화 사보기운동’이 될
수도 있다. 만화가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곳이 출판사라고 입을 모은다. 실
제로 만화가들이 대작 만화를 만들 숙제를 안고 있다면 출판사는 이들이 역량껏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마케팅 전략을 통해 ‘수퍼 히트’ 만화를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 개개인의 독자들
이 만화책을 구입하고 싶게끔 유통구조를 바꿔야 할 위치에 서있는 것도 출판사다. 세종대학교 만
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 교수는 “출판만화 시장에 연예계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
가 있다. 만화가를 스타로 만들어 작가이름만 보고 작품을 사볼 수 있는 시장과 분위기 조성이 필
요하다”며 “만화책과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대형 만화 전문 쇼핑몰을 만들어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매 아닌 대여점 중심 시장구조가 문제

한편 출판사측과 평론가들은 “만화가들이 출판 만화, 캐릭터, 애니메이션계를 평정할
‘대박 만화’를 터뜨려 줘야 한다”고 말한다. 질 높은 만화는 자연스럽게 출판 만화시장을 키워주
고 만화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만화평
론가 이동훈씨는 “작가들이 양질의 작품을 많이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상품화해서 고부
가 가치 산업으로 이끌어내는 출판사의 치밀한 기획력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며 “국내시장에서
아등바등 다툴 게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일본 쪽으로 진출하는 데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
적했다.

수퍼 히트 만화가 탄생한다 해도 대여점 구조를 하루아침에 판매 구조로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
고 대여점들을 없애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만화 대중화에 공헌한 대여점의 역할을 어느 정도
는 인정해야 하고, 다양한 만화를 싼값에 볼 수 있는 독자들의 권리도 무시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여점과 판매 서점의 비율 조정 또는 판매, 대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
이다.

만화가 황미나씨는 “영화가 극장용과 비디오용으로 판매되는 것처럼 만화를 판매용과 대여용으
로 구분해 판매용이 어느 정도 소화가 된 후 대여용을 푸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며 “한권 대여
될 때마다 작가가 인세를 받아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
다. 청소년보호법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가들의 창작 의욕에 찬물을 끼얹은 게 사실인 만
큼 이에 대한 정부 지원 같은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출판사에는 연간 2억4000만원이
지원되지만 정작 만화가들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정책이 없는 것도 우리 만화계의 현실이다.

아마추어 만화 사이트 카클(www.kacl.co.kr) 운영자 이혜영씨는 “출판사가 대중들에게 이끌리
지 말고 시장 개척을 위한 능력 있는 신인을 육성해야 하고 정부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통
해 만화 출판의 미래에 힘을 불어 넣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출판 만화 살리기’의 해법으로 일본 만화 점유율을 제한할 수 있는 ‘만화 출판
쿼터제’ 도입, 배타적인 출판유통 개선, 만화를 문화상품으로 인식시키는 매스컴의 적극적인 보
도, 인터넷 만화의 유료화 등이 제시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인터넷 만화시장이 유료로 재편돼 가
고, 정부가 우수 작가에게 창작금을 지원하는 법을 검토하고 있어 2001년 한해 만화계는 비교적
희망적이다. 현재 만화업계가 겪고 있는 불황이 각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개혁의
도화선이 돼 모두가 한 단계 점프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상혁 디지털조선
일보 엔터테인먼트팀 팀장ㆍ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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